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란 도대체 왜 있는 것이며
어떤 작용으로 생기게 되는 것일까요?
감정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고통을 주기 위해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여러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원래의 정체성을 망각한 나와
내 본연을 기억하고 있는 나의 상위 자아와
입체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 차원에 걸쳐
의식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다차원적 존재이며
다른 말로는
나는 늘 나의 신성, 혹은 근원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의 진정한 상태인 신과의 정렬이 틀어지면
감정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상위자아, 내면 존재, 진정한 자신, 내 안의 신성, 영혼 등등
무엇이라 부르든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더 큰 의식이 있습니다.
이 의식이 존재하는 상태는
늘 조건 없는 사랑, 기쁨, 자유, 평온이며
내가 비록 육체 의식 속에서
나에 대한 망각 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내면 존재가 느끼는 이 상태가
나에게도 역시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입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상태를 이탈하게 될 때
우리는 반드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감정이 우리에게 하는 역할은
지금 내가 얼마나 자연스러운 나의 상태를 이탈했는지 알려주는
알람이자 안내자입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지금 너는 진정한 너의 상태가 아니다.
내 내면을 살펴서 그것을 알아보도록 하라”라는 것을 말해주는
내면의 가이드입니다.
감정은
항상 내가 어떠한 존재 상태로 있는지
자동적으로 알려주는
선천적으로 내장된 피드백 시스템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예외 없이 우리가 어떠한 상황, 대상, 나 자신 등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될 때이고
이 평가는 부정적인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부정적이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저항, 분리, 움츠러듬 등의 에너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것과 상위자아, 혹은 영혼이 믿는 것이 일치하지 않으면
즉 내 내면 존재가 나의 믿음에 동의하지 않을 때
나는 불편한 감정이나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 예로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
나는 수치스러운 존재다”라는 믿음에
내 내면 존재는 결코 동의하지 않기에
우리는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면 존재, 혹은 상위 자아와 멀어지는 생각을 할수록
그 고통의 강도도 더 커집니다.
그래서 죄책감을 가질 때
우리의 고통이 제일 크며
그 이유는 죄책감이 우리의 본질과는 가장 멀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역시
진정한 나의 상태가 아니고
내면 존재 역시 동의하지 않기에
괴로운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이렇듯 감정은
‘코스를 이탈했다’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며,
나와 진정한 내가 조화를 이루는지 아닌지 알려주는
가이드이자 나침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에는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선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가령 지구 환경오염을 보며 드는 부정적인 감정은
내가 선호하는 것은 건강한 지구라는 것을 알게 해주어
건강한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을 통해
변화를 끌어내는 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내게 어떠한 감정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믿음과 정의에서 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해석]을 하게 하고
이 해석이나 판단에서 [감정]이 일어나며
일어난 감정은 그 감정을 정당화시킬 [생각]을 일으키고
생각은 다시
[감정]을 일으키거나 혹은 [행동]을 하게 합니다.
어떠한 상황도 그 안에 자동적으로 들어 있는 의미는 없습니다.
거기에 대한 의미는 늘 나 자신이 주는 것으로
어떤 대상의 의도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상대의 의도가 나를 화나게 하려는 것이라면
나는 이것을 인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상대가 주는 의미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 상황은 나에게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게 됩니다.
상대가 꼬마 아기라면
오히려 귀엽고 재미있다는 의미를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는 말, 하는 생각, 하는 행동, 드는 감정은
모두 그 사람의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결코 그 누구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다른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각각 다른 감정을 가지고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들여다보고
내가 더 선호하는 믿음, 더 마음에 드는 정의로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인생은 고달프다’를
‘인생에 도전이 있지만 흥미 있는 것도 많다’라고 정의를 달리하면 어떨까요?
우리의 현실은
내가 가지는 믿음, 감정, 생각을 되비추는 거울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바꾸면
반응하는 내 감정과 생각, 그리고 행동까지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상황을 대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면
이 감정을 먼저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 완전히 느껴주도록 합니다.
결코 회피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무엇인지
내가 충분히 인식할 수 있도록 느끼라는 것이지
계속 붙들고 있으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감정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할 경우에는
오히려 우리의 심리와 현실 창조에 큰 부작용을 끼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더 자세한 것은
다음 영상에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감정을
내 것으로 인정한 후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상황과 대상에 대해
나는 무엇을 사실이라 믿고 있기에
이런 감정이 생기는 것인가?
내가 믿고 있는 이것은 정말 사실인가?
그리고 이것을 사실이라 해도 나에게 중요한가?
중요하다면 왜 중요한가?
이것이 없을 경우 생기는 최악의 경우는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이 바로
자신의 무의식에 묻혀 있는 믿음을 알아보는 방법입니다.
만일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는 데서 오는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사실일 수가 없습니다.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면
나는 존재할 수조차 없을 테니까요.
우리는 왜 감정을 회피하려 하는 것일까요?
감정은 나 자신에 대해 배우고
관점의 전환을 통해 성장하게 이끄는 내면의 스승입니다.
감정이 없다면 우리에겐 진화도 확장도 없을 것입니다.
감정을 인정하고, 바라보고
내게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들으려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정을 무시하고 피하려는 이유는
감정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오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부정적 감정은
‘진정한 나와 조화되지 않는 믿음이 있다’ 전해주는 메신저이지
고통의 원인이 아닙니다.
이 믿음이 사실일까 봐
감정 탓을 하며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를 속이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이것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부정적 믿음체계입니다.
감정은 결코 우리를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감정보다 더 솔직하고 정직한 것이 우리에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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