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결혼한 새댁인데요
남편하고 다투면서 서로 상처되는 말을 하고
얼마 전에도 다퉜었는데 제가 살려고 굽히고 화해했어요
상처되는 말들이 있었는데 그걸 듣다 보니까
화해를 해도 가슴이 아픈 거 같고요
가장 두려운 건 다툼으로 인해 제가 포기하게 될까 봐 두려워요//
주로 어떻게 하다가 다투게 되요?
아무것도 아닌 거로 다툰다고 자기가 말하면 아무것도 아니면 자기가 문제 안 삼으면 되지 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문제 삼아?
자기가 어떤 것을 참는데?
소리를 왜 지르고 싶은데?
어떻게 할 때 천불이 나냐고? 왜 답답한데?
듣기 싫다는 얘기 아니야.
“그만해” 하면 듣기 싫다는 얘기야, 듣고 싶다는 얘기야?
듣기 싫다는데 왜 왜가 있어?
‘듣기 싫다’ 그러면 ‘알았다’ 그러면 되지.
그럼 자기가 안 되는 거지.
상대가 듣기 싫다는 데 자기가 계속 하니까 남편이 화를 버럭 내는 거지.
그러니까 자기가 안 되잖아. 왜 남편 문제야?
아니, 심한 말이라는 것은 자기 판단에는 심한 말인데, ‘듣기 싫다’ 이 말인데, ‘듣기 싫다’ 이러면 “아이고 알았어요.” 이러고 그만하면 되는데,
자기가 계속 하니까 남편도 열불이 나서 고함을 지대는 거요. 천불이 나서 고함을 지대는 거요.
안 싸우고 싶으면 자기가 ‘그만해’ 하면
‘알았어요’ 그러면 돼.
딴 거 얘기해 봐요. 고만해 하면 어떻게 한다고요?
“알았어요.” 듣기 싫다 이 말이니까 “알았어요.” 이래야 돼.
절에 이런 말이 있어요.
이 세상에 부처님이 오시더라도 구제가 불가능한 인간이 2종류가 있어.
부처님이 와도 저거는 구제 불능이다.
첫째가 어떤 사람이냐? ‘알았다’ 하는 사람.
뭐라고 뭐라고 하면 남편이 ‘알았어’
또 뭐라고 뭐라고 하면 ‘알았다니까’
또 뭐라고 뭐라고 하면 ‘알았다니까’
이거 알았다는 거요? 듣기 싫다는 거요?
‘알았다’ 이 말이 알았다는 애기가 아니고 뭐한 얘기라고? 듣기 싫다.
그러면 뭐라고 뭐라고 하면 ‘몰라요’
뭐라고 뭐라고 하면 ‘모른다니까요’
뭐라고 뭐라고 하면 ‘아니 모른다는데 왜 그래요?’
이게 ‘모른다’는 얘기요? ‘듣기 싫다’는 얘기요?
그래.
그러니까 ‘알았다’ 하고 ‘모른다’ 하고는 정반대잖아. 그죠? 그러나 이것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안다 모른다, 두 가지 정 반대인데, 밑 마음은 똑같아. ‘듣기 싫다’ 이거요.
그러니까 자기가 싫어하면 ‘정승도 자기가 하기 싫으면 어찌 할 수 없다.’ 이런 말이 있잖아. 자기가 싫으면 부처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이걸 다른 표현을 빌면, 하늘에서 비가 오면 다 제 그릇만큼 물을 얻어간다. 이거야.
하늘에서 비가 오면 제 그릇 따라 물이 고일 거 아니오.
큰 그릇이면 많이 얻고, 작은 그릇이면 적게 얻고.
똑같은 상황에도, 오늘 법문을 해도 다 자기 그릇만큼 법문을 얻어간다. 이 말이오.
그런데 하루 종일 서 있어도 물 한 방울 못 얻는 사람이 있어요.
바가지를 거꾸로 쥐고 있는 사람이오.
이것은 바가지 크기하고 아무 관계가 없어.
바가지를 거꾸로 딱 들고 있으니까, 이건 장대비가 와도 안 고여.
이 바가지를 거꾸로 쥐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싫다’는 사람이오.
그 싫다는 표현이 두 가지요.
