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0)

How Do I Measure My Progress in Practice?-Ven. Pomnyun’s Dharma Q&A

Buddhastudy 2020. 2. 19. 20:15


Ven. Pomnyun's Answer to "How Do I Measure My Progress in Practice?”

Selection from a Dharma Q&A session in Washington D.C. (September 19, 2019)//

 

 

물론 다른 사람이 옆에서 지켜보면서 점검해주면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누가 점검을 해줬겠습니까?

스스로 점검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스스로 점검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초심자일 때는 자기를 점검하는 게 좀 서툽니다.

그럴 땐 조금 주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럼 어떤 기준을 갖고 점검할까?

자기 마음을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거기에 심리가 불안정한 경우가 있고 편안한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에 소라든지 노루라든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일상적으로는 편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적이 공격하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만 긴장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명상으로 가만히 앉아 있어 보면

가만히 있는데 이 조건이 편안한데도 심리가 불안정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편안한 상태가 정상이고

불안정하다면 이것은 약간 일종의 마음에 병이 들었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목표는

내가 명상을 하고 있는, 가만히 있을 때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치유과정입니다.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거예요.

 

1단계가 지나면 이제는 동물보다는 더 나아야 할 거 아닙니까?

동물은 외부의 어떤 공격을 받으면 불안해집니다. 긴장되어서...

우리는 그런 외부환경이 나빠도 편안함을 유지하는 더 나아가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걸으면서 움직이면서 일하면서도 이게 평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는 가만히 앉아서 편안해지는가?

불안정 하다면

, 내가 지금 마음이 병들었구나, 그래서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움직이면서 활동하면서 남의 욕을 들으면서

이러면 속에서 불안정해지면 이거는 나쁜 건 아니고 자연상태입니다.

거기서 또 자유로워지는 비난을 받는 속에서도 편안을 유지한다면 자연의 상태를 넘어서서 붓다의 길로 가는 길이다.

 

다시 말하면 3단계가 있습니다.

자연상태가 기준점이고요

이거보다도 못하면 이것은 병든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상태로 돌아오면 치유가 된 거예요.

외부환경이 나쁜데도 평정심을 유지한다면 이건 자연상태도 넘어선 거에요.

 

이것이 붓다의 길로 가는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겁니다.

 

이것은 안 된다고 이게 나쁜 건 아니에요.

이건 더 높은 단계로 가는 중에 있는 거니까요.

이게 첫 번째 점검의 기준이고요

 

--

두 번째는 자기의 행위양식을 살펴봐야 합니다.

행동하는 것, 말하는 것, 마음에서 어이해야지하고 각오하고 결심하는 것.

3가지를 행동하는 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느냐? 안 주느냐?

남에게 이익을 주느냐? 손해를 주느냐?

남을 괴롭히느냐? 안 괴롭히느냐?

3가지가 점검이 되어야 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준다, 남을 해친다, 다른 것을 해친다고 하면 이것은 병든 상태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친다 해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이것은 자연의 존재보다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치유를 해야 합니다.

 

여기서 조금 더 우리가 나아갈 수 있다면,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괴로워하는 사람을 괴로움을 극복하도록, 또는 즐거워하도록 도와준다.

이것은 내가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자연보다 조금 더 좋은 상태에요.

그러니까 이것은 붓다의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말을 봐야 합니다.

말로도 남을 해치느냐?

말로도 남을 손해 끼치느냐?

말로도 남을 괴롭히느냐?

그러면 이것은 병든 겁니다.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말로 남을 도와준다.

말로도 남을 즐겁게 해준다.

그러면 이것도 붓다의 길을 가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과 행동은 통제가 가능합니다.

그 이전의 마음은 어떤가?

말은 안 하지만 행동은 안 하지만

, 저거 죽여버리고 싶다

저거 내가 뺏고 싶다

, 저거 괴롭히고 싶다

이것은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걸 넘어서서 마음에서

, 저 사람이 잘 됐으면 좋겠다

, 저 어려움에서 내가 도와주고 싶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러면 이것은 붓다의 길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나의 구체적인 이 마음 작용, , 행동 3가지를 점검해서

남을 해치는 것은 멈추고, 즉 치유를 하고, 나아가서는 붓다의 길로 가도록

3가지를 교정해 나가야 합니다.

