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마인드풀tv_ 선과 악은 무엇일까? (feat.내가 늘 하던 기부를 멈추었던 이유)

Buddhastudy 2024. 4. 1. 19:56

 

 

어느덧 또 2020년의 1월이 벌써 다 끝나가고 있습니다.

새해에 계획하신 일들, 많이 하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오늘 저는 여태까지 꼭 한번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바로 선과 악인데요.

 

[선과 악]

...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제가 항상

"분별하지 마세요."

"좋고 싫음을 나누지 마세요."

"싫은 것 자꾸 싫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쁜 사람이 어딨어요. 조금 아픈 사람만 있을 뿐이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자꾸 하니까

 

"그러면, 선과 악은 어떻게 분별하나요?

악한 것들은 분명 악한 것들인데 그것들에 대해서도 그냥 그렇게 두나요?"

이런 질문들 되게 많이 받아왔어요.

 

그리고 저라고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기 때문에

오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건 제가 깨달은 바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생각은 당연히 다를 수 있죠.

 

저는 무교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종교들을 공부해 왔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천주교 신자로 자랐고

그리고 더 커서는 불교도 혼자 공부해 봤고

힌두교도 공부해 봤고, 이슬람교도 공부해 봤고

그리고 사실 사회적으로는 우리가 흔히 뭐 이단이다, 사이비다라고 하는

종교들의 교리도 공부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도 들여다보았고.

이런 나라에서는 어떤 것들이, 저런 나라에서는 어떤 것들이

믿음으로 자리 잡고

국민들이 그 문화권 안에서는 따르려고 하는지

뭐 이런 것들, 공부하면 재밌잖아요.

그러면서 또 제가 힘듦을 거쳐가고 역경을 이겨내고 하는 와중에

나름, 제 나름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생긴 것 같아요.

 

그 기준은 바로 [에고]였습니다. 에고(ego).

제가 너무 자주 하는 이야기죠.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에고]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인간으로 육체를 가지고 존재하려면 당연히 에고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에고에 우리가 끄달리기 시작하면

얘는 정말 아무 데도 쓸데가 없는 쓸모없는 녀석이 되죠.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는.

 

하지만 우리의 [생존]을 위해선 분명히 에고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위험 신호를 주고

'지금 찻길 건너지 마.'

'? 여기서 내려가면 떨어져 죽어.'

이렇게 신호를 우리가 감지해서 생존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에고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에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에고에 바탕을 두고 행동을 하고, 말을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경우에

그런 것들이 폭력으로 드러나고 절도, 살인 이런 것들이 되는 거죠.

무슨 말이냐,

그냥 일상적인 예로 들면요,

제가 어느 순간 깨달았던 거예요.

제가 굉장히 에고에 충만했던 시절에,

 

그 당시에 어떤 사람이 저를 오해했어요.

그니까 제가 했던 말과 행동에 대해서 굉장히 크게 정반대로 오해를 했는데

그거에 대해서 그 사람이 화가 나서 저에게 이야기를 막 하는 순간,

그 순간, 저와 제가 완벽하게 분리되어서 관찰하는 것 같은 현상으로

제 자신을 보았는데

저 사람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 내가 나를 변호하려고 하는 그 에고가

정말 0.0000001초도 안 되는 찰나에 불쑥 튀어나왔어요.

그래서, 변명을 하려고 했죠.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고,

그런 뜻으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고

기타 등등... 이제 막 설명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근데, '그것이 과연 저 사람을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 생각했을 때

나를 위한 거죠.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기 싫으니까.

그래서, 그 순간 느껴졌던 것이

'! 이런 행동도 악이구나!'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반복함으로써

흔히 말하는 [카르마(karma)]라는 것이 생기는구나.'

 

카르마에 대해서도 조만간 다뤄볼 예정인데

제가 생각하는 카르마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카르마, 뭐 전생에 죄를 지어 현생에 갚고

이런 건 전혀 아니에요. 전혀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고.

그냥 [어떤 반복되는 나의 행동으로 인한 패턴].

이런 것들을 의미합니다, 저는요.

 

그래서,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저 사람에게 나를 변명하고자 하는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멈췄어요.

그리고 그냥 변명을 하지 않고 넘어갔어요.

 

글쎄요, 그 순간 그 억울함이 사라지더라구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왜 너는 날 그렇게 오해해?' 라는

생각 자체가 사라지고

', 저 사람은 날 오해했고, 나는 저 사람이 말한 그런 행동과 말을 하지 않았어.'라고, 거기서 그냥 끝이 난 거죠.

 

그리고 그것은 제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았고,

제 마음에 남지 않았고

그 일은 그냥 그렇게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어요.