하나가 뭐라고? ‘알았다니까’ 한 사람은? ‘모르겠다니까’
그래서 이것은 부처가 와도 중생구제를 못한다. 이래.
그러니까 남편이 “그만해.”
이 말은 ‘듣기 싫다.’ 이 말이오. 저 집에도 아까 마찬가지요.
지금 오늘 일을 못했는데, 미래 설계가 어떻고, 저떻고.
그러니까 “듣기 싫어. 피곤해. 나 잘래.”
그러니까 표현을 하면 돼.
“여보, 나 듣기 싫어 그런 소리.” 이렇게 하면 되는데,
듣기 싫다는 것을 우리가 어릴 때부터 싫고 좋고를 표현을 못하도록 훈련을 받았어.
이거 이해하세요?
어떤 것을 ‘좋다 싫다’ 표현을 안 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이 말이오.
그래서 경상사 사투리로 이런 말이 있어요.
어떤 남자가 여자한테 데이트를 신청을 했어.
그랬더니 “언제요?” 이랬어.
‘언제요’가 경상도 말로, 거절하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 서울 남자가 언제인지 알고, 며칠이오? 이랬어.
그랬더니 여자가 “어디예” 이랬어. 하하하.
그러니까 ‘어디예’ 대구 사투리로 거절하는 말인데, 어느 다방이오. 이렇게 말했어.
그러니까 ‘싫어요’ 이렇게 말을 못해.
저도 제가 시골에 자라다 서울에 올라와서 친척집에 갔는데, 서울 애가 초등학생이 뭐라고 뭐라고 하니까, ‘싫어요’ 이러니까 소름이 확 끼치더라는 거요. 저는 평생 누가 ‘싫어요’ 이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언제요, 어디예,’이렇게 들었지.
그러니까 이것을 ‘싫다’ 이 말을 못하니까.
싫으니까 제발 그만하라는 말 아니오.
“여보 좀 그만해.” 이런 말이에요.
싫었던 걸 참았다가 그만하라고 그러니까,
“그만하면 어떨까” 이렇게 말 못하고, “아이고 좀 그만해.” 이렇게 나오는 거요.
거기다 더 하게 되면 욕설이 나오게 되는 거요.
그러니까 “그만해” 이 말은 ‘아, 듣기 싫다.’ 이렇게 알아듣고 “알았어요.” 이러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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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몇 살이에요?
대학도 나왔고?
천국과 극락이 멀다는 것은 엄마는 극락 갔고, 자기는 천국 간다는 전제 위에서 얘기잖아.
그런데 그것은 가봐야 되는데, 첫째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갈지 안 갈지도 모르는데 바로 연락부터 생각한다. 야, 굉장하다.
그럼 제가 한번 물어볼게요.
우리 집 앞에 구멍가게가 하나 있어요. 그래서 거기서 늘 물건을 사서 한 20년쯤 다녀서 단골이 되었어요.
그런데 옆에 최근에 좀 규모가 크고 잘 갖춰진 슈퍼마켓이 하나 생겼어.
그래서 거기를 가봤더니 물건도 많고, 어떤 것은 값도 싸고 굉장히 좋아.
그러면 자기는 다니던 단골집에 가야 될까? 안 그러면 배신 때리고 슈퍼마켓 가야 될까?
그냥 얘기해 봐요. 자기 같으면 어떻게 하겠냐?
그래. 주로 대형마트에 가고, 쉴 때는 단골집에 가고.
그 소비자의 자유죠.
맞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절에 20년을 다녔다 해도 교회 가서 좋으면 교회 다녀도 되고, 일요일에는 교회가고 휴일에는 절에 가면 된다. 이 말이오. 아무 문제가 없어.
그런데 가게 주인입장에서는 좀 섭섭할까? 안 섭섭할까? 좀 섭섭하니까 이 쪽에서는 욕을 할 거고, 저쪽 슈퍼마켓에도 ‘일요일에 하루 쉬었다가 월요일에 구입하면 되지, 하루 문 닫는다고 꼭 거기 가서 구입할 거 뭐 있나?’
주인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러니까 주인입장에는 그럴 수가 있어.
소비자니까 소비자는 자기 필요한데로 가도 될까? 안 될까?
