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290회 사람은 무엇으로 어떻게 생각하나요

Buddhastudy 2013. 2. 21. 04:35

출처 YouTube

  

질문하는 거 보니 대학을 너무 많이 다는 거 같아. 이성이 어떻고 감성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음식이 먹고 싶다. 그러면 드세요. 음식 먹고 싶다. 그럼 먹으면 되는 거요. 여기 이성 감성 따질 필요가 없어요. 음식이 여러 개 있는데 요건 내 식성에 맞고 이건 안 맞다. 그럼 식성에 맞는 것만 드세요. 음식이 먹고 싶다. 이거 아무 문제가 아니에요. 식성에 맞는 거 먹고 싶다. 이거 아무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먹으면 돼. 그런데 음식이 먹고 싶다. 그런데 음식이 없어. 이런 경우가 있다. 이거야.

 

그러면 만들어먹으면 돼. 그런데 만들긴 싫다. 이거야. 그럼 만들기 싫으면 굶으면 돼. 굶긴 싫다. 그럼 만들어야 돼. 그런데 고뇌는 먹고는 싶고 만들기는 싫고. 먹고는 싶은데 돈은 없고. 먹고는 싶은데 뚱뚱할까 겁나고. 이럴 때 어떻게 하느냐? 이런 얘기요. 이런 걸 욕심이라고 그래. 음식이 먹고 싶다. 이게 욕심이 아니에요. 음식이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는 거요. 나는 이러이런 음식이 더 맛있는데. 먹으면 되는 거요. 그런데 그런 음식이 없다. 그럼 안 먹어야 되는 거요.

 

그래도 먹고 싶다. 그럼 만들어 먹으면 되요. 만들어 먹으려는데 재료가 없다. 그럼 사면되는 거요. 살려니 돈이 없다. 그럼 노가다해서 돈 벌어야 되는 거고. 여기 뭐 이성이 어떻고 감성이 어떻고 이런 얘기 하지 마라니까. 이 무슨 이성문제 감성문제에요.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는데. 그런데 체중이 불었다. 체중이 불어도 괜찮아요. 그냥 데굴데굴 굴러다니면 되는 거요. 그런데 딴 사람이 뚱뚱하다고 놀린다. 그 사람이 뭐라고 그러든 무슨 상관이에요. 난 내 먹고 싶으면 먹고. 뭐 그냥 굴러다니면 되는 거요.

 

그런데 남에게 좀 날씬하게 보이고 싶다. 그러면 먹고 싶어도 안 먹어야 되는 거요. 그런데 먹고 싶은데 어떻게 안 먹습니까? 이런 말은 할 필요가 없어. 그러면 먹고 싶어도 그것보다 더 큰 이익이 있기 때문에 이건 안 먹어야 되는 거요. 여기 붉은 잘 달궈진 구슬이 하나 있다. 갖고 싶다. 그런데 만지면 손댄다. 그럼 버려야 되는 거요. 갖고 싶은 마음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갖고 싶으면 가져라. 이 거요. 그런데 손을 댄다. 그럼 그 정도 갖는 것. 갖고 싶은 게 이게 원인이거든요. 이 인연에는 손을 대는 과보가 따른다는 거요.

 

이세상의 모든 일은 과보다 따른다. 그래서 부처님이 수도 없이 인과설을 설명한 거 아니오. 먹고 싶다. 먹으면 체중이 붓는다든지. 돈이 든다든지. 과보가 따르는 거요. 그럼 과보를 피해 갈 생각을 하지 마라 이거야. 훔치고 싶다. 훔쳐요. 그럼 감옥 가는 과보가 따르든지, 두드려 맞는 과보가 따르든지, 불명예의 과보가 따른다. 그 과보를 괴로워하지 마라. 이거야. 기꺼이 받아들여라. 이거야. 그런데 건강이 나쁘다. 너무 많이 먹어서 뚱뚱해지면 비만해지면 건강에 나쁘다.

