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TV(휴심정)

[조현TV 휴심정] 법륜스님 지혜의 근원 - 법륜스님 법문의 핵심

Buddhastudy 2021. 6. 30. 20:18

 

 

 

옛날 우리가 자랄 때는 형제간에 여럿이 자랐잖아요.

먹는 것부터 입는 것부터 온~~~~갖 것이 어릴 때부터 갈등이 생겨요. 형제 간에.

갈등이 생기면 형이 힘으로 동생을 억누르고 가져가면 부모가 그거를 제재를 가하고

동생이 부모 힘을 빌려서 뭘 차지하면

엄마 나가버리면 형이 금방 뺏어버리고 이러니까

자라면서 소위 말하면 사회성이 아주 어릴 때부터 익혀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게 장기적으로 이로운지, 일시적 이로움이 아니라

어머니한테 얘기해서 어리광부려서 얻어놔 봐야

엄마 문밖으로 나가면 형이 채어가 버리니까

무의식 세계에서 사회성이 생기고, 적응되는 거죠.

 

그런데 요즘은 아이 하나 낳아서 키우니까 아이와 아이의 관계는 없고

아이하고 어른 관계밖에 없잖아요.

애가 원하면 엄마는 다 해주잖아요.

그러니까 애의 사고 속에서든 원하면 다 되는 거예요.

 

학교 가서 아무리 형제간에 어쨌든

무의식에서는 자기 원하는 대로 하려는 게 일어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사람 사이에 타협이 어렵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고

 

두 번째는 아이는 한 아이인데도 다 왕자와 공주로 키우잖아요.

그러니까 왕자끼리 양보가 서로 되기가 어렵죠.

결혼생활 해도 그렇고..

그러니까 이거는 어쩔 수 없는 거고,

 

요즘 들어와서 SNS도 이런 더 큰 영향을 줍니다.

SNS 알고리즘 때문에 내가 어떤 거 하나 누르면 비슷한 영상이 계속 뜨잖아요.

그것만 계속 보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세계가 다 그런 줄 착각할 수 있는

이런 요소도 있어요.

 

어릴 때 자람의 형성에서 첫째 바탕이 깔리고

두 번째는 요즘 SNS에 의해서, 노인들까지 이런 현상이 생기거든요, 그것만 계속 보니까.

법륜스님 하나만 누르면 법륜스님 것만 하나만 보면, 법륜스님이 쫙 나오고

보수적인 거 하나 누르면 보수적인 것만 쫙 나와서 또 보고 또 보고 하다 보면

나중에 전부 그런식으로 깔리게 되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사고가 한국만 그런데 아니라 미국도

미국은 여야가 합리적으로 의논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완전히 저렇게 양극화 되잖아요.

 

그래서 양당구조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은

갈수록 극단적으로 분열될 수밖에 없는 이런 현재 SNS 시스템상.

알고리즘에서 오는 것 같은데

 

어쨌든 내가 옳다는 건 뭐예요?

내가 아는 것이 전부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그룹에 들어가서 그것만 계속 보면

일종의 옛날에 누가 밖에서 세뇌했는데

이제는 자기가 세뇌되는 거요. 마약 중독되듯이.

 

그러니까 어떤 무슨 빠, 하면 그 속에 빠져 있으니까 다른 사람 말이 귀에 안 들어오고

이쪽에 빠진 사람은 다른 게 귀에 안 들어오고 안 보이죠.

 

이것이 지금 대학도 졸업하고, 온갖 지식을 배운 것과는 관계없이

인간의 사유체계가 너무 막혀있는, 이런 현상이라서

이건 저는 뭐, 더 갈수록 강화되지 않을까.

자란 환경과 현재 SNS가 바탕이 환경에 깔려있고

거기다 SNS가 지금도 계속 같은 자극을 주기 때문에

이 문제는 참 미래가 좀 심각한 문제에요.

 

...

 

아니 그게 어릴 때부터 자기 생각대로 살아온 그게 아마 적어도 우리 의식이 아주 어릴 때 형성되는데

태어나서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나 거의 자기 원하는 대로

그래서 군대 가도 안 되고, 이건 뭐 결혼해도 안 되고, 이러니까

가족 사이에 부부갈등도 더 심해지고, 직장가도 이렇게 되죠.

이게 아주 어릴 때 사회성이 형성이 되어야 하는데

그 기회가 없어져서 오는 문제 아닐까.

 

...

 

개인적으로 극복하려면 딱 한 가지죠.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거요. 서로 다르다.

