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46] 보통 사람들이 깨어나는 시대 | 의식의 자각 상태를 공유하는 것

Buddhastudy 2024. 10. 16. 19:37

 

 

한 개 의식이

우리 지금 숫자만큼 이렇게 지금 경험하고 있어요.

이해되세요?

 

한 개 의식이 지금 우리 숫자만큼 지금 경험하고 있어.

그럼, 현재 인류가 지금 80억이잖아요.

한 개의 의식이 80억 인류를 통해서 인생을 경험하고 있어.

맞아요?

 

강아지 몇 마리겠어요?

고양이 몇 마리겠어요?

개미, , 온갖 것에 다 본질은 들어가 있어요.

 

본질인 의식은

꿈틀거리는 벌레한테도 있다.

이게 부처님 말씀이에요.

꿈틀거리는 벌레한테까지도 이 의식은, 본질은 다 들어가 있다.

그럼, 그 수가 엄청나다.

 

중생이 태생, 난생

, 태는 우리 인간처럼 포유류

난생은 알 통해서 나오는 거

습생 온갖 물에서 나는 온갖 바이러스들까지 포함해서

그리고 화생, 인연 따라 화해서 화신으로 나오는

그러니까 이 숫자가 거의 무한대죠.

 

보세요.

1개의 의식이 무한대의 생명을 통해서

무한대의 낱생명을 통해서 지금 이 현상계를 경험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낱생명 하나의 생산은

전체 의식으로 볼 때는 너무나 정말 이것은 천지가 불인하지.

 

그런데 희한한 게 뭐냐 하면

1개 의식이 완벽한 채로 지금 나를 통해서 경험하는 거예요.

이것도 신비예요.

 

이것은 왜냐?

이게 지금 우리들의 본질인 의식이 부처라서 그래요.

부처라서 자기를 수없이 많이 나누어서

수많은 중생을 통해서 이렇게 경험하고 있어.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솔직히 말하면

제가 지금 무한대의 중생이라고 말했죠. 맞아요?

근데 진짜 이 본질 입장에서는

무한대의 중생이 전부 다 그림자 같지 않을까요?

캐릭터다, 캐릭터.

게임 속의 캐릭터다 이거예요.

 

그러면 실제로는 뭐예요?

지금 여러분 안에 있는 의식은

지금 이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낱생명의 입장에서는 이 의식 하나밖에 없잖아요.

이 의식 하나 안에

수많은 또 의식이 중중무진으로 중첩되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세상은 지금

나 혼자뿐이다, 이거예요.

이 의식 하나뿐이다, 이거예요.

이 의식 하나가 나를 통해서만 그런 게 아니고

이 무한대의 생명을 통해서 각각 하나뿐인 거예요.

 

이게 신비야.

의식이 참 대단한 거예요, 알고 보면.

 

근데 깨달음이라는 것은 간땡이가 붓는 일이에요.

지금까지 주관을 나라고 알고 살다가

주관 객관을 모든 걸 포함해서 나타난

이 의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제가 간땡이가 붙는다이 말은

일단 스케일이, 나의 사이즈가 무한대로

지금 1개면서 또 수많은 생명체를 통해서 재현되고 있어서

그게 하나하나가 다 나니까

진짜 무섭게, 엄청난 스케일로 내가 커진다 이거예요.

 

이렇게 스케일이 커진 것을 [화엄]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화엄경은 이 스케일을 다루는 거예요.

한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경은 [화엄경]이에요.

이게 이 무시무시한 엄청난 중중무진의 이 의식의 스케일을 다루고 있는데

한국인들이 이렇게 호강한가 봐.

우리한테는 이게 맞는 거예요.

그래서 화엄경이 한국에서는 가장 사랑받는 경이다.

 

그래서 지금 신수는

현상계의 주관을 나라고 하고 있다.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민경대인데

때때로 부지런히 들고 닦아서 물사야진애勿使惹塵埃

 

그 한자 제가 토는 안 달아놨습니다마는

물사야진애勿使惹塵埃

_ 물은 하지 마라

_ 하다, 하다가 사예요.

그러니까 물사는 하지 말라.

_ 끼다.

진애_ 먼지와 티끌이에요.

먼지와 티끌을 끼지 않게 하라.

물사야진애

 

그러니까 이것은 부처님이 6년간 처음에 수행을 할 때

현상계에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하던 그 수행.

왜냐하면 부처님이 이렇게 깨닫기 전에는

힌두교를 기반으로 하는 인도 사회에서는

아직 깨달음이 없었을 때는

현상계에서 부지런히 털고 닦을 수밖에 없었다.

