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1월 22일 경성
1000여명의 일제 경찰에 맞서 시가전을 벌인 그에게 남은 단 한 발의 총알
이 위대한 전투의 끝은 일제가 아닌 그가 결정합니다.
지독했던 가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김상옥
철물점 사업으로 풍족해진 삶
1919년 3월 1일
가슴 한편에 끓어오르는 분노
그는 조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3.1운동 후 사제를 털어가며 독립운에 나선 김상옥은
이후 상해로 망명해 의열단에 가입하게 됩니다.
(* 의열단: 1919년 11월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 무력 독립운동 단체)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 투탄 의거
그리고 일제는 김상옥을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1923년 1월 22일 새벽
천여 명의 일제 경찰이 김상옥을 추격
그는 홀로 3시간이 넘는 한일 시가전을 벌입니다.
10발의 총상
일경 16명 사상
“투항하라 김상옥”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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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장
약산 김원봉
“꼭 살아서 봅시다!”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서나 봅시다!”
어머니 김점순
“어서 먹어라... 어서”
“밥이나 배불리 먹였더라면
공부나 원 없이 시켰더라면
죄인 된 어미의 몸뚱이는
이미 시체다”
---
“어머니...”
“대한독립 만세”
“사랑하는 아들아
그 목숨 떨궈 서릿발 같은 기상으로
조선인의 투지를 보였으니
너의 죽음이 어찌 헛되랴”
희망을 잃어가던 조선인들에게
누군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김상옥 의사
(1890.1.5~1923.2.22)
송지효,
김상옥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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