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는 것도 실체가 없는 공부를 하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마음을 내서
조용하고 일 없는 데는 공부고
그렇지 않고 시끄러운 마음은 공부가 아니다.
이 속에서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거든요.
사실 이 전체가 마음인데
우리는 내 안에 뭔가 있는 듯한 그 마음 상태를
잡았다가 버렸다가, 잡았다가 버렸다가 하는 거예요.
그게 공부라고 할 수가 없죠.
잡았다 버렸다, 잡았다 버렸다 하는 게
이 큰 눈에서 다 비추고 있는 것이지
내가 이 고요한 상태에 있으면
공부가 되고
시끄러운 상태에 있으면
공부가 아닌 게 아니에요.
그거는 내 개인의 공부인 것이고
개인의 일인 것이고
진정한 이 법안이라는 것은
지혜의 눈이라는 건
모든 나를 포함해서 모든 걸 비추고 있는 것인데
그러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 자질구레한 변화가
그게 공부가 되고 안 되고의 기준이 되겠습니까?
이건 사실 아무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괴로워도 법은 아무 상관없어요.
내가 행복해도 법은 전혀 달라지는 게 없어요.
마치 한 인간의 눈으로 공부를 하다가
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전체성의 눈으로 공부를 하는
전환이 오지 않은 한
공부가 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사는 이 몸과 마음이 살고 죽는 문제거든요.
이 법안이 되지 않으면
전체성이 자기의 어떤 정체성이 되지 않으면
이 몸 안에서 이렇게 살고 죽는 문제가 엄청나게 큰일이 되는 거예요.
이 몸에서 벗어나야 되는 거예요.
진정한 공부를 하려면.
근데 몸에서 벗어나고
마음에서 자아라는 주관의식에서 벗어나는 공부를 하는데
내가 이렇게 고요하면 공부가 되고 시끄러우면 공부가 안 되고
그러니까 이걸 버려서
이쪽으로 와야 되고 이게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는 게
그게 공부라고 할 수가 없겠죠.
작고 작은 세계 안에서 분별에 빠져 있는 거죠.
취하고 버리고, 취사선택하는 거거든요.
이것이 진정한 나라면
여기서 비춰지는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이 행복과 불행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래서 공부를 할 때 제대로 공부를 하시려면요
자기를 돌아보면 안 됩니다.
자기 상태를 공부의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되고
물론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워서
공부를 그렇게 시작합니다.
근데 이 법이 밝아지고
생사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고 걸림 없어지고
생사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 걸림이 없어지려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자꾸 마음을 써버리면
더 공부가 도약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진짜 어떻게 보면
그 과정 중에 나를 놓아버리는
그 어떤 공부의 전환의 순간에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이 밀려올 수도 있거든요.
이상해
죽는 것 같아요. 진짜.
그래서 진짜 우리가 공부가 밝아지려면
진짜 죽을 고비를 넘겨야 된다
이런 식의 옛 사람들도 얘기를 하거든요.
죽을 고비를 두 번 넘겨야 된다.
체험하기 전에도 죽을 고비를 넘겨야 되고
체험하고 나서도 죽을 고비를 넘겨야 된다.
그게 뭐냐 하면
이 소식이 오려면
자아감이 탁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전체성이 체험이 안 돼요.
근데 그게 순식간의 경험일 뿐이지
지혜가 밝아져서 자아감이 완전히 뿌리 뽑힌 게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체험의 밀월 기간이 지나면
다시 뿌리가 살아서 이렇게 영양분이 공급된 것처럼 막 치성해 올라가거든요.
자아관이.
근데 그때부터 진짜 공부가 시작되는데
그때부터 자기를 돌아보지 말아야 돼요.
“내가 이러다가 몸이 더 나빠지는 거 아닌가?”
생각해 보세요.
한 번 죽지 두 번 죽습니까?
어차피 죽을 건데
깨닫고 죽어야지
내가 누군지는 알고 죽어야 되잖아요.
근데 공부를 해보니까 아는 게 뭐냐면
그게 진짜 살 길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근데 그 순간에는 진짜 죽을 것 같거든요.
이러다가 진짜 죽겠다, 공부하다가 죽겠다.
근데 지금 제가 말씀을 확실하게 들을 수 있는 건 뭐냐하면
공부하다가 죽는 사람 없습니다.
제대로 안내를 받으면서
공부하다가 죽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이상한 공부하다가 죽을 수는 있지만
이상한 거에 어떤 사로잡혀서.
분별에서 벗어나는 공부를 하면서 죽는 사람은 없어요.
근데 내 스스로가 공부가 부족했을 때는
마치 죽을 것 같은 공포는 일어날 수가 있어요.
근데 그게 왜 그러냐면
애고가 힘을 잃고
에고가 자기 정체가 드러나려는 어떤 순간에
그런 식으로 두려움으로 자기한테 나타나요.
이러다가 죽을 것 같은.
놓아버리지 않으면
내 존재감이 사라질 것 같고
내가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근데 진정한 어떤 자유와 그 행복, 진정한 살아남음
모든 집착이나 붙들고 있는 것을 놓아버렸을 때
거기에 있습니다.
진짜 거기에 새 생명이 있는 거거든요.
마음에 어떠한 것도 머무르면 안 돼요.
집착하면 안 되고, 추구하면 안 되고
아니면 뭔가를 어떻게 보면은
어떤 상태를 유지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거 다 망상이에요.
망상에 빌붙어 있는 한
우리는 괴로워요,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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