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Danye Sophia] 이것을 모르면 神도, 깨달음도 알 수 없다.

Buddhastudy 2024. 4. 18. 19:47

 

 

완벽한 존재란 무엇일까요?

 

과학자들은 흔히 등속 운동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운동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존재입니다.

그래서 가장 자연스럽고 완전한 존재는 등속 운동이 되고,

이것이 과학에서 찾은 신의 속성인 것이지요.

 

그런데 등속 운동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서양의 고대 철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완전무결한 신의 속성을 등속 운동에서 찾았고,

그것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 수학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수학적 언어로서 가장 완벽한 존재를 기술하고 싶었던 것이죠.

 

이런 노력은 중세로도 이어졌고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역시

'등속 운동'을 예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외부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한결같이 운동하는 '등속 운동'의 모습에서

신의 완벽함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운동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인물에 이르러

'등속 운동'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아이작 뉴턴입니다.

 

뉴턴은 자신의 모든 법칙을 첫 번째 공리를 통해 선언합니다.

그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운동은 '등속 운동'이다라는 [뉴턴의 제1 법칙]입니다.

일명 [관성의 법칙]이라고 부르지요.

 

관성의 법칙.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이제 '등속 운동'을 과학적으로 찾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학의 완성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변에는

'등속 운동'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것들은 힘입니다.

어떤 모종의 힘에 이끌려

'등속 운동'을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후대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빛마저도 중력에 의해 휘어버리니까요.

 

그래서 인간이 신이 못 되는 원인이 수식으로 표현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F=ma입니다.

 

F=ma

운동의 변화는

가해진 힘에 비례하며

힘이 가해진 직선 방향으로 일어난다.

 

이 수식을 통해 '등속 운동'이 깨지는 이유가 설명됩니다.

쉽게 말해 만물이 힘을 주고받는 상태에서는

'등속 운동'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외계의 힘에서 자유롭게 되어야만

'등속 운동'이 가능하고

그런 상태라면

가히 만물을 초월해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과학은

양자의 세계까지 들여다보면서

'등속 운동'이 가능할 수 있는 기술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행의 세계에서는

'등속 운동'에 대한 부분을 어떻게 볼까요?

 

과학자들의 시각과 똑같습니다.

수행자들 역시 '등속 운동'을 깨달음으로 여겨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찰력]을 불교에서는 [집착]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모든 집착이 없어져 해탈된 상태가

바로 '등속 운동'인 셈이지요.

만약 '등속 운동'이 가능해진다면

일체의 차별이 없어 평등하고

번뇌 망상이 없어 열반이 됩니다.

 

이런 기가 막힌 '등속 운동'의 상태를

대승불교에서는 불성

흰두교에서는 참나로 부르지요.

 

그렇다면 세존은 '등속 운동'을 깨달음으로 보았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세존은 한낮 브라만교의 신봉자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브라만교는

'등속 운동'화는 존재가 있다는 가정에서 이루어졌으니까요.

 

세존은 '등속 운동'을 상상으로 꾸며낸 허구로 봤습니다.

다시 말해 한낮 중생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등속 운동'을 부정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무아론]입니다.

 

그러면 왜 세존은 '등속 운동'을 부정한 것일까요?

'등속 운동' 역시 일종의 착오로 이루어진 존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비록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은 없지만

내부에서 일정한 속도로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착인 것이죠.

그래서 세존은 등속운동, 즉 바트만을 부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참나마저 없애면

우주의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모래보다 많은 별들과 그 주위를 도는 행성들

그리고 그것들을 구성하는 원자들까지 모조리 없어지고

심지어 숨겨진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

그 외에 알 수 없는 제3의 어떤 물질들까지도 모두 증발해 버립니다.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공입니다.

 

이렇게 텅 빈 공에서 '등속 운동'하는 존재,

다시 말해 해탈한 상태의 본성, 불성, 참나 따위도 없습니다.

완전한 무아의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본성, 불성, 참나의 존재마저 날리면 무엇이 남을까요?

완전한 무일까요?

아니면 이것이 공의 본질일까요?

 

이 상태를 가정하면 최초의 마찰력,

다시 말해 어떤 존재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의문만 남습니다.

즉 제1 원인이 등장하고

이것과 더불어 [존재가 뭔가?]의 화두가 나옵니다.

[~ 어떻게~ 무슨 이유로 존재하는가?]의 물음만

남아 있게 되는 것이지요.

 

누군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그것이 바로 불교의 깨달음인 [무상정등각]이 됩니다.

 

이 근원적 의문에서 멀어져

해탈을 찬양하고, 열반을 노래해 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건 꿀단지에 빠져 꿀을 쪽쪽 빨고 있는

파리의 열반송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실상!

이것을 아는 것이 누차 강조했듯이

불교의 참된 반야이며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모든 존재의 착을 없애 해탈하고

그것마저 뛰어넘어 무아로 갑니다.

그리고 무아의 상태에서 1원인의 화두를 잡아

실존에 대한 화두를 풀어 최상의 지혜에 이릅니다.

이것이 세존이 기치로 올린

불교의 시작이며 끝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무런 걸림이 없어

사사무애하는 '등속 운동'을 하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