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1)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마음작용2

Buddhastudy 2021. 12. 13. 18:55

 

 

 

 

지난 시간에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다이런 말씀을 드리면서

정리를 제가 다시 한번 하고요,

 

지금, 여기, 내 마음이

고요 적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게 불교 수행의 긍극적 목표다.

 

그러면 이런 상태를 유지하려면

나의 무지의 상태로부터 깨어나야 해요.

그래서 깨어있기, 이런 말이 있거든요.

지금 여기 나에게 깨어있기

 

그러면 구체적으로 실례를 한번 들어볼까요?

부처님 당시에 한 젊은이가 부처님께 질문을 했어요.

인도는 부처님 당시에 정통 종교가 있었는데, 그 정통 종교가 브라만교라는 거요,

 

하늘에 브라만이라는 우주를 창조한 신이 있다.

그런데 그 신에게 기도하고, 그 신의 힘을 빌려서 나의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가르침이요.

 

그런데 그 신의 힘을 빌리는 소위 제사장, 사제를 뭐라고 불렀냐?

그것도 브라만이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종교지도자이죠.

 

그 브라만들이 말하기를

사람이 아무리 많이 지었다 하더라도

저 성스러운 강가강에 가서 목욕을 하면

마치 몸에 흙이 묻었거나 때가 묻었을 때 물로 씻으면 다 깨끗이 씻어지듯이

저 강가강에서 목욕, 이 목욕을 때를 씻는 목욕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때, 죄의 때, 까르마를 씻어내는 그런 뜻입니다.

업의 때를 씻는 그런 목욕을 하는 거라는 거요.

 

저 물에 가서 목욕을 하면

모든 죄업이 다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죽으면 하늘나라,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

 

지금도 인도 강가강에 가보면 지금도 거기서 목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스러운 목욕을 한다, 이게 하나의 기도의식이고, 종교의식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그 바라문들이 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쉬우냐 이거야.

욕을 좀 했든, 도둑질을 좀 했든, 오늘 내가 좀 잘못했다 싶으면

강가강에 가서 목욕하면 다 죄가 없어져 버리니까.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살생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싸움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술먹고 취하지 마라,

뭐 이렇게 남을 해치지 마라, 남에게 손해 끼치지 마라, 남을 괴롭히지 마라, 말로도 그렇게 하지 마라, 이렇게 가르쳤잖아요.

또 명상해라, 이렇게.

 

그러니까 이건 좀 어렵고, 그건 너무 쉽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의문이 든 거요.

그런데 그들의 말이 틀렸다고 하기에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너무나 옛날부터 해 왔고,

그들의 말이 맞다고 하기에는 너무 이게 쉬운 거요.

그래서 의문이 든거요.

이게 사실일까? 아닐까?

 

그래서 부처님께 가서 여쭌 거요.

부처님, 저 브라만들이 말하기를

아무리 사람이 죄를 많이 지어도 강가강에 가서 성스러운 목욕을 하면

다 죄가 없어지고 죽어서 하늘나라에 간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그런데 이게 대답하기가 어렵죠.

아니다이렇게 말하면 남의 종교를 비판하는 것처럼 되잖아요.

그렇다라고 말하면 사실이 아닌 거를 인정하는 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질문은 예스, 인데, ‘예스, 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거요.

 

부처님께서 이 그 젊은이가 가미니라는 사람인데

가미니야, 그들의 말이 맞다면, 즉 브라만들이 하는 말이 맞다면

저 강가강에 사는 물고기가 가장 먼저 하늘나라에 가겠구나

이렇게 했어요.

 

그들의 말이 맞다면 하니까 그들의 말을 수용했잖아요, 반대 안하고.

그런데 이런 모순이 있다.

그들이 말이 맞다고 우리가 인정을 해보자 이거야.

그러면 나는 한번 목욕하는 거고, 저 물고기는 아예 그물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니까

그 물고기들이 가장 먼저 하늘나라에 가지 않겠느냐?

이렇게 질문했는데

이 젊은이가 말귀를 알아들었어요.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예스 노라고 질문했는데

부처님께서 그렇다면 이렇게 되지 않느냐 했을 때, 머리가 반짝하면서

알았습니다, 부처님, 알았습니다, 부처님, 잘 알았습니다 부처님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그런데 이 강의 듣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 스님, 그럼 부처님은 태어난다고 대답했습니까? 안 태어난다고 대답했습니까?“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깨달음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오.

 

만약에 아니다, 기다, 이렇게 대답했으면

이 사람이 다른 데 가서 또 물어보면 대답이 다를 수 있으면 헷갈릴 수 있겠죠.

이분한테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고 저분한테 물으니 저렇게 대답하더라.

누구 말이 맞노? 이렇게 되겠죠.

 

그런데 깨달음이라는 말은 의심이 의혹이 싹 사라져버린거요.

