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2048. 마음의 뿌리와 출처를 깊이 고민해서 풀어야 할까요?

Buddhastudy 2024. 9. 13. 19:17

 

 

최근 우연한 계기로 불안과 막막함이 한 번의 울음과 함께

탁 놓아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불안과 막막함이 정말 생각 속의 일이었구나를 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올라올 때 알아차리는 연습만 하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마음의 뿌리와 출처를

깊이 고민해서 풀어야 하는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학자가 되려면

그걸 연구해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도 해야 되고 그러죠.

그러니까 운전을 잘하려면

운전만 잘하면 되는지

왜 자동차가 이렇게 움직이는지까지 알면 좋은지

알면 좋은데, 그거는 정비소 직원이 되려고 하면

그런 원리까지 다 알아야 됩니다.

정비를 하려고 하면.

즉 자동차를 고치려고 하면.

 

그러나 고치는 거는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운전을 잘한다.

우리 어릴 때는

정비를 할 줄 모르는 게 운전만 한다

이게 이해가 안 됐습니다.

옛날에는 자동차 운전을 하려면

자동차 정비부터 먼저 배우고 운전을 했거든요.

 

근데 미국에서는

자동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게 운전만 하고 다닌다

이런 말이 이해가 안 됐는데

요즘은 다 그렇게 하고 살잖아요.

 

우리가 지금 스마트폰을 쓰거나 이런 거 할 때도

다 원리를 아는 건 아니잖아요.

그걸 그냥 잘 사용하면 되지.

 

그런 것처럼 자기 마음이

언제 이런 원인이 생겼고 어땠나?” 이런 것도 연구해서

학자들은 발표하고 그러죠.

그러나 지금 현재의 내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만 잘 알아도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밑뿌리를 좀 더 연구해 보겠다.

그런데 그게 탐구일 때는 굉장히 효과적인데

그거를 지식으로 사색, 사유를 하게 되면 어떠냐?

그거는 꿈꾸는 것과 같습니다.

 

/수행이라는 건

직시거든요.

상황을 꿰뚫어 아는 거지

그걸 지식적으로 아는 게 아니거든요.

근데 자꾸 사색을 하게 되면

생각으로 아는 게 된다.

논리로 하는 게 된다./

 

그 위험이 있다는 거예요.

그 뿌리를 탐구를 하겠습니다면

오케이, 좋아

근데 그걸 지식적으로 자꾸

그러니까 명상을 할 때 딱 생각을 놓아야 되는데

계속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건 사색은 좋을지 몰라도

명상은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연구를 하는 거를 안 가리키는 이유는

그거는 109명은 그냥 망상을 피우기가 쉽다, 위험이.

그래서 오히려 딱 놓고

직시

마음이 이렇게 일어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림이 중요하다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탐구라면 오케이좋습니다. 탐구를 하면

 

왜 이런 마음이 일어나지?” 하고 그 마음을 이렇게 직시해야 되는데

마음이 왜 일어나지하고 생각을 하면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차이를 여러분들이 알기가 좀 어려울 거예요.

 

사유하는 거는 논리가 개발이 되는 거예요.

직시하는 것부터

직시는 마음에 일어나는 거를 알아차리는 거예요.

딱 직시해서.

 

그리고 직시의 기초를 두고

왜 이러지할 때

잘못하면 또 망상에 빠지기가 쉽다.

망상에 빠지면

그거는 꿈속이지 수행은 아니에요.

 

알아차림이 지속이 되면

저절로 이렇게 개선이 됩니다.

 

명상할 때도 생각을 탁 놔야 돼요.

생각이 안 놔지면 의미부여를 안 해야 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앉아 늘 사유하잖아요.

그걸 망상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사유가 탐구가 되면 지혜로 가고

그것이 그냥 사유로 가면, 그냥 생각으로 가면

망상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런 위험한 양날개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지금 뭐 전문학자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남을 가리키는 게 핵심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자기 치유를 먼저 해야 된다

그런 뜻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

 

사색도 필요합니다.

논리도 필요하고.

그러나 이 괴로움이 없어지는 건

논리를 갖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직시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

 

이걸 부처님은 뭐라고 했냐?

눈 있는 자 와서 보라이렇게 말했어요.

눈 감고 생각하지 말고 눈 번쩍 뜨고 봐라이렇게

이걸 깨달음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부처님의 법을 듣고

딱 깨쳐서 괴로움에 벗어난 사람들은

비유를 부처님을 찬탄할 때 이렇게 들었어요.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심과 같다

직접적이라는 거 아니에요 그죠?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심과 같고

덮여 있는 것을 벗겨서 보라 하는 것과 같고

길을 잃고 헤매는 자에게 길을 가르쳐 주심과 같고

어두운 밤에 등불을 비춰주심과 같다

이렇게 네 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했어요.

 

그러니까 뭐 스승 안에 숨겨진 어떤 비밀

네 공부 잘하면 너만 나중에 비밀 전수해 줄게

종교는 이런 게 많습니다.

아시겠어요? 비법 전수 같은 거 ㅎㅎ

 

근데 부처님은 내 손아귀에 숨겨진 비밀이란 없다.

요즘 말하면 투명하게, 이렇게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신비주의는 불교가 아닙니다.

 

두려움은 신비주의에서 생기는 거예요.

우리가 두려워하기 때문에

모든 이 어리석음이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어두운 밤이라야

두려움도 생기고 헤매는 것도 생기잖아요.

대낮에는 밝으면 덜 두렵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마음이 확 밝으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조금 더 종교의 문제가 아니다.

이 마음의 원리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느냐?

 

그건 남의 마음도 아니고, 내 마음을 내가 알아차려서

이거를 좀 더 긍정적인 삶을

하루를 살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길을 여러분들이 갔으면 좋겠다.

 

그게 뭐 굉장히 깊은 철학을 공부하고

철학은 그냥 논리, 사색 아닙니까?

그게 아니에요.

 

바로 삶이라는 것은

현실이고

그것에 대한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거다.

그러면 누구나 다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런 데서 여러분들이

조금 가볍게 접근했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다시 드립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고요.

여러분 행복학교 공부 잘하시고

또 주위에 행복학교 공부할 사람 있으면 또 추천해 주시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