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책낭독] 가장 나다운 것을 행할 때 우주 법계가 완전한 도움을 준다 | 날마다 해피엔딩, 법상 01

Buddhastudy 2024. 2. 26. 19:31

 

 

우리는 부모님이나 친구, 선생님,

또는 TV에 나온 이야기나

책에 영향을 받아서

진짜 자기답게 사는 법 대신

남들처럼 사는 법을 더 먼저 배우는 것 같아요.

 

자기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오늘은 이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날마다 해피엔딩 - 법상스님

출판사는 김영사입니다

 

 

 

자기답게 사는 법

 

사람들은 저마다 즐거워하는 일이 다르다.

삶의 주 관심사가 모두 제각각이다.

저마다 자기다운 어떤 일에 끌린다.

그리고 그 일을 할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자기다운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이 세상에 나온 목적이기 때문이다.

 

자기답게 자기다운 일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진리를 내 방식대로 꽃 피울 수 있는 방법이다.

 

남들이 모두 저 길을 간다고

너도 나도 그 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돈도 벌기 쉽고

쉽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대사회의 큰 폐단은 모든 사람을 획일화시키면서

똑같은 길을 걷도록 강요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돈 버는 길, 유명세를 타는 일 등의

외길을 모두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을 가고자 한다면

모두가 똑같은 길을 걸어야만 한다.

모두가 똑같은 과목을 공부하고

입시와 취직 준비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사회에서 정해놓은 성공의 길을

얼마만큼 규격에 맞춰 잘 따라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요즘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나다운 일이란 어떤 일인가?

내가 그 일을 했을 때 가장 행복한 일이다.

가장 끌리는 일

내 능력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다.

 

모든 사람에게 나다운 일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집 짓는 일, 연구하는 일, 음악을 작곡하는 일,

그림 그리는 일, 사진 찍는 일, 글 쓰는 일,

농사 짓는 일, 나무를 조각하는 일 등

자신이 그 일을 하면 행복한 일이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자기다운 일에 집중해 있을 때는 자기를 잃는다

나라는 모든 상에서 벗어난 채

오직 깊은 집중 상태에 있다.

바로 그런 상태야말로

내가 나답게 깨어있을 수 있는 일삼매의 순간이며

내가 나로서 피어나는 진리를 마음껏 드러내는 순간이다.

 

그때 내 안에 진리가 깃든다.

삶의 목적을 온전히 달성해 내는 순간이 된다.

또한 내가 나다운 일을 행할 때

우주 법계는 최선을 다해 도움을 준다.

그것이 바로 진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듯 진리의 일은 저마다

자기 자신의 일을 온전히 행할 때 이루어진다.

그래서 자기답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곧 수행의 길이오

자기를 깨닫는 길이며

우주법계에 큰 도움을 주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억지로 떠맡은 일을 하지 말고

나다운 일을 하라.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까지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어야 할지 모르고

월급도 지위도 다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돈을 벌어야 하니까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살아가야 하니까

억지로 행하고 있는 일이라면

생기도 없고

날 성장시키고 꿈틀거리게 하는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내 안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

나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을 행하려고

마음 먹고 시작한다면

우주법계의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고 망설이며

아무래도 내게는 어려운 일이야하고 의심한다면

나약한 믿음만큼만 우주법계가 도와줄 것이지만

분명 할 수 있다는 온전한 믿음을 가진다면

완전한 그 믿음만큼 우주법계가 도움을 줄 것이다.

 

우주법계는 우리의 마음에 따라 에너지를 이동시킬 뿐이다.

자기다운 일의 위대함을 굳게 믿고 행하는 이에게는

믿는 만큼 법계의 에너지를 가져다 주지만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에게는

딱 그만큼만 법계의 힘을 보내줄 뿐이다.

 

그래서 그릇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그릇이 크다면

우주법계에서 내리는 한없는 법의 비를 무한히 담을 수 있지만

그릇이 작다면 법의 비가 아무리 많이 온들

그 크기 만큼만 담고 나머지는 흘러넘칠 뿐이다.

 

나 또한 글을 쓰다 보면 때때로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

언제까지 어떤 주제의 글을 어디로 제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것도 잘 써야 한다는 당부가 심할 때면

그것은 글 쓰는 일이 되고 만다.

 

그렇게 글 쓰는 일을 하다보면

자꾸만 인위적인 노력이 개입되는 것을 느낀다.

쓰다가 자꾸만 지우게 되고

생각이 잘 나지도 않으며

쓰는 자체가 부담스럽고 힘겨운 일이 된다.

 

그러나 어느 날

숲길을 걷거나 새벽별을 보다가

어떤 상황이나 경계를 만나 문득 깨달아지는 것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글을 쓰면

아무리 긴 글이라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쓰게 된다.

 

영감이 번뜩 떠오를 때는 저절로 글이 써진다.

그것이 참된 무의의 글쓰기가 아닐까.

 

예전 같으면 매일 한 편씩 글을 써야지하고 정해놓으니

글쓰기가 어떤 글 쓰는 일이 되었지만

이제는 억지스런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

저절로 써질 때는 글쓰기에 내 몸을 맡긴다.

그러면 나는 사라진 채 법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

필요한 글을 쓰게 되는 것을 느낀다.

그때의 나는 없다.

내가 글 쓴다는 생각이 없다.

나는 단지 중간자 역할을 할 뿐이다.

 

법계가 필요한 일을 나라는 몸뚱이를 빌려

법계에서 행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가장 나다운 나의 모습이 아닐까.

 

글을 쓸 때 나는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답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내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나를 잊고 글쓰기 그 자체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내가 나다운 것을 행하고 있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하고 편하다.

더 나아가 행복하고 편하다는 그 생각 자체도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을 한다.

 

그 순간 어떤 노력도 필요치 않다.

내가 나일 때는 모든 것이 저절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나는 다만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 그만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다운 어떤 모습이 있다.

때문에 그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온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신이 수행해야 할 삶의 몫과 목적이 있다.

 

과연 나는 자기다운 일을 하고 있는가?

그 일을 할 때 나는 평화로운가?

나를 잊는가?

행여 억지로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일을 어쩔 수 없이 행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다른 일을 꿈꾸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것을 꿈꾸지만

내가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두두물물 산하대지가 그대로 법신이요

일체 모든 존재가 그대로 부처라고 하지 않았는가?

부처님은 우리에게 부처님처럼 살기를 바란다거나

어떤 높은 수행력을 가진

스님처럼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법계에서 보내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현실에서 고스란히 꽃피우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부처님의 유일한 바람은

독자적이고 창의적으로 살아감으로써

진리를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너무 얕잡아 보았다.

 

어찌 내가 부처란 말인가?

어떻게 내가 완전한 존재란 말인가?

나는 어리석고 무지한 중생일 뿐이다.

나는 그저 신의 피조물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그렇게 생각하는 견해가 굳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어리석은 중생이 되어갈 수밖에 없다.

 

나로서 드러난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우린 이미 부처요 법신이다.

자신이야말로 바로 완전한 부처라는 것을 믿는다면

내가 가장 나다운 것을 행할 때

우주법계가 완전한 도움을 준다는 것을 믿는다면

바로 지금 나다운 일을 저질러보자.

 

오늘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