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2)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1782. 제가 좀 어리바리하고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서 걱정인데요

Buddhastudy 2022. 2. 16. 19:06

 

 

 

제가 좀 사람이 어리버리하고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서 걱정인데요

자동차 운전도 아직 초보 운전이고

나이가 40이 다 되도록 연애도 못 해보고 여태껏 혼자입니다//

 

 

어떤 인생을 살거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이런 상태로 대통령이 되겠다, 시장이 되겠다, 그렇다면 조금 어렵다.

내가 이런 상태로 큰 부자가 되겠다, 그렇다면 어렵다.

내가 이런 상태로 탤런트하고 결혼하겠다, 그렇다면 좀 어렵다.

내가 이런 상태로 아주 정밀한 기계를 만들겠다, 그러면 좀 어렵다.

이렇게는 말할 수 있지만

 

이런 나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건 오케이입니다, 누구든지 다.

 

그러니까 인생의 목표가

권력을 잡느냐? 돈을 많이 버느냐? 미녀하고 사느냐?

뭐 이런 것이 목표일 때는 그것은

그게 부족하다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만

그러나 누구나 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행복하게 산다, 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산다 할 때는

다 어떤 조건을 가지든

남자든 여자든 신체장가 있든 없든

한국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결혼을 했든 안했든

누구나 다 가능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돈 버는데 있는 것도 아니고

절에 기도하면 돈 번다,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그건 제가 볼 때는 잘못된 거예요.

 

부처님은 그렇게 가르친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 길을 열어주신 분이에요.

 

여러분들이 교회 다니든, 절에 다니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이거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교회 다녀도 이 법을 들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절에 다녀도 이 법을 듣지 않으면 알지 못하면 괴룁게 산다.

 

이런 원리이기 때문에

지금 질문하신 분도 인생의 목표가 뭐냐?

행복하게 사는 거다, 괴롭지 않게 사는 거다 하면

가능하다.

 

그러면 자기가 지금 뭣 때문에 괴롭냐?

어리바리한 거하곤 아무 관계 없어요.

사람이 팔이 하나 없을 수도 있고, 사고가 나서

또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일 수 있고,

또 머리가 명석할 수 있고, 약간 어리바리할 수도 있고.

그건 우리가 태어나보니 다람쥐일 수 있고

태어나보니 토끼일 수도 있고

태어나보니 사람일 수도 있고

태어나보니 원숭이일 수도 있고 이런 것처럼

그러나 이 세상에 사랑있는 생명은 다 괴롭지 않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런 관점이거든요.

 

본인이 무엇 때문에 괴롭냐?

연애를 못 해본다.

연애라는 게 나 혼자 하는 거라면 해보겠는데

남하고 같이 하는 거니까 상대가 싫다는데 그걸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상대가 좋다 하는 상태를 취해야 하는 거요.

그러니까 한국 사람 중에는 여자가

자기같은 사람은 싫다그러면 그거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럼 내가 선택해서 스님이 되었다.

그러면 내가 이 길을 가겠다 그러면 결혼을 포기해야 한다 이 말이오.

 

그런데 내가 나는 결혼도 못해봤다이렇게 말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선택을 했거나 자기 주어진 조건에 맞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자기가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연애나 결혼이라는 건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거요. 상대가.

그런데 인물이 괜찮아야 한다.

나이가 나보다 같거나 어려야 한다.

돈이 좀 있어어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추면 그런 조건하고 서로 안 맞는 거요.

 

그런데 나이가 나보다 한 20살 많아도 괜찮다.

결혼한 사람도 괜찮다.

아기가 있는 사람도 괜찮다.

마음만 맞으면 된다.

이렇게 조건을 탁 내려놓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두 번째 그게 꼭 한국 사람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요즘은 나이가 60이 된 사람이 젊은 여자하고 결혼하려고 외국 동남아 여성을 찾는다,

이런 거는 조금 뭐랄까? 욕망이 지나치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싶은데 한국 사람 중에는 결혼할 사람이 마땅히 없다.

그래서 내가 동남아에 또는 중국에 가서 소개를 받아서 적절한 나이에 거기도 뭐 혼자 사는 미망인도 있을 수 있고

노쳐녀도 있을 수 있고, 여러 사람이 있잖아.

그런 사람하고 서로 뜻이 맞아서 결혼을 하자 하면 할 수도 있고

 

한국 사람 중에도 나이가 좀 많아도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리버리한 것을 전제하고도 자기하고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괜찮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거요.

 

그런데 자기는 어리버리한데

상대는 똑똑해야 한다, 상대는 젊어야 한다, 상대는 뭐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그건 될 수 없는 거다.

 

 

그리고 내가 다리가 하나 없으면 다리 하나 없는 것은 불편한 거요.

조금 불편하지만 나는 행복하게는 살 수 있어요.

내가 자동차가 없으면 불편하지만, 자가용 가진 사람하고 대중교통 이용하면

자가용 가진 사람이 더 편리하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불편하지만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내가 걸어 다니면 조금 불편하지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것처럼 팔이 하나 없거나 다리가 하나 없으면

좀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할 뿐이지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내가 약간 좀 어리바리한 그런 게 있고, 말귀를 잘못 알아듣는다

그런 것 때문에 좀 불편하다.

그래 오케이.

그러나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어떨까.

