'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행복할까'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00:00].
- 자아실현: 설문 조사 결과, 자아실현이 강의 주제로 채택되었습니다 [00:15].
- 근본적인 정체성: 강의에서는 자아실현을 통해 근본적인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00:47].
- 두 가지 차원의 고민:
- 마음 공부와 자기 개발: 마음 공부와 자기 개발은 서로 부딪히지 않고 통합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03:51].
- 인간 고민의 원형: '나는 어떤 사람인가'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행복할까'라는 두 문장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고민의 원형이라고 설명합니다 [04:08].
- 정체성의 포괄성과 협소성: 정체성은 포괄적이면서도 동시에 협소할 수 있는 개념임을 설명합니다 [04:32].
- 필요한 해답: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 [05:09].
- 인간의 근본적인 정체성에 대한 의문: '과연 지금 나라고 생각하는 이 내가 나의 전부일까'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의 근본적인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05:19].
-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어려움을 언급하며, 이를 알아가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05:44].
- 자신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없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09:03].
- 양가 감정: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나타나는 양가 감정에 대해 설명합니다 [11:27].
- 자아와 자기를 분리하는 작업: '나'라는 느낌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정확하게 알기 위해 자아와 자기를 분리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12:17].
- 자아와 나의 차이: 대부분의 경우 '나'와 '자아'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철학적으로는 차이가 있음을 설명합니다 [12:32].
- 가공된 나: '나'는 주체 그 자체를 의미하지만, 자아는 조건에 의해 가공된 '나'라고 설명합니다 [14:14].
이번 강의의 대주제는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그리고 이걸 넘어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지만 행복할까?”
그게 이번 강의의 주제입니다.
그래서 자아실현이라는 테마에 관련된 특강이죠.
이번 강의의 주제는
원래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설문조사를 했어요.
함께 공부하고 싶은 주제
거기에서 아주 박빙으로, 근소한 차이로 채택된 게
아마 자아실현일 겁니다.
그 풍요에 관련된 주제하고 그다음에 자아실현
이 주제가 경합을 벌였는데
몇 표 차이가 안 날 거예요.
그래서 자아실현이 채택이 된 겁니다.
그래서 오늘 자아실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근데 단순한 자아실현이 아니라
우리가 오늘 살펴볼 자아실현은
우리의 근본적인 정체성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하고 관련이 있다고 보시면 돼요.
근본적인 정체성.
거기에 염두를 두고 보시고
이때 채택된 주제 자체가 자아실현에 관련된 내용인데
그 이전에 퍼펙트 마인드 세팅 시리즈 중에
자아실현에 관련된 강의가 있었어요.
그거 들으셨던 분들 혹시 여기 계시지 않아요?
계셨던 분들, 들으셨던 분들이 계실 거란 말입니다.
근데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왜냐면은 그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내용은
지금 우리가 살펴볼 내용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깊은 내용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거기에 있는 내용 중에 일부를
오늘 우리한테 필요한 방식으로 따왔습니다.
따오고 그 프로그램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그 부분까지도
오늘 함께 공부할 거예요.
어찌 됐든 먼저 대주제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보이죠?
이게 저희를 아시는 분들은
지금 이게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지에 대해서 짐작을 하실 겁니다.
제가 PPT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아요?
살면서 두 번째예요.
저번 수요일날 했던 강의하고, 이번 강의하고
살면서 PPT라는 걸 두 번째 지금 써보고 있어요.
그래서 조금 미숙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리고요.
고백하자면 그 수요일날 했던 강의에서요.
제가 PPT 2장을 넘겼어요.
아무도 그걸 못 알아보죠. 저만 알겠죠.
근데 오늘은 절대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자, 느슨하게 풀어진 분위기에서 공부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대주제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행복할까?
자 이때 “내가 어떤 사람인 걸까?”라는 의문은
어떤 차원의 고민에 해당한다고 보세요?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적혀 있죠?
왜 이렇게 다들...
적혀 있잖아요, 눈치 보이죠.
근데 적혀 있는 거 이야기할 때 눈치 보이죠.
자 다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은 존재적 차원의 앎이죠.
그리고 존재적 차원의 고민이에요.
자 그렇다면은 두 번째는 뭡니까?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행복할까?”
이건 물어보지 않습니다. 적혀 있으니까.
실존적인 차원에서의 고민이에요.
