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노르웨이’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Kingdom of the Norway’ 노르웨이 왕국입니다.
노르웨이의 국기는 1898년 노르웨이 왕국의 국기법에 의해 제정되었습니다.
노르웨이는 사회·문화적으로 덴마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서,
덴마크의 국기인 '단네브로(Dannebrog)'를 바탕으로
청색 십자가를 첨가한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국기에 쓰인 3가지 색상인 파랑, 하양, 빨강은
1814년에 제정된 ‘에이츠볼(Eodsvold) 헌법’에서 강조한 기본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합니다.
영어 Norway의 뜻은
북쪽을 뜻하는 'nor'와 길을 뜻하는 'way'가 합쳐져
'북쪽으로 가는 길'이란 뜻입니다.
'way'라는 단어는 지역을 의미하는 'region'과 같은 어원을 갖고 있어
'북쪽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도 합니다.
노르웨이는 유럽 북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서반부를 차지하는 나라이며
내륙은 스웨덴과 핀란드, 러시아와 접경하고
해안으로는 북해와 노르웨이해, 북극해 및 스카게라크 해협에 면합니다.
국토면적은 약 38만 ㎢로
우리나라 전체 면적 약 10만 ㎢의 4배 정도 면적입니다.
인구는 2019년 기준으로 약 54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는 서울시 인구 약 1000만 명의 절반 이상의 인구수입니다.
노르웨이의 1년 총 GDP는 2017년 기준 약 4000억 달러.
이는 세계 29위로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오스트리아, 아랍에미리트를 꼽을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 인구는 약 80%가 노르웨이인이며
그 외 유럽각지에서 온 이민자들과 아시아, 아프리카계 이민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구의 약 80%가 루터 교회 신자이며 공식 언어는 노르웨이어입니다.
2. 역사
노르웨이인의 조상인 노르드인은
8세기 말까지 남부지역에서 여러 개의 작은 나라들을 이루고 살고 있었습니다.
9세기 들어 노르드인들은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전개하는 한편
본토에서도 통일국가를 형성했습니다.
860년경에 즉위한 하랄 미발왕은
노르웨이 여러 지역을 정복하고, 872년에 노르웨이 왕국을 세웠습니다.
노르드인들은 바이킹 민족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지역까지 진출하는 등 활발한 해상활동을 펼쳤습니다.
14세기 후반, 노르웨이 왕이었던 호콘 6세는
덴마크의 발데마르 4세의 딸인 마가레테(Margarethe)와 결혼했습니다.
호콘 6세가 사망한 후, 마가레테 여왕은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함께 통치하게 되었고
스웨덴까지 통합하여 3국간 연합을 이루어냈습니다.
후에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3국의 원로원 합의를 통해
덴마크의 에릭 왕(King Erik)이 연합 1대 왕으로 즉위하였고
그렇게 3국의 국가연합은 12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1523년, 크리스티안 2세의 폭정에 항거한 스웨덴은
독자적인 국왕을 세우고 3국 연합에서 독립하였습니다.
스웨덴이 독립하면서 3국 연합은 와해되었으나
덴마크 왕에 의한 노르웨이의 지배는 19세기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노르웨이는 여전히 덴마크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814년, 스웨덴은 덴마크를 침공하였고
덴마크는 강화조약을 체결하여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양도하였습니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자체적으로 민주주의를 계속 발전시켜 나갔으며
1890년대 들어, 노르웨이가 독자적인 영사권을 주장하면서 스웨덴과의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1905년, 양국 대표들이 칼스타드(Kalstad)에서 가진 회합에서
스웨덴은 노르웨이의 완전한 독립과 연합분리를 승인하였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자체 군사력이 약했던 노르웨이는
전 국토를 독일군에 점령당하는 등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국제연합(UN)의 창설회원국으로 참여하였습니다.
1949년에는 그동안 유지하던 중립노선을 선회하여 친서방정책으로 전환하였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였습니다.
3. 정치 & 경제
노르웨이는 1905년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스웨덴에서 분리 독립하였습니다.
덴마크의 왕자였던 칼(Carl)을 호콘 7세(Haakon VII) 국왕으로 추대한 이후
현재까지 노르웨이는 입헌군주제 바탕의 내각책임제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유럽의 대다수 국가가 속해 있는 EU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1972년과 1994년에 두 번 가입을 시도했지만, 국민 투표 부결로 무산되었습니다.
이유는 북극해 어업에 있어서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정부 조직이나 여러 사회 시스템은 EU 가입에 대비하여
EU 분담금도 내면서 유럽 단일 시장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정치사회는 성평등이 가장 잘 이루어진 나라라고 평가받습니다.
의회에서 여성의원의 비중이 약 40% 정도이며,
공기업에서도 ‘여성 임원할당제’가 법으로 정해져 있어
여성 임원비율을 최소 40% 이상으로 맞춰야 합니다.
또한 성평등의 실천을 위해
2016년부터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1년간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이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경제는 천연 에너지와 해운, 수산업 분야의 강국입니다.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생산 및 수출로 인한 수입은 국가 재정수입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인구 중 약 15만명이 석유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노르웨이의 석유산업은 다른 국내산업들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에는 고도의 기술을 갖춘 국제 경쟁력이 있는 중소 조선소가 50개사 이상 소재하고 있습니다.