 

부처님의 출현이 인류 역사상에서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본질을 깨달은 거다 이거예요, 인간한테서.

인간이 전부 현상에서의 주관을 나라고 알고 살던 그런 무명의 상태에서

한 명이 이 본질을 깨달았다, 이거야.

[나는 주관이 아니고 본질인 의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거는 정말로 인류사회에서 아주 획기적인 일이에요.

 

근데 재미있는 것이 여러분

그 학자들이 연구를 했더니, 이런 사례는 많아요.

남태평양의 섬에서 이거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예요.

한 섬에 원숭이가 고구마를 땅에서 캐서

먹으려고 하니까 흙이 붙어 있어서 성가시잖아요.

근데 한 원숭이가 문득 각성이 되어서

이 고구마를 섬이니까 바다에 가서 씻어서 먹으니까

더 짭조름하게 더 맛있잖아요.

흙도 씻고 또 바닷물이 묻어서 짭조름해지고 하니까.

그래서 한 원숭이가 처음으로 고구마를 캐서 바닷물에 씻어 먹었대요.

근데 희한하게 다른 섬에서

한 원숭이가 그렇게 하니까 다른 섬의 원숭이들도

시간상으로 금방금방 그런 원숭이들이 속출하더라는 거예요.

상황 이해되세요?

 

이게 서로 통한다는 이야기야, 본질에서는.

본질은 한 판이거든요.

한 판 본질은 한 판이다.

여러분 의식한테는 이게 지금 이 우주 전체가 한 판이에요.

의식한테는, 이해되세요?

 

*!

이 소리가 의식의 입장에서는 우주가 울리고 있어.

지금 이게 지금 칠판이 한판일 때는

여기를 쳐도 저 끝에도 같이 울려요.

이해되세요?

통한다고요.

 

그러니까 부처가 깨어나니까 그 이후로 사람들이 많이 깨어났어.

육조 혜능이 깨어나니까 오가칠종에 깨달은 사람이 무수하게 쏟아져 나왔어.

오가칠종이 활약했던 곳이 육조 혜능 스님의 제자들이 활약했던 곳이

중국의 양자강에 강서성이 있고, 호남성이 있어요.

딱 둘이 붙어 있어.

그래서 강서성과 호남성에 주로 육조의 제자들이 많이 활약했어요.

그래서 강서성에서 깨달은 사람들이 나왔다.

호남성에서 깨달은 사람이 많이 나왔다 해서

강서성에서 나온 호남성에서 나온 걸 앞자를 따서 강호 제현

강호의 여러 현인들, 깨달은 사람들

그래서 강호 제현이라는 말이 오가칠종의,

이 시절에 나온 출연한 깨달은 사람들을 말하는 거예요.

무협 소설에 강호 제현 나오잖아요.

그 강호라는 말이 여기 이 땅을 말하거든.

 

그러니까 육조가 깨어나니까 그냥 막 나오는 거예요.

막 우후죽순으로.

진짜 많은 사람이 쏟아졌어요.

그전까지는 없다가.

 

그러니까 이게 무서운 거예요.

부처가 깨닫고 나니까

막 이렇게, 막 깨어난 사람이 나왔고

육조가 깨어나니까 또 막 그 이후에 쏟아져 나왔고

 

여러분,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시대도 같아요.

지금 우리 시대도

지금 특히 서양에 이게 전달이 돼서

지금 서양에서 엄청나게 많은 깨달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제가 한 명, 한 명 다 외웠거든요.

서양에 깨달은 사람들을 다 제가 알았거든요.

요즘은 못 외워, 너무 많아서.

책이 엄청 나오고 있어요.

 

여러분, 지금 시대가 지금 엄청나게 각성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예요.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하면

우리들이 공부하기 좋은 시절이고

보통 사람들이 깨어나는 시대가 열렸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좋은 시절에 태어난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여러분.

깨닫고 났을 때

과연 나의 깨달음이 이게 맞나 안 맞나 궁금하지 않나요? 그렇지 않나요?

그러면 결국에는 깨달은 사람을 찾아가서 점검을 받고

그리고 그런 기회가 또 요즘에는 책이, 깨달은 분들이 쓴 책이 많으니까

읽어보면 그 내용이 내 뜻하고 딱 같으면

나도 깨달은 거죠.

 

다시 말하면

꼭 내 마음을 나타낸 것 같아, 책들이.

그러면 깨달은 것이 확인되잖아요.

