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시민단체 안에 노조를 만드는 후배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2024.01.10.)

Buddhastudy 2024. 2. 7. 19:59

 

 

저는 시민단체에서 22년간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최근에 후배 활동가들이 단체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후배 활동가들이 사회운동보다는 근로조건에 관심을 더 두고 있다는 것이

태도나 행동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지난해에는 노조를 결성하고 선배 활동가의 퇴진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단체의 설립 목적을 위해서 매진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일자리나 편안한 근로조건에

더 많이 치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방법을 모색해서 사회 변화에 힘을 모으지 않고

세를 모아서 오히려 실력 행사를 하는 것과 같은

정치적 행위에 관심을 두는

지금의 상황이 우려스럽습니다.

현재 의사결정 체계조차 무너져 가는 상황이어서 자괴감이 듭니다.

제가 어떤 마음으로 후배들을 바라봐야

지금의 난국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요?//

 

 

현재 50대 내지 60대가 된 선배들은

환경운동이나 민주화운동, 인권운동을

월급 받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사회의 정의 실현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헌신한다는 관점이

이미 자리잡혀 있어요.

그런데 현실은 좀 달라졌습니다.

 

요즘 시민단체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시민단체를 하나의 기업으로 보고

취직자리를 찾아서 들어왔어요.

그렇다고 시민 운동과 무관한 사람이

돈을 벌 목적으로만 들어왔다는 말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직할 때

자신의 전공을 살리거나 관심 있는 분야에 지원하듯이

그 운동에 관심이 있어서 직업으로 연결해서 들어온 거예요.

 

예를 들어

보건의료에 관심이 있으면

관련 학과를 전공해서 취직할 수가 있습니다.

자연환경에 관심이 있으면

그와 관련된 학과를 전공해서

국립공원 같은 곳에 취직할 수도 있겠죠.

 

이렇듯 시민운동단체에도 관심 있는 분야를 직업으로 삼아서

취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발생한 배경에는,

시민운동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는 정부가 들어서느냐

소극적인 정부가 들어서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시민운동을 지원하는 정부가 들어서면,

정부 차원에서 단체에 보조금을 주는 등의 지원 정책을 씁니다.

단체는 자금에 여유가 생기고 활동 규모가 커지면서

공채로 사람을 모집하게 됩니다.

 

공채로 단체에 들어온 사람들은

전공이나 경력을 살려서

단체를 취직자리로 보고 들어온 겁니다.

 

이렇게 취직한 사람들은 단체에 자금적 여유가 있거나

그 활동을 사회에서 인정해 주면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민운동에 소극적인 정부가 들어서면

단체의 상황이 달라지게 됩니다.

정부의 소극적인 지원 정책에 대항하는 운동을 하거나,

시민들을 상대로 모금을 하는 것이 기존의 선배들이 해온 방식입니다.

 

그런데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이 취하는 방식은 좀 다릅니다.

취직해서 들어온 사람들은

월급이 작아지면 단체의 운영 체계를 바꿔 보려고 시도하거나,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는 선택을 합니다.

이런 모습이 선배들에게는

힘을 모아서 운동해야 할 때에

후배들이 다른 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이런 현상은 최근에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낮아진

주원인 중에 하나입니다.

진보적인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서 시민단체를 적극 후원한 결과

단체의 자생력을 떨어뜨리는 일이 벌어졌고

뒤이어 보수적인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서

시민단체의 활동을 제약해서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

 

이런 모순은 통일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도 생겼습니다.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섰을 때

남북문제에 대해 민간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해 주어야 하는데

정부가 보여주기식으로 직접 성과를 내려고 하다 보니

민간 단체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을 뽑아서

정부 부처에 채용을 해갔습니다.

 

그 결과 오히려 민간 단체가 활동할 자리가

축소되어 버리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다음에 들어선 보수적인 정권은

남북 관계 회복에 소극적이니까

민간 단체는 활동할 영역이 더욱 좁아지고

보조금도 줄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꼭 젊은 후배들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젊은 후배들은 기성세대인 선배들이 꼰대 같다고 봐서도 안 됩니다.

첫째, 정부의 정책에 가장 큰 문제가 있습니다.

둘째, 규모가 커지면 다 잘되는 것으로 오인한 시민단체의 활동 방향이

문제를 자초한 측면이 있습니다.