, 그들의 말이 맞다면 강가강에 사는 물고기가 가장 먼저 하늘나라에 가겠구나.“

그 얘기를 탁 듣는 순간 의혹이 싹 사라져버린 거요.

그러니까 알았습니다, 부처님이렇게 된 거요.

 

여러분들이 지금 깨달음을 굉장히 환상적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 속에 있는 무지, 의혹, 이게 사라지는 거요.

마치 방 안에 깜깜한 상태에서 막 물건이 어디 있는지를 못찾아 더듬고 있는데

더듬어서 찾으려면 굉장히 힘이 많이 들죠.

찾는다 하더라도 많은 노력이 들어야 하고, 또 노력을 해도 못찾을 수 있어요.

 

그런데 불을 탁 켜면
저기 있네이렇게 탁 보이잖아요.

간단하게 문제를 푸는 거요.

누구 도움도 필요 없고, 물어볼 것도 없고, 눈에 탁 보이는 거요.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

지금 여러분들이 공부를 하는 거요.

 

--

그럼 현실에서 제가 다른 비유를 하나 들어볼게요.

 

60대 중반 되는 아주머니가 질문을 했어.

스님, 남편 때문에 못 살겠어요.“

왜요?“

남편이 너무 인색합니다.“

어떻게 인색한데?“

 

돈을 자기가 다 가지고 딱 생활비만 준다는 거요.

그것 말고는 그러면 남편이 뭐가 문제에요?“

아이고 그거 빼고는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그러면 못살겠으면 이혼하면 되잖아요.“

안그래도 이혼하려 했는데, 스님 말씀을 유튜브로 들으니까

이혼은 하면 안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지금 좀 망설이고 있는데, 이혼은 안해야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랬더니 너무 힘들어요.“

 

제가 물어봤어요.

얼마 줍니까?“ 이렇게 물어봤어.

조금 줘요

아이 그러지 말고, 생활비를 얼마줘요? 한 달에

아이고 창피해서 말못해요, 조금밖에 안 줘요.“

아니, 자꾸 그러지 말고, 얼마 주는지 한번 말해봐요.“

한 달에 300만원 밖에 안 줘요.“

 

그러니까 그 강연장에 모든 사람들이 막 웃었어요.

그러니까 이 질문자는 아직 문제가 안 풀렸지만, 나머지 사람은 이미 문제가 다 풀린거요.

그러면 300만원을 매달 생활비로 주는데, 그게 조금밖에 안 준다는 거는

뭘 말합니까?

남편이 부자라는 거요? 가난한 사람이라는 거요?

부자라는 얘기지.

, 남편이 돈은 많은데, 나한테 조금 준다, 이거죠.

다른 사람은 웃어도 이 분은 잘 몰라요.

자기 문제가 해결이 안 됐어.

 

그래서 내다 다시 물었어요.

남편이 아주 가난해서 돈이 없어서 아주 어려운 상태에서 당신한테 그 어려운 가운데도 300만원 준다면 인색한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에요?“

아이고 없는데 300만원 주면 좋은 사람이죠.“

그러면 남편이 돈이 많은데 조금 주면 어떻소?“

그럼 나쁜 사람이죠.“

 

그러면 당신 남편이 좋은 사람이 되려면

남편 사업이 망해서, 재산이 다 없어지면 되겠네요.“

?“ 이래요.

 

그러니까 나한테 돈을 조금 주더라도

남편이 재산이 많고 부자인 게 당신한테 나아요?

나한테 300만원 주는데 아주 빌려서 어디 가서 구걸해서 이렇게 나한테 300만원 주는게 나아요?

나는 300만원 계속 받고 있는데

그래도 남편이 가난한게 나아요? 부자인게 나아요?

그야 부자인 게 낫죠.

 

그런데 왜 스님이 그걸 물어요?

다른 사람 다 웃는 거요.

그런데 이분은 또 이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거요.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어요.

 

남편하고 질문자하고 나이 차이가 얼마에요?“

”7살 차이 나요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여자하고 남자하고 평균수명 차이가 얼마 정도 나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7살요.“

 

그러면 그냥 일반적으로 볼 때 남편이 자기보다 한 14년은 먼저 죽는다는 얘기 아니오.

.

그러면 남편이 인색하다는 것은 나만 안 줘요? 딴 사람한테도 안 줘요?

그럼 남편 죽으면 이거 다 내꺼 아니오.

 

그러니까 이렇게 기도해 봐요.

당신 그거 아껴봐야 결국 다 내 꺼야.“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이분도 웃어요.

 

이런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이분이 그 ”300만원 밖에 안준다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른 분 보면 바람을 피웠다, 술을 마신다, 행패를 피운다,

많은게 있잖아요.

그런데 이분은 그런 건 아무 것도 없고 돈을 아껴 쓰는 것밖에 없어요.

돈을 아껴쓰는 건 사실 좋은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대화를 하는 과정에 이분의 얼굴이 환희 밝아졌어요.