 

이걸 점검하면서

, 내가 지금 치유가 필요한 상태다

, 치유를 해서 자연상태로 돌아왔다

, 내가 거기서 붓다의 길로 가는데 한발 떼었다

이렇게 점검이 됩니다.

 

물론 어떤 거는 붓다의 길로 갈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어떤 때는 치유가 필요하고, 뒤섞여 있습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가장 나빠진 상태가 어떤 거냐 하는 점검이 필요합니다.

내가 아무리 나쁜 환경에 처했다 하더라도

첫 번째 어떤 것을 때리거나 죽여서 해결하려는 거는 멈춰야 합니다.

두 번째 아무리 내가 어려워도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 멈춰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하고 싶더라도 상대를 괴롭히는, 상대가 괴로워하는 것을 내 즐겁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가장 대표적인 거로 성추행이나 성폭행 같은 겁니다.

그다음 말로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욕설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괴롭잖아요.

욕설은 안 된다.

그다음에 속이는 거는 안 된다.

그다음에 술이나 마약을 먹고 취해서 내 행위가 남에게 괴로움을 줘서는 안 된다.

 

술을 안 먹으면 좋지만, 여기 핵심은 취하지 않는 겁니다.

취하지 않는 상태라면 그냥 음식이나 음료수 수준입니다.

그러나 이게 그 평가가 자꾸 다르기 때문에 먹지 마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먹더라도 자기를 점검해 봤을 때 음료수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여러분이 술을 먹고 운전을 해서는 안 되고

술을 먹고 흥분해서 욕을 해도 안 되고

자기 몸을 잘 못가눈다든지, 했던 말을 또 해서 상대를 귀찮게 한다든지

이런 게 나타나면 이건 통제가 안 되면 끊어야 합니다.

 

뭐 이것은 일단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금기사항이고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권장사항입니다.

 

이것은 안 되었다고 나쁜 건 아니에요.

안 한다고, 좋은 일은 안 한다고 나쁜 건 아니에요.

하면 좋다는 거죠.

 

그래서 크게 2가지

자기의 마음에 평화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자기의 행위가 바깥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것이 점검의 기준입니다.

 

절을 얼마나 하느냐?

절에 얼마나 다니느냐?

명상을 몇 시간 하느냐?

도네이션을 얼마나 하느냐?

 

이런 것들은 부분적인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의 평정심이 어떻게 유지되느냐? 얼마나 유지 되느냐?

자기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미치느냐?

이것을 점검 기준으로 삼으면 될 것 같아요.

 

--

그리고 마음이나 행위가 부정적으로 나타날 때는 어떤 때일까?

이것은 나빠서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소위 어리석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게 일어납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인식할 때는 6가지 작용으로 인식이 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을 하고, 그리고 머리로 생각을 해서

어떤 것들을 우리가 인식을 합니다.

 

여기에 오류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 오류가 생기면, 아까처럼 남을 해치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나오게 됩니다.

아니면 자기 심리가 불안정하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인식상의 오류가 시정이 되면

마음은 평정심으로 되돌아오고, 나쁜 행위가 멈추게 됩니다.

그래서 인식상의 오류를 시정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오류가 생기는 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인식을 하는 우리의 본질적인 한계 때문에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멀리까지 볼 수 없다든지, 작은 거를 볼 수 없다든지

이런 한계 때문에 오류가 생깁니다.

 

또 내가 처해있는 어떤 위치 때문에도 인식상의 오류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지구가 자전하고 있는데, 내가 그곳에서 관찰한다.

지구에서 움직이는 곳에 서서 관찰을 한다.

 

그런데 관찰자는 자기가 정지된 상태로 가정합니다.

내가 움직이는데 내가 정지된 거로 가정이 되니까, 외부 상황이 움직이는 것처럼 인식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인식상의 오류가 생깁니다.

 

지구가 둥근데 평평하게 인식하는 것은 인식의 거리가 좁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런 인식상의 오류 때문에 우리는 잘못 알게 됩니다.

오늘 이런 인식상의 오류를 여러 가지 망원경이라든지 현미경이라든지 다른 여러 도구를 통해서 이를 시정하는 게 일종의 과학입니다.

 

두 번째는 어떤 선입관입니다.