그 기회가 지금 많이 열려 있다, 이거예요.

수많은 책과 유튜브에서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서

지금 정말 제자백가처럼 막 지금 떠들고 있다, 온갖 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론 가풍이라는 게 있어서

깨달아도 그 사람의 개인의 소질은 달라요, 사람들이.

이해되나요?

안목은 같아도 표현되는 방식은 달라. 이해됐나요?

그러면 거기에 따라서 약간의 그 안목의 우열은 있어요.

근데 우열은 있지만 대부분 다 비슷비슷해 대동소이해.

 

그러면 그런 걸 듣다가 듣다가 하다가

탁 이렇게 알아채서 나도 깨닫게 될 확률이 높다

여러분도 뭔가 지금 번쩍한 게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안 그럼 여기까지 찾아올 리가 없죠.

 

여러분들 유튜브에서

제 유튜브 보시고 뭔가가

하여튼 마음에 심적인 뭔가가 느낀 바가 있어서

한번 찾아가 봐야 되겠다고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근데 이것이 그런 분이 모여서

지금 이렇게 인사동 선방도 만들어지고

이거 작년에 만들어졌거든

 

역사가 얼마 안 돼요.

근데 이런 것들이 막 그냥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공부하기 좋은 시절이다.

근데 지금 방금 제가 이렇게 설명드린 것이

이 신수의 개성이 서 있는

한계점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이야기를 한 거예요.

 

지금 현상계 안에 주관을 나라하고 동일시하고

그 주관이 번뇌 때문에 괴로우니까

번뇌는 오염이니까

그 오염을 정화시키자, 부지런히 털고 닦자.

그래서 먼지가 끼지 않게 하자

이게 우리가 이해된다 이거예요.

 

근데 육조의 깨달음은 이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근데 지금 진도는 육조의 깨달음은

다 다음 시간, 좀 더 지나야 나와, 진도가.

 

근데 미리 이야기를 하면

간단 명료한 게 뭐냐 하면

현상에서 갈고닦는 거

그것은 현상 자체가 인연 따라 만들어진...

 

여러분, 연기라는 말은

인연 따라 여러 조건이 맞춰져서 생겼다는 뜻이에요.

따라서 연기된 것은 실체가 없어.

현상계에 있는 모든 것은 연기되어서 만들어졌고

그 연기되어 만들어진 것은 조건에 따라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조건이 변화하면 같이 사라져요.

그래서 이거 실체가 아니야.

그래서 공이라고 하는 거예요.

연기=

 

그러니까 지금 주관이, 문제는 주관이에요, 우리한테는

우리 공부인 한테는 솔직히 깨놓고 말하면

지금 에고의 문제를 해결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에고가 연기된 것이다, 이거예요.

연기된 것은 공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 점을 깨달으려면

현상계 안에서는 이렇게 말을 들어도, 이해를 해도, 에고는 안 떨어져요.

이해되나요?

 

교묘하게 이걸 또 이론화시켜서

또 에고는 이론을 가지고서 또 살아남아.

그래서 결국에는 본질이 깨어나야 돼요.

[본질인 의식이 자각해서 각성해서 스스로 깨어나야 돼요.]

 

그러면 본질이 깨어나면

현상계가 그대로 연기고, 공이고, 다른 말로 하면 []이에요.

[]이고 []이에요, 이 현상계가.

 

그래서 본질 입장에서는, 의식 입장에서는

이게 지금 있지만 있는 게 아니야.

일종의 영화 속 같아요.

그렇게 우리를 사로잡아요.

 

근데 누군가가 그 영화관에 불을 탁 켜면 어떻게 돼요?

불이 딱 들어오면

어 영화네

영화네 하면서 그 조마조마했던 것이 그냥 싹 날아가 버리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영화를 보는 관객인 의식은

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의 입장이에요.

그럼, 관객한테는 영화 속에 모든 일이

이것이 환이구나, 꿈이구나하고 알잖아요.

 

그래서 육조 혜능은 뭐라고 딱 한마디로 말하면

한 물건도 없는 거다. 이것이

공이라고 했어요.

그 공이라는 표현이 본래 무일물이라고 육조는 이야기를 한 거예요.

 

지금 신수는

이것을 실체로 보고

이 에고를 실제로 보고

에고를 구성하는 몸, 부지런히 정화하고

마음, 부지런히 정화해서 갈고닦자

쓸고 닦자 깨끗하게 하자. 그래서 번뇌로부터 자유롭게 하자.

환거하고.