저희가 마음공부를 하면서 부딪히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요
마음공부라는 것이
현실에서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쓸모가 없고
내 마음을 수양한다 하면서 정신승리 정도?
이거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제대로 된 마음공부와 자기개발은 절대로 부딪히지 않습니다.
하나로 통합이 되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한번 공부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말씀드리면
“나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뭐를 하면서 살아야 행복할까?”라는 근본적인 고민이죠.
자 그래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고민의 원형은
저 두 문장이라고 보시면 돼요.
“나는 어떤 사람이고
그다음에 무엇을 하며 살아야 행복할까?”
저 두 문장이 100가지, 천 가지, 만 가지의 고민들로 변화하게 되는 겁니다.
정체성이라는 개념은 너무나 포괄적이죠.
너무나 포괄적이면서
동시에 너무나 협소하기 이를 데 없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왜?
우리한테 익숙한
“나는 이러이러하다”라는 관념들 자체가
지금 내 정체성의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건 뭐예요?
협소한 거죠.
나는 지금 나한테 익숙한 어떤 나라는 관념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방대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걸 모르고 살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방대한 정체성이 아니라 협소한 정체성이 되는 거죠.
따라서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의문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지니고 있어야 됩니다.
차근차근 과정을 한번 밟아볼게요.
자 갑니다.
--첫 번째 도무지 알 수 없는 궁금증
과연 지금 나라고 생각하는 이 내가
나의 전부일까?라는 주제예요.
가장 먼저 결론을 내려야 할 주제
인간의 근본적인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에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에요.
인호야, 너 누구야?
언뜻 알긴 알지
네가 누군지는 알지?
그런데 이제 대답하라고 그러니까 이게 좀 그렇긴 하지?
다들 그래요.
다른 분한테 한번 여쭤볼까요? 다른 분
누구세요? 누구세요?
여쭤봤습니다.
물론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그냥 허공 이렇게 보면서 말씀드린 거예요.
근데 나한테 물어봤나?
이렇게 하시는 분들 계실 거예요.
이게 그냥 괜히 하는 뻘짓이 아니라
콕 집어 가지고 “너 누구야?”라고 물어도
사실 이제 말이 쉽게 안 나와요.
그다음에 허공에다가 “너 누구야?”라고 말을 던져도 말이 쉽게 안 나와요.
그렇다면은 공통적으로
“내가 누구다”라는 말을 인간은 쉽사리 단정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을 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래요.
아니 거의 모든 인간들이 그런 상태로 태어난다고 보시면 돼요.
따라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작업만큼
세상에 중요하고, 또 시급하고, 그리고 또 쓸모가 있는 작업이 없어요.
이 얘기는 뭐다?
죽기 전에 반드시 해결하자.
뭐를?
적어도 내가 누군지 압시다, 이거예요.
따라서 이 의무는
모두 마음공부의 기본적인 대상이기도 하고요.
철학, 과학을 비롯한 일체의 인문학 및 과학의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뭐의 주제예요?
과학.
요즘 양자역학 같은 거 보면 어마어마하죠.
형이상학인지 그게 물리학인지 구분이 안 가요.
핵심 주제예요. 저게
결국 인간이 만든 모든 학문은
“나는 누구인가?”
나아가서 나는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더라.
좋습니다.
자 이제부터 마음속으로 진지하게 한번 스스로에게 자문을 해볼게요.
여러분 마음속으로 물어보세요.
“나는 누구지?”
자연스럽게 해보세요
“나는 누구지?”
다시 한 번 자문해 보세요.
“나는 누구지?”
마음속으로 이렇게 쓱,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나는 누구지?”
“나는 누구지?”
재밌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제까지 살면서 하루를 기준으로 봤을 때도요.
연예인들 뭐 하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궁금한데
내 가수가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을까에 대해서는 그렇게 궁금한데
내가 누군지에 대해서 궁금한 어떤 그 시간이 몇 분이나 있습니까?
나의 하루 중에 몇 번이나 있을까요?
그것보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더 궁금하죠.
인간은요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누군가에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고, 좋아한다 싶으면
그에 대해서 뭐 하게 되어 있어요?
궁금증이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나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다면
이게 무슨 뜻일까요? 솔직히.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사랑할 준비 자체가 되어 있지 않은 거예요.
다시 한 번 질문해 보세요. 스스로한테.
“나는 누구지?”
