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47] 모든 것이 나로 수렴된다 | 이제 집을 나가지 않는다

Buddhastudy 2024. 10. 17. 19:12

 

 

신수의 게송은

신수의 사고방식을 적어놓은 거예요.

그러면 보통 사람들의 사고방식하고

깨달은 조계 혜능, 육조 혜능의 사고방식은

차이가 있어요.

 

그 차이점을 잘 우리가 알아채는 게

공부의 핵심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보통 사람을 대변하는

[신수의 생각]은 어떤 거냐 하면

인간은, 나는

몸과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살아오면서

업으로, 업장으로 이것이 오염되어 있다.

그러면 이것을 부지런히 틀고 닦아서

깨끗하게 해 가는 것이 마음공부다.

이게 거의 상식적으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이 문제는

나는 어떤가하는 거예요?

나는 어떤가.

 

육조 혜능의 사고방식과 이 신수의 사고방식 중에서

나는 어느 쪽이 더 가까운가 할 때

여러분의 의식은

나는 육조 혜능 쪽으로 가야겠다고 하시겠지만

무의식은, 여러분의 무의식적인 습관은

여전히 신수 쪽에 가까울 거예요. 아마.

그러니까 그런 자기를 보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깊은 삼매에 들어가서 소리를 들었다.

그러면 그 소리가 일어난 그것이

자기 의식 속일까요? 의식 밖일까요?

의식 안이겠죠.

의식 밖일 수는 없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안드로메다를 갔다 왔다 그러면

그 안드로메다가 나타난 그 바탕, 배경, 그 자체는

자기 의식 속일 거 아니에요.

이해되나요?

 

그러니까 눈이

나타난 것에 가느냐?

아니면 그 나타난 바탕, 나타난 무대, 거기에 가 있느냐?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계속 반복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떤 현상이 일어나 건

그 현상이 일어난, 하여튼 말하자면

시공간의 어떤 바탕

무엇이 일어나든

그 바탕이 육조 혜능이 깨달은 것이에요.

그것이 본성

성이라는 말이 바탕 성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래 가지고 있는 성품, 바탕, 본질

그러니까 그것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나머지는 전부 다 현상이에요.

그 현상은 생겼다가 사라져요.

그러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집착이 생기고

모든 집착은 갈등과 고통을 낳아요.

 

지금 이건 기초인데, 선의 기초인데

그러나 제 입장에서는

이거는 정말 아무리 강조해도 이건 지나치지 않다.

철저하게 철저하게

그래서 여러분이 제 생각에는 들뜨지 마시고, 뭐 좀 알았다 하지 마시고

철저하게 이 바탕에 대한 나의 안목이 분명한가?

이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그래야 안 속아요. 그래야 안 속는다.

 

어느 정도 안 속는가?

여러분, 어느 정도 안 속는가?

중요해요. 보세요.

 

육조 혜능이 부처가 무엇인가?

육조 혜능 스님의 사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부처가 무엇인가 할 때 자성불自性佛 사상이다.

조계사상은 자성불 사상이다.

 

부처가 무엇인가?

스님이니까 당연히 부처가 중요하죠.

부처가 무엇인가?

부처가 자성

자기의 성품, 자기의 본질이 부처다.

이게 조계의 깨달음이에요.

 

그러면 자성불 사상에 우리가 철저하다면

지금 보세요.

그 무엇이

수업 시작하기 전에 제가 가만히 보니까

대부분의 분들이 가만히 눈 감고

제가 죽비를 안 쳤는데 입정합시다, 안 했는데

여러분이 스스로 대부분이

이렇게 눈 감고 고요하게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시간 되기를

그럴 때 고요히 있잖아요.

 

그러면 보세요.

저는 그때 여러분과 동조해서

저도 약간 눈 감고 가만히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저 안에서

가만히 있었더니 어떤 자각이 일어나느냐 하면

첫 번째가 신기하다. 지금도 현재네.”

가만히 있었더니, 가만히 있었더니 저한테는

신기하다 지금도 현재네.”

 

여러분 지금도 현재 아닌가요?

이게 신기한 거예요.

매 순간순간이 현재예요.

매 순간순간이 현재예요.

 

그리고 두 번째, 이어서 어떤 생각이 또 한 생각이 떠올랐냐면

신기하다. 여기가 의식 속이네.”

이때 의식 속에 낼 때

의식은 누구 의식이겠어요?