의식 입장에서 보니까 몸과 마음은 전부

환이구나, 공이구나, 꿈과 같구나,

한 물건도 이게 있지만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게 이제 육조의 게송이에요.

그게 이제 유명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이 현상계가 본질인 의식 입장에서는

한 물건도 없다.

그러니까 이게 안목의 차이가 그냥 한눈에 딱 드러나는 거다, 이거예요.

 

지금 상황 이해됐어요.

우리가 이 육조단경을 공부하는 이유가

이 안목을 우리가 배우자는 거잖아요.

 

지금 핵심 안목이

현상에서의 주관을 지금 우리는 나라고 하고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 주관은 객관을 상대해서 지지고 볶고 있어.

그러니까 고통스러운 거예요.

 

근데 실제로는 우리가 누구냐 하면

주관이 아니고

주관 객관 전체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 인생이라고 하는 꿈을

죽객의 꿈을 꾸고 있는 의식이 지금 나의 본질이다. 이거예요.

의식이 나인 걸 깨달으면

이것이 꿈과 같아서

여기에 집착을 하던 것을 놓는다 이거예요.

 

지금 핵심이

집착을 놓는다 이거예요.

고통은 집착하면 고통이고

놓으면 고통의 해결이에요.

 

이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을 육조사상의 핵심이

무주無住라는 거예요.

머물지 않는다.

머무른다는 말이

현상에 집착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응무소주 이생기심에서 깨달았고

육조혜능이 깨달은 금강경 대목이

마땅히 집착하지 않고 그 마음을 내라하는 데서 깨달았다.

무주가 지금 육조 혜능의 사상이다.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면 여러분 보세요.

내가 주관인 에고면서

아 집착하지 않아야지한다고 집착 안 해집니까?

미치도록 집착하죠.

작심삼일이죠.

 

그럼 언제 집착이 떨어지는가?

정말로 내 몸의 중심이

주관에서 본질인 의식으로 옮겨가서

진짜로 이게 꿈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야지

손을 거둬들인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아는 거 하고

실제로 나의 무게 중심이

주관에서 본질인 의식으로 옮겨가는 거 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예요.

 

그래서 지행합일이 어려워요.

아는 거 하고,

, 실제로 행하는 거 하고는 어려워요.

 

그래서 일종의 수행이라는, 공부라는 것이 있는 이유는

아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일종의 실천을 해야 되기 때문에

행이라는 말은 수행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이해한 다음에는 행을 해야 돼.

이 몸을 움직이는 게 뭐예요?

지금 이거 뭐 뭐 뭐 딴 거 아니라고

그냥 평상의식이라고 이게

그냥 아무나 모든 사람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잖아요.

그거

꿈틀하는 거

지렁이도 의식이, 그게 의식이라고.

의식의 다른 말이 생명이에요.

의식=생명

생명은 꿈틀한다 이거예요.

 

지금 죽비하고 나하고 차이점이

지금 생명이라는 거 아닙니까? 생명.

 

몸은 물질인데

여기 의식이라고 하는 생명이 깃들어서

지금 이러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제가 말하고 여러분이 지금 끄덕끄덕하고

이렇게 하고 소통하고 있는 것은

의식과 의식이 하고 있다 이거예요.

이심전심이 다 이거야.

 

제가 오늘 어떤 심정으로 수업에 임했느냐 하면

앞으로 제가 스스로 느끼는 바가 있어서

일기일회一期一會

이런 말 들어보셨죠?

이게 일기일회예요.

원찬스는 한 번 만납니다.

모든 만남이 하나의 찬스다.

 

제가 회에다가

회는 모일 회

모여서 하나의 이런 도량을 이루는 것을 [회상, 會上]이라고 해요.

회상 영산회상 이런 말 쓰잖아요.

영산에서 부처님과 제자들이 모였다.”

그 모임을 회상이라고 한다고요.

 

그러면 매 수업이 하나의 회상이야.

이때 뭐가 모이느냐 하면

회상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영산회상이 가장 대표적인데

뭐가 모이느냐 할 때는

의식에서 의식으로 소통하는 것

이심전심의 소통하는 그것을 회상이라고 해요.

 

그럼, 보통 사람이 모여서

그냥 자기 생각대로 떠드는 거

회상은 본질이 모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냥 만나서 떠드는 것은 회상이 아니야.

영산회상은 부처님이 본질로서 의식으로서 자각 상태에 있고

그리고 그걸 알아듣고 제자들도 깨어서

자각 상태에 있어서

서로 말 안 해도 이때는 말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이때의 언어를 [몸짓]이라고 해요.