이들 조선소는 주로 선박 수리를 비롯하여 특수선박의 건조에 특화되어 있으며
관련 산업인 해양 플랜트 및 기자재 등의 분야도 발달하였습니다.
수산업은 유럽 최대규모로 어획량은 연간 250만∼300만 톤에 달합니다.
노르웨이는 연안 어업 및 양식업에 주력하고 있고
주로 생산되는 어종은 청어, 고등어, 연어, 송어 등이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세계 최대의 연어 수출국으로
일찍부터 최첨단 기술을 도입하여
세계 최대규모의 가장 친환경적인 연어양식 환경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노르웨이는 국토의 대부분이 스칸디나비아 산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해안선은 그 길이가 어마어마한데
해안선 총 길이는 대략 5만km가 넘으며
지구 한 바퀴의 1/4을 넘을 정도이고
전 세계 국가들 중 캐나다에 이어 가장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는 국가입니다.
노르웨이는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는 가장 깨끗한 청정지역 가운데 하나로
국토면적에 비해 인구밀도가 극히 낮고
제조업이 거의 발달되지 않아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합니다.
기후는 전형적인 한대성 기후로
12월에는 오후 3시만 되어도 해가 지고, 평균기온은 영하 15도 이하라고 합니다.
눈이 자주 오는 편이며, 북극처럼 백야현상이 일어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해안지역은 크게 기온이 낮지 않고, 비도 많이 오며 혹독한 추위는 없다고 합니다.
노르웨이는 인구는 적지만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땄고,
역대 동계올림픽 최다 종합우승국입니다.
가장 인기 있고 강세를 보이는 종목은 나라 이름을 딴 노르딕 스키종목인
크로스컨트리 스키, 스키 점프, 바이애슬론 등이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여러 문화들 중에서도 특히 문학에서 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세기 후반, 북유럽 문학의 황금시대에는
노르웨이 문학을 대표하는 4대작가를 배출했는데요.
비에른손, J.리, 알렉산더 켈란, 헨릭 입센은
노르웨이 문학을 유럽문학의 제 1선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인형의 집>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헨리 입센의 강렬한 사실주의는
노르웨이 문학의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는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를 들 수 있습니다.
굽이치는 곡선과 극도의 불안감으로 절규하는 한 남자를 그린 대표작 <절규>는
시간이 흐른 현대에도 많은 미술애호가의 사랑을 받는 작품입니다.
매년 12월 10일, 노벨의 추모일에 열리는 노벨상 수여식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진행됩니다.
하지만 노벨평화상만큼은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의 오슬로 시청에서 시상식이 열리는데요.
이는 노벨이 1895년 유서를 작성하고, 노벨재단이 설립된 1900년 당시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하나의 나라로 합병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노르웨이는 노벨평화상 센터와 노르웨이 노벨원원회가 있습니다.
5. 인물
노르웨이에서 잘 알려진 인물로는 ‘토르 헤위에르달’이 있습니다.
‘마지막 바이킹’이라는 별명을 가진 탐험가이자 인류학자이며
자신의 손으로 지은 뗏목으로 태평양을 횡단하여 20세기 탐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1914년에 태어난 헤위에르달은
어머니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많은 관심을 보여
어릴 적부터 동물학에 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슬로 대학을 진학한 후에는 동물학 및 지리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1947년 34세가 되던 해
그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 ‘파투히바’에서 동식물을 연구하며 원주민들과 교류하던 중
그들의 조상이 동쪽에서 건너온 태양의 신 ‘티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얼마 후 ‘파투히바’에서 고대 마야문명의 석상을 발견한 헤위에르달은
남태평양 인근 원주민들의 조상이 남미 마야인
즉, 지금의 페루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토르 헤위에르달은 고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간에 소통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1500년 전 고대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뗏목을 만들어 태평양 횡단을 결심하게 됩니다.
헤이에르달은 뗏목에 잉카의 신 이름을 따서 ‘콘-티키’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뗏목 ‘콘-티키’호는 101일 동안 7,200km를 여행한 후
무사히 페루부터 폴리네시아까지 도착하게 됩니다.
오늘날 콘-티키는 오슬로의 ‘콘-티키 박물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후 헤위에르달의 실화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2012년에는 각색된 버전으로 영화로 나오게 됩니다.
이 영화는 제 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이스터 섬, 티그리스 등 여러 탐험과 고고학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생을 보낸 그는
87세 뇌종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노르웨이 정부는 2002년 오슬로 대성당에서
헤이에르달에게 국장의 장례식을 수여했습니다.
'시사 - 역사 > 역사,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5분상식 세계사] 니제르 10분 완벽정리 (0) | 2022.04.14 |
---|---|
[5분상식 세계사] 뉴질랜드 10분 완벽정리 (0) | 2022.04.13 |
[5분상식 세계사] 네팔 10분 완벽정리 (0) | 2022.04.06 |
[5분상식 세계사] 네덜란드 경제와 문화 (0) | 2022.03.31 |
[5분상식 세계사] 네덜란드 역사 10분 완벽 정리 (0) | 2022.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