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60] 법(法)은 정해져 있지 않다 | 현상에서 잘 살자

Buddhastudy 2024. 12. 4. 19:40

 

 

깨달음의 조건

1) 관심이에요.

 

깨달음의 조건은

깨달음은 본질을 지금 깨닫는 거잖아요.

본질을 확인하려면

본질에 대한 관심이 필요해요.

 

그래서 이 관심을 꾸준히 가져가는 것

그러니까 방법상에서

본질에 대한 관심을 몰아서 집중하는 것은 [간화선]이고 앉아서

차분하게 본질에 대한 관심을 완성시켜 가는 것

그거는 [묵조선]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차이는 조금 있지만

본질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만이

본질을 확인할 수 있어요.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러니까 본질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져가면

결국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깨닫게 된다.

그러면 본질을 깨닫고 나면

본질은 그냥 이것이에요.

 

항상 이렇게

자기 이렇게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를 깨닫는 것이라서

지금 살아있는 이것

이렇게...

, 이걸 뭐라고 표현하지?

부처님께서 이것도 표현해 주시고 가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딱 보면 깨닫게.

 

근데 이걸 부처님께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표현이 불가능해

알 수 없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 그런 거예요.

 

하여튼 지금 보고, 지금 듣고, 지금 느끼고, 지금 아는 자기 자신

이것이 본질이구나

확인을 통해서 혜안이 열린다.

관심을 가지면 돼요. 관심을 가지면

그럼 결국은 알게 돼요.

관심을 가지면 결국에는 알게 된다.

 

/그리고 본질에는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혜능의 게송이

정확히 혜안을 말한다./

확인하고 나면 여기는 한 물건도 없어요.

텅 비어 있어요.

텅 비어 있지만 텅 빈 것으로만 있지 않고

공적한데 영지하다.

신령스럽게 깨어서 안다.

텅 비어 있는데 신령스럽게 깨어서 산다.

 

/이게 혜안이다.

우리들의 의식은 텅 비어 있어서

크기와 모양과 색깔을 비롯한 일체의 분별 대상이 없다.

하지만 혜안도 아직 분별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이 대목은 여러분 공부가 익어가기 위해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대목이에요.

지금 이 대목, 음미 잘해 보세요.

하지만 혜안도

혜안은 지금 이게 본질이구나하고 하는 거예요.

 

/아직 분별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혜안의 수준에서는 본질을 보기는 보았지만

여전히 본질을 본 그 주관은/

주관이 에고죠.

 

/에고는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질을 대상으로 봤다, 이거예요.

혜안은 본질을 대상으로 본 거다, 이거예요.

, 이거구나

 

근데 , 이거구나에는

, 이거구나하는 에고는 아직도 있다, 이거예요.

이해되세요?

그래서 진짜 본질이 아니다는 거예요.

진짜 본질은

현상까지 포함해서 전체가 되어야 진짜 본질인데

아직도 현상 속에서 본질을 보아서

아직은 나뉘어져 있는 상태다.

그게 혜안이다.

 

/본질이 대상으로 본 것이라서

본질과 주관의 이분법이 극복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본질을 보기만 했을 뿐이다./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본질을 보기만 했을 뿐이다.

이것도 무슨 말인가 이해는 되십니까?

 

이거를 이해하기 좋게 우리들은 전문 용어가 있어요.

려처정驢覰井이라고 딱 용어가 있어요.

_ 당나귀 려

_ 볼 처

_우물 정이에요.

 

안 써도 되죠?

안 쓰겠습니다.

요즘 검색하면 다 나오니까

 

당나귀가 에고예요, 아직도, 주관

정은 본질

주관이 본질을 보았다.

대개 려는 수행자가 자기를 낮춰서 부르는 말이에요.

그 학생 입장에서는 관심을 가지고 가지다가

한 번 공적영지를, 딱 자기의식을 한 번 딱 알아차리면

그걸 표현하기를

당나귀가 우물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표현을 한다고요. 이해됐나요?

이게 정확하게 혜안

 

근데 이게 려처정은 혜안인데 이게 끝이 아니고

정처려가 되어야 돼요.