 

그 순간 알아차렸던 게

비단 우리가 말하는 그런 []이라고 말하는 것들, [사회악] 있죠?

범죄가 아니더라도 도의적으로 뭐 외도, 불륜 이런 것들 있잖아요?

그리고, 도박 문제도 있고 굉장히 다양해요.

 

[무엇을 악이라고 칭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봤을 때,

'지금 내가 하는 나를 지키기 위한 이 행동 하나하나는 과연 악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선()이라는 것이

내 자아 바깥에서, 그러니까 자아가 없는 상태죠, 어떻게 보면.

그렇게 행하는 것이 선이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선,

, 봉사를 한다든지, 기부를 한다든지

누굴 위해서 나의 것을 희생해서 베풂을 한다든지

뭐 이런 것들이 사실은 선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거예요.

 

예전부터 되게 기부를 습관적으로 의무적으로 했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죠?

그래서 어느 순간, 그게 내가 의무적으로 한다는 걸 깨달아서

잠깐 멈췄었어요.

지금은 여기저기 수시로 하지만

예전에 제가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해요.

 

그래서 예전에는... 뭐라고 할까,

가정교육을 제가 그렇게 받아서

참 이것도 제가 머릿속에서 지워내는 게 힘들었는데

'내가 더 가지면 덜 가진 사람이 있다.

그니까 내가 버는 만큼 나눠야 한다.'

이런 강박관념도 있었고.

 

그리고 물론 인류애는 항상 넘쳐났지만

[갖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되게 컸어요.

그래서, 제가 심지어 많이 갖지 않았을 때도

항상 나보다 덜 가진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내가 당장 통장에 만 원이 있어도 그 만 원을 기부해야 속이 시원한,

그런 사람이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 그렇게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정말 불편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이건 선이 아니야. 내가 편하자고 하는 베풂은 절대로 선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로부터 한 1~2년 정도

제가 이거에 대한 바른 생각을 구축하는 기간 동안은 기부를 멈췄었어요.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결국 모든 종교를 훑어보아도요,

[]이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또 일치해요.

제가 그래서 늘 무조건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얘기를 하죠.

 

우리 모두 신성을 가지고 있다면

왜 우리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지 못할까요?

[에고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에요.

무조건적인 사랑 베풀 수 있냐구요?

그럼요. 할 수 있죠.

할 수 있는데, 노력해야겠죠.

왜냐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에고를 가지고 있어서.

 

그래서, 예를 들면

이번에 구정이었으니까 많은 스트레스들을 또 받으셨을 거라고 생각돼요.

그래서 예로 들어볼게요.

고부간의 갈등이 굉장히 흔하죠.

내가 우리 시어머니와 갈등이 있는데

시어머니가 이런 이런 말씀하셨을 때, 내가 참아요.

왜냐면 내가 손아랫사람이니까. 나의 남편의 어머니이니까.

아니면 어머님의 성격이 나보다 훨씬 강하시니까, 고집이 강하시니까 내가 맞춰드려야지.

뭐 이런 생각들.

사람마다 다르겠죠.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일 텐데

그런 것들로 인해서 참아요.

그러면 주변에서는 ", 그래도 너 진짜 착하다. 그게 참아지니?"라고 말해요.

 

[근데 이게 착한 게 아니죠.]

어른을 위해서 아랫사람이 참는 거, 그게 선일까요?

절대 아니죠.

누굴 위해 참는 건가요?

상대방을 위해 참는 게 아니잖아요.

상대방을 위해서 내가 베푸는 마음이 아니잖아요.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의 평판이든 명예든 아니면 상처받기 싫어서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

나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베풂이나 나눔이나 그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선이 될 수 없어요.

그리고 반대로, 저에게 예전 같으면 악행이라고 생각했을 그런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악해 보이지 않기 시작했던 시점은

그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에고가

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작동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그래서, 도의적인 문제로

우리가 이러쿵저러쿵할 일들 정~말 많아요, 평소에도.

친구 관계에서도 많고, 남녀 관계에서도 많고

손윗사람과 손아랫사람들 사이에선 더더욱 많고.

회사에서도 많고... 정말 정말 많죠.

 

근데, 그 선이라는 거, 악이라는 거 다시 개념을 정립해서 바라보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업을 쌓고 살아갑니다, 매일매일요.]

악업이라고 하면 또 조금 종교 용어 같으니까 악행? 악념? (웃음)

악한 행동, 생각, ... 이런 것들

~말 무수히 많이 이루어져요. ?

[의식 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우리가 의식을 하면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알아차리고

어느 정도 물러나서 바라보고,

그냥 하던 행동도 한 번 더 생각해서 멈추어보고

이제 이런 것들이 가능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뭐 98~99%의 행동과 말과 생각들을 그냥 하죠,

습관적으로 매일매일.

