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나의 쓸모에 대한 고민이 든다.
직장에서의 나의 쓸모는 점점 없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신입사원들의 번뜩이는 감각
최신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는 후배들을 보면
그저 부럽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트랜드가 생겨나고
뒤처지지 않으려 바쁘게 쫓아가는 것도 버거워진다.
세상은 왜 이렇게 빨리 변하는지
메타버스, NFT같은 새로운 개념을 마주하면
세상의 영원히 뒤처지지 않을지 조바심이 난다.
곧 있으면 회사에서 버티기도 어려워질 것 같다,
이 나이에 퇴직하자니 집에서도 나의 쓸모를 모르겠고
사회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나의 쓸모는 무엇일까?
나는 진짜 쓸모 있는 사람이 맞는 걸까?
장자는 나무 이야기를 통해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에 대해 말했다.
목수인 장석이 제자와 길을 걷다가 큰 나무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 그냥 지나친다.
제자는 궁금해서 장석에게 묻는다.
“이렇게 크고 훌륭한 나무를 왜 지나치는지요”
그러자 장석은 대답한다.
“이 나무는 아무짝에 쓸모없다네.
이 나무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목재 그릇을 만들면 부서지고 금방 썩을 걸세.
문을 만들면 진액이 가득 흐르고
기둥으로 쓰면 벌레가 와서 다 갉아먹어 버릴 것이네.
이 나무는 크기만 그저 큰 쓸모없는 나무라네.
아마 이 나무가 이렇게 오랫동안 살 수 있는 것도 쓸모가 없기 때문일 것이네”
그날 밤 꿈에 나무가 나타나 장석을 꾸짖는다.
“자네는 왜 나보고 쓸모없다고 이야기하는가?
나무에 과일이 열리면
과일을 따기 위해서 인간들은 나를 잡아 뜯고 흔들어 대고 가지들은 다 꺾이지.
내 기둥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면 사람들은 나를 다 배워내고 손질하기 바빴을 걸세.
자네 인간들 입장에서야 쓸모 있는게 좋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인간에게 쓸모가 있다는 건
곧 잘리고 수모를 당하게 될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는 의미네”
그렇다.
나무 입장에서는 베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최고의 복이다.
나무의 쓸모라는 건 지극히 사람의 관점인 것이다.
나무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사람에게 이리저리 이용당하기 위해서 애써 자라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나무가 쓸모 있다는 건
반대로 나무 입장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또한 장자는 그 나무는 지나가는 나그네와 주민들에게 훌륭한 쉼터를 제공한다고 했다.
목수가 쓸모없다고 말한 나무는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오랫동안 살 수 있는 쓸모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나무는 쓸모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쓸모가 있는 것일까?
장자는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 맞으면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고
맞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회사에서 직원에 대한 평가를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본다.
직원을 평가하는 건 그 사람의 쓸모를 회사 입장에서 평가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상사가 부하직원을 평가할 때
자기만의 주관적인 시각으로 평가한다.
물론 공통적인 평가 항목이 있지만 평가를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주관적인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일부 상사에게는 일을 못한다고 평가를 받는 직원이 있다.
하지만 그 직원이 다른 회사나 부서에 가서 성과도 좋고 평가도 잘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면 그 직원은 쓸모가 없었던 직원이었을까?
아니다.
그저 누군가의 개인적인 기준으로 그 직원을 평가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른 부서에 상사는 그 직원의 쓸모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어느 회사나 부서에서도 좋게 평가받지 못한 직원도
퇴사 후 자신만의 길을 발견하여 전혀 새로운 쓸모를 찾게 된다.
쓸모가 있고 없고는 이렇게 관점에 따라서 달라진다.
역사를 봤을 때 예전에는 크게 쓸모없었던 일들이
지금은 매우 쓸모가 있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야구나 축구 같은 현대 스포츠가 대표적인 예의다.
조선시대에 방망이로 공을 치고 장갑으로 공을 받는 기술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을 것이다.
공을 발로 차서 그물에 넣는 것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글씨를 잘 쓴다는 건 큰 인정을 받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가 대부분의 그를 다 감당하게 되어
글씨를 잘 쓰는 것의 가치는 ‘그저 그렇구나’ 하는 일이 되었다.
이렇게 사회적 환경에 따라서
인간의 능력이 쓸모 있게 되기도 하고 전혀 쓸모없게 되기도 한다.
