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연산, 노들나루만 빼고 한강 나루 모두를 폐쇄하다
조선의 10대 왕인 연산군(즉위 1494 ~ 1506 폐위)은 역대급 폭군이다.
연산군 10년(1504), 한양성 사방 100리에 금표(禁標)를 세워
그 안의 주현(州縣)과 군읍(郡邑)을 폐지하고 백성을 내쫓은 후 사냥터로 삼았다.
논밭을 풀밭으로 만들어 짐승들이 뛰놀게 한 후 사냥으로 세월을 보냈다.
경연을 폐지하고, 신문고도 폐지했다.
민심이 극도로 흉흉해졌다.
민심의 흉흉함을 직감한 연산군은
귀양 간 사대부들이 역모를 일으킬 것을 염려하며
주요 귀양자들을 먼 섬으로 위리안치시켰다.
이런 조치에도 안심이 되지 않자 놀라운 조치를 추가로 발표했다.
노들나루(노량진) 하나만 빼고 도성 인근 한강나루를 모두 폐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만에 하나 발생할지 모르는 역모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강나루는 조선 경제의 대동맥이자 도성의 생명줄이었다.
나루터를 통해 공급되던 식량과 땔감 등
민생에 필요한 물품의 공급이 일제히 끊기자
도성은 대혼란에 빠졌다.
결정적 시기가 왔음을 직감한 사대부 박원종과 성희안 등이
반정을 준비했고
1506년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했다.
도성 사방 100리를 사냥터로 만든 것도 모자라
노들나루를 제외한 한강나루 모두를 폐쇄한 이 조치는
연산군의 결정적인 자충수였다.
중세 조선의 물류운송의 핵심은 수운과 해운이었고
특히 한강수운은 조선 경제의 대동맥이었다.
전국의 주요 간선로는 한강을 비롯한 큰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즉 육운은 수운의 보조 역할을 담당했다.
한강이 수도 한양의 젖줄인 이유는
한강을 통해 조선국 전체의 물류가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덩치가 큰 세곡(稅穀)을 비롯한 8도 산물의 대부분이
3면의 바다와 육로를 거쳐
한강나루에 모인 후
도성 안으로 운송되었다.
한강의 나루는 국가가 관리를 파견해 직접 관리했으며
나루터와 나룻배는 국가 소유의 공공편의 시설이었다.
조선시대 한강의 5대 나루로
노들나루(노량진), 광나루, 삼밭나루(삼전도), 동작나루, 양화나루가 꼽힌다.
이들 나루 외에도 10여 개의 크고 작은 나루에
조선의 생산물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노들나루는 조선의 곡창지대인 전라도와 충청도의 산물이
해운과 육운을 통해 집결되는 곳이었다.
노들나루는 한양에서 8도로 향하는 9대 간선도로 중
전라. 충청으로 향하는 6, 7, 8호 간선로의 출발점이었다.
전라도와 충청도의 세곡을 비롯한 산물들이
해운과 육운을 통해 노들나루로 집결되어
도성 안 궁궐과 조정으로 운송되었다.
진시황은 ‘호(胡)’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예언에 홀려
만리장성을 쌓았다.
진시황은 호를 ‘오랑캐’로만 생각했다.
중국 백성들은 통일제국의 태평성대를 누리기는커녕
축성의 노예적 삶의 틈바구니에서 죽어갔다.
진시황 사후 불과 몇년 만에 진나라는 망했다.
유방과 항우가 이끄는 백성들에 의해서다.
진시황의 후계자인 막내의 이름이 호해(胡亥)다.
‘호(胡)’는 오랑캐가 아니라 바로 자기 아들이었다.
나라의 재앙이 아방궁 안에서 싹트는 줄도 모르고
오랑캐를 막는다고 헛되이 장성을 쌓았던 것이다.
진시황처럼 연산군도
내부의 ‘호(胡)’부터 관찰하고 다스리는 것이
치국의 근본임을 깨닫지 못했다.
연산군의 한강나루 봉쇄는
지방으로부터 궐기한 반란군의 한양도성 공격을 예방할 수 있었지만
도성 내에서 봉기한 불과 수백 명의 군사들과 장정들로 이뤄진 반정군이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고
폭군 연산을 몰아내는 것은 막지 못했다.
‘처음 권력을 잡아본’ 윤석열 정권이
검찰, 국정원, 국세청에 이어 경찰까지
4대 권력기관을 옴쭉달싹하게 못잡게 휘어잡는 ‘권력놀음’에 빠져있다.
‘군사독재정권 내무부 치안본부 체제로의 회귀’에
임기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경찰청장까지
사표를 던지며 반발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권력기관만 휘어잡으면 정권이 안정되고,
정권을 연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강 나루만 봉쇄하면
반란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폭군 연산처럼...
역사의 교훈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이 정권의 가소로운 권력 놀음을 보노라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 한강걷기 코스 : 노들역- 노들섬- 용산백사장
9호선 노들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한강대교다.
한강을 건너 한강대교 중간에 위치한 노들섬을 둘러본다.
노들섬에서 바라본 여의도와 한강철교의 풍경은 일품이다.
특히 해넘이는 한강의 명품이다.
한강대교를 건너 용산 한강변을 산책하며
용산백사장의 복원을 상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