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안도현 <사랑>
아닌 게 아니라 폭염이 지속되면서 가장 신이 난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매미들입니다.
여름이 가장 즐거울 모기조차 무더위에 맥을 못 추고 활동성이 떨어지고 있다는데, 매미는 그야말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이죠.
게다가 도시에 참매미 대신 자리 잡은 말매미들은 기온이 40도에 가까워질수록 활발해진다 하니 지금이 울기에는 가장 좋을 때입니다.
그러나 아시는 것처럼, 그 시끄러운 말매미 소리의 유효기간은 고작 보름 남짓.
그들은 땅속에서 길게는 7년의 시간을 보낸 뒤에 세상에 나와서 있는 힘을 다해 2주일 정도를 울어 젖힌 후에 생을 다하고 사라집니다.
제아무리 시끄러워 봤자 몇 주만 참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도시의 사람들은 시끄러운 한철을 버텨 넘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만 지나면 사라지고 잊히는 것이 어디 매미 소리뿐이랴.
이름하여 ‘한철 입법’
타는 듯 찌는 더위 때문인지 폭염에 상시 대비해야 한다는 입법안은 쏟아지고 있죠.
사실 알고 보면 우리 국회에는 이미 지난 2016년 폭염 당시에 반짝 만들어졌으나 아직 처리조차 되지 않은 법안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잠시만 버티다가 이윽고 폭염이 지나서 가을이 되면 그 서늘한 바람에 실려 언제 매미가 울었냐는 듯 사라지고 말았던 법안들.
봄날 하늘을 뒤덮었던 미세먼지를 막겠다고 나왔던 대책들이 그러하고, 우박이 쏟아지거나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때맞춰 나왔던 피해보상 강화법안들과 겨울에 큰 화재가 일어나도 발의됐던 법안들은 제 각각 여름과 겨울에 집중적으로 나왔다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중이지요.
이른바 ‘한철 법안’들은 생겨날 때부터 한여름의 매미 소리처럼 사라질 운명이었던 셈일까.
시류 따라 숟가락 얹어 놓듯 법안을 만든 이들이나, 논의해야 할 사람들 또한 그저 한 여름 말매미처럼 잠시만 큰 울음소리를 내면 결국 사람들은 모두 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그래도 그 매미들은 7년이 넘는 기나긴 인고의 시간 끝에 세상으로 나왔다는 사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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