자신의 과거의 경험입니다.

그 경험에 기초해서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그렇게 이해하는 겁니다.

 

인도에서는 까르마라고 그러는데요

예를 들어서 말하면

내가 여기에 붉은 색깔의 안경을 끼고 있습니다.

이 붉은 색깔의 안경이 까르마입니다.

이 안경을 끼고 흰 벽을 보면, 나에게는 저 벽이 붉은 색깔로 인식이 됩니다.

 

그런데 이 안경을 벗기 전까지는 벽이 붉기 때문에 내가 붉다고 아는 건지

붉은색이 아닌데 내가 붉다고 잘못 알고 있는 건지

이걸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저 벽 색깔이 원래 붉기때문에 내가 붉다고 인식하는 거다이렇게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이 오류가 사실은 우리 인간사회의 대부분 갈등의 원인입니다.

만약에 푸른색의 안경을 꼈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는 저 벽이 푸르게 보입니다.

그럴 때 두 사람이 대화를 합니다.

 

한 사람이 , 벽 색깔이 붉어서 따뜻한 느낌을 줘서 좋다이렇게 말합니다.

벽이 붉다고? 어떻게 저게 붉은 거야? 푸른 거지

아니, 이게 붉은 거지 어떻게 이게 푸른 거야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이것은 견해가 다른 게 아니고, 네가 잘 못 본거야.

그러면 너 고쳐야 되는 거야.”

이렇게 해서 우리가 갈등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고

그 사람은 자기가 본 것에 대해 확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무리 대화를 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

 

보통 세 가지 단계를 거쳐가는데요

첫 번째는 다투게 됩니다.

그러다가 부부관계라면 이것으로 헤어질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어서 헤어질 수가 없으면

두 번째레 포기를 합니다.

쟤하고는 얘기해봐야 안 되니까, 시끄럽기만 하니까, 그냥 푸르다고 해라 하고 포기를 합니다.

세 번째 다시 또 대화를 시도합니다.

너 무슨 색깔이라고 그랬지? , 푸르다고 그랬지. , 너는 푸르게 보이니?

그런데 말이야, 자세히 봐라. 이게 정말 푸르니? 붉은 거 같지 않니?”

이러다 또 싸우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대화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했다가 싸우다가 포기를 했다가, 대화를 했다가 싸우다가 포기를 했다가 또 대화를 하고... 이게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이럴 때 누군가가 안경을 벗어봅니다.

붉은 게 아니잖아.

이게 중요한 거예요.

 

이것을 철학적으로 말하면 공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상대하고 다툴 일이 없어집니다.

항상 벗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내가 다시 안경을 껴도 내 눈에는 붉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벽이 붉어서가 아니라 내 눈에 붉게 보인다.

내 까르마에서는 붉게 인식이 되는 거요.

 

다른 사람이 푸르다고 해도

, 그 사람 눈에는 푸르게 보일 수 있다

푸르게 보인다 하는 것을 그냥 인정하게 됩니다.

 

틀렸는데 봐주는 게 아니고, 본래 색깔은 없는 건데, 내 눈에는 붉게 보이고, 저 사람 눈에는 푸르게 보인다.

이렇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르지만, 갈등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깊이 인식하는 게 필요합니다.

여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돼요.

내 눈에 붉게 보이기 때문에.

푸른 것도 인정한다고 해도,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그게 어떻게 푸러? 붉지

이게 딱 항상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어어어하고 이해하는 것 같지만, 나중에 결국은 또 붉은 거야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 푸르다고 하면 처음에 화를 냈다가, 어느 정도 공부를 하면 화를 안 내고 받아들입니다.

그럼 해결이 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해한 것 같지만 마음의 저 깊은 곳에서는 스트레스를 계속 받고 있는 거요.

그러다가 언젠가 또 터집니다.

내가 그냥 푸르다 푸르다 해도 봐 줬는데 그게 어떻게 푸러? 내가 한번 봐준 거지

 

그래서 우리는 이게 본래 색깔이 없다.

내 눈에 그렇게 보인다.

이게 안경을 한번 벗은 경험이 있으면 이게 비교적 쉽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이해한 것으로는 결국은 안 됩니다.