저절로 자기의식.

신기하다. 이 순간도 현재네.”

그리고 신기하다. 여기가 의식인 의식 속이네.”

 

그러면 그 순간에 자각되는 것은

자기의식이 자각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의식에서 모든 것이 일어나고 있어.

그러면 눈이

의식은 안 변하는데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계속 변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안목이라고 하는 것은

제가 [이겹살]이라고 표현을 해요.

실상은 이겹살이다.”

의식이 자각이 되고, 그리고 그 의식 속에 현상이 찰라생찰라멸 하면서

끊임없이 생겼다가 이렇게 사라지고 있어요.

 

근데 생겼다가 사라지는 그 시간은

 

항상 현재고

그리고 공간은 항상 의식 속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이렇게 [두 개의 모습을 같이 보는 훈련]

그게 이제 오랫동안 훈련을 하는 거예요.

이게 가장 기본이에요.

우리 마음공부의 가장 기본.

본질과 현상을

같이 지금 느끼고 있다, 같이 보고 있다.

 

그러면 이렇게 되면

변하지 않는 본질과 변하는 현상이

지금 눈앞에서 같이 펼쳐지고 있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의식은 안 변하잖아요. 자기의식은.

 

그것은 은이라고, 은 은이라고.

...

 

항상 눈앞에 두 가지 요소가 같이 있다.

은이 있고

하나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써요.

한자로 현

은현동시隱現同詩

 

그러니까 항상 눈이 제일 중요해.

우리한테는, 우리 공부는, 눈이 날카로워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눈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여기에서

모든 것이 나타나는 것은 현

그리고 그 나타나는 것이 어디서 나타나는가 할 때

이 의식은 지각은 되지 않아요.

 

나타나는 것은 지각이 되고

의식은 지각은 되지 않아.

그러니까 이 의식에 지각되지 않는

의식에 대한 감각을 기르는 게 마음공부라고 할 수 있어요.

 

다시, 마음공부는 나타나서 보이는 것은

우리가 이렇게 잘 감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문제가 안 되는데

익숙해 있어요.

근데 눈에는 안 보이지만

있는 배경으로서, 항상 이렇게 이 공간 자체로서, 이렇게 있는.

마치 지금 여러분

우리가 숨 쉬고 있으니까 공기가 있죠?

공기가 눈에 안 보이죠? 지각이 안 되죠?

그러니까 공기 같은 거예요.

무엇이?

자기의식이.

항상 이거는 깨어 있어.

잠잘 때도 얘는 그대로 있어요.

 

의식이 잠잘 때도 있으니까 이런저런...

여러분,

자기가 자기 몸을 움직일 때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있고

나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서

심장이 뛰고, 소화시키고 하는 것은

내 의지로 하는 거는 아니죠.

근데 지금 이렇게 펜을 들고, 이렇게 말하고 하는 것은

의지로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내 몸을 움직일 때

개입을 할 수 있는 거 하고, 개입할 수 없는 게 있어요. 그죠?

개입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있는 게

이 의식이라는 거예요.

 

이렇게, 지금 방금 제가 두 가지를, 은현을

지금 내가 내 몸을 움직이는 걸 가지고 설명을 해본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모든 지금 시스템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눈에 보이는 것이

두 개가 동시에 지금 같이 있다.

 

이걸 입체적으로 보는 것

본질과 현상을

은은 본질이고, 현은 현상이에요.

이 둘을 같이 보는 게 안목이에요.

이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도 같이 본다 이거예요.

 

그러면 현상으로써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어차피 일어났다 사라지죠, 그렇지 않나요?

근데 그것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있는

이 공간으로서, 배경 무대로서 있는 이 자기의식은

일어나지도 사라지지도 않아서

이게 보통 사람한테는 이 감각이 굉장히 미약해요.

자기의식에 대한 감각은 보통 사람한테는 굉장히 미약해요.

안 보이기 때문에

 

대개 눈에 보이는 것에 쫓아가, 관심이.

눈에 보이는 것에 쫓아가는 그 습관은 줄이고

그리고 미약한 본질에 대한 이 습관은 계속 관심을 가져야 돼

처음에는 관심을 가져야 돼.

이게 수행이에요.

 

그래서 계속하다 보면

이것은 점점점점 뚜렷해져서 균형을 잡아요, 결국에는.

 

되면 어떻게 되는가?