믿음이 다르다. 기독교인은 믿음이 다르구나, 생각이 다르구나,

, 저 사람은 나하고 취향이 다르구나, , 음식 맛이 다르네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다름을 인정하는 게 존중이거든요.

다름을 인정하는 게 상대를 존중하는 건데

우리는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 하는 관점을 가지니까 갈등이 생기죠.

다른 걸 서로 인정한다면 갈등이 생길 게 뭐가 있어요.

 

...

 

 

 

첫째는 부처님의 가르침 대로 고정관념을 버려라.

우리가 안다는 게 별거 아니고, 진실하고는 아무 관계 없고

자기가 받은 정보를 가지고 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럼 정보가 다르면 사람은 달리 아는 거다. 똑같은 사실을 두고.

 

어떤 사람의 얘기도 그 사람은 그런 정보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거든요.

그걸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어떤 사람의 얘기도, 그걸 가지고 그건 옳다든지, 그르다든지, 나쁘다든지, 좋다든지 이런 관점을 가지고 안 들어요.

저 사람은 저렇게 보고 있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첫째 선입관을 가지고 안 보고

자식 때문에 뭐라고 뭐라고 그러면

아 저 사람은 저런 관점을 가지고 있구나, 이게 첫째이고

 

그런데 그렇게만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저렇게도 볼 수 있잖아요.

그렇게 대화를 하니까 이 사람이 그렇게 관점을 바꾸는 걸 나를 따라서 대화를 하다 관점을 바꾸면

, 별거 아니네요, 이렇게 되는 거고

못 바꾸면 그냥

스님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스님이 애를 안 낳아보니 그런 소리 하지.

애를 안 키워보니 그런 소리하죠.

안 되는 거요.

그런데 관점을 바꾸면 따라오는 거고.

 

그러니까 제가 그 질문이 뭐냐는 나한테 하등 중요한 게 아니에요.

자꾸 답을 준다니까 어떻게 스님이 처음 아는 문제의 답을 주나,

저는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대화를 그냥 하는 거요.

그 사람이 애에 대해 얘기하면 애에 대해 얘기하고

남편에 대해 얘기하면 남편에 대해 얘기하고

결혼생활 얘기하면 결혼 생활 얘기하고

농담으로 뭐, 부부가 성관계가 안 맞아서 이런 얘기하면

아이고, 그런 거 혼자 사는 스님한테 묻지 마세요 이렇게 하지만

그게 이 주제 다르고, 저 주제 다르고 한게 아니라는 거요.

 

부부관계 주제 다르고, 애 키우는 주제 다르고, 직장 동료 주제 다르고

이런 게 아니라는 거요.

결국은 인간관계에서 생겨나는 일들은

다 자기 관점을 가지고 상대에게 내미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대화를 하면서 달리보게 하는 거죠. .

 

기술이라면 그때그때 다르게 보는 관점을 아이디어를 그때그때 가지고

? 그거 이렇게 보면 어때? 저렇게 보면 어때?를 가르치려고도 안하고

그래서 저는 대화를 편하게 하는 거요.

답을 주려고도 안하고 깨우치려고도 안하고

그냥 이쪽 면을 보고 뭐라고 뭐라 하면

저쪽은 윗면은 어때요? 뒷면은 어때요? 위는 어때요? 아래는 어때요?

이렇게 얘기 하다가

자기가 관점을 바꾸면 감사합니다하는 거고

못 바꾸면 입이 툭 나와 기분 나빠 앉는 거고 그런 거요.

 

답을 준다 그러면 좀 어렵죠.

답을 저는 준다고 생각 안 해요.

저는 대화한다.

 

그리고 내가 깨우쳐줬다 이렇게 생각 안 해요.

자기가 깨우쳤다, 이렇게 생각하지.

 

그래서 그 문제는 저는 어떤 사람이 묻든, 무슨 문제를 묻든

그거하고는 아무 관계는 없는 거요.

대화는 어떤 사람하고도 할 수 있잖아요.

무슨 얘기를 해도 대화는 할 수 있죠.

 

답을 주려면

난 모르겠는데, 이런 말이 나오거나

아는척 하거나 하는데

인생에 무슨 답이 있겠어요.

인생은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

 

자꾸 사람들은 그래서 즉문즉설이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계속 즉문즉답이라고 얘기를 해요. ㅎㅎ

 

그래서 나는 농담으로 그러죠.

즉문즉답 잘하는 건 네이버 검색이나 구글 검색이다.

인생은 답이 없다.

답이 없는데 어떻게 답을 해요?

대화를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