우물이 당나귀를 보아야 해.

 

지금 계속 현상에서의 에고가 본질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채는 것에서

이게 이제 공부가 익으면 법안은

이건 혜안이고

혜안이 법안으로 보면 이게 뒤집힌다.

나는 누구냐?”

당나귀가 아니고 우물이 된다 이거예요.

 

당나귀가 우물 되는 게 보림

소위 말하는 돈오 이후의 점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게 지금 우리한테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에요.

 

방법은, 당나귀가 우물되는 방법은

당나귀가 우물을 본 것은

십분 머리로 알게 된 세계

당나귀가 우물 되는 방법은

몸이 체득하는 것

 

몸이 공적영지인 본질을 체득한다, 이 말은 뭐냐 하면

몸에서 공적영지가 자각이 되는 거예요.

몸에서 공적영지가 자각이 되는 것.

그렇게 되면 내가 바로 의식이구나하고

그 자각이 완전히 살아나서 꿈에서 깨어난다, 이거예요.

 

꿈속의 나가

깬 나로 바뀌는 것이

공부의 핵심이에요. 그죠?

려처정이 정처려로 바뀌는 게 핵심이다.

 

방법은 내 몸에서 그것이 일어나는 것.

처음에는 본질을 찾아갔다가

다음에는 본질을 버리고

원래 찾아갔던 현상으로 돌아나와야 돼요.

처음에는 본질을 찾아야 되고

찾은 다음에는 본질에 머무르면 그것이 오히려 본질이 또 치우친

본질이 우리의 발을 묶는 그런 일이 되어서 자유롭지 못해요.

 

본질에 집중한다.

본질에 집착하게 된다. 이 말이에요.

본질을 버리고 나와야 돼요.

 

그러면 본질을 찾은 다음에

본질을 버리고 나올 때 핵심 기재가 뭐냐 이거예요.

어떻게 찾은 본질인데

그걸 버리고 다시 나오느냐 이거예요.

 

고 기재가 뭐냐 하면

실제로 본질을 찾으면 중요하네.

어텐션, 따옴표, 중요하네요.

 

실제로 본질을 찾으면

본질은 절대라서

내가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본질은 영향받지 않아요.

이해되나요?

 

제가 이걸 기독교로 비유를 한다면

신은 인간이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신은 영향받지 않아, 맞아요?

 

그러면 인간의 입장에서는 신을 처음에 만나야 돼요.

만났는데

만난 다음에 신에 집착하면 안 돼.

근데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인간이 신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이해되나요?

인간이, 상대인 인간이 절대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해도 이거는 영향을 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나랑 아무 상관이 없어.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인간이 신을 돌보지 않아도 돼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러면 진짜 본질을 확인하고 난 다음에는

이거 본질은 본래청정해서 아무 상관이 없구나.”

그래서 내버려두고 중요한 것은

현상에서 잘 사는 거구나하는 자각이 일어나요.

 

본질은 나의 의지와 의도에 아무 상관없이 본질은 본질이에요.

그러니까 정말로 본질을 확인하면

본질은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어져서

나는 그냥 안심하고 잘 살면 되네.”

 

본질은 절대 완벽해서

나는 본질에 대해서는 신경 끄고

현상에서 잘 살면 되네하는 자각이 일어나요.

 

그래서 본질을 비유하기를 소로 비유해요.

근데 소를 찾고, 잡고, 길들이고, 익숙해서 잘 한 다음에

소가 필요 없어진다 이거예요.

그래서 소가 사라진다.

이게 지금 본질에서 현상으로 돌아 나오는 핵심 기재예요.

 

그러니까 더 이상 내가 본질을 챙기지 않아도 돼.

그러면 나머지는 뭐냐?

몸을 가지고 있는 한은 현상이 계속되고 있어요.

그러면 현상에서 몸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지.

지금 나의 조건에서.

상황 이해돼요?

 

그러려면 본질에 집착하면 안 돼.

본질마저도 집착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본질은 내가 집착하나 안 하나 상관없이 완벽하기 때문에

됐고, 이 말이 좋네.