지금 부처님이 나타났다.

그러면 정말 부처가

육조 혜능의 가르침을 이렇게 배웠고

거기에 대해서 좀 익어 있는 사람한테는

자성이 부처지요, 맞아요?

 

그러면 부처님이 나타났다 그러면

부처님이 나타났는데 진짜 부처는

부처님이 나타난 그 장면이라고 하는

그 배경 자체, 의식 공간 자체가 부처인가?

아니면 나타난 그 모습이 부처인가?

어디가 부처예요? 진짜 부처?

의식 공간이잖아요.

 

그러면 부처님이 나타나도

진짜 부처는 아니잖아요.

 

지금 우리한테 안목이 중요한 거는

부처가 나타났다면

부처가 나타났다. 그러면

나타난 부처가 진짜 부처예요?

아니면 그 공간 의식 공간 자체가 부처예요?

의식 공간이죠.

 

그러면 의식 공간이 나랑 떨어져 있어요? 항상 나랑 같이 있어요?

의식 공간의 중심은 어디예요?

자기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의식의 중심이 항상 자기한테 자기랑 같이 있어.

이 의식 공간의 중심이 딱 자기한테 있는 거예요.

 

이걸 기독교에서는 [임마뉴엘]이라고 해.

임마뉴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다이 말이에요.

 

그러면 모든 사람의 의식 공간이

그게 부처인데

그 부처가 누구랑 같이 있어요?

지금 나랑 같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나의 본질이 부처다 이거예요.

나의 본질이 부처다. 자성불自性佛.

이게 육조 혜능의 깨달음이에요.

 

그러면 이때 나의 본질 할 때

그 나의 본질에는 에고가 살아남아 있을까요? 아니면 녹았을까요?

녹았다.

에고는 없다. 여기는

이 자리에는 에고는 없다.

 

근데 깨닫고 나면

나만 그럴까요? 아니면 모든 사람이 그럴까요?

모든 사람이 그렇잖아요.

 

그래서 부처가 나타나면

부처를 그게 가짜야

그래서 격렬하게 속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부처를 죽인다고 표현하는 거예요.

 

그리고 고매한 스승이 나타나면

그 스승도 죽인다.

왜냐?

진짜를 속이기가 쉬우니까.

 

여러분이 지금 여기 뭐 때문에 오셨죠?

마음공부하러 오셨죠?

그러면 마음 부할 때 공부의 대상이 마음이잖아요.

맞아요?

그러면 [마음]을 지금 우리 현대어로 번역하면 [의식]이거든.

의식 공부하러 오셨다 이거예요.

맞죠?

여러분이 의식 공부하러 오셨어요.

 

근데 보세요.

의식이 저한테 있어요? 여러분한테 있어요?

자기한테 있잖아요.

 

그러면 여러분이 여기 오신 것 자체가

미스테이크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철저한 사람이라면

여기 지금 안목 하나에

본질과 현상이 지금 같이 있는데

의식은 본질이잖아요.

눈에 안 보이지만 자기한테 있잖아요.

임마누엘, 의식이 나와 함께 있다, 이런 뜻이거든요.

 

그러면 여기에 철저한 사람이라면

의식을 공부하러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거죠.

이해되세요?

여기 오신 것 자체가, 지금 여기 오신 것 자체가

미스테이크를 벌써 벌인 거다 이거예요.

이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만약에 의식을 구한다 그러면

바로 그것이 미스테이크다.

이 안목이 중요하다, 안목이.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여러분께서 의식을

현상에서 찾는 잘못을 벌이기가 십상이다, 이 말이에요.

 

아미타불, 아미타불이 여기()에 있어요? 아니면 여기()에 있어요?

()에 있잖아요.

그러면 아미타불을 기도할 때

나무아미타불을 할 때 그 방향이

이쪽()으로 해야 돼요? 아니면 이쪽()으로 해야 돼요?

이게() 바른 기도예요.

이해되세요?

 

근데 실제로는 어떻게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무아미타불을 주로 어디다 대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현상과 본질을 착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게 공부의 다예요, .

 

그래서 깨달음 같으면

지금 의식 공부의 마음공부

의식 공부의 최고봉, 반환점

반환점이 깨달음이거든요.

