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_ 문화가 다른 서양에 어떻게 불교를 전해야 할까요? (2023.07.16.)

Buddhastudy 2023. 10. 26. 20:43

 

 

문화와 정서가 다른 서양 사람들이 영어 불교대학에서 듣는 일부 법문이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가 반영된 예시를 들고 있어서

거부반응이 있다고 합니다.

문화와 정서의 차이 때문에

불법의 근본 핵심이 잘 전달되지 못하는 사례를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까요?

특히 잔소리하는 마누라 이야기만 나오면

귀가 닫히고 법문이 귀에 안 들어온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대상에 맞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어떻게 중도를 실천해 나가야 할까요?//

 

 

한국에서 정토회가 출발했기 때문에

한국적 문화를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시작한 창가학회는 세계적으로 알려졌지만

우리가 보기에 일본 문화가 굉장히 많이 배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시작한 불교를 받아들이다 보니

불교 안에는 인도의 전통문화가 많이 배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이 인도의 전통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 문화적 토대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 중국을 거쳐서 한국에 불교가 들어오다 보니까

한국 불교 안에는 중국의 많은 문화적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특히 선불교는 중국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인도 불교와는 또 다른 중국적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문화적 요소를 완전히 배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

문화적인 문제 때문에 거부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면

그것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한국말을 영어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그 예시를 다시 각 나라에 맞게끔 바꾼다는 것은

현재 정토회의 역량으로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만 해도 엄청난 일입니다.

예시를 각 나라에 맞게끔 바꾼다고 해서 널리 통용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부족한 점은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작용이 2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나머지 80퍼센트의 장점을 보고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나머지 20퍼센트를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번에 영어 불교대학을 한 차례 진행한 사람들이 모여서

의논을 한번 해보면 좋겠어요.

누군가 미국에서는 어떤 예시문에 거부반응이 있다하고 말했을 때

그 거부반응이 자기 문화를 고집해서 생긴 문제라면

그 사람이 자기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기 고집을 내려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화적 요소가 상대를 깨우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게 해서

중간에 그만두게 할 확률이 더 높다면

오히려 문화적 요소를 바꾸는 게 낫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다 검토해서 한꺼번에 다 못 고치더라도

다음 불교대학을 진행할 때는

가장 크게 문제 제기된 부분만이라도

하나씩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행자의 관점에서는 어떤 것이든

다 문화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한국 것만 문화가 아닙니다.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자기 문화를 고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수행적으로는 어떤 문화이든 수용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수용한다면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사람이 초심자이기 때문에

거부반응으로 인해 중간에 공부를 그만둘 확률이 높다고 할 때는

초심자에 대한 고려를 어느 정도 해야 하겠죠.

 

중도

모두의 입맛에 맞춰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적절히 조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고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 불교를 배우려면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듯이

모든 것을 자기 입맛대로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지에 맞게끔 변화도 해야 합니다.

 

스님들이 입는 승복도

현지에 맞게끔 조금씩 변해 왔습니다.

가사를 걸친 것은 인도 옷이고, 장삼을 입은 것은 중국 옷이고,

그 안에 승복을 입은 것은 한국 옷입니다.

 

이렇게 인도 문화도 지키고, 중국 문화도 받아들이되,

그 안에 입는 승복은 한국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

지금 제가 입고 있는 법복입니다.

 

그것처럼 정토회의 근본정신도 어느 정도 유지해 가고,

또 현지에 맞게끔 일부는 변화시켜 나간다는 관점을 갖고

앞으로도 조금씩 개선해 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