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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모리타니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8. 24. 19:13

 

 

 

1. 소개

모리타니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Islamic Republic of Mauritania 모리타니 이슬람공화국입니다.

서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서쪽에 위치하며

수도는 누악쇼트(Nouakchott)입니다.

 

모리타니의 국기는

1959년 프랑스에서 독립하기 이전부터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초록바탕에 노란 초승달과 오각별이 새겨진 국기를 사용하였습니다.

초록은 이슬람교와 푸른 초원의 꿈을 상징하며

아래쪽으로 누운 형상의 초승달과 오각별은

이슬람교의 문장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2017년 국민투표를 통해 일부 디자인이 수정되어

위아래로 빨간 가로 줄무늬를 추가하였습니다.

빨간색은 프랑스 지배 당시 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투사들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모리타니는 북쪽은 서사하라와 접하고

북동쪽은 알제리, 동쪽과 남쪽은 말리, 서남쪽은 세네갈과 국경을 접하며

서쪽은 대서양에 면해 있습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이기 때문에 남부지방을 제외하면

국민들은 대체로 오아시스 근처에 모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국토면적은 약 103로 세계 27위이며

10인 대한민국 면적의 약 10배 크기입니다.

 

모리타니는 2019년 기준으로 약 45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126위이며

이는 부산과 울산의 인구수를 합한 것과 비슷합니다.

 

모리타니의 1년 총 GDP

2018년 기준 약 537천달러. 이는 세계 145위로

비슷한 GDP 수준의 국가로는 몬테네그로, 토고 등이 있습니다.

 

모리타니의 종족구성은

베르베르인과 흑인의 혼혈이 약 40%, 아랍무어인이 30%, 흑인이 30% 정도 있습니다.

 

모리셔스의 공용어는 아랍어이지만 프랑스어도 함께 사용하며

전 국민이 모두 국교인 이슬람교를 믿고 있습니다.

 

 

2. 역사

모리타니는 고대 베르베르족의 마우레타니아 왕국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고대부터 이 지역은 하마와 코끼리, 코뿔소 등

야생동물들이 서식하던 초원이 넓게 펼쳐져 있던 곳이었으나

사하라사막의 확장으로 인해 불모지로 변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모리타니 북부에 베르베르인들이 낙타를 끌고 와 정착해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모리타니의 원주민은 흑인과 베르베르인이었으나

11세기에 가나 제국을 정복한 아랍계 알모라비드 왕국이 이곳에 진출하면서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의 혼혈인 무어인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1440년대 포르투갈인들이 가장 먼저 이 지역에 정착하여

금과 노예무역을 하다가 남쪽으로 근거지를 옮겨갔습니다.

그 후로 17세기에는 영국과 프랑스도 진출하였는데

근처의 세네갈을 식민지로 만든 프랑스는 1814

파리조약을 통해 모리타니 해안지역까지 장악했습니다.

 

프랑스는 1850년대부터 조금씩 서아프리카 지역을 잠식해나갔고

결국 1920년에 모리타니 전 지역이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일부로 합병되게 됩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58

모리타니는 프랑스 공동체 내의 자치 공화국이 되었고

이듬해 5월 선거에서 모크타르 울드 다다 (Mokthar Ould Dada)가 총리에 취임하였습니다.

 

1년 뒤인 1960년 모리타니는

다다 총리를 초대 대통령으로 하여 프랑스로부터 완전히 독립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1960)하였습니다.

 

1970년대 들어 모리타니는

모로코와 함께 스페인 식민지였던 서사하라를 분할통치였습니다.

하지만 서사하라 지역의 독립투쟁 세력과의 잦은 충돌과

영유권을 둘러싸고 발생한 알제리와의 갈등으로 인해

모리타니의 피해도 극심했습니다.

 

결국 1979년 모리타니는 서사하라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모두 포기했고

서사하라는 1984년 모로코로부터도 완전 독립하였습니다.

독립 이후에 제대로 된 정치체제가 정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초대 대통령이었던 울드 다다는 오랜 기간 독재를 펼쳤고

결국 1978년 쿠데타로 추방되었습니다.

 

이후로도 모리타니는 무어인과 흑인간의 날선 대립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고

최근까지도 군사쿠데타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등 정치가 불안한 편입니다.

 

 

3. 정치& 경제

모리타니는 19917월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대통령 중심제의 이슬람공화국으로

임기 6년의 대통령은 직접선거로 선출되며 재선이 가능합니다.

 

프랑스로부터 독립 이후에 잦은 군사쿠데타와 인종 간의 갈등으로

모리타니의 정치 상황은 혼란을 거듭했으나

2008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무함마드 울드 압델 아지즈 (Mohamed Ould Abdel Aziz) 대통령이

10년간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며 혼란을 진정시켰습니다.

 

2019년 현재 모리타니의 대통령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무함마드 울드가즈와니 (Mohamed Ould Ghazouani)입니다.

 

2017년 전까지 양원제로 운영되던 모리타니의 의회는

20178월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상원을 폐지하고 단원제로 바뀌었습니다.

