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아이의 단점만 보여서 자꾸 다그치게 됩니다. (2024.01.12.)

Buddhastudy 2024. 2. 7. 20:06

 

 

저는 아들이 둘 있습니다.

첫째는 14살이고 둘째는 9살입니다.

첫째 아이와 대화하면 굉장히 답답하고 자꾸 잔소리가 나옵니다.

아이가 저에게 고민을 꺼내 놓으면

저는 그걸 들으면서 화가 많이 나고

그럴 땐 이렇게 했었어야지!’ 하면서 아이를 다그칩니다.

그러면 후회가 되고 힘이 듭니다.

첫째 아이에게서는 자꾸 단점만 보이고,

둘째 아이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둘째 아이는 알아서 잘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첫째 아이에게서는 단점만 보이고, 장점을 찾아보려고 하면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합니다.

첫째 아이에게 제 모습이 너무 많이 보이는데

자존감도 너무 낮고 우울감도 많은 것 같습니다.

한번 우울감에 빠지면 땅끝까지 파고 들어갈 것 같고,

옆에서 위로해 주어도 잘 안 먹힙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냥 좋은 말만 하고 잔소리는 안 하려고 합니다.

첫째 아이가 어떻게 하면 저처럼 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의 아이가 질문자를 닮은 것은 정상입니다.

질문자가 내 아이는 나처럼 되지 않길 바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개가 염소를 낳아주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질문자도 자신에게 만족을 별로 못하는 성격인 것 같네요.

어릴 때 어머니나 가족들에게 칭찬을 못 받고 구박을 받으며 사셨어요?

 

그래서 질문자가 자존감이 낮은 거예요.

질문자도 자기와 똑같은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걸 통해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어요.

 

첫째, ‘어릴 때 엄마가 내게 잔소리를 했지만

그게 나쁜 마음으로 한 건 아니었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질문자의 어머니도 질문자와 같은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질문자를 대했던 거예요.

질문자를 나쁘게 키우려고 한 게 아닙니다.

 

이렇게 어머니를 이해하면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어릴 때 그렇게 성장했기 때문에

질문자가 지금 아이를 해치려는 생각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아이가 나를 닮아가도록

질문자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죠.

 

아이가 나를 닮지 않도록 하겠다하는 질문자의 생각은

오히려 아이가 질문자를 더욱 많이 닮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제가 사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면서 저는 제 아이를 절대 우리 엄마처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떤 기회로 법륜스님 즉문즉설을 듣게 되었고

! 엄마도 엄청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나를 잘 키워주셔서 너무 감사하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문자가 즉문즉설을 들었을 때와 안 들었을 때의 차이는

나도 엄마처럼 내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그것밖에 없어요. ‘내가 엄마처럼 아이를 키우고 있구나!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은 했지만

똑같은 결과가 생기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즉문즉설을 듣기 전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을 수 있어요.

예전에는 몰라서 그랬지만

이제는 알면서도 안 되니까요.

 

그러면 아이는 엄마에게 또 상처를 받게 되고

그 아이가 성인이 되면 또

내 아이는 우리 엄마처럼 키우지 않겠다하면서

엄마와 똑같이 행동합니다.

이걸 까르마라고 해요.

 

까르마는 자식들에게 대물림이 되어 내려갑니다.

마치 육체가 유전인자를 통해 대물림이 되듯이

정신도 한번 형성된 까르마가 그대로 대물림이 됩니다.

 

육체의 경우에는

유전자가 결합하는 순간에 변수가 있죠.

그래서 형제자매가 다르게 생기게 됩니다.

 

유전자가 결합할 때

수십억 개가 조합하기 때문에 변수가 생깁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모습은 형제끼리 조금씩 다르지만

결정된 유전자를 평생 갖고 살아가죠.

 

하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계속 수정되고 보완하며 나아갑니다.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도 있고, 나쁜 방향으로 변할 수도 있지만

그 바탕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잘 바뀌지 않습니다.

 

정신의 바탕은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형성이 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하는 말이 있는 겁니다.

 

그 바탕 심성을 천성이라고 부르죠.

이것은 타고난 것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던 겁니다.

옛날에는 심성이 형성되는 원인을 몰랐고

또 잘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이것은 사주팔자로 정해진다

이것은 전생에서 지은 인연의 결과이다

이것은 하늘에서 받은 것이다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또 주변에서 사람이 가끔 바뀌면

천성이 변하는 걸 보니 죽을 때가 다 됐구나!’라는 말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천성이 바뀌려면 죽을 때가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잘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거죠.

 

지만 천성이라고 불리는 이것도 형성된 것입니다.

변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어렵다는 거죠.

 

성인이 되어서 형성된 것도 변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여러분들이 각오하고 결심하면 좀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 형성된 것은

각오와 결심으로는 잘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의 수행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변했다가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심성의 바탕이 형성될 때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엄마입니다.

저는 아이를 육체적으로 낳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육체를 낳은 부모의 유전인자가

그 아이의 육체적 모양을 결정하지만,

정신적인 부분인 카르마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에 의해 형성됩니다.

