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잘해서 뭐해요? 그거 잘해서 뭐하는데? 그런 거 잘 안 해도 되는데. 괜찮아요. 하는데 까지만 하세요. 그런 거는. 마이크 쥐고. 그런 거 꼭 하는 데까지 하면 되지. 그걸 그래 세를 내서 하면 안 돼요. 그걸 남하고 비교해가지고 경쟁하면 안 돼요. 수행은 수행이라는 건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는 게 수행이거든요. 그런데 자기는 수행을 하면서 비교해서 하니까 그건 수행이 아니오. 다라니만 외울 뿐이지. 수행이 안 되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절을 하는 이유가 뭐요? 절을 하는 거는. 몸의 동작을 한번 보세요. 둘이 딱~ 누워서 뭐라고 뭐라고 대화하다가 의견이 서로 달라지면 그래서 말다툼이 일어나면은 누워서 계속 말다툼합니까? 벌떡 일어앉아서 합니까? 앉아서 말다툼 하면 계속 앉아서 합니까? 벌떡 섭니까? 벌떡 서서 하죠. 그럼 둘이 말다툼을 심하게 할 때 서서할 때 고개 숙이고 합니까? 고개 쳐들고 합니까? 눈감고 합니까? 눈 부릅뜨고 합니까? 눈 부릅뜨고 하죠. 그러니까 사람이 서서 고개를 쳐들고 눈을 부릅뜰 때 싸울 때 이런 현상이거든요. 이게 뭐냐?
내가 옳다. 내가 옳다는 게 최고로 강할 때 몸의 동작이 이렇게 일어나요. 그러다가 ‘아이고 내가 잘못했네.’ 이런 생각이 있으면 첫째 눈이 내리 깔리고, 그 다음에 고개가 숙여지고, 세 번째 허리가 숙여지고, 네 번째 무릎이 꿇리고 다섯 번째 머리가 땅에 닿는 거요. 머리가 땅에 닿을 때는 어느 정도요? “아이고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면 머리가 땅에 닿는다. 아시겠죠? 그러면 절이란 게 뭐요? ‘제가 잘못했습니다.’하는 거를 몸으로 표현해주는 게 뭐다? 절이다.
그러니까 내가 절을 할 때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내는 게 절이지. 그런데 둘이 이거 뭐에요? 백보 그런 걷는 그런 시계 가지고 둘이서 쿵덕쿵덕 쿵덕쿵덕 절하면서 “니 몇 배 했노?” “300백.” “아이고, 니 많이 했네. 나는 200백배 밖에 못했는데.” 이렇게 절하는 거는 절하고 아무 관계없는 거다. 이 말이오. 절하고 아무 관계없는 그거는 마음이 숙이는 게 아니고 마음이 일어서는 마음이다. 이 말이오. 그럼 이때는 뭐만 되느냐? 운동만 된다. 운동. 그거는 수행하고는 아무 관계없다. 아시겠죠?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지금 다라니를 외운다는 거는 다라니를 딱 외우면서 모든 마음을 쉬는 게 다라니를 외우는 거란 말이오. 늙으면 입이 빨리 안 돌아가는 거요. 말이 천천히 되고. 그러니까 그건 수행이 아니다. 이 말이오. 아시겠죠? 그러니까 다라니를 외운다고 수행이 되는 게 아니다. 즉 절한다고 수행이 되는 게 아니라 절을 진짜 숙이는 마음을 숙이며 절을 하면 그건 참회가 되고 세를 내서 절을 하면 그건 다리운동밖에 안되고 극기 훈련 밖에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런 것처럼 그 다라니를 그렇게 세를 내가지고 경쟁하듯이 ‘쟤는 저렇게 빨리 하는데 나는 왜 빨리 안 되노.’ 이렇게 하고 ‘100배를 빨리 채워야 되는데’ 이렇게 하면 그거는 욕심을 가지고 하는 거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데 수행이 아니고, 입을 싸게 하는 훈련은 된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수행하곤 아무 관계없는 짓이다. 그리니까 다라니를 할 때는 얼마나 빨리 하느냐? 시간이 어떠냐? 이걸 따지지 말고, 내가 얼마나 마음을 편안하게 버리느냐? 다리니를 할 때 하는 이유가 이래요. 평소에는 남편이 술 먹고 오면 성질이 팍 나더라도 다라니 할 때는 다라니 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남편이 술 먹고 와도 어때요? “아이고 잘했습니데이~” 하고 외우는 거요. 이렇게 마음이 숙여져야 다라니 공덕이 있지. 다라니 그 자체가 공덕이 있는 거는 아니다. 다라니 그 글 뜻을 따지면 그렇게 하라고 써 놓은 거요. 아시겠죠?
Q2
아들이 무슨 시험 치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은데요? 있죠. 제가 답을 간단하게 할게요. 결혼 못한 사람은 눈을 조금 내리깔면 결혼이 쉽게 된다. 아시겠어요? “제가 부족합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결혼이 쉽게 성사돼요. 그 다음 두 번째 이사 갈 때는 나쁘다 하면 안가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가야 될 때가 있잖아. 그죠? 그때는 반야심경을 딱 3편 독송하고 그냥 가면 되요. 아니 가기 전에. 가기 전에 딱 3편 독송하고 그 다음에 눈감고 가가지고 거기 가서 3편 독송하고 눈뜨면 되요. 왜 그럴까?