자꾸 질문을 하니까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주 묘한 느낌 하나가 가슴속에서 몽골몽골 올라오기 시작할 겁니다.
계속 “나는 누구지? 나는 누구지?” 하면 그렇게 돼요.
몽골몽골
그리고 아주 미묘한 불쾌감이 거기 들어 있어요.
느끼셨어요?
그 불편함은 우리의 개체적인 자아의식이 일으키는 겁니다.
이유가 뭔가?
내가 누군지 너무나 뻔하고, 명백한데
지금 여러분들이 나라고 생각하는 그 나가 나잖아요
너무나 명백한데 자꾸 뭐를 해요? 거기에다가
“나는 누구지? 나는 누구지”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에고가 뭐 해요?
짜증나요.
동시에 자꾸 “나는 누구지?” 하고 의문을 일으키니까
위기감을 느낍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나는 누구 누구야, 홍길동이야” 너무나 명백한데
자꾸, 자꾸 의문을 갖다 던져줬더니 위기감을 느껴요.
그래서 불쾌해요.
자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은
묘한 불쾌감 밑에 또 뭐가 있냐면은
묘한 설렘이 느껴질 겁니다.
묘한 설렘이 느껴져요.
느껴지세요?
이게 어떤 느낌일까요? 어떤 설렘일까요?
이 또한 우리의 개체적 자아의식이 일으키는 설레임이지만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전자의 불쾌감이
자기 자신을 부정당한다는 느낌으로 일으키는 방어 기제라면
후자의 설렘은
이제야 내가 누군지를 알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적인 느낌이에요.
만약 그렇다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순간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겁니까?
양가감정 나타나고 있죠.
왜 양가감정이 나타날까요?
만약에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일말의 의심이 없다면은
양가감정이 일어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이치적으로, 없죠.
그런데 양가감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고는 있죠.
그런데 그렇게 아는 내가
나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양가감정이 나타납니다.
자 그래서 우리의 나라는 느낌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
최대한 정확하게 알아야 해요.
이를 위해서 작업을 하나 합니다.
자아와 자기를 구분하는 작업을 할 거예요.
자, “나는 내가 아닐 수 있다”라고 써놨지만
훨씬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할 수도 있어요.
“내가 아는 나는 내가 아니다”라고 말을 해도 무방합니다.
정말이에요.
대부분의 경우 나라는 것하고 자아를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나하고 자아가 같은 걸까?
달라요.
철학적으로는요
나라는 것은 자아를 가리키긴 해요.
하지만 자아(自我)와 나는
이 둘은 사실 차이가 있습니다.
자아란 말은 스스로 자(自) 하고요.
나 아(我)가 합쳐진 단어예요.
-그래서 스스로 말미암아 있는 나
-혹은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나라는 뜻이에요.
또한 철학적으로는
대상의 세계와 구별되는 인식과
행위의 주체로서의 나를 의미를 하고
심리학적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또 자아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아라는 거는 여러 가지 범주로 고찰이 가능한 개념이에요.
예를 들어서
철학적인 개념, 심리학적인 개념, 종교적 개념, 의학적 개념 등의 자아라는 개념들이
모두 조금씩 달라요.
그리고 또 뭐예요?
학파들마다 또 달라요.
학자들마다 또 달라요.
뭐에 대해서?
자아에 대해서 정의가 달라요, 범주가 달라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도 어떻게 돼요?
차이가 있겠죠.
하지만 나라는 거는 아주 심플합니다.
나라는 건 주체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주체.
이게 무슨 뜻인가?
보편적인 주체성을 의미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주체라는 게 있으려면 여러분 뭐가 있어야 되죠?
대상이 있어야 되죠.
따라서 주체와 대상의 주객 도식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상대적 세상의 기본 구조인 이 주객 도식 안에서
주체의 역할을 맡는 걸 뭐라고 부르는 거예요?
나라고 부르는 거예요.
보편적인 주체성을 의미하는 이 나라는 것이
어떤 모습을 입거나 아니면 무언가와 동일시될 때
여러 가지의 나가 생겨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겨나는 나는
나 자체가 아니라
뭐에 의해서 가공된?
조건에 의해서 가공된
가공된 나인 거예요.
대표적으로 자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여러분들의 자아라는 것은
그래서 전부 다 뭐라는 이야기입니까?
가공된 나입니다.
진짜 나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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