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내가 첫 질문을 하려고 일어설 때면
카터는 ‘움찔’했고, 레이건은 ‘웅크렸’고
부시는 ‘오, 노!’라고 말하는 걸 느꼈다.
-헬렌 토머스 <백악관의 첫째 줄>
미국 UPI통신 기자 헬렌 토머스(1920~2013)
그는 50년 동안 백악관을 출입하면서 10명에 걸친 대통령에게 질문을 쏟아낸 기자였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불편한 질문들을 말이지요.
닉슨에게는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를
클린턴에게는 르원스키 스탠들을,
부시에게는 이라크전에 대한 질문들을 집요하게 날리던 기자.
그래서 그는 “당신이 사랑받고 싶다면 이 직업에 뛰어들지 말라”고 기자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에게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움찔하기, 웅크리기, 그리고 ‘오, 노!’
기자라면 상대방을 이렇게 만드는 질문을 한 번쯤은 날려보고 싶은 것은 당연하기도 합니다.
무슨 자격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시민들을 대표해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무형의 자격증을 갖고 있는 것이 기자이니
그들은 오늘도 여전히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질문은 권력이라고 했습니다.
질문은 대답을 전제로 성립하는 것이고, 질문을 하면 답을 해야 하는 구조.
그러니까 질문은 곧 권력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자격증이 필요 없는
다만 사회적 합의와 관행에 의해 주어진 그 권력을 또한 검증하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제의 풍경.
법무부 장관은 싸늘한 정적 속에 단지 발표문을 읽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인사를 받을 사람도 하나 없이.
“장관과 별도의 질의응답 시간은 마련되지 않을 예정”
-법무부
그는 답변의 의무를 지지 않기 위해서 질문의 권한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은 기자회견 참석을 거부했지요.
장관과 기자들의 기 싸움 때문에 시민들 대신 질문할 권한이 사라진 시간
어제의 장면은 아마도 민주화된 시대의 흑점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 다른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9년 전, 오바마는 한국 기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기자에게 질문을 받겠습니다. 아무도 없나요?”
-G20 서울정상회의 폐막식 (2010년 11월 12일)
침묵이 흘렀던 시간.
그 침묵의 시간은 주어진 권한조차 행하지 못했던 한국의 언론에 대한 비난과 비아냥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 때마다 정해진 순서대로 질문하고 그것을 그만이었던 장면들과
급기야는 그저 두 손을 모으고 있어야 했던 저 유명한 신념 기자 간담회까지
‘움찔’ ‘웅크림’ 그리고 ‘오, 노!’
우리 언론이 상대로부터 이런 반응을 매우 정당하게 받아낼 수 있기 위해서는
오바마 회견에 대한 기억과 대통령 연두 회견에 대한 기억이 그만큼 옅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될 때까지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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