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 밑으로 理事冥然無分別이사명연무분별 十佛普賢大人境십불보현대인경 계속합니다. 初發心時초발심시에 便正覺변정각을 해서 生死생사와 般若열반에 자유 자재한다. 그렇게 되면 生死생사에서 般若열반을 성취하고 般若열반속에서 生死생사를 나타내서 항상 함께한다. 이게 常共和상공화거든요.
常共和상공화라는 말은 般若열반이라고 하는 것이 生死생사와 동떨어진 데 있는 게 아니고, 죽고 살고 오고가고 하는 이 현상계, 중생계 생활 속에서 늘 般若열반을 성취한다. 또 般若열반이라고 하는 것이 현상계를 떠나서 따로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般若열반 속에서 생사를 마음대로 나타내고, 마음대로 이루어가는 것이 바로 常共和상공화다. 이런 말인데요.
그렇게 되면 理事冥然無分別이사명연무분별이라. 理이와 事사가 하나가 되어서 冥然명연 한다는 말은 하나가 되어서 어둡다. 깊다. 하나가 된다 이 말이죠. 명연이라는 말은. 그럼 理이, 事사가 문제인데. 理이라고 하는 것이 뭐냐? 그 근본이다.
예를 들면 물로 말하면 그 축축한 습기, 습도, 습기가 理이고. 또 물로 말하면 그 물이 얼음으로도 나타나고 이슬로도 나타나고 안개로도 나타나서 여러 가지 형형색색으로 나타나는 것이 事사입니다. 事사. 이것을 체용이라고도 해요. 근본 본체가 있는데, 그 체가 여러 가지 작용을 일으킨다 이 말이죠.
그래서 현상계, 본질계 이렇게도 얘기를 하는데, 본질이 바로 물의 습기라면,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니까. 그런 현상계다 이런 얘기요. 그러면 理이라고 하는 것은 생사를 초월해서,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고, 큰 것도 없고 적은 것도 없고, 일체 현상계를 초월한, 영원무궁한 그런 세계를 말합니다. 그게 理이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생사와 고통과 윤회를 다 초월한 본질의 세계는 현상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얘기죠. 그래서 이것이 冥然명연이라는 말은 불이, 둘이 아니다. 이런 뜻이에요. 큰절에 가면 不二불이문이라는 문이 많습니다. 아니라는 不불 자하고, 둘이라고 하는 二이 자를 써서 不二文불이문 이런 게 있거든요.
不二불이라는 말이 그게 바로 冥然명연입니다. 하나가 된다. 둘이 아니다. 이런 뜻이죠. 그래서 무분별 다른 것이 없으니, 그런 분들의 세계가 어떤 분들의 세계인가? 十佛십불과 普賢보현들의 大人境대인경계다. 이게 十佛普賢大人境십불보현대인경이에요. 十佛십불은 화엄경에 나타나는 말인데, 여러 형태의 부처님을 十佛십불이라고 그럽니다.
부처님의 세계가 한두 가지 세계가 아니고. 十佛십불세계가 있어요. 화엄경에. 마음으로서의 부처, 삼매로서의 부처, 국토로서의 부처, 업보를 받는 부처. 부처의 모습이 화엄경의 부처는 업보불이 있어요. 부처님은 부처님인데 중생과 같이 업보를, 업을 지어서 그 보답을 받고, 업을 지어서 보답을 받는 그런 업보불도 있고 자성불, 자기 마음 심성불도 있고.
또 원불, 일체중생의 해탈과 그런 극락을 원하는 그런 원불이 있고. 또 여러 가지 신통불 삼매불이 있는데. 이런 모든 불을 十佛십불세계라 그럽니다. 그리고 普賢보현이라고 하는 말은 그런 十佛십불 세계가 중생세계로 나타날 때는 普賢보현이되요. 普賢보현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어진모습으로, 훌륭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게 普賢보현이거든요. 그래서 내십불 외보현.
안으로는 十佛십불이요 밖으로는 普賢보현이다.
그래서 十佛십불과 普賢보현은 하나입니다. 안으로 십불세계가 부족함이 없이 갖추어져 있으면 밖으로 나타나는 건 자연히 보현이 된다. 이런 얘기죠. 그래서 이와 사, 열반과 생사를 둘이 아닌 걸로 자유자재로 이루어가는 그런 분들은 누구냐? 十佛십불과 普賢보현들의 大人대인이거든요 이 분들이. 普賢보현이 大人대인이요, 十佛십불이 大人대인이란 말이죠.
그래서 十佛십불과 普賢보현의로서의 大人대인의 세계다. 境경 자는 세계라는 뜻입니다. 十佛십불과 普賢보현들의 大人境대인의 세계. 큰 그런 분들의 세계, 그런 분들의 인생, 그런 분들의 생활이 된다. 이게 十佛普賢십불보현으로서의 大人境대인경이다 이런 뜻입니다. 그 밑에서부터는 성불을 그렇게 하고 난 분들이 어떻게 중생들을 돕는가?
성불하고 나서 무엇을 하는가? 이게 참 문제인데요. 그런 것을 얘기합니다. 성불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극락 간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이런 게 참 문제인데요, 이 게 있어요. 처음에 부처님 도량에 오는 분들은 다 자기 복 받으러 오는 거예요.