그렇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새에

(제 기준에서는) ''이라는 것을 굉장히 많이 저지르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부부가 싸움을 해요. 남편이 외도를 했어요.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 아내가 너무 화가 나서 남편한테 막 뭐라고 해요.

누가 악을 저지른 걸까요?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는 이 선과 악의 기준에서는

둘 다 악을 저지르고 있는 거예요.

왜냐면, 너무나도 에고에 기초한 생각과 말과 행동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아니, 그럼 남편이 외도를 했는데 가만두면 그게 호구지 뭐예요?'

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에고예요.

 

제가 항상 [스스로 아껴주세요. 스스로 소중히 하세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지 마세요.] 라고 말씀을 드리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냐!'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둘 다 맞아요.

정말로 내가 견디지 못할 어떤 괴로운 대상이 있다면

물러나서 바라보고 거리를 두고,

아니면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엔 끊어내고 해서 나를 지켜야죠.

왜냐면 그 사람 곁에서는 내 에고가 발광을 하고,

그로 인해서 내가 점점점점 에고만 쌓여가는 상황이 되니까.

내면과 연결이 완전히 단절되니까. 그런 경우엔 멀리해야죠.

 

근데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내가 항상 모든 문제를 내 안에 있다고 바라보고

어쨌든 현실은 내 내면이 투영된 것일 뿐이니까, 환상일 뿐이니까

내 안을 들여다보고 내 안에 있는 작업들을 하고,

그 와중에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행동이나 말 같은 걸 서운하게 했을 때

욱하는, 그 올라오는 에고를 잠시 멈추고

 

'내가 지금 뭐가 서운하지?'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나 행동이 이 상황에 꼭 필요한 것일까?'

'내가 지금 감정에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닐까?'

'감정과 나를 분리해서 바라보자. 지금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관찰자가 되어보자.'

'저 사람과 나라는 사람은 지금 어떤 입장을 각각 가지고 있는 거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잖아요.

그렇게 하면서 나의 수행이 깊어지는 거죠.

 

참으시라는 게 아니에요.

"지금 당장 참을 깜냥이 안 된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피곤하고 삶에 치이고 이러다 보면은 아무도 이해가 안 돼요.

정말 세상이 다 날 괴롭히는 것 같고...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어요.

그때는 내 공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게 최선이에요.

하지만 내가 그 정도는 아니라면

잠깐 멈추어서 [오늘 하루 더 선해져 보자.]

선해져 보자는

착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그 어릴 때부터 착해야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도 주고, 엄마 아빠가 사랑해 주고

이런 개념 완전 잊어버리시구요.

남의 말 잘 듣는 거, 남한테 맞춰주는 거 그게 선이 아니에요.

 

[나의 자아에서 벗어나서 정말로 누군가,

인간인 내가 아닌 무언가를 위해 베풀 수 있는 것.

그게 선이에요.]

 

그래서, [오늘 하루 그거를 단 한 번이라도 해볼 수 있는가?]

그걸 목표로 두고 가는 거예요.

 

제가 아까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 종일 악행만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남편이 저한테 불만이 있을 수도 있고

친구가 저한테 불만이 있을 수도 있고 한데

그걸 굳이 설명해서 저 사람에게 나에 대한 생각을

더 좋은 그림으로 바꾸어 주고 싶다는 욕구가 이제 일어나지 않으니까

굳이 안 해요.

굳이 안 하니까 상대방이 가끔 더 열받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만 어쨌든 그걸 해서

저 사람이 나에 대해 조금 더 좋게 생각한다 한들

[그게 나의 행복에 무슨 좋은 영향을 주는가?] 라는 거죠.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아요.

내가 한 번이라도 더 내 에고를 알아차리고 내 내면과 연결해서

진짜 그 []이라는 것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게 중요하지

이 외부적인 관계들과

그 안에서의 내가 어떤 사람으로 타인들에 의해 존재하는지

이거 정말... 정말 의미가 없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더 선하게 하루를 살아보자.]

이런 마음이면 감정을 추스르시는 데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요.

 

 

제가 굉장히 추상적인 이야기를 오늘 한 거 같아요.

그래서 잘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다음번에는 우리가 흔히 [업보]라고 말하는

카르마에 대한 영상도 한번 가지고 올게요.

 

대대손손 물려 내려온, 전해져 내려온 이런 관념들을

바로잡아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주입되어 온 그런 관념들보다는

시대가 더 발전했으니까

조금 더 발전된, 조금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그런 연습,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오늘 하루도 명상하는 것 잊지 마시고

이너 피스 찾으시기 바랍니다.

평온하세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