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5월
그러니까 그때는 TV에서 이런 말도 나오던 시대였데요.
박대통령은 긴급조치 9호를 선포했습니다.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헌법을 부정하거나
학생들의 불법적인 집회 시위 또는 정치 관여를 금하며
군사정권 26년
목소리마저 앗아간 시대를 산
한 대학교수의 짧은 고백
“나는
대학교수로 지낸 17년간
세상을 몰랐다.”
교수직을 내려놓은 그의 눈에 밟힌 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하나,
기억하여 기록하다
말 한마디가 죄어 되어
사람을 옥죄던 그날
호헌철폐 독재타도!
우리 아들 내놔!
우리 아들 내놔라!
또 죽이려고 이놈들! 또 죽이려고!
어머니의 눈앞에서
자식을 앗아가던 보통의 날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도 안 되는 그 변명이 통하던 그날
한 아들, ‘박종철’의 죽음
박종철은 내 아들이다!
박종철을 살려내라!
-1987년 1월 22일 ‘박종철고문치사’ 규탄농성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들을 가슴에 품고
부모의 이름으로 전해진 그 말
‘최루탄을 맞은 이들도
최루탄을 소는 전경들도
모두, 우리의 자식이다’
이 싸움은 시위대와 전경의 싸움이어선 안 된다.
“꽃 받으세요. 화해의 꽃이에요.”
이 싸움은
국민과 군부독재의 싸움이어야 한다.
모두의 마음을 모은 말 한마디의 힘
‘더 이상
그 어떤 자녀도 죽게 놔두어선 안 된다.’
-1987년 6월 18일, ‘최루탄 추방 대회’에서
이 나라는
민주주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
국민의 판단에 귀 기울이지 않고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령과 복종을
민주주의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우정이 대표낭독한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中
“어둠이 아무리 기승을 부리더라도
어둠이 빛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1975. 1. 4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해서’가 아닌
‘국민에게서 가 앞서야 한다.
이우정
(1923.8.1~ 2002.5.30)
이하나,
이우정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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