 

세태가 변했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서로 토론을 해나가야 합니다.

활동의 순수성을 좀 접어두고 변화된 세태를 반영하든지,

순수성을 지켜나가는 결정을 내리고 단체를 조금 축소해서 운영해 나가든지

서로 토론을 통해서 풀어나가야 합니다.

 

JTS도 이와 비슷한 딜레마를 갖고 있지만

원칙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만 사업을 하니까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어느 단체든 다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균형을 잡고 나아가느냐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너무 고립되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버려서도 안 됩니다.

세태의 변화에 휩쓸려서

이것저것 다 받아들인다면

단체를 유지하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자연재해로 인해 긴급구호 상황이 벌어지면

구호 단체들은 모금을 많이 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입니다.

언론을 대동해서 제일 먼저 현장에 사람을 파견하고

자신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가장 먼저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현장에서 철수해 버립니다.

재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그리 길게 가지 않아서

더 이상 모금이 잘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그러나 JTS는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먼저 가려고 경쟁하지 않습니다.

재해가 발생한 직후에는 숙박비와 교통비 등이 다 비쌉니다.

그러나 한두 달쯤 지나면 세상의 관심이 식어버립니다.

그때 현장에 가보면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채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JTS는 현장에 사람을 파견해서

현지 주민들이 꼭 필요한 도움을 찾아서 구호 활동을 전개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사람들이 잘 안 가는 오지나 위험한 곳까지 찾아가서

구호 활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JTS는 사업의 성과를

굳이 세상에 알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언론이 동행하겠다고 해도 경비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세태의 변화에 이리저리 휩쓸린다면

초기 순수성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원들이 가지는 문제의식과 아이디어들을 흘려버리지 않고

계속 토론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떤 단체든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원인을 살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아 함께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토회 역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오해입니다.

여느 단체와 마찬가지로 정토회 내에서도

끊임없이 문제 제기가 있습니다.

 

이번 연말에도 열흘 동안 안거를 하며

명상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정일사를 했습니다.

그런 시간에는 스님도 대중으로부터

잘잘못에 대해 지적받는 시간을 갖습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수없이 토론하지만

6개월이 못 가서 또 불평불만이 생깁니다.

그래서 6개월이 지나면

또 명상하고 나누기를 하면서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그사이에 활동을 그만두는 사람도 나옵니다.

교육을 잘 받아도 해외에 파견되면

엉뚱한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런 게 인생사예요.

 

저는 질문자가 소속한 단체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봅니다.

단지 그런 문제가 발생할 만한 인연이 도래해서 생긴 것입니다.

 

그러니 분석을 한번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분석을 한 후에는

첫째, 무엇을 할 것인지 목표를 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둘째, 현실을 고려해서 어떻게 문제를 처리할 것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고 담담하게 문제를 풀어 나가면 좋겠어요.

질문자가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안 된다면

사표를 내고 나오는 게 맞다고 봅니다.

 

세상 사람이 다 이런 갈등 속에서 매일 살아갑니다.

둘이 좋아서 결혼한 부부도 갈등이 생겨 헤어지지 않습니까?

자기가 낳아서 키운 자식과도 갈등이 생겨

집을 나가고 의절을 한다고 난리를 피우는 세상입니다.

또 자기를 낳아서 키워준 부모하고도 마음이 맞지 않아

연락도 하지 않고 사는 세상이잖아요.

 

이런 세상에 시민 운동을 같이 하려고 모였다고 해서

모두가 마음이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인간을 단순하게 보는 게 아닐까요?

 

어떤 공통의 목표를 내걸고 모여도

사람이 다양하니까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그런 문제들을 풀 수 있는 데까지 풀고,

못 풀면 나갈 사람은 나가고, 해산해야 하면 해산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게 인생사이지

달리 길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조금 더 목표를 분명히 하고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목표와 현실 사이의 갭을

어떤 방식으로 줄일 것인가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삼십육계 줄행랑은 언제든지 쓸 수 있는 거잖아요?

내 뜻대로 안 된다고

내가 나가 버린다거나, 상대를 내보내지 말고,

그 전에 서른다섯 개의 계책을 모두 써봐야 해요.

그게 안 될 때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말해야 이후에도 후회가 없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