제 자신도 처음에 절에 갈 때는 내 복 받으러 간 거예요. 공부를 좀 깊이 해 보고 싶은데, 어떤 방법으로 해 볼까? 생각을 하니까, 이 절 공부하는 게 참 좋을 거 같더라고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나 하면 제가 절 밑의 마을에서 자랐거든요. 그런데 절에 가보면 경치가 시원하고. 가면 꼭 신선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 가면 공부 저절로 되는 줄 알고 갔더니, 가서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몰라요. 처음에 가니까 떡 방아부터 빻으래요. 내가 잊어버리지도 않아요. 4월 초파일 이틀 앞당겨놓고 4월 초닷새날 갔는데 떡방아 빻으란 거예요. 4월 초파일 떡 하려고. 나 공부하러 왔지 방아빻러 온 게 아닌데. 영 빗나간 거예요.
그 다음엔 국 끓이고. 그 다음엔 풀 쑤고. 그 다음엔 밥하고. 이래가지고 공부하는데 갔는데. 가 가지고도 보니까. 공부는 조금 밖에 안하고. 예불하고 뭐하고 일하고. 또 모심을 때 되면 한 달 동안씩 모를 심고. 타작할 때 되면 한 달 동안 밖에 나가서 일하고 그때 이랬어요. 60년대 통도사에서 하는데.
뭐이래서 뭐를 가르치기는 가르치는데 무슨 소리인지 도대체가 알 수가 없고. 뭐 그걸 충청도 말로 하면 ‘씨 안 먹는다’ 그러거든요. 베를 많이 짜니까 우리 할머니가 베를 참 잘 짰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어찌된 판인지 베를 못 짰어요. 그래서 할머니 나가신 다음에 북을 해가지고 하잖아요. 한 두어북 이렇게 치면은 표가 나요. 그래서 할머니한테 혼나고. 그래서 다시 푸르고.
날줄이 이렇게 있잖아요. 베를 매서 날줄이 있는데. 그 씨가 잘 먹어야 이 천이 좋지. 씨가 잘 안 먹으면 울퉁불퉁하면 안 되거든. 그러니까 베를 하도 많이 짜 보니까. 말도 제대로 아구가 안 맞는 말을 보고 ‘씨 안 먹는다.’ 이런다고. ‘씨도 안 먹는 소리 하지도 말아라.’ 이게 베 짜는 데서 나온 말이거든요. 그런데 이 말이 뭐가 들어맞아야지. 도대체가 뭘 물어보면 도대체가 들어오질 않아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씨가 먹어야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게 뭐냐? 네가 아냐. 내가 아냐? 이건 또 더군다나 씨가 안 먹는 얘기죠. 그럼 누가 압니까? 깨쳐야 안다. 누가 깨쳤는지 알 수가 있나? 도대체. 그래서 어디서 점잖은 사람이 오셨길래. “스님 깨쳤습니까?” 했다가 눈물이 쑥 빠지게 혼났어요. 그때는 왜 혼나는지 내가 몰랐어요. 깨쳤느냐고 물어보는데 왜 뭐가 잘못이냐 이 말이죠.
그런데 그 다음에 생각하니까 참 잘못을 저질렀어요. 그때까지 못 깨달은 것만이라도 속이 답답할 텐데. 인제 절에 온 녀석이 깨달았느냐? 물으니까, 거 얼마나 화가 나겠어요. 안 맞은 것만 해도 지금 생각하니 다행이라. 안 맞은 것만 해도. 다 절에 가는 사람은 자기 복 받으러 가요. 그러니까 몸 건강하기 위해서 간다든지, 아이들 잘 되기 위해서 간다든지, 내 마음 닦으러 간다든지.
자기를 위해서 가는 게 그게 복을 구하기 위해서 부처님을 믿는 초기 단계입니다. 거기서 조금 더 나가면 성불하려고 방향이 바뀌어요. 자기 복 구하는 데서 조금 신심과 불심이 깊어지면 “야 이거 성불을 해야 되겠다.”이렇게. 지혜를 구하고 신통을 구하고 깨달음을 구해서 더 좀 높은 걸해야 되겠다 이렇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말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현세에 복을 구하는 데서 성불하기를 구하는 쪽으로 마음이 바뀝니다. 이것이 첫 번째 바뀌는 거예요. 원칙은 이것을 인도에서는 회향이라 그랬어요. 돌린다. 방향전환을 한다. 이런 뜻이죠.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좋은 거 하려고 절에 갔는데, 가다 보니까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더 좋은 것이 있더라.
부처가 되어야 되겠다. 성불해야 되겠다. 이게 두 번째 방향전환이에요. 그러면 성불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또 방향이 또 바뀌어요. 그 다음에는 중생을 구제해야 되겠다. 이렇게 세 번째로 방향전환을 하는데. 그게 바로 중생을 향한 회향입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회향은 성불하는 데로 회향을 하고, 성불한 다음에는 중생구제 하는 데로 회향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초기 단계에는 자기 복 받는 거예요.
그런데 절에 처음 온 사람보고 회향하라 성불하라 그러면 씨가 안 먹는 거예요 이거는. 우선 처음에 왔을 때는 그 복을, 자기 복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인연을 지어야 된다 이 말이죠. 이게 다 단계가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자기 복 받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 다음에는 성불하기 위해서 하고, 그 다음에는 중생구제하기 위해서 하는 게 이게 불교입니다.
그러니까 성불한 부처님이 할 일은 중생구제밖에 할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한 부처님을 많이 모시고 잘 모시고 예배하고 공양하고 발원하고 하면은 중생들은 다 복을 받게 되고, 성불하는 사람은 성불하게 되고, 이게 모든 불사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거거든요. 그러면 여기까지 十佛普賢大人境십불보현대인경이라고 하는데 까지를 성불하는 것으로 보는 거예요. 성불했다 이제는. 十佛普賢십불보현으로서 大人境대인경이 됐다 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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