 

그런데 내가 팔이 하나 없어서 불편한 것을 계속 이미 없어진 팔을 계속 원망하고

옛날 사고 났던 거에 대해서 후회하고

이런다면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기가 지금 태어나서 자라서 보니까 약간 어디 뭐 특별히 이상은 없는데

가서 검사해봐도 고장이 났으면 고치면 되는데, 특별히 이상은 없는데

어쨌든 드러난 현상은 약간 좀 어리버리하다.

 

그래도 어리바리해도 강아지보다는 똑똑할 거 아니오.

원숭이보다는 똑똑할 거 아니오. 예를 들어서.

그러니까 강아지도 살고, 원숭이도 사는데 자기가 못 살 이유가 뭐 있어요?

 

이러한 나의 상태가 100인데 200인 것을 자꾸 요구하면

자기가 괴롭게 사는 거고

다른 사람 120이면 나는 100이다.

그러면 100의 조건에 맞게끔 내 삶의 목표를 세우고, 선택하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니까 자꾸 남하고 비교해서

저 사람처럼 되겠다 할 때 고통이 따른다.

 

관점을 그렇게 가지시고

이 세상을 어리바리한 사람이 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려요?

큰 부정을 저지르고 사람을 학살하고 이래요?

똑똑한 사람들이 주로 그래요?

 

그래. 그러니까 자기는 적어도 남을 해치고, 남을 죽이고, 남의 물건을 뺏고, 성폭행하고

이렇게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은 적어도 안하는 아주 좋은 조건에 있다.

조금 뭐, ‘우향 우하는데 좌향 좌하면 어때요?

그거 한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남 오른쪽으로 돌 때 왼쪽으로 돌았다고 그래서

우리가 전쟁이 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또 야단 맞으면 좀 야단 맞으면 되지 뭐.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좀 어리바리해서 그렇습니다

이러면 되고

 

직장을 한 직장만 계속 다녀야 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이 직장도 한번 가보고, 저 직장도 한번 가보고, 구경삼아,

여기도 좀 해보고, 저기도 좀 해보고

관점을 이렇게 자기에게 맞게 바꿔야 한다.

자꾸 남한테 기준을 해서 살지 말고

자기한테 기준을 해서 관점을 바꾸고 살면 괜찮을 거 같아요.

 

제가 볼 때는 뭐, 똑똑해서 세상을 남을 해치는 것 보다는

약간 어리바리하면서 잘 사는데 나는 더 좋다고 생각해요.

ㅎㅎ

관점을 그렇게 바꾸시고 힘내서 사세요, 알았죠?

ㅎㅎ 아이고.

 

 

그런데 우리는 약간 장애가 있거나 이러면 어렵게 생각합니다.

부모도 자식을 보고 안쓰러워하고, 본인도 열등의식을 갖고.

 

그런데 태어나보니 여자다

태어나보니 얼굴이 검다

태어나보니 팔이 하나 없다.

어떻게 하라는 거요?

그게 뭐, 그건 차별의 대상 아니오.

 

태어나보니 피부가 검다

태어나보니 피부가 희다

그걸 차별하는 것은 인간 사회이지

하나님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주어진 조건은 우리가 변경할 수 있으면

과학기술이 발달하니까 눈이 안보이면 인공눈을 넣고, 팔을 못 쓰면 인공팔을 하고

이런 게 앞으로 점점 되지 않습니까.

불편하면 바꾸면 돼요.

 

제가 시골에 살고 있는데, 우리 동네 80된 노인들이 저보다 훨씬 빨리 다닙니다.

왜 그럴까?

 

노인들 잘 걷지를 못하니까 전부 전동차 아십니까? 시골에?

그걸 딱 타고 가면 내 앞으로 쏵 지나가 버려요.

그리고 또 나는 무거운 짐을 안고 드는데

그분은 전동차 조그마한 뒤에 수레 같은 걸 하나 달아서

쪽 몰고 90이 다된 분들이

뒤에 농기도 싣고 수확한 물건도 싣고

네가 안고 다니는 거보다 훨씬 더 잘 다녀요.

 

그러면 이건 뭐냐?

나이로 불편하면 불편한 것은 열등한 게 아니에요.

불편한 건 편리하도록 연구해서 장치를 하면 된다는 거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장애를 열등하다고 보시면 안 되고

좀 불편하다.

키가 작으면 키 큰 사람에 비해서 높은데 있는 물건 내릴 때 조금 불편하다.

그런데 요즘 지게차 있는데 키 작은 게 무슨 상관이에요.

 

전에는 힘이 약하면 힘센 사람보다 일이 좀 못했는데, 요즘 포크레인 있는데 그거 뭐

힘이 약한 게 뭐가 문제가 돼요?

그러니까 이런 건 다 앞으로 개선이 가능한 것들이에요.

 

그런데 옛날에 사람 몸으로 갖고 뭐든지 해야할 때는

힘이 센 사람이 유리하고, 키가 큰 사람이 유리하고 이랬지

시대가 바뀌었다. 이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차별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신체를 자기고 열등의식을 갖는 것은 자기가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거다.

 

...

자기는 어떻게, 똘똘한데 마음에 상처를 갖고 엄마아빠 막 원망하고 이게 낫나?

조금 어리바리한 게 낫나?

...

ㅎㅎㅎ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