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33회) 아내가 개종하기를 원합니다.

Buddhastudy 2010. 12. 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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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대로 사시면 되요. 이런 것을 숨기고 종교를 통일한다고 행복해 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분의 질문은 하나의 고민인데. 정말 법을 알면 고민될게 없어요. 부인이 그런 마음을 내는 거는 부인의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일이죠. 내가 그걸 이해 못하면 부인에 대해서 자꾸 갈등이 생기죠. 교회 믿음이 강하니까 가능하면 교회 오라고 마음을 내는 것. 그것은 부인의 입장이에요. 그러나 내가 거기 안가는 것은 누구의 일이에요? 내일이에요. 안 가면 되요. 그거 뭐 고민이 되요?

 

그래. 뭐 놀기 삼아서 크리스마스 때로 한 번 가보고. 가서 설교도 좀 들어보고. 그러나 자기 신앙은 자기 대로 지키고. 신앙이라는 것은 거짓이 아닌 게 신앙 아이에요? 그죠? 거짓으로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흔들릴 필요가 없다. 그냥 아까도 얘기 했지만 헌법에 보장된 권리에요. 그러니까 그것은 자기가 가지고 그냥 가면 되는데. 그것은 행복은 자신의 행복은 앞에서도 얘기 했지 만은 누구하고도 바꿀 수가 없어요. 그건 자식도 아내도 남편도 부모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세가 아직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경계에 흔들리는 거요. 이런 때도 마찬가지로 앞에서 얘기한대로 부모가 어떤데 더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 이것도 부모를 모는 내 마음이 불편한 거거든요. 내 문제이듯이. 아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아내는 아내대로 그런 인생관을 가지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 뿐이에요. 그런 속에서도 내가 흔들리지 않는 게 공부다 이 말이오. ~ 그래요? 아이고 좋은 생각이에요. 하고 넘어 갈 수도 있는 거고. 필요하다면 한 번 가 볼 수도 있는 거고.

 

신앙문제는 나는 나 대로 가겠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에 대해서 서로 터치 하지 맙시다. 이렇게 가도 되는 거고. 또 더 열린 마음으로 앞으로 그 어떤 경우에도 아주 편안하게 떳떳하게 살아가시면 저절로 공덕이 따르게 된다.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 없잖아요? 우리는 좋은 인연을 지으면 좋은 과보가 따르고. 나쁜 인연은 지어놓고 나쁜 과보가 따르는데. 우리는 지금 어떠냐? 나쁜 인연은 지어 놓고 피해가려 그러고 안받을라 그러고. 좋은 인연은 안 지어놓고 다 자기가 받으려 그러고. 이게 문제란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나쁜 인연을 지어서 나쁜 과보가 나타나면 기꺼이 받아야 되요. 그리고 이런 나쁜 과보를 받지 않으려면 앞으로 나쁜 인연은 짓지 말아야 하는 거고. 또 좋은 인연을 지어서 좋은 과보를 받으면 이것을 계승해서 복진 타락이다. 복이 다하면 나중에 타락하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더 복을 지어서 이것을 계속 해 나가는 게 좋다. 그런 태도로 그냥 꾸준히 갑니다. 날씨가 비 오는 날이 있어요. 없어요? 있죠. 맑은 날도 있죠. 비도 적당하게 왔으면 할 때 많이 올 때도 있고 홍수가 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사람이 요만큼 와라. 오지마라. 와라. 가라. 이러면 날씨 갖고 매일 싸우게 됩니다. 그러니까 현명한 사람은 비가 오면 비 오는데 맞춰서 일을 하고. 그 다음에 날씨가 맑으면 날씨가 맑은데 맞춰서 일을 하면 되요. 내가 먼저 내일 고추 모종 심어야지. 이렇게 탁 계획을 세웠어. 그런데 아침에 햇살이 쨍쨍 나면 심을 수가 없지. 다 말라 죽으니까. 그러면 비가 올 것 같은데 이게 비가 안 오고 말이야. 오려면 확 오지말야. 이 시비에요.

 

그런데 내일 날씨가 맑으니까 내일은 농약 쳐야지. 이랬는데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오면 어때요? 성질 내죠. 날씨가 왜 이리 변덕이야? 내가 뭘 하려면 방해한단 말이야. 에잇 기분 나쁘다. 술이나 마시자. 이런 식은 날씨를 가지고 시비한다 이 말이오. 내일 고추모종 낼 일도 있고. 농약 칠 일도 있고. 여러 가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딱 일어나서 날씨보고 비가 촉촉히 오면 고추 모종내러 가면 되는 거고. 날씨가 맑으면 농약 치면 되는 거고. 어제저녁에 이쪽을 할거를 했다 하더라도 날씨 봐서 바꾸면 되는 거요.

 

오늘 놀러 가자 했는데 다 맑기를 원하죠. 놀러갈때. 그런데 비가 부슬부슬 오면 별로 않좋지? 그런데 농사꾼은 비가 안와서 모내기 못할 때 비가 부슬부슬 오면 비 맞고 일 합니까 안합니까? 기쁜 마음이죠. 그럼 비 맞고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비 맞고 노는 게 그게 뭐가 문제요? 아무 문제도 안 되요. 그죠? 그러니까 비 맞으면서 놀러 가면 되는 거고. 노는데 뭐 비 맞아 가면서 놀겠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가면 되는 거지. 그게 뭐 굉장한 일이라고 그걸 가지고 난리를 피우잖아. 날씨를 탓하고 어제저녁에 비 오지 말라고 기도했더니 기도 발이 안 맞는다 이러고.

 

그러니까 부처님을 원망하게 된다 이 말이오. 이건 신앙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법이라는 것은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건 다 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원하는 게 늘 있지만 원하는 것은 때로는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그게 이루어진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그래서 이루어지면 이루어 져서 좋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면 되고. 때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게 지나놓고 보면 더 좋은데도 있다.

 

이런 이치를 알아서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비와도 좋고. 날씨가 맑아도 좋고. 그런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 게 뭐다? 우리가 지금 닦아 가야 할 공부고. 그것이 해탈이고. 그것이 열반이다. 우리수행자들은 불자들은 해탈과 열반이 목표지. , 참 공부와 참 자유가 목표지. 어디 가고 오고 이게 목표가 아니에요. 이런 지금 지 원하는걸 가진 사람들은 설령 극락에 가도 불평이 많습니다. 이게 없다. 저게 없다. 어디를 가도 불평이 없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해탈이 안 된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부처님 법에 귀의해서 정진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