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책낭독] 무엇을 하든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 생의 마지막 날까지, 홍신자 01

Buddhastudy 2024. 2. 6. 19:30

 

 

가끔,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받아들여야 할지 밀어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깊이 고민해야 할 시기도 물론 필요하지만

가끔은 언제쯤이면

이러한 고민들 없이 살 수 있을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고민과 갈등을 지나

자유로워진 분의 이야기입니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홍신자

출판사는 다산책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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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를 벗고 다시 굴레 속으로

 

잠을 자고 있을 때,

그 순간에 그대는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수행 시절의 스승 니사르가다타는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 대답을 들려주었다.

행복하다, 불행하다의 느낌조차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대의 자연스러운 상태다.

이따금 꿈이 피어올라

스스로 행복하다고 또는 불행하다고 느끼겠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그뿐이다.

너는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

꿈을 꾸듯이, 그렇게 살면 된다.

인생은 환영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환영이다.

이것은 허무주의적 입장을 담고 있는 말이 아니다.

어떤 것에도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을 해도 좋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역행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어떤 일에도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젊은 시절 나는

결혼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는 주의였다.

물론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20대와 30대에

나는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심적 갈등을 늘 지니고 있었다.

만약 결혼을 한다면 아주 늦게,

자식을 낳는다면 최대한 늦은 나이까지 미루고 싶었다.

젊은 시절의 나는

너무나 욕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약도 정처도 없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끝이 보인다 싶게 공부도 하고 싶었다.

사랑도, 구도도 하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이 젊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누구에게 매인 몸이 되면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에겐 늘 젊음과 자유가 함께 필요했다.

 

내게 결혼은 어떤 의미에서 타협이었다.

인도를 다녀온 뒤 생각이 달라져

나는 결혼해도 되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인도가 나에게

결혼하라는 깨달음을 준 것은 아니다.

다만 인생이란 어차피 환영이란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인간이 태어나고 죽고, 꽃이 피고 지며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거기서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그 변화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나는 결혼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어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게 되었다.

결혼을 둘러싼 젊은 시절의 생각들이

모두 무의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설사 나 자신이 없어진다 해도

상관없는 일인데

쓸데없는 아집을 키우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인연이 생기면 하고,

생기지 않으면 안하는 것이다... 라고 여기려 했지만,

본심을 말하자면

여전히 결혼의 반대쪽에 서 있었다.

 

결혼을 할 수도 있겠지만,

형식과 제도 속으로 들어가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의식의 변화가 찾아왔다.

그 변화란 무용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자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자유로운 생활을

포기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며

출산에 대한 그것도 함께 없어져 버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다른 그 무엇이 더 두렵겠는가.

어차피 인생은 환영이니

무엇을 해도 좋고 어떻게 살아도 괜찮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마치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임신이란 사건이 내게 찾아왔을 때,

늦은 나이였음에도 나는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곧잘 묻는다.

사랑이란 것을 최근에 느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랑은 어떤 것인지요?”

 

나는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아주 짧게, 기억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감정인 사랑을 왜 기억하지 않느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랑을 느끼는 한순간에 집중할 뿐

기억으로 붙잡아 두거나 손아귀에 쥐고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사랑에 관한 추억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려 할 테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이 너무나도 값지기 때문에

오롯이 받아들이는 데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혹시나 소유욕으로 인해 순간의 감동을 놓치거나,

집착하게 될까봐 두렵기도 했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나에게도 사랑에 매달리느라

숨을 고르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아팠던 때가 있었다.

그 시기는 꽤나 길었고,

돌이켜 보면 그때의 사랑은

집착이었다고 표현해야 마땅할 것 같다.

 

나에게 사랑이란 매 순간

다른 이름과 형태로 다가온다.

호흡이 늘 똑같지 않은 것처럼,

사랑의 표현과 느낌 또한 순간순간마다 다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사랑 역시, 상황과 시간에 따라 계속해서 변한다.

변화는 태어나서 근육이 자라고 주름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연적인 일이다.

 

젊었을 때는 그 사실을 안타깝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피하고 발버둥을 친다고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그저 받아들이는 시간만 늦추는 것뿐이지 않을까.

 

사랑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란 여전히 어렵지만,

삶의 한 일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긴 시간을 살아오며 나는 꾸준히 사랑했다.

 

기억은 선명함을 잃어가더라도,

몸과 마음에 남은 사랑의 에너지가

아직까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늘 생각한다.

 

만약 진정한사랑을 언제 처음 알게 되었느냐고

질문을 바꾼다면

단 한 순간을 꼽을 수 있다.

바로 희를 낳았을 때가.

 

마흔이 넘어 딸을 낳았을 때,

바로 그 순간부터 가슴에서 분출하는 뜨거운 기운이 사랑임을 알았다.

딸은 인류를 향한, 예술을 향한, 자연을 향한

빛나는 기쁨을 깨닫게 해준 가장 소중한 존재다.

그래서 늘 고마움을 지니고 살아간다.

 

좀처럼 관여하거나 훈수를 두지 않는 나에게

딸은 엄마, 나 친딸 맞아?”라며

어린아이가 할 법한 말을 하기도 한다.

 

나는 그저 알아서 답을 찾으라고 말해줄 뿐이다.

시간을 가지고 결정해라정도 외에 내가 더 보탤 말은 없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항상 직접 겪어보고 부딪쳐 봐야 아는 것이니.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잘되는 일이 있으면 못 되는 일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일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되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관념은, 끊으려면 끊어지는 쇠사슬이다.

굳게 믿고 있는 관념으로부터 벗어나면

무슨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아도

막상 닥쳐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스스로 쇠사슬을 끊을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사실만 인지한다면

생활 속의 순간순간이

자유를 향한 스승이 되어줄 것이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하나.

사랑을 공부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