 

그러면 깨달음이라고 할 때

그 깨달음이

내가 지금은 못 깨달았고

열심히 해서 미래에 언젠가

열심히 한 결과로 깨닫는다

그러면 지금 이치에 은현동시인데

지금 이 순간 나한테 은현이, 본질 현상이 동시인데

이걸 내버려 두고

내가 열심히 해서 미래에 언젠가 깨닫는다 하면

그 자체가 맞아요? 틀려요?

 

그러니까 요 감각 하나가

이거 분명하게 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거예요.

 

더 진도 나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육조단경 전체가 이거 하나를 말하고 있어서

이거를 다지고 다져서 자기한테 철저해지는 것.

 

그렇게 되면 결론적으로

여러분, 만약에 내가 자유를 얻고 싶다.

해탈, 해탈이 현상에서 가능한 거예요? 본질 자체가 해탈인 거예요?

이 말도 이해되시겠어요?

 

자유라는 말을 불교에서는 해탈이라고 해요.

자유를 얻고 싶다그러면

나의 본질 자체가 이미 자유롭다라는 말, 알아들으시겠어요?

그러면 자유를 안 구한다 이거예요.

구하는 것은 현상에서 구하는 거예요.

 

근데 이런 말을 딱 알아들으면 더 이상 자유를 구하지 않는다.

왜냐?

본래 자유니까.

나의 본질이 본래 자유니까.

현상과 관계없이.

 

현상은 찌질해요.

현상은 찌질해도 상관없이

나의 본질은 거기에 물들지 않는

본래 청정하고 본래 청정의식.

 

불교에서 쓰는 용어 중 하나가

본원청정심本源淸淨心 이런 말을 많이 써요.

본원, 본래의 근원에서부터

청정한 심

지금 우리 식으로 하면

의식

 

그러면 본원청정심이 지금 나한테 갖춰져 있어요?

아니면 노력해서 나중에 얻어야 돼요?

갖춰져 있잖아요.

그래서 [돈교]예요.

단박에 깨닫는 거예요.

단박의 대상은 본질이에요.

본질.

 

본질 입장에서는 모든 게 단박이에요.

왜냐하면 본래 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우리 공부는 약간 준엄해요.

준엄하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막 입문한 초심자라도

딱 이걸 받아들이면 바로 점핑이 되는 거야. 바로 점핑이 돼.

 

그리고 딱 안목이 생기면

나는 자유를 원한다 그러면

벌써 지가 자유인데 어떻게 또 자유를 또 구하지?”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지금 들어옵니까?

 

나는 자유롭고 싶어이러면

자기가 자유인데, 자기 본질이 자유인 걸 모르고

자기 본질을 모르니까 현상에서 자유를 구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안목이 생긴다 이거예요.

 

나는 깨달음을 원한다그러면

자기가 깨달음인데 그걸 모르고 지금 구하네.”

 

그래서 그 사람 보고 이렇게 이렇게 하라 소리가 아니고

돌이키라고 바로, 이렇게 말을 하겠죠.

 

이제 우리 공부는 초심자가 단박에 탁 뛰어넘을 수가 있다.

이거를 단박에 차원을 뛰어넘는다는

이거는 현상과 본질이 차원이 다르다는 거 이해되나요?

 

그래서 차원을 뛰어넘는다는 말을

한 번 초, 일초一超라는 말을 써요.

초월한다.

한 번 초월해서

일초一超에 직입여래지直入如來地

이게 가능한 게 선이다. 이거예요.

 

왜냐하면 여래는 의식이잖아요.

내가 의식이 되는 게 여래지에요. 여래의 경지예요.

그러면 내가 의식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바로 그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1초에 직입, 곧바로 들어간다.

 

우리 공부는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대한 안목을

처음에는 안목을 먼저 눈을 틔우고

그다음에는 익숙해지는 것

상황 이해되죠?

 

자기가 본질이라는 걸 아는 순간

이 고통의 꿈에서 깨는 거예요.

현상의 꿈에서 깨는 거예요.

이미 가지고 있어요, 사람들마다.

 

그러니까 인연만 맞는다면

딱 지적해 주면

지적하는 걸 직지라고 해요.

직지, 딱 직지하면 인연 있는 사람은 알아챈다 이거예요.

그래서 알아채면

현상의 꿈에서 깨어나면서

본질로서 이 꿈을 살게 되면

훨씬 더 지혜롭게 살아요.

 

생활에서 계속 틈만 나면

지금도 보고 있네.”

아까 제가 그랬잖아요.

