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단 답으로 얘기할게요. 떨어져 사는 게 좋습니다. 더 길게 얘기할 필요 없어. 이거 뭐 설명을 또 해야 돼. 떨어져 사는 게 좋아. 그게 정도요. 그런데 ‘어머니가 오시겠다.’ 하면 어때요?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어머니가 거기 사시겠다’면 살면 되요. 그런데 어머니에게 가서 “어머니 여기 살기를 원해요? 우리 집에 오기를 원해요?” 이렇게 물으면 안 돼. 특히 중심이 없으신 분한테 이렇게 물으면 그 말은 시동생 편이냐? 내편이냐? 빨리 결정해라. 지금 내편 안 되면 나중에 보자. 이런 협박하고 똑같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냥 어머니 여기 사시면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어머니 여기 사시니까 편하시죠?” 이렇게 하면 ‘그래 우리 농사일 바쁜데 당신 혼자 잘산다.’ 이렇게 들린단 말이오. 그러니까 아이고 혼자 밥해두시고 불편하지 않으세요? 이렇게 얘기하고 힘드시면 집에 들어오세요. 이렇게 말하면 되요. 그러고 그냥 계세요. 그러고 어머니는 내 어머니만 아니라 형제의 어머니죠. 내 맘대로 할 수가 없어요. 이 문제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조율해야 돼. 간단치 않습니다. 유산도 똑같이 배분하는 게 있다시피 자녀들 의견이 중요한 거요.
저희 서암 큰스님이 마지막에 병환이 좀 드셔 계셨지 않습니까? 서암 큰 스님만 생각하면 제 생각은 그래요. 절에 모시면 안 돼요. 왜 그럴까? 절에 모시면 절의 습관이 어떠냐? 늙어 병들어 누워있는데도 도인이 아파서 되나?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요. 도인이 헛소리 하면 되나. 그게 잘못된 불법이오. 육신이 병들면 누워있는 거고. 못 움직이면 못 움직이는 거고. 헛소리 하면 헛소리 하는 거고. 자꾸 신비화시키려고 한단 말이오. 그러면 환자가 의도적 생활을 해야 되는 거요. 굉장히 불편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편안하고 그저 눕고 싶으면 눕고 중이라는 생각도 버리고 계시다고 열반하시면 제일 좋은 일 아니오. 그런데 밑에 있는 상좌스님이 볼 때는 그러면 됩니까? 안됩니까? 안 돼요. 자기 스승이 그러면 자기가 나중에 큰 소리를 못 쳐. 그래도 죽더라도 죽은 뒤에라도 딱~ 가부좌 틀고 앉아 있어야 돼. 이거는 어른하고 전혀 관계가 없는 거여.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도 일종의 유산이거든요. 이 유산을 어떻게 가질 거냐 하고 같은 거요. 그걸 어떻게 하자면 그게 또 분쟁이 생깁니다.
그러면 나는 그런 전통에 별로 구애를 안 받으니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마는, 그 전통에 구애 받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같이 이렇게 생각을 또 하기가 어렵습니다. 왜? 자기 주위의 사람들이 다 그런 관점에 서 있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내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안됐지마는 한발 물러나 있을 수밖에 없는 거요. 왜냐하면 우리가 사물을 볼 때 그냥 사람으로 안보고. 늘 이것을 스님이라는 상으로 뭐라는 걸로 이렇게 보지 않습니까? 그렇게 보니 인간을 규격에다 가두게 된다. 그냥 그것으로 봐야 되는데.
본인이 그렇다는 거 별 문제요. 이해하시겠습니까? 본인이 나는 뭐 아파죽더라도 가부좌 틀고 앉아서 죽어야 되겠다. 그게 설령 관념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거는 관계가 없어요. 그러나 그것을 제3자의 관점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요. 그러나 이것도 내 생각이오. 그 사람들은 또 딴 생각하고 있는 거요.
그래서 이것은 시동생이니 뭐니 이렇게 얘기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 농사짓고 사는데 자기가 가끔 와서 보니 어머니가 너무 힘들게 생활하고 있고, 그 다음에 또 부부간에 갈등도 일으키고. 이러니까 딴 아들이 볼 때는 어머니 좀 편안하게 모시고 싶은 거요. 내가 봐도 충분히 이해서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편안하게 아파트에 혼자 모시면 괜찮아요. 그런데 이 입장에서는 모시고 가려면 자기 집에 모시고 가지 왜 혼자 놔놨나? 이 질문이거든요.
그런데 아들은 그렇게 생각하는데. 또 그 부인은 그렇게 생각합니까? 안 합니까? 안 하지. 모순이기는 하지만 어머니가 그 아들 말도 들을 수가 있거든요. 그냥 두세요. “불편하시면 들어오세요.” 이렇게 하고. 또 불편하면 언제든지 들어오게 하시고. 또 가시겠다면 언제든지 가게하고. 그렇게 해야지 이걸 무슨 맏이다. 지차다. 이렇게 해가지고 체면이 안 선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 돼요. 그러면 당사자. 사람이 힘들어져요. 누구 편도 못 들잖아. 나중에. 자꾸 편을 가르잖아.
어린애들 조그마한 애도 놔놓고 “엄마가 좋으니? 아빠가 좋으니?” 이러면 애들이 대답하기 어렵잖아. 그런데 다 큰 어른을 놔놓고 “큰아들이 좋으나? 작은 아들이 좋으나?” 이러면 힘 드는 일이에요. 자꾸 이런 거는 강요하면 안 돼요. 예. 그냥 두십시오. 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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