본질은 됐고

현상을 내가 최선을 다해서 살자.

 

본래 현상으로 돌아와서

꽃이 피고 물이 흐르는 가운데

시장통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을 도우면서 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기재가

본질을 확인한 사람한테는

본질에 대해서 애지중지하거나 뭐 할 필요가 없이

이제는 완전히 현상계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모습으로 돌아 나온다

갔다가 돌아 나온다.

본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유정법/

뒤에서부터 읽어요. 뒤에서부터

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다시

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아무리 좋은 법도 정하는 순간 법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놓아야 돼요.

본질을 깨달았으면 본질을 놓아야 돼요.

그래야 자유예요.

현상에서 자유롭게 살자는 게 최종 목표예요.

본질에서는 우리가 머무를 수가 없어요.

 

근데 사람들은 그 애착이 있어서 거기에 집착한다.

그래서 소를 놓아라 이거예요.

소가 사라져야 한다.

 

본질에 대해서 애착하는 것이 왜 그럴까요?

본질을 깨달았어요.

그러면 이거를 못 놓고 본질을 콱 진다. 이거예요.

애착한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

우리가 본질을 깨달았으면 그게 다냐?

아니다 이거예요.

본질을 깨달았는데

또 본질을 또 애착해.

왜 그럴까요?

 

본질을 애착하는 게 에고이기 때문에

에고가 본질에 대한 깨달음 뒤에 또 붙어 있는 거예요.

참 끈질기죠.

이해되나요?

본질을 깨달았으면 에고가

신난다. 이거 놓치면 안 된다하고 또 그거를 꽉 쥔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참 기가 막히죠. 이게.

 

그래서 중요한 거는

마지막 에고가 떨어져 나가는 순간은

깨달음을 놓았을 때 에고가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깨달음을 놓아야 되는 거야.

이해되나요?

 

다시

이게 좀 높은 수준입니다.

그렇지만 왜 깨달음을 놓아야 되느냐 하면

깨달음을 놓아야 깨달음을 쥐는 에고도 떨어지기 때문에.

에고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려면

깨달음을 놓아야지

깨달음을 쥐면

쥐는 놈이 또 에고다 이거예요.

깨달음이 깨달음을 쥘 필요는 없잖아요.

 

근데 깨달음을 쥐는 것은

그 뒤에 깨달았다고 하는 에고가 딱 붙어 있는다.

그래서 깨달음을 놓아야 에고도 떨어진다.

그거를 인, 에고와 깨달음이 모두 잊혀진다.

인우구망

에고와 깨달음이 모두 잊혀져야지 된다.

인우구망이 일원상이에요.

십우도에 나오는 일원상

이게 8번이거든요.

인우구망

7번이 소가 사라지는 거예요.

망우존인_ 소가 사라지고 사람만 남는 것.

 

순서가

깨달음을 놓아야 에고도 떨어져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깨달음을 추구해야 되지만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깨달음을 놓아야지 에고가 떨어져

그게 이제 마지막 꼭지가 떨어져서

깨달음조차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을 백척간두 진일보라고 해요.

 

깨달음을 놓는 것을...

그러니까 인간은 어디엔가 의지하고 싶은 게 있어

뭔가를 붙들고 싶은 게 인간의 속성이에요.

 

깨달음을 얻으면

깨달음을 또 잡는다 이거예요.

깨달음을 잡은 그 손

그게 절벽에 매달린 손

현애살수

_ 매달릴 현

_ 절벽 애, 절벽에서 매달린 그 손을

_ 놓을 살

_ 손 수

현애살수

혹은 백척간두

백척이나 되는 높은 대나무 꼭대기에서

허공으로 진일보

백척간두 진일보, 현애살수

이 대목이

깨달음 뒤에 깨달음을 놓는

그러니까 인간은 하여튼 어딘가를 의지하고 싶어 해.

그래서 뭔가 쥔다 이거예요.

근데 거기서 나가야

깨달음을 버려야

마지막 에고가 거기서 떨어진다.