 

음식을 먹는 이유가 건강 하려고 먹잖아.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건강이 나빠졌다. 그럼 많이 먹고 싶은걸 버려야 돼. 그걸 어이 버립니까? 그냥 버려야 돼. 이 불덩이를 어떻게 쥡니까? 못 쥐는 거요. 어떻게 놓습니까? 그걸? 그냥 놓는 거요. 거기에 자꾸 방법을 연구하면 안 돼. 그 놓는 방법을 연구하는 거는 쥐고 쉽다는 거요. 쥐고 싶다는 거는 그게 나한테 손해가 온다는 거를 아직 모른다는 거요. 무지라는 거요. 아는데 실천이 안 되는 게 아니고 실제로는 모른다는 거요.

 

그래서 먹고 싶으면 드세요. 결혼하고 싶으면 하세요. 이혼하고 싶으면 하란 말이오. 그런데 먹고 뚱뚱해져 고민하는 거는 해결책은 안 먹으면 되는 거고. 적게 먹으면 되는 거고. 어떻게 적게 먹습니까? 이거는 우리의 질문의 90%가 그런 질문인데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면 끝이 안 난다. 담배를 피우려면 피워라. 그런데 담배를 피워서 얻는 부작용이 더 크다. 건강이 나쁘고 이웃사람하고 문제가 되고. 스님 법문 들을 때 마다 계속 얘기를 해서 민망하고 그러면 안 피우면 되는 거요. 어떻게 안 피우느냐? 그냥 안 피우는 거요.

 

안 피우면 과보가 안 따라. 피우면 과보가 따르는 거요. 과보를 받든지. 과보가 싫으면 인연을 끊든지. 이것도 쥐고 쉽고 저것도 쥐고 쉽고. 그 욕심이라는 거요. 담배 피우고 싶다. 이게 욕심이 아니고. 두 가지를 다 가지려는 거 그게 욕심이다. 이 말이오. 그러면 그냥 안 피운다. 그런데 과거의 습관이 있기 때문에 안 피운다고 해도 피우고 싶은 마음이 계속 일어난다 이거요. 내가 어떻게 못해. 이 피우고 싶은 마음, 이게 우리가 감정이라고 하기도 하겠죠. 감성이라고 하기도 하고. 감성의 뿌리가 어디 있냐? 업으로부터 오는 거요. . .

 

이거 피우면 건강에 나쁘다. 이걸 이성이라고 그래. 이성은 지혜로부터 오는 거요. 그런데 정신세계로 말하면 감성이 더 몸과 마음에 더 배어있는 거요. 이성은 몸에 배어있는 게 아니에요. 이건 순수정신영역이고. 감성은 몸과 마음에 같이 배어 있어. 정신적인 영역이다 하지마는 육체적 영역이기도 한 거요. 저 밑에 있어. 그래서 아는데 안 된다는 얘기가 자꾸 나오는 거요. 생각하고 마음이 자꾸 따로 논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요. 원래 원리가 그래.

 

그러니까 이성은 더 훌륭하고 감성은 나쁘다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감성은 짐승 같은 속성이다. 이런 얘기도 아니에요. 그거는 옳든 그르든 좋든 나쁘든 몸에 배인 거요. 그 습관이 사회에 다른 사람에게도 좋고 나도 좋은 습관이 들었을 때는 그걸 선심이라고 그래. 그럼 다른 사람에게나 나에게 손해나는 악영향을 끼치는 그런 게 배어있으면 악심이라 그러는 거요. 그러니까 좋은 그런 습관은 부작용이 없지 않습니까? 그죠? 내버려 두면 되고. 나쁜 습관은 부작용이 많으니까 그건 멈춰야 된다.

 

그런데 그거는 멈춰야 되겠다고 판단을 해도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려도 이 정신세계에서는 결정이 되어도 몸에서 배어서 올라오기 때문에 또 일어나는 거요. 그만 일어나라 해도 말을 안 듣는 거요. 마치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 여러분 뜀뛰기 하면 맥박이 많이 뛰잖아. 그죠? 가슴이 가프죠. 그러면 뭐라고 하면 되요? 내 몸이니까. “~ , 좀 천천히 뛰어라.” 아무리 명령해도 안 듣잖아. 이게. 그런 것처럼 오랜 습관, 소위 우리가 말하는 까르마라고 하는 거는 거의 무의식의 세계를 지배를 받습니다.