스님 알겠습니다.

 

그러면 어떻다, 어떤 결론이 난 게 없어요.

남편이 변한 것도 아니고.

그러나 이때,

내가 원하는 것이 안 이루어졌다. 돈을 많이 안 준다하는 이 생각 하나에 사로잡히니까

남편이 나쁜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런데 이런 대화를 하면서 괜찮은 사람이네, 이렇게 이해가 되죠.

 

이걸 뭐라고 그러냐?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볼 때, 한 면만 보는 거요.

만약에 어떤 네모진 통이 있다 그러면 앞면만 보면 직사각형으로 보이겠죠.

윗면만 보면 어때요? 정사각형으로 보이겠죠.

 

그런데 우리는 그 한면만 보고 이거다, 저거다 라고 얘기하는 거요.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 보기는 사실대로 봤는데 제한되게 봤다.

그리고 그걸 가지고 물체의 모양 전체라고 내가 단정 짓는 거요.

이걸 편견 또는 착각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문제를 삼는데

저와의 대화는

앞만 보고 있는 분에게

뒷면은 어때요?“하고 뒤를 보게 하고

윗면만 보고 얘기하는 사람에게

아랫면은 어때요?“하고 아랫면을 보게 하고

왼쪽 측면만 보고 있는 사람에게

오른쪽 측면은 어때요?”하고 오른쪽 측면을 보게 하면

 

즉 위도 보고 아래도 보고, 앞도 보고 뒤도 보고, 왼쪽도 보고 오른쪽도 본다는 것은

이 물체의 전모, 전체를 본다. 이 얘기에요.

전체를 본다이걸 뭐라고 그러냐?

통찰력이라고 그래요. 통찰력.

 

이 통찰력을 또 다른 말로 뭐라 고르냐?

지혜라고 그래요, 지혜.

한 면만 보고 이렇다고 단정한 것을 편견이라고 그러고

전체를 보고

, 이렇구나하는 것을 통찰력, 또는 지혜라고 그래요.

 

그러면 이 한 면만 보고 단정을 해서 편견을 가진 것은

자기는 사실인 것 같은데 실제는 사실이 아니에요.

이것이 오류요, 오류.

 

그런데 전체를 다 보면, 통창력이 생기면 지혜가 생기면

이 편견이 사라지게 되죠.

그러면 편견을 가질 때는 괴롭다가

통찰력을 가지게 되면 괴로움이 사라져요.

 

이렇게 우리가 어떤 무지를

그 무지라는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만 무지가 아니에요.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무지에요.

모르는 것도 무지,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무지라는 거다.

 

이런 무지의 상태에서 깨어나게 되면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괴로움이 없어져 버린다.

이런 원리라는 거요.

 

그러니까 누구를 꼭 고칠 필요가 없는 거요.

그 사람이 잘못해서 내가 괴로움이 생긴게 아니라는 거요.

그 사람이 잘못한 것처럼 내가 생각이 든 거요.

 

우리가 일상에 살아가보면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는 거요.

 

그래서 제가 이런 실례를 하나하나 드는 거는

깨달음이 뭐냐 하는 거를 말씀드리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깨달음을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오해가 발생한다.

우리 일상에서의 심리적인 불안, 또는 미움,

이런 것들이 다 이런 무지로부터 일어나는 거요.

 

그래서 부처님은

이런 무지를 깨우치게 되면

이런 심리적인 부정적 작용으로부터 벗어나서 편안해진다.

 

그러면 어떤 심리변화로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아니에요.

수행자는

이런 일이 일어나든 저런 일이 일이나든

그건 세상에 있는 일이고

심리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그 문제는 내가 최선을 다해서 하는 만큼 해서 해결을 하는 거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남의 도움이 필요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도움을 요청하고

또 협력을 하고

그렇게 해서 해결 될 수도 있고, 또 안될 수도 있고,

안되면 또 포기해야 하겠죠.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아이가 공부 안한다.

이게 내가 괴로울 이유가 없는 거요.

아이가 공부를 안하면 공부를 안할 만한 어떤 이유가 있을 거요.

그러니까 어떤 정신적 장애가 있어서 능력이 부족해서 만약에 성적이 떨어진다면

그걸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닦달한다고 해결이 안 되잖아요.

 

그런 아이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까 그 능력에 맞게끔 내가 인정해주고, 격려해줘야 한다는 거요.

 

그런데 이 아이가 학교 교육에 대해서 자기는 찬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자세히 들어보고

너의 문제제기가 일리가 있다.

그러면 네가 원하는대로 한번 해보자, 이렇게 갈 수도 있고

 

이 상태를 잘 알아서 거기에 대해서 대응을 해야 되는 거요.

아이가 혹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아이일 때 잘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것은 대화를 통해서

아이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작은 현안에 너무 아이가 치우쳐서 생긴 문제라면

조금 길게 볼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든지

아니면 내가 좀 기다려주든지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