내가 진짜 쓸모없는 사람을 봤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
만약 진짜 쓸모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리가 감히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큰 쓸모를 갖고 있을 수 있다.
다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 사람의 쓸모는 죽은 다음에 발견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사후에 빛난 케이스도 역사적으로 많다.
대표적인 예로 화가 고흐가 있다.
생전에 그는 작품을 딱 한 개밖에 팔지 못했는데
그림 가격은 지금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200만 원에 불과했다.
그가 죽고 나서 그림의 가치는 크게 올랐다.
지금은 고흐의 작품 중 단 7개가 8천억이 넘을 정도이다.
쓸모 있고 없고는
이렇게 상대적으로 누가 어떠한 기준을 세우는가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진다.
여기서 당신이 생각하는 쓸모 있음은 무엇인가?
내가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을 쓸모 있다고 여긴다면
회사를 그만 어느 순간 나는 쓸모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장자가 말한 대로 시야를 조금 넓게 보면
꼭 쓸모가 없는 건 아니다.
퇴직하고 가족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되는 아빠로 남게 된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큰 쓸모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누구나 우러러보고 좋아 보이는 것들만이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단지 작은 쓸모에 불과할 뿐이라고 장자는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쓸모 있음을
단지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라는 기준으로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을 많이 벌면 쓸모 있고
못 벌면 쓸모없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러한 기준을 조금 넓게 보면
돈, 명예 말고도 다양한 가치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가치
내 아이를 잘 보살피고 키우는 것은
돈을 벌 수 있는 행동들은 아니지만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준다.
연인 간의 사랑도 행복이라는 가치를 준다.
돈을 벌게 해주지 못하지만 이런 행동들도 쓸모 있는 행동이다.
마찬가지로
장자는 우리가 다들 생각하는 쓸모에 집착하느라
보이지 않는 쓸모를 놓치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장자는 자기 자신을 속박하는 지식이나 자유를 구속하는 재능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장자는 말한다.
“너구리를 잡는 사냥개는 그 재능 때문에 줄에 묶여서 살게 되고
사냥감이 떨어지면 사람에게 결국 잡아먹히고 만다.
민첩한 원숭이는 활동반경이 넓어서 사람에게 숲에서 발견되어
결국 사로잡히게 된다.
너구리나 살쾡이는 닭이나 쥐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결국 덫이나 그물에 걸려서 죽고 만다”
이 이야기가 그저 옛날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현대에서도 비슷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회사에서 말 잘 듣고, 일 잘하는 직원에게 흔히 벌어지는 일이 있다.
바로 상사가 이를 더 많이 시키는 것이다.
상사 입장에서는 시키면 고분고분하고
또 결과도 좋으니까 일을 더 시키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 직원은 회사 입장에서 매우 쓸모 있는 사람이다.
그 결과로 평가도 잘 받고 초고속 승진의 연봉도 많이 받으며
회사 입장에서 쓸모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거꾸로 자유는 더 구속될지도 모른다.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니 지치고 번아웃이 될 위험이 높아진다.
승진하고 연봉이 높아지면서 회사에 대한 의존도도 증가한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하고 성과가 좋아도
언젠가는 그 사람의 쓸모는 끝나기 마련이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 나이가 들고 성과가 떨어지고 업무 역량이 떨어지면
점점 쓸모가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제 자신의 쓸모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회사를 다니게 된다.
장자 이야기의 사냥개가 쓸모를 다해서 마치 잡아먹히듯이
우리는 어쩌면 내 재능의 쓸모만 강조하다가
쓸쓸하게 내 자유를 구속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재능이 스스로의 인생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것이
장자의 의견이다.
장자가 말하는 건
쓸모없는 삶을 살자는 게 아니다.
다만 작은 쓸모에 집착하느라
본연의 삶을 놓치게 되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이
장자 사상의 핵심이다.
쓸모가 있고 없고라는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나를 자유로운 관점에서 바라보자.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우리가 해낼 수 있는 것도 많다.
그리고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필요에 맞춰서
그저 노예로 전락하는 삶이 되는 것을 경계하자.
결국에는 나 자신의 쓸모를
자유롭게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주인의 삶을 살아야만 한다.
나의 쓸모는 내가 자유롭게 발견할 수 있는 있는 것이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쓸모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다.
나를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으로 나누지 말고
다양한 관점에서의 인생을 바라보자.
우리는 그 무엇이 될 수도 있고 아무것도 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니 나만의 무언가를 하면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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