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를 보내다가
이 무의미하고 지겨운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출근하고 지쳐 돌아오는
이 지긋지긋하고 반복적인 삶을 왜 살아가야 할까?
정말 나는 죽지 못해 사는 것인가?
반복적인 삶에 힘든 일까지 더해지면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건지
삶의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이방인> <시지프스 신화>를 저서한 프랑스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소설을 통해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권태적인 삶의 의미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카뮈는 말했다.
“삶은 무의미하다.
무의미한 이유는 부조리함으로 가득해 있기 때문이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과 부조리함은 무슨 의미일까?”
카뮈는 시지프스 신화의 이야기를 통해
무의미와 부조리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시지프스는
자신의 뛰어난 두뇌로 오만하게 행동하다가
신들을 속인 죄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려야 하는 벌을 받는다.
정상으로 올려놓은 바위는 그 무게 때문에 다시 산비탈 아래로 떨어진다.
시지프스는 계속해서 바위를 올리고 떨어지면 또 올려야 한다.
이 무의미한 행위를 영원히 계속해야 한다.
아무 가치가 없는 행동을 반복해야 하는 형벌을 받으면서
시지프스의 마음에는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목적도 결과도 변화도 희망도 없었기 때문에 절망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과연 이러한 상황은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만의 이야기인 걸까?
시지프스의 이야기 속에서
평범한 사람의 직장 생활이 떠오른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황금 같은 주말이 지나면
월요병과 함께 다시 출근하고 퇴근하기를 반복한다.
올해 매출 목표액을 100억으로 잡아 그것을 달성했다.
그러면 내년에는 목표가 150억으로 상향되어
다시 또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지금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른 프로젝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회사 생활 내내 이러한 업무들은 마치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이 이어진다.
직장인들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회사를 다니는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왜 회사를 다니냐면 돈 벌려고 하는 거지.
다 나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서 하는 거야.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분명히 가치가 있을 거야.”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나는 도대체 누굴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인들은 회사 업무에 무의미함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 현재 20대 30대 세대들은 이러한 무의미함 속에서
회사와 나의 삶의 선을 그으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비단 직장뿐일까?
우리 일상생활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육아, 집안일 등등 우리 삶에서 내가 굳이 이걸 왜 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우리는 가끔 한다.
누구나 인생의 단기적 장기적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하면 또 다른 목표가 우리 앞에 주어진다.
마치 시지프스가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했듯이
우리 삶도 이런 반복적인 행동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가치상실과 무의미하다라는 생각을 한다.
삶의 부조리는 여기서 발생한다.
인간은 계속해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데
도저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의미가 찾아지지 않는 지점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 부조리라고 카뮈는 말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속에도 존재하고 있는 평화주의자를 통해서
부조리가 설명될 수 있다.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민들은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다.
전쟁으로 1만 명 가까운 우크라이나 군인과 4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 군인들이 죽었다.
우크라이나 건물들은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다.
러시아 국민들은 서양 국가들의 경제 제재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국민들은 인터넷 사용금지, 해외 국가로 이동 불가, 체크카드 사용 불가 등
여러 불편을 겪고 있다.
여전히 호화론 푸틴과 고통받는 국민들이 존재하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에서
평화주의자가 느끼는 건 부조리함이다.
아무리 평화라는 관점으로 이 전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무기력함과 무의미함만을 가득 느낀다.
여기서 부조리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불합리하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세상은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다만 인간이 세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까뮈는 인간은 끊임없이 세상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무의미한만 가득 느낄 때
부조리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게다가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우리 모두는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들일 뿐이다.
인생은 그저 허무할 뿐이고
인간은 여기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부조리한 감정만 더 느낄 뿐이다.
삶의 부조리함 아래에서 인간은 극심한 무력감을 느낀다.
결국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목표와 가치를 찾고 거기서 삶의 이유를 발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조리를 경험함에도 불구하고 꼭 살아 있어야 하는 걸까?
삶이 무의미하다는데도 왜 살아야 하는 걸까?
그런데도 인간이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뮈는 말한다.
살아야 할 뚜렷한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 죽어야 할 이유도 딱히 없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왜 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죽어야 할 이유를 딱히 찾기 어렵기 때문에 그냥 살아간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한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건 삶이 부조리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카뮈는 자신의 소설 <시지프스의 신화>를 통해서 말했다.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람들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 자살한다.
자살은 인생의 패배했다는 것과 인생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의 삶을 산다는 것은
이 삶이 부조리임을 알면서도 전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삶은 본래 그렇게 무의미하고 가치가 없다.
