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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광사TV_지산스님] 진정한 배려를 해야하는 이유! 콤플렉스 열등감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트라우마와 같은 무서운 이야기!!

Buddhastudy 2024. 2. 21. 19:36

 

 

오늘은 배려와 불행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이 배려와 불행이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든 불행은

열등감에서 나옵니다.

 

어떤 보살님이 남편 혼자 집에 두고 오랜만에 동창회를 다녀왔는데

다녀와서 즐거웠던 얘기로 남편에게 수다를 막 떠니까

듣기 싫다고 화를 내는 남편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분은 집에 두고

혼자만 즐기다 온 것에 대한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죠.

 

아이 같은 발상이지만

남편은 자신 이외의 다른 곳에서

즐거워하는 집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동창들끼리 다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하고, 노래방도 가고

뭐 그런 것이 굉장히 그냥 서운해하는 겁니다.

 

동창회 가서 너무 재미있었는데

괜히 너무 재미없었다는 둥, 두 번 다시 안 갈 거라는 둥

눈치를 보면서 이런 말이라도 해줘야

남편분 화가 가라앉습니다.

 

반대인 경우도 있죠.

거꾸로 남편이 회사에 직장 회식을 가서 잘 놀다가 들어오면

질투하는 집사람들도 많습니다.

 

 

제 얘기를 잠깐 드리자면

제가 스님이 되려고 입산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저보다 한 4년인가 5년 정도 먼저 입사한 선배 스님이 저를 찾으시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 그 선배도 완전 밑바닥 졸병인데도

멋진 어른 행세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참 애들 장난 같아서 정말 웃깁니다.

그래서 저를 찾는다고 해서 가봤더니

자기 옷장 열어보면 보자기에 싸인 책이 하나 있으니까

그걸 좀 가져와 보라는 겁니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가져오면 되지 왜 나를 시키나생각하면서

뭐 그래도 선배가 시켰으니깐요.

그 선배 옷장에 가서 그 보따리를 가지고 그 선배에게 갔습니다.

 

그랬더니 제 손으로 그 보따리를 열어보라는 겁니다.

그래서 열어보니까 노트가 하나 나왔는데

법화경을 한자로 사경한 노트인 겁니다.

펼쳐보라길래 펼쳐봤는데 정말 글씨가 명필인 겁니다.

한자를 무슨 컴퓨터 궁서체로 인쇄한 것처럼

서체가 너무 깔끔하게 잘 적어놓으신 겁니다.

 

그래서 속으로는 정말 감탄을 했는데

이걸 왜 나한테 보여줬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선배가 저보고 자기한테 뭐 할 말이 없냐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더니

아니 왜 자기 글씨 필체를 보고 아무 느낌이 없냐고

막 성질을 내는 겁니다.

 

그러니까 의도가 뻔한 거죠.

자기 글씨 잘 쓰는 걸 칭찬해 주길 바랐던 겁니다.

제가 대학도 나오고, 외국 유학도 갔다 오고 이러다 보니까

저한테 기가 죽었는지

자기가 제일 잘하는 걸로, 5년 정도 되는 그 짬밥으로

저를 눌러서

내가 너보다 잘났다는 것을 어필하는 겁니다.

 

그리고 또 그 스님은

자기보다 더 높은 선배 스님들이

저를 막 이렇게 이쁘다고 데리고 다니는 걸

정말 싫어했습니다.

시기 질투도 아니고

그냥 어른 스님들이 저를 이뻐하는 게 그냥 싫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 참 꺼내기도 부끄럽지만

뭐 이만큼 유치한 얘기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옷장에서 이렇게 사경노트를 가져오라고 해서

펼쳐보라고 해서

아무 말 안 했더니 막 성질을 냅니다.

 

지금은 이제 그 스님과 만날 일도 없고 상관도 없지만

나이도 많은 양반이 사는 모습이 참 애처로웠습니다.

지금 이제 어느 산골짜기에서 농사짓고 잘 살고 계시겠죠.

건강하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래도 스님이라는 사람이

마음을 그렇게 쓰면 안 되는 것이죠.

자기 칭찬 안 해준다고 후배한테 성질내는 그런 사람은

마음 자체가 좀 글러 먹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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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씀드린 이야기들 중에서

이 성질 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 열등감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난 부분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학교, 군대, 절 할 것 없이

이런 인간들은 어딜 가나 있습니다.