 

그래서 아이가 세 살까지는

심리적으로 안정된 사람이 키우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결혼 초기에 부부 갈등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결혼 초기에 가진 첫 아이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부부가 서로 갈등하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 키웠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통계자료를 가지고 연구해 보면 이것도 증명이 될 거예요.

 

반대로 결혼 초기에 사이가 좋아서 낳은 첫 아이는

정신적으로 건강한데,

나중에 한쪽이 외도를 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상태에서 낳은 둘째 아이는

오히려 첫째 아이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겠죠.

아이 둘을 낳아 키웠는데

결혼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갈등을 했다면

두 아이 모두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어요.

질문자가 부족한 점은 많지만 지금 잘 살고 있어요, 못살고 있어요?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죠?

 

그러니 질문자의 아이도 좀 우울증이나 열등감이 있더라도

질문자가 살아온 것처럼 잘 살 겁니다.

아이도 고생하며 살다가

나중에 아이 낳고 스님 법문을 만나서 좋아질 거예요.

 

우선 질문자가 먼저 바뀌어야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스님 법문을 들려주면서

아이가 바뀌길 바라면 안 돼요.

그러면 아이는

'엄마는 안 바꾸면서 나만 바꾸라고 하네' 하면서 저항감을 가집니다.

이렇게 되면 아이에게 더 스트레스를 주게 됩니다.

 

첫째, 아이는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생긴 대로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 짜증을 많이 내면 안 좋습니다.

그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질이 저절로 일어나는데 어쩔 수가 없잖아요.

질문자도 살아야 되니까

매번 참을 수는 없고 성질을 낼 때도 있겠죠.

성질을 내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게 되지만

'나도 잘 살 듯이 너도 잘 살 거야'

이렇게 긍정적인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덜 주고 싶으면

아이의 행동에 시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에 안 들더라도

요즘 학교 안 가는 애들도 많은데 학교에 가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성적을 중간만 받아도 짜증 내지 말고 학교에 가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괜찮아, 공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에게 어떤 것 때문에 잔소리를 합니까?

 

(친구와의 관계 문제도 있고,

자기가 항상 억울하다고 얘기를 많이 해요.)

 

아이가 억울하니까 억울하다고 말하겠죠.

억울하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엄마한테 억울하다고 그러겠어요?

억울하다고 말하면

'그래, 억울한 마음이 들었구나. 엄마가 뭘 도와줄까?'

이렇게 얘기해 주면 됩니다.

 

아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질문자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14살이면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어른이 아니잖아요.

 

질문자처럼 상황에 맞게 행동하면

어른이라 그러지 무엇 때문에 어린아이라고 부르겠어요.

질문자도 어릴 때 다 알지 못했잖아요.

경험하고 배워가면서 지금과 같은 어른이 된 겁니다.

한 번 가르쳐 주고 다 알면 아이라고 하겠어요?

그게 안 된다고 아이에게 화를 내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열 번 가르쳐 주고 안 되면

열한 번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짜증 내고 화내는 것은 좋은 게 아니에요.

대부분의 어른들은 상대가 짜증을 내도 받아들이죠.

물론 못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요.

 

어른들은 남편이나 아내의 안 좋은 성격을 봐도

'저 사람 성질이 원래 저렇지' 하고 서로 적응을 하는데,

아이는 아직 그렇지 못해요.

그래서 가능하면 잔소리나 짜증을 안 내는 게 좋습니다.

여러 번 노력을 했는데도 짜증이 계속 나면

수행과 함께 정신과의 도움을 같이 받는 게 필요해요.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가세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 잘못이다'라는 말은 입에 발린 소리예요.

'다 내 잘못이다' 그렇게 말해놓고

속으로는 전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잘못이 있다면 나를 이렇게 만든 엄마의 잘못이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질문자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다만 질문자가 자라면서 성격이 그렇게 형성되었을 뿐입니다.

 

잘못이라면

내 자녀는 나와 똑같은 성격이 되지 않길 바라는 것이 첫째 잘못입니다.

 

'나도 이런데 내 아이도 그런 거는 당연하다.

나도 잘 살아왔으니 내 아이도 잘 살 거야'

이렇게 현실을 받아들이든지,

내가 엄마한테 잔소리 듣고 자라면서 너무 힘들었다면

'나는 아이한테 힘들더라도 잔소리를 안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자신을 고쳐야 합니다.

 

두 가지 길밖에 없어요.

그냥 생긴 대로 살든지,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서 힘들고 어렵더라도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덜 주든지요.

 

그런데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받고 이를 악다물고 참으면서 아이를 키우면

성질대로 사는 것보다 아이에게 더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치료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합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마음 수행을 병행해야 해요.

아이를 어떻게 고치겠다는 생각은 일단 멈추어야 됩니다.

내가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면

아이는 저절로 따라 좋아지게 돼요.

짜증 냈다가 뒤늦게 미안하다며

맛있는 거 사주고 살살 달래는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면

나중에 아이의 성격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동안 아이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스님께서 아이도 저처럼 나중에 잘 살 것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런 생각은 여태 못했었어요.

앞으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의 아이들도

나중에 자라서 힘들면 질문자처럼 즉문즉설 강연장에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