우리 수업 시작하면서 잠시 침묵하니까

지금도 현재네.”

 

왜냐하면 저는 본질하고 현재가 하나예요. 저한테는.

저한테는 본질하고 현재가 하나예요.

왜냐하면 본질이 자각되는 순간, 생각이 녹아요.

이걸 서산대사가 붉은 화로에 눈이 녹는다고 표현했어요.

홍로일정설

홍로, 붉은 화로에

한 점 설, 눈이 녹는다.

 

그러니까 이렇게 본질이 자각되는 그때는

항상 생각이라고 하는 눈이 녹아.

이해되세요?

 

그러면 본질에 있으면 생각이 녹으니까

생각 속에 있는 것은 과거 아니면 미래예요.

 

근데 생각이 녹으면 과거 미래가 사라지죠.

그러면 현재밖에 없는 거예요.

지금 눈앞에 있는 이거.

 

눈앞에 있는 이거를

생각이 없으니까

현재다.

그리고 이 현재가 어디냐 하면

지금, 이 의식이라고 하는 자각,

[의식의 장] 이 말도 들어옵니까?

의식의 장

 

현재면서 의식의 장인

이거로 이렇게 돌아오는 거예요.

이걸 시간 날 때마다 한다.

 

다시 말하면 이거를 다른 말로 하면

시간 날 때마다 화두를 든다

근데 이제 익어지면

화두라는 걸 말 안 해도, 틈만 날 때마다

본질 현재네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언제나 현재네, 본질은 언제나 있네이 말이에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언제나 의식의 내 의식의 장 속이네. 벗어날 수가 없네.”

 

여러분 정말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고통은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현재고, 항상 여기이고

그러면서 어느 때부턴가 저한테도...

 

보세요.

화두가 뭐냐 하면

화두= 본질.

제 말 이해되나요?

이 뭐꼬?”잖아요. “본질이 뭐냐?” 이거잖아요.

 

본질이 뭐냐?

이게 이 뭐꼬라고 하는 화두잖아요.

 

그러면 이걸 계속했다 이거예요.

계속했다, 억어졌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 뭐꼬?”를 안 해도 이 뭐꼬?” 상태인 거예요.

관심을 이리로 두고 있다 이 말이에요.

이 뭐꼬?”라는 말은 관심을 본질에 두는 하나의...

 

우리가 하도 잘 까먹으니까

여러분, 우리 너무 잘 까먹어요.

그러니까 까먹지 않기 위해서, 관심을 이쪽으로 돌리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나 한 것이

화두라는 거예요. 하나의 방편이에요.

 

그런데 이것이 익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제는 하는 놈이 이죠.

이해됐나요?

 

그러니까 화두가 하는 놈이 니까

이 뭐꼬?”하고 묻는

내가 이제는 스스로 불편해지는 거야.

이 말도 이해됐나요?

 

익으면

제가 지금 익으면이라는 전제가 있어요.

익으면 이 뭐꼬?” 화두가

이제는 뭐꼬?”가 떨어지고

뭐꼬?”할 필요가 없어.

하는 게 이니까

그냥 이 되고

이제 이도 안 해.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내가 화두 들어야지하는 한 생각이 일어나면

참 어리석게도, 자기가 화두면서 화두를 든다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게 근데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야.

이게 습관의 문제예요.

 

그러니까 점점 점점점점 이게 익어 들어가서

이제는 화두 든다는 것 자체가

누가 화두 든다 그러면

지가 화두인데 화두를 든다네.”

근데 이 말이 나도 그랬다는 거지.

 

나도 그런 시절을 거쳐와서

이제는 부처하면 따로 부처가 아니고

부처하는 이것이 부처라서

부처는 죽여.

 

화두 하면 화두하는 이게 화두라서

밖의 화두는 이제는 죽여.

아미타불 하면

아미타불 하는 이게 아미타불이라서

이제 밖에 아미타불은 필요 없어.

안녕히 가세요, 이제 안 찾아봐주셔도 되겠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 나한테로 수렴된다.

이 말도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 나한테로 수렴되어서

내가 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습관적으로 또 챙겨야지 하는 것이 있잖아요.

일어나는 순간 쑥 녹아버려.

 

그래서 이제 그 무엇에도 속지 않는다.

의식이 집을 나가지 않는다.

밖으로 찾아서 구하지 않는다.

쉰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