 

모리타니의 의회는 총 157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임기 5년으로 재선이 불가능합니다.

 

모리타니의 GDP 산업별 구성은

농업이 25%, 광공업이 30%, 서비스업이 약 45% 정도입니다.

 

농업은 목축업 중심으로 낙타, , 말 등을 사육합니다.

세네갈강 유역과 오아시스 부근에서는 옥수수, 땅콩 등의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으나

강수량이 매우 적은 자연환경과

메뚜기, 야생조류 등의 습격으로 인해 생산량이 크게 떨어지는 편입니다.

 

모리타니의 노동인구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지만

광업과 수산업도 발달해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모리타니 철강회사 SNIM이 수출을 시작하면서

광업이 모리타니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는데요.

철광석을 중심으로 구리, 석고, 인광석 등이 많이 산출됩니다.

특히 철광석 수출량은 아프리카 2위를 기록할 정도이며

아직 개발되진 않았으나 다이아몬드도 많이 매장되어 있어

앞으로도 모리타니의 광업 발전 가능성은 높은 편입니다.

 

한편 대서양에 서식하는 풍부한 어종을 활용한

수산업과 수산물가공업도 발전하고 있어

국내 총생산의 약 10%, 전체 수출의 30%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잡히는 어종은 문어로, 모리타니의 문어는

크고 모양이 좋아서 세계 곳곳에서 인기가 높으며,

세네갈 유역에서는 갈치의 어획량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특히 모리타니의 해안가에서는 석유와 천연가스와 같은

에너지자원들이 상당량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어

많은 글로벌 석유회사들이 개발을 목표로 탐사 중에 있습니다.

 

 

4. 자연환경& 문화

서아프리카 지역에 속한 모리타니는 대서양에 면해 있으며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로는 서사하라, 알제리, 말리, 세네갈이 있습니다.

 

한국의 10배에 달하는 국토를 가지고 있으나

비옥한 세네갈강 유역을 제외하고 국토의 60% 이상이 사막으로

사하라 사막이 점점 바다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각지에 오아시스가 존재하며

동반부의 내륙지방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고도 300m 이하의 평평한 평지입니다.

 

모리타니는 넓은 국토 때문에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지만

대체적으로 뜨겁고 건조한 사하라 기후지역이

국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150mm 미만으로 매우 건조하며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이가 극심한 편입니다.

 

그나마 대서양 부근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무역풍의 영향을 받아

1년 내내 20도에서 30도 안팎의 비교적 온화한 기후를 보이며

강수량도 사막기후 지역에 비해 풍부한 편입니다.

 

이 지역에 자리한 수도 누악쇼트는

모래밭 위에 지어진 계획도시로

전체 인구의 1/4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있는 모리타니는

세계에서 4개뿐인 이슬람공화국입니다.

때문에 매우 엄격한 종교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모리타니 국민에 대한 다른 종교의 전파 활동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적발되면 바로 국외로 추방된다고 하는데요.

 

실제 헌법에서도 모리타니 국민이 다른 종교로 개종할 경우

3일간 회개의 시간을 주고

다시 회심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리타니는 빈부격차와 함께 인종차별도 매우 심한 편입니다.

특히 모리타니는 현대까지도 노예제도가 잔존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1981, 전 세계에서 가장 늦게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2007년 공식적으로 노예금지법이 통과되었으나

여전히 국민들의 인식에서는 노예제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로 쉽게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인구의 약 20% 정도인 60만 명의 사람들이 사실상 노예 상태로 추정되며

대부분의 노예는 이슬람을 믿지 않는 흑인들이라고 합니다

 

 

5. 인물

모리타니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압델라만 시사코 (Abderrahmane Sissako)입니다.

그는 모리타니 출신의 영화감독으로

영화 <행복을 기다리며 Waiting for Happiness>를 통해

2002년 칸 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습니다.

 

1961년 모리타니의 키파(Kiffa)에서 태어난 그는

출생 직후에 가족과 함께 말리로 떠나게 됩니다.

말리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그는

1980년에 다시 어머니의 나라인 모리타니로 돌아왔다가

1983년부터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국립영화학교 VGIK에서

1989년까지 5년간 영화촬영 공부를 하게 됩니다.

 

졸업작품으로 제작한 <게임Game>

1989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정도로

일찍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시사코는

프랑스에 정착하여 본격적으로 영화산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후로도 꾸준히 연출과 시나리오를 써오던 시사코는

1998년 감독, 각본, 주연을 맡은 <지상의 삶>이라는 영화로

예술영화계에서 인정받는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울증에 걸린 청년이

아름다운 모리타니의 해안가 마을에 찾아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매료되는 스토리를 다룬

2002년 영화 <행복을 기다리며>

칸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20145번째 장편영화였던 <팀북투 Timbuktu>를 통해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랐고

최고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 <팀북투>는 다수의 국제영화제에서 큰 호평을 받았으며

BBC가 선정한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100

36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의 현실과 멋을 동시에 담은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거장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시에

2009년부터 10년간

모리타니의 대통령이었던 무함마드 울드 압델 아지즈의

문화관광 고문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