 

그래서 안경을 탁 벗듯이

, 아니네이렇게 확실하게 딱 경험적으로 하는 것이

첫 번째 깨달음, 초견성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다시 안경을 끼고 살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고집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군가가 지적을 하면,

아니면 자기가 화를 냈다가도

, 이건 내 안경 때문에 그렇지...”

그래서 이것을 바로 놓아버리게 됩니다.

이건 참는 게 아니고, 이것은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누가 파랗다 해도 , 파랗게 보이구나누가 초록이다 해도 초록이구나‘ ’그린이구나

이렇게 심리의 긴장 없이 받아들여지도록 경험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첫 번째 깨달음을 얻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이것은 뭐, 일순간에 얻을 수도 있고, 늦어도 3년 안에는 자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많은 사람과의 삶 속에서 일상적으로 그렇게 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안 되더라도 이것이 다른 사람이 잘못해서가 아니고

, 내가 놓쳤다‘ ’내가 사로 잡혔다‘ ’, 내가 고집하구나

이렇게 자기쪽으로 딱 돌이키기 때문에

화를 확 내다가도, 금방 탁 돌아가버립니다.

금방 웃을 수도 있고, 그러면 밖에 사람은 오해를 합니다.

저 미친놈 아니냐.. 금방 화를 내더니, 금방 웃는다ㅎㅎㅎ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좋은 현상입니다.

이것을 움켜쥐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완전히 개선되는 거는 궁극적인 목표이고

이걸 우리가 붓다라고 그러고, 이 첫 출발, 여기가 보디사트바에요.

 

그래서 우리는 보디사트바의 길을 가는 거에요.

아직 안 되지만, 이것을 괴로움으로 움켜쥐고 있지는 않다.

안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거에요.

그것을 점검하는 게 절을 하면서 점검하는 거에요.

 

나도 모르게 확 성질이 날 때는

, 내가 사로잡혔다 하는 걸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기 전에

이걸 체크해서 자각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게 굳어져버리니까

그래서 매일매일 아침에 정진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오류, 오류를 시정하는 게 깨달음이에요.

우리가 어떤 인식을 사실대로 인식하면

우리들의 심리는 불안할 이유가 없고, 남을 해치는 행위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 오류가 발생하면

심리가 흥분하게 되고, 남을 해치는 행위가 나오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괴롭고, 남에게도 해를 끼치는 행위가 된다.

 

그런데 인식상의 오류가 사라지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는 행동이 나오게 된다.

 

그러니까 사실은 이 가르침은 아주 심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뭐 어떤 이론이 필요없습니다.

이것은 경험하면 경험이 딱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이라는 게 항상 이제까지 살아온 까르마로부터의 작용이기 때문에

이게 사유를 하기 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이것을 딱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는 거에요.

 

그래서 놓친뒤라도 나중에라도 알아차리자.

, 그래서 내가 놓쳤구나를 알고 본래대로 돌아온다.

이게 참회입니다.

이게 절을 하는 이유이고요.

 

그러면 조금 더 진행이 되면

이게 오류가 발생해도, 금방 알아차리는 거에요.

조금 더 진행이 되면, 오류가 발생할 때,

인식상의 오류가 발생하면 벌써 심리가 들뜨거나

그러니까 말과 행동이 나오기 전에

호흡이 가파지거나 몸에 열이 나거나 이게 딱 감지가 되기 때문에

이것이 바깥으로 나오기 전에 바로 시정이 될 수가 있다.

 

더 나아가면, 인식상의 오류가 일어나지 않도록 늘 깨어있다.

그래서 이 테라밧다에서는 항상 깨어있어서 인식상의 오류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을 아라한이라 그러고

인식상의 오류가 일어날 때 바로 알아차리는 그래서 바로 사라지는

또 인식상의 오류가 이미 일어난 뒤에 나중에라도 알아차려서 다시 돌아오는

이런 것을 체크해서

그래서 4가지로 나눠놓은 거에요.

 

4가지로 나누는 건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왜 그런 4가지 수행의 단계를 정했나 하면 그런 데서 나온 겁니다.

 

다음 단계, 다음 단계 공부 거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이게 실제의 상황에서 내가 어느 정도 되느냐 하는 겁니다.

뭐 이렇게 우선 기본 원리를 알고 점검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