 

의식에서 그만하라. 어쩌라. 해도 말을 잘 안 들어요. 그러니까 그냥 그럼 시키는 대로 따라가자. 이러면 이제 감각에 치우치고, 말초신경에 치우치고, 감성에 치우치는 사람이 되는 거요. 그런데 이걸 너무 억압을 하면 어떠냐? 병이 나는 거요. 사람이 지 성질대로 못하도록 너무 묶어놓으면 나중에 병이 나는 거요. 그래서 무조건 억압해도 안 되고 무조건 내버려둬도 안 된다. 무조건 억압하는 걸 고행이라고 그러고, 그냥 하다는 대로 내버려두는 거를 뭐라고 한다? 쾌락이라 는 거요. 부처님이 이 두 가지를 다 버리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것이 일어나는 거를 나쁘다고 하지 마라. 이게 내 업이구나. 이렇게 일어나는 거구나. 이걸 알아차려야 돼. 그러나 끌려가면 안 돼. 이건 이미 내가 지혜로 이건 해가 되는 거라고 이미 판단을 했지 않습니까? 그래 놓고 또 끌려가고 또 끌려가면 그건 아는 게 아니에요. 지혜가 아니고 무지요. 아는 것 같지? 실제는 모르는 것과 같다. 그럼 알면 다 되느냐? 안 돼. 그러면 아는데도 못하면 다 결국 제대로 아는 게 아니냐? 그렇게 말할 수도 없어. 우리가 알았는데도 제대로 안 되는 그 속에는 실제로 제대로 몰랐다는 것도 있어. 알았다는 착각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확실히 알았는데 싹~ 없어진 경우도 있고, 확실한데도 안 없어지는 경우가 있어. 업이 더 밑에 더 근원적인 무의식의 세계는 우리가 알은 것. 이성이 영향을 주는데 한계가 있단 말이오. 그래서 그건 자꾸 일어나. 그것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줄 알아차려야 돼. ~ 아직도 이런 게 남았구나. 알아차린다는 것은 여기에 맹목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이런 얘기요. 끌려가지 않는다. 이 거야. 한잔 먹고 싶다. 먹으면 돼. 그런데 알코올 중독자라면 이건 큰 부작용이 생긴단 말이오. 그럼 안 먹어야 되겠지.

 

그러면 이제 먹고 싶은 거 일어나는 거는 그건 과거의 습관에서 일어나는 거고. 그러나 그것을 안 따라가는 거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 안 따라는 거요. 나의 이익을 위해서. 스님이 먹지 마라 그래서 안 먹는 게 아니고. 나의 이익을 위해서 안 따라 가니까. 자기 스스로 내린 결정이란 말이오.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이게 더 깊은 무의식으로부터 일어나니까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행해버릴 때도 있다. 이거요. 행해버린 뒤라도 알아차려라. 행해버린 뒤에 알아차리면 뭐해야 된다? 뉘우쳐야 돼. 참회를 해야 되고.

 

행해 버리기 전에 일어나리기전에 알아차려서 놓으면 되지 이건 참회도 안 해도 되요. 참회라는 건 이미 행해 버렸을 때는 참회를 해야 되는 거요. 이렇게 공부를 해나가면 되요. 어려운 일이오? 이치는 아주 쉬워. 실천은 잘 안 돼. 안되니까 뭘 해야 된다? 연습이 필요한 거요. 연습이. 연습을 뭐라고 한다? 수행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연습을 하면 되는 거요. 그런데 연습을 안 하려 그래. 그냥 되기를 원해. 그런데 이 세상에 연습 안하고 되는 게 어디 있어? 다 연습을 해야지. 그러니까 부지런히 연습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