 

이 몸짓이 선가에서는 [문신]이라는 말을 썼어.

문신

문신이라는 말을 써서

이건 백장청규에 나오는 말이에요.

백장청규에 차를 마실 때는 입은 닫고 의사소통은 문신으로 한다.

문신은 몸짓이에요.

 

그러니까 차 마십시다할 때는

제가 차 마십시다안 하고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한다 이거에요.

 

그러면 백장 스님 그 당시에

백장 스님은 육조에서 얼마 안 멀어요.

7조가 남악, 8조가 마조, 9조가 백장이네.

그러니까 육조 혜능 밑에서 깨달은 사람이 막 나왔을 때

백장이 청규를 지었다.

깨달은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참선하는, 스님들이 모여 사는, 규칙을 지었다.

 

그러면 그 규칙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

밥 먹고 차 마실 때

서로 몸짓으로 한다.

왜냐?

입을 열면 분별의 현상계로 떨어지는데

깨어서, 깨어 있는 사람끼리는 입을 열 필요가 없이

이심전심으로 모든 의사소통을 한다.

이걸 문신이라고 한다.

이렇게 진짜 이거 엄청난 거예요.

 

그러니까 보세요.

모든 사람이 자각 상태에서

서로 간에 까딱까딱 하면서 살면

이 세상이 변하겠죠.

 

그러니까 여러분

제가 요즘 뭘 반성하느냐 하면

저는 지금 수업 2시간 내내 떠들었잖아요.

안 떠들고 이렇게 까딱까딱하고 회상을 이룬다. 회상을 연출한다.

그래서 정말로 진짜 공부는

지금은 할 수 없이 소통을 해야 되지만, 언어로.

진짜 공부는 서로 같이 깨어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

제일 중요한 거는

의식의 자각 상태를 공유하는 거예요.

혼자보다 2, 3명 여러 명이 같이 깨어 있는 것이 엄청난 힘을 가져요.

 

그래서 영산회상이 진짜 아름다운 거야.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

 

부처님이 이 의식을

나는 깨어있다는 걸

나는 에고가 아니고 본질인 의식이라는 걸

스스로 드러내기 위해서 꽃을 드셨다.

몸뚱아리는 물질이라서 꽃을 들 줄 모른다.

꽃을 드는 것은 나의 주인공인 나의 본래면목인 이것이 든다.

또 그걸 알아듣고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 더 이상 이제는 입을 열 필요 없이 소통이 이루어진다.

 

본질이 깨어나는 그 장면이 진짜 아름답다 이거예요.

그래서 일기일회상

매수업이 회상을 만들어가는 것.

 

그러니까 지금 공부하는 동안은 깨어 계시죠? 사실은.

제 말 따라오려면 깨어 있어야 되세요.

근데 따라오다 보면

어느새 이심전심의 느낌이 들지 않나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비싼 수업료 내고

이 귀한 시간을 내서

이 먼 데까지

여기도 아마 지방에서 오신 분 계실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오시고, 이렇게 같이 하고 있는 이유는

이것이 인간한테는 정말로 맛이 있어요.

이심전심의 그 상황이 정말 소통하는...

 

인간이 가장 문제가 소통이거든.

근데 최고의 소통은

서로 간에 깨어서 의식과 의식이 소통하는 거예요.

내가 사라지는 경험

내가 사라지고

에고는 사라지지만 본질은 안 사라지죠?

 

그때 에고가 딱 사라졌을 때

이렇게 생각의 흐름이 딱 끊어졌을 때

에고가 탁 드러날 때

그때 우리는 무한을, 영혼을 경험하는 거예요.

그게 인간 구원의 소식이죠.

거기에 우리가 이렇게

 

그 맛을 그 무엇하고도 비교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그런 걸 우리가 이제 자꾸 하기 위해서 이 공부를 지금 하는데

저는 결코 날로 먹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걸 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도는 정말로 각고의 노력을 들이고

시간을 투자해야 되고, 정성도 바쳐야 되고.

그래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 무지막지한 지금 신수식의

그런 수행 이 필요 없는 건

저는 아니라고 봐요.

부처님이 6년 고행이 헛되지 않았다고 봐요.

 

그걸 해봤기 때문에

그것이 한계가 있다는 걸 발견을 한 거지

그것도 안 해보고 그냥 본질로 뛰어넘을 수는 없어요, 인간이.