반야심경의 내용이 공이잖아. 제법이 공하지. 공한가운데는 동서남북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그러니까 동서남북이 없는 데서 가버리면 되요. 그러면 북쪽하고 관계가 없어지잖아. 내 말 알아들었어요? 확실히 알아들었는지 안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알아들었어요? 그러니까 북쪽으로 가면 나쁘다 하면 안가는 게 좋다. 그래도 가야 된다 하면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가는데 왜 반야심경을 봉독하느냐? 반야심경의 핵심 사상이 공이란 말이오. 공. 제법이 공하다 하는 데서는 동서남북이 없단 말이오.
공한 상태에서 가버리면 되니까 북쪽으로 간 거요? 안간 거요? 안간 거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북쪽으로 안간 거란 말이오. 공한 상태에서 가버리니까. 그렇게 가면 되요. 첫 번째 뭐라고? 아들의 시험에 대한 기도. 기도는 이렇게 하면 되요. “아이고, 부처님, 요즘 시험이 참 어렵다고 하는데, 아이고 우리 아들은 시험 안 걸려도 살만한데, 딴 사람 급한 사람 있으면 딴 사람 먼저 좀 합격시켜 주세요.” 요렇게 기도해 보세요. 집에서 그냥 동서남북이 공이기 때문에 집에서 그냥 하면 되요.
그런데 문보고 하는 게 나아요? 벽보고 하는 게 나아요? 마음이? 문보고 하려면 불안하잖아. 누가 벌렁 문 열고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마음이 안정되려면 벽을 보고 하는 게 나아요. 그러니까 벽이 좋다는 게 아니라. 동서남북은 상관할 거 없고 심리가 안정이 돼야 되니까.
그렇게 딱 앉아서 관세음보살을 딱~ 부르시고 마음을 이렇게 가지셔야 되요. “우리 아들 부처님 꼭 시험에 걸리게 해주세요.” 이러면 안 돼요. 왜 안 되느냐 하면, 우리아들 걸리게 해달라면 부처님이 우리아들을 걸리게 하려면 정원을 한 명 더 늘려야 되요. 그런데 부처님이 정원 안 늘리잖아. 그죠?
두 번째는 그럼 우리아들 걸리 게 하려면 딴 집 아들 하나 빼내고 집어넣어야 되잖아. 누구 집 아들인지는 모르지마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면 부처님이 부정입학 시키는 거잖아. 그렇게 하라 그러면 부처님 부정입학 시키는 사람 만들어라는 뜻이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부처님을 불경하게 대하는 거요. 그러니까 “우리아들 걸리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 불교신자가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기도해야 되나?
“부처님, 우리 아들은 시험 되도 안 되도 살만합니다. 우리 집은. 먹고 살만 합니까? 급한 사람 있으면 그 사람 먼저 취직시켜 주세요.” 이렇게 기도해야 돼. 그러면 부처님이 보고 마음을 할매가 잘 쓰나? 못 쓰나? 착하게 써요? 나쁘게 써요? 이게 나쁜 게 쓰는 거요? 잘 쓰는 거요? 아니 그렇게 기도를 할 때 “아이고 부처님 우리도 어렵지만 우리도 살만한데 우리아들보다 더 급한 애 있으면 먼저 넣어주세요.” 이러면 마음을 착하게 쓰는 거요? 나쁘게 쓰는 거요? 착하게 쓰니까 부처님이 돌봐 줄만 하나? 안 하나? 줄만하지. 좋게 써야 돌봐 줄만하지 나쁘게 쓰면 돌봐주고 싶어도 못 돌봐준다. 이 말이오.
그러면 부처님이 딴 집 아들 입학시키면 내 기도가 성취된 거고, 딴 집 아들 시험합격 해달라 했는데 우리 아들 시켜주면 기도는 성취가 안됐지마는 그것도 괜찮지. 그지? 그럼 그러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거요. 이렇게도 좋고 저래도 좋은 기도를 해야지. 이래도 나쁘고 저래도 나쁜 기도는 좋지가 않다. 그래서 항상 인과법을 믿어야 돼. 인과법이라는 것은 좋은 인연을 지어야 좋은 과보가 나오거든요. 마음을 좋게 써야 결과가 좋게 나와요.
그런데 대부분 마음을 나쁘게 쓰면서 결과가 좋게 나오기를 바라는데. 그래서 기도가 성취가 안 되는 거요. 마음을 나쁘게 쓰면서 결과는 좋게 바라는데 그건 인과법칙에 안 맞아요.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지방을 가도 아무 관계없어요. 아까 귀신이 지방가든 서울가든 어디든 다 따라 온다 그랬죠? 다 알아서 오는데 부처님이 귀신보다 더 용할까? 못할까? 그러니까. 어디를 가도 늘 계세요. 아시겠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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