선후배 사이에서도 괴롭힘 당하던 후배는

본인이 선배가 되면

똑같이 후배들을 괴롭힙니다.

내가 당한 건 너도 한번 당해봐라

본전 생각이 나는 겁니다.

 

어느 집단이든 이런 선후배들은

똑같은 대물림을 해가면서 조직을 유지해 나갑니다.

이런 조직은 선배에게 반항 한 번 했다가는 난리가 나게 돼 있죠.

 

대신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아예 그런 조직에 발을 담그지 않습니다.

 

이 잔소리를 하는 시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시집왔을 때 당했던 것을

며느리에게 똑같이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쩌다가 며느리가

어머니는 왜 저한테만 왜 그러세요?” 하면서 달려들면

그러면 또 시어머니는 엄청난 히스테리를 부리죠.

내가 시집 왔을 때는 말대꾸 같은 거 상상도 못했다면서

진짜 땅을 쳐가면서 억울해합니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런 짓

이제 그만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본인의 열등감 때문에 히스테리 부리는 시어머니,

남편, 집사람, 학교 선생, 직장 상사 선배

다 그만해야 됩니다.

 

평생 그 열등감 끌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히스테리 부려봐야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

본인만 이상한 사람 되고 사람들이 다 떠나버립니다.

 

내가 너보다 잘났는데 왜 인정을 안 해주냐면서

정신질환과 같은 히스테리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대물림이나 악순환을 하지 말고

지금 내가 내 열등감을 알아차렸다면

이 악순환을 내가 먼저 끊어야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배려입니다.

 

난 그렇게 당하고, 정신적인 상처가 있지만

상대에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먼저 끊어야 그 밑으로 이어가질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말을 할 때 가장 주의해야 될 것은

상대방에게 모욕감이나 열등감을 주지 않도록 말해야 합니다.

나의 행동과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어서

열등감과 콤플렉스를 심어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법문 때도 말씀드렸듯이

부모자식 간에

이런 배려심이 있는 대화는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가까운 가족일수록 상처를 더 잘 받기 때문입니다.

 

또 하루의 절반 이상을 지내는

직장과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우리 집이 잘산다고

못 사는 집 아이를 무시하거나 열등감을 느끼게 하면 안 됩니다.

나중에 상황이 역전돼서

이 둘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열등감을 가진 사람의 대부분은

스스로 그런 상태인지 잘 모릅니다.

직접 물어봐도 본인은 그런 열등감 같은 거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열등감의 콤플렉스 덩어리입니다.

어릴 때나 젊었을 때 받았던 상처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상태를 잘 파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어떤 장면에서 화를 내고

또 히스테리를 부리고

주변 사람에게 또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주 냉철하게 내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에 나는 중학교밖에 못 나왔는데

어떤 사람에게 어느 대학교 나오셨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상대는 학력이 낮은 내 말에는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서울대, 하버드대 박사 학위를 여러 개나 갖고 있으면서

어느 대학을 나왔냐고 물어본다면

물어보는 말투도 영향을 줄 수가 있지만

질문 자체가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가 있습니다.

 

말투도 말투지만 이런 질문은 아예 피하는 것이 좋겠죠.

이런 것이 배려입니다.

 

 

그러니까 기도 명상으로 내 자신을 잘 파악해서

이런 열등감을 타인에게 풀지 말고

자기 스스로 배려심을 내어서

더 이상 열등감에 상처받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부모자식 간에는

아이에게 무의식 중에 주는 열등감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커서는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시작이 됩니다.

 

이 트라우마와 같이

아주 심각하고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나를 돌아보고

내 안에서 나를 찾는 기도가 정말 중요합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아서

누구라도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크지만, 말을 더듬는다든가

정말 이쁘고 성격도 좋지만, 도박 빚이 몇 억이 있다든가.

 

극단적인 예일 수도 있지만

이런 수많은 열등감과 콤플렉스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찾은 열등감을 멈추는 것이

기도가 되고, 수행이 됩니다.

 

그러니까 내 인생 최대의 숙제이고

이 열등감은 이번 생에서 각자의 최고의 수행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스님들의 법문은

기도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기도가 우리 인생을 더욱 행복하고 즐겁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열등감을 멈추고

서로 배려해서

행복해지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오늘도 마음 편안한 밤 되시고

하루 마무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