에고의 꼭지

에고의 꼭지가 거기서 떨어져...

 

그러니까 깨달은 다음에는 반드시 깨달음을 덜어야 된다.

그래서 깨달음과 에고가 함께 떨어져 나가는 게

지금 인우구망, 일원상이에요, 텅 빈 일원상

이게 십우도의 8

 

그러니까 이 대목도 공부하시다 보면

여러분, 지금 78번 이야기를 하니까

초보자한테는 까마득한 이야기예요.

그렇지만 공부를 해보면 쑥쑥 진도가 막 나가거든요.

 

특히 요즘 여러분들 진도가 왜 빨리 나가는지 몰라.

지금 여기는

진도 막 빨리 나가는 사람들이 요즘 많이 나오시기 때문에

지금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함께 이야기를 하는 입장을 저도 하게 됩니다.

 

다 초보자라면 123번에서 충분히 말하겠지만

지금은 그래도 연륜이 좀 쌓이셔서

진도가 빠른 분들이 계셔서

미리미리 이렇게 다 말씀을 드립니다.

 

그다음에 20분 남았네요.

보겠습니다.

 

/혜안을 뜬 혜능은

오조 스님으로부터 금강경 설법을 듣고

일체의 만법이 자성을 여의지 않음을 깨닫는다./

일체 만법은 여러분

일체만법

한마디로 말해서 현상, 맞아요?

또 현상=

그리고 자성은 본질

본질 =

모든 꿈이 깸을 여의지 않는다.

이해되나요?

 

여러분, 놀랍게도 깸이 꿈을 꾸고 있어요.

의식이 꿈을 꾸고 있어요.

밤에는 의식이 꿈을 꾸고

낮에는 의식이 현상을 꿈꾸고 있어요.

 

그래서 자기의식이 분명해지면

이 의식 속에 찰나생멸하는 현상이

영화처럼 이렇게 지금 지나가고 있는 것이 확연해진다.

 

그래서 깬 의식에 지금 눈앞에 이 현상이

꿈 같고, 영화 같고

몽환포_ 물거품 같고

_ 그림자 같고

여로_ 아침을 같고

여전_ 번갯불 같고

지금 깸의 입장에서 꿈이 이렇게 펼쳐지는 거예요.

 

근데 하여튼 깸이

저는 기왕이면 깸이 꿈을 꾸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런 질문 있지 않나요?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데

선만 만들지 왜 악을 같이 만들었습니까?

그런 질문이 있잖아요.

 

저는 선악을 같이 만들어야지

하느님 입장에서 좋다고 생각해.

그래야 이 현상의 파노라마가 그냥 무궁무진하게 펼쳐지지

선만 만들어 놓으면

드라마가 펼쳐질까요?

 

아니 만들 필요가 없어. 그렇잖아요?

선만 만들면 만들 필요가 없어.

근데 선악을 같이 만들어 놓으니까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

지금 재밌어 죽겠어, 그냥.

 

그러고 여러분

불행이 있어야 행복을 진짜 제대로 느껴요.

안 그래요?

처음부터 행복하고 끝까지 행복하면 무슨...

그건 행복이 아니지.

그건 행복이라고 할 수가 없지.

막 지지고 볶다가 이 행복을 느낄 때는

진짜 그 얼마나 귀한 거예요.

매사가 그렇다 이거예요.

 

인생이 왜 행복하나?

인생에는 자비가 있어요.

그래서 이 자비가

정말로 인간 대 인간으로 자비를 느낄 때

최상의 행복을 가져다 줘요, 인간에게.

 

진정한 의미로 사랑을 배워서, 자비를 배워서

성숙한 인간이 되어서

정말 이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지를

정말 속속들이

그 아름다운 세계는 좋은 것만 있어서는 결코 아름답지 않아요.

고생도 하고, 어려움도 겪고, 이별도 겪어보고

이런 걸 하다 하다 하다가 성숙해져서

이렇게 이 세계의 본질을 깨닫고 다시 돌아 나와서

이 세계에서 사람들한테서...

자비 좋은 거예요.