 

그러니까 수행을 해야 되고

그 실패를 거듭함을 통해서 자각이 일어나는 거고

그리고 그걸 통해서 이 본질의 세계로 들어왔을 때는

더욱더 수행해야 돼요.

 

그러니까 진짜로 이 자각을 놓치지 않는 거, 이게 이제 진짜라고요.

이 수행이라는 것이 정말 정직한 세계예요.

그래서 자기한테 정직하고, 철저하게 다잡고 다잡고

그러니까 저 같은 사람은 뭘 봐도 이게 공부로 연결돼

무정설법이라고 모든 게 설법으로 들린다.

그래서 이쪽에 관심이 있어야 돼요.

도에 관심이 있어서 내가 정성을 드리면

날로날로 나의 이 도가 성숙해져서

모든 것이 공부에 대한 어떤 법문으로 들리는. 모든 것이.

그렇게 하면서 내가 커지는 거예요.

그게 인생의 재미예요.

 

그러니까 그 인생의 최고의 재미는

도가 자라는 것, 무럭무럭 자라는 것

이거 이상의 재미는 없는 거예요.

영혼하고 통하니까, 이게 나의 구원의 길이니까.

 

오늘 하여튼 여기까지 공부했습니다.

질문 하나만 받고 마치겠습니다.

 

(제가 아직 머릿속에 정리가 제대로 안 돼서 그러는데요

여러 생활을 통해서 수많은 이렇게 태어난 어떤 생물들이

그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랬잖아요.

근데 어떤 스님한테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지 물어보니까 없다라 답을 줬잖아요.

그거는 어떤...)

 

조주 문자 공안이죠.

기본적으로는

저도 질문이 나왔으니까 답변이

항상 이 깨달은 사람은 두 가지 의도를 함께 써요.

두 가지 의도를 함께 쓴다.

 

보세요.

개한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분별을 가지고 본질을 잡으려고 하고 있죠.

 

불성은 본질이잖아요.

그러면 분별이라고 하는 에고의 특성을 가지고

의식이라고 하는 본질에 대해서 묻고 있죠.

 

그러면 이걸 아는 사람은 자비롭게

그 사람의 그 분별을 일단 끊어야 돼요.

 

그러면 있다 하는 거 하고, 없다 하는 거 하고

있다고 해도, 없다고 해도

첫 번째 목적은 둘이 동시인데

하나는 그 사람의 분별을 끊어주는 거예요.

 

그럼 이 사람은 일단은 불성이 있다고 알고 있죠.

그리고 있다 해버리면

이거는 분별을 끊어주는 게 아니고, 치우쳐 있잖아요.

분별을 끊어주려면

일단은 그 사람의 기대하고는 반대로

-그러니까 무라는 말이

첫 번째는 그 사람의 분별을 끊어주는 거예요.

오케이?

 

-두 번째는 본질을 드러내는 거예요.

무 한마디가 끊어주면서, 죽이면서

묻는 사람의 분별은 죽이면서

조주의 본질은 살리고 있어.

 

하는 게 뭐예요?

그 장작 더미에서 뽀등뽀등 굳어가다가 불에 타죽는

이 물질이나 조주의 몸이나 같을 거 아니에요.

 

근데 다른 점이 뭐냐 하면

그러니까 지금 불성을 물었잖아요.

불성의식이잖아요.

 

그러면 조주가 하는 것 자체가 의식을 드러내고 있죠.

하나, ‘하나

하늘이 맑다 하나, 오늘은 비가 온다 하나, 죽비를 이렇게 드나

미소를 짓거나, 가만히 있거나

조주 입장에서는 본질을 드러내고 있는 거예요.

이해되세요?

 

살활동시

모든 공안은 살활동시

[]은 상대방의 분별을 죽이는 것

그래야 되죠. 그래야 들어오니까.

그리고 []은 나의 본질을

말 내용은 소용없어.

해도 돼, 모른다 해도 돼.

모른다 하는 것도 지금 조주로서는

안다 모른다가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자기를 드러내고 있는 거다.

이거예요.

 

모든 것은 살활동시의 원리하에 진행된다.

깨달음을 가르칠 때는

 

그러니까 여러분의 분별은 죽이고

그리고 본질은 살리고

그리고 무하고 무를 또 들을 거 아니에요 상대은.

무를 들는 건 상대방의 본질이잖아요.

 

그러니까 나의 본질과 상대방의 본질은 살리면서

동시에 분별은 죽이는 것

살활동시

 

이게 지금 가르치는 방법이에요.

오케이?

이걸 중도라고 해요.

 

질문 잘하셔서 보너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