둘 중에 하나만 다녀도 되고, 둘 다 다녀도 되고, 하나를 주로 다니고 하나는 가끔 가도 되고, 둘 다 안다녀도 되고, 아~~~~무 그런 거는 문제가 없는데,
그러나 대형슈퍼마켓 갔다가 가끔은 구멍가게 가서 이렇게 말해봐라.
“아이고, 저 아래 가게 갔더니 물건도 좋고 값도 싸고 너무너무 좋더라.”
이런 소리 하면 가게 주인 좋아할까? 싫어할까? 싫어하겠지.
가는 건 내 자유지만, 구멍가게 물건 비싸다고 구멍가게 주인한테 가서 불평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교회 다니다 절에 오든, 절에 다니다 교회가든 그건 자유인데,
절에 다니다 교회 가서 “절은 나쁘다. 다녀봐야 구원이 없더라.” 이런 얘기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꼭 절에 가서 이쪽 구멍가게 가서 물건 구하면서
“아이고, 이 집에만 다니나, 저기 가보니 좋던데” 손님을 절로 보내면 되나? 안 되나? 안 돼.
이해하셨어요?
이거는 종교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다.
그러면 거기에 있는 손님들이나 주인들은 ‘두 개 하지 말고, 우리 가게만 다녀라.’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얘기가? 못할 얘기가?
그건 그들의 얘기고. 나는 나대로 다니면 돼.
알았어요? 해결이 됐어요?
그게 뭐 생각할 게 있어요? 다니고 싶은 대로 다니면 되지.
그러니까 교회 가서 “가끔 난 절에도 간다.” 이런 말 할 필요가 있나? 없나? 없고
절에 가서도 “나는 교회 다닌다.” 이런 말 할 필요도 없고.
그냥 절에도 가고 싶으면 절에 가고 교회 가고 싶으면 교회가고.
그 다음 두 번째, 어떤 할머니가 상담을 했어요.
“저 기도하는데요, 기도가 성취가 안 될까봐 걱정이에요.”
“무슨 기도하는데요?”
“우리 손녀가 요번에 고3인데, 입학시험을 치는데 입시기도를 하는 중이에요.”
관세음보살을 부르는데, 기도가 성취 안 될까봐 걱정이라는 거요.
그래서 “왜 걱정이에요?”
“우리 손녀가 교회 다니거든요.”
할머니는 지금 관세음보살 부르고, 우리 손녀 대학시험에 걸리도록 해달라는데 정작 손녀는 교회 다니니까 할머니가 생각해보니 걱정이 되겠지.
그래서 제가 할머니 보고
“아이고, 보살님.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려면 관세음보살님이 할머니 같을까봐.”
즉, 고3짜리가 교회 간다고 팍~ 벌줘버리고, 절에 다닌다고 팍~봐주고,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이라고 할 수가 있나? 없나? 없겠지.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이잖아.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를 믿는다면 뭐 그런 거 갖고 벌주고 차별하고 그러겠어?
그러니까 그게 사람수준에서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든 거요.
그러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그래? 징벌의 하나님이가?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이에요.
그런데 고3짜리가 절에 간다고 팍 시험에 떨어지게 만들까? 그러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겠죠.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내가 귀의하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이 이렇다고 그래.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께 귀의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자기 수준으로 하나님이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이건 신앙이 아니에요.
오늘날 절에 다니니, 교회 다니니 하면서도 신앙이 없어요. 내가 볼 때는.
이런 것처럼 그것은 하나님이 자비하시다. 부처님이 자비하시다 하면 자기가 어릴 때 절에 다녀서 절에 좀 가보고, 또 이웃집에 교회가 있어서 교회 좀 다니고, 그걸 갖고 시비할까? 안 할까? 안 해.
그리고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서 엄마는 극락 갔을 거고, 나는 천당 가면, 천당하고 극락하고 전화 통화가 안 되어서 만나지도 못하고, 햐~~~~
대한민국의 국민 수준을 떨어뜨려요. 하하하.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알았죠? 네.
자, 재미있었어요? 바쁜 사람이 좀 갔는데,
이렇게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서 좀 더 행복해지는 길이 있고,
그 다음에 우리 사회를 좀 더 좋게 만들어서 행복의 토대를 마련하는 길,
두 가지를 다 우리가 가야 된다.
인생을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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