우리가 그것을 느낄 때 이심전심으로 통하잖아요.

진짜 기쁨이에요.

 

그러니까 인생은

이번 생에 저는 확실히 알았어.

왜 태어났는가?

사랑을 배우려고

자비를 나누려고 태어난 거예요.

 

근데 자비를 그냥 나누느냐?

여러분 미성숙한 인간이 자비를 나눈다?

못하죠.

그럼 성숙해져야 돼, 반드시.

그릇이 커져야 돼.

그릇이 커지려면 반드시 고통이 필요한 거예요.

 

돌아보면 그 고비고비 어려웠던 것이 하나라도 없으면

지금 내가 없어.

이해되세요?

옛날에는 참 힘들었는데

고비 고비의 그 고통이 하나라도 빠지면

지금의 나는 없어.

 

근데 지금의 나는 그런 거 덕분에

이제 조금 열려서

이제 진짜 자비가 뭔지, 사랑이 뭔지, 그리고 지혜가 뭔지

참 젊었을 때는 깜깜했어요, 눈앞이.

힘은 좋은데 눈앞은 깜깜했어.

 

근데 지금은 힘은 조금 빠졌는데

다행히 더 빠지기 전에

아직 우리 보살님도 아직까지 힘이 짱짱하시더라고.

더 빠지기 전에 이걸 알아서

이제 나머지 여생은 이거 나누는데 시간이 부족하죠.

그렇지 않나요?

아름다운 거예요, 여러분.

 

인생은 우리가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 태어나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걸 알고 난 다음에는 할 일이 많아요.

그러니까 공부를 머리와 몸이 함께 잘

법문도 듣고, 정지견을 정견을 열고

이것도 챙기면서 동시에 앉아서

우리 몸이 공적영지를 체득해 가게끔 해서

이게 균형이 딱 맞아서

법문 들어서 이 전체 도리를 파악하는 것은 지무생사

생사 없는 도리

지금 중도정견을

_ 알고

체무생사_ 직접 앉아서

내 몸이 가장 건강한 상태를 스스로 계속 체득해서

그 상태가 유지되도록 노력하는 것

 

그래서 지무생사와 체무생사가 딱 만나서 조화를 이룰 때

계무생사 바른 깨달음이 거기서 일어나서

그 에너지를 용무생사 마음대로 쓰는 거

지 체 계 용 무생사

지무생사 체무생사 계무생사 용무생사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딱 일을 하는 거

 

그러니까 지금 공부가 좋은 게

지금 십우도로 설명 하나, 지금 오안을 가지고 설명하나,

무생사 도리를 가지고 설명을 하나

아니면 화두 가지고도

화두가 처음에는 가화두

가화두를 통해서 공적영지를 내가 확인한다.

그리고 공적영지 자체가 진화두가 되어서

그때부터 공적영지가 유지되는 쪽으로.

 

그러니까 화두가

제가 그렇게 표현하지 않아요.

도란, 동양에서 도란

형수파리인데

화두의 첫 단계는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관심

그 관심이 형이고

그 관심을 수_ 계속 유지하면, 본질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하면

_본질이 딱 드러난다 이거예요.

그러면 리_ 본질인 공정지가 이거구나하고 딱 확인이 돼.

그러면 그 확인된 것을

몸에서 이제는

다시 형_ 몸에서 공적영지가 화두가 되어서

_ 그것을 계속 반복해서 몸에 익어가

_ 파는 이제 더 이상 안 챙겨도

몸에서 완전히 딱 만땅구 에너지가 딱 차서

언제나 그 상태가 유지되기

그리고 리_ 용하기, 자유자재로 이것을 이웃에 나누기

 

이것이 지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함이

인간의 아무 탈이 없는 가장 보편적인 이 상태가

스스로 딱 채워져서 이 세상에서

자기도 좋고 이웃도 좋는

자리이타의 불교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

 

그러니까 이게 지금 아주 정확한 공부의, 마음공부의 길이다 이거예요.

길을 알면 하면 되잖아요.

 

오늘 아무튼 또 한 번

이 공부 전반에 대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한번 따져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