우리는 그저 우주에서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신이라는 존재 아래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만약 우리 삶이 의미가 없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역설적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된다.
우리가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들과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상의 온갖 것들이
더 이상 나를 방해하지 못할 정도로 사소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죽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우리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돈, 명예는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진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나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상사가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돈이 좀 부족하고
이러한 것들이 내가 느꼈던 것보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먼지의 티끌만 한 행동들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렇게 되면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들에만 더 집중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설사 내가 진짜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이더라도
무의미함을 인식하면 할수록 우리는 계속해서 자유를 얻게 된다.
결국 우리는 집착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부조리함을 느끼는 인간은 무한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마치 새가 날기 위해서 몸이 점점 가벼워지듯이
삶이 무가치하다고 여길수록 더 자유로워진다.
자유로움을 얻은 상태에서
카뮈는 ‘반항’이라는 키워드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강조했다.
“무의미한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되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삶을 살라”고 카뮈는 말했다.
이게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삶에 대한 반항이다.
카뮈의 저서인 <반항하는 인간>에서 반항하는 인간의 논리에 대해 설명한다.
“인간 조건에 불의에 또 다른 불의를 쓰지 않도록 정의에 봉사하고
세상에 가득한 거짓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명료한 언어를 쓰며
인간의 고통에 맞서서 행복을 위하여 투쟁하는데 있다.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카뮈는 반항이라고 말했다.
반항하는 인간만이 진짜 의미를 갖고 살아갈 수 있다.
부조리하다는 현실을 무시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무의미함을 알기에 의미를 찾지 못하더라도
거기에 다시 집착하지 않게 살아가는 선순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의 자유가 사는 동안 계속 이어지게 되는 원리이다.
카뮈의 삶은 어땠을까?
그 역시 부조리한 환경 속에 살았지만 평생 삶의 의미를 끝없이 추구했다.
자신이 추구한 사상을 평생 실천하면서 살았다.
카뮈는 1911년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나이에 1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카뮈는 한 살도 되지 않을 때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는 외할머니 집에서 살면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생계를 위해
과외교사, 시청직원, 자동차 부품 판매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카뮈는 건강 문제로 평생 고생했다.
폐결핵으로 인해 축구선수 활동, 철학 교수 일을 그만둬야 했고, 학교를 중퇴하기도 했다.
첫 번째 부인과 결혼 생활은 아내의 모르핀 중독과 외도로 얼마 못가 이혼으로 끝났다.
그는 가난 병마 전쟁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지만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소년 시절을 지배하고 있던 아름다운 태양은 내게서 모든 원한을 빼앗아갔다.
나는 궁핍한 생활을 했지만 동시에 어떤 쾌락을 누렸다.
나는 스스로 무한한 힘을 느꼈다.
힘의 장애가 되는 것은 가난이 아니었다.
방해가 되는 것은 오히려 편견이나 어리석은 행동에 있었다.
카뮈는 1937년 <안과 겉> 1942년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연이어 출간한다.
이 작품들 속에서 카뮈는
인간은 모두 각자 집행일이 다른 사형수의 삶을 살고 있고
삶의 부조리를 꾀하는 채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어차피 죽게 되는 무의미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산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던 시기에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카뮈가 택했던 반항은 글쓰기였다.
현실을 직시하고 전쟁 중에도 지식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했다.
독립군 활동을 하면서도 글쓰기로 독일에 항전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카뮈는 부조리함으로 가득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실천으로 보여줬다.
굳이 어떠한 가치를 꼭 만들어야만 하는가
꼭 삶이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더라도
삶의 이유가 부족하더라도 이를 인정하고
오히려 무의미하기에 세상에 덧없음을 느끼면서
세상사 하찮게 여기면서 좀 더 자유롭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뭘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해 보고
그것을 하지 못하더라도 집착을 하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다 죽기에 말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거나 부정적인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이 인생에서 그렇게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다사다난한 삶이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카뮈는 말한다.
인간은 허무하고 무의미한 부조리를 느끼게 되는 순간
우리는 삶이 아무 의미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의미 없는 인생을 깨닫는 건
결론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나에게 일어나는 불행 역시 사소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삶에 다가오는 무력감의 끊임없이 반항하면서 평생을 살다 보면
어느새 삶은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반드시 모든 일에 가치나 의미가 무조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삶 그 자체이다.
살아있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카뮈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마무리한다.
신의 형벌로 바위를 산 위로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인생을
부조리한 인간의 삶으로 연결했다.
여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은 자살이 아니라
무의미한 삶을 똑바로 직시하며 끝까지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라는 부조리한 이야기에서
반항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삶이 곧 반항이다.
반항하는 한 우리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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