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덴마크에 유학을 와서 살고 있고 한국인 남편과 딸이 있습니다.
제 고민은 건강하신 줄만 알았던 친정엄마가
작년에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셔서 거동이 불편하신데
아버지는 내년에 제가 학교 졸업을 하면
한국으로 들어와 살기를 바라십니다.
평소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들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있어
자식에게 안 좋은 마음을 물려주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살 생각을 하면 걱정스럽고 부담이 큽니다.
외롭게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마음이 아프고
아버지도 그럴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솔직히 아버지께서 물려주실 유산도 욕심이 납니다.
제가 아버지 노후를 함께 하는 것이 좋을까요?
제가 어떤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걸까요?//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는
부모에게 자식을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고
자식은 어느 정도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무 살이 넘으면
부모는 자식을 더 이상 보살펴야 할 책임이 없고
자식도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할 의무가 없어집니다.
성인 대 성인으로서 독립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가 어떻든 아버지가 어떻든
한국에 가서 내가 책임을 져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어릴 때 키워주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었을 때 내가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그것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다면 경제적으로 갚아야 하고,
병간호를 받았으면 병간호로 갚아야 하겠죠.
질문자처럼 해외 유학을 나왔고
또 결혼까지 해서 아이까지 낳았다면 이제 독립된 인생입니다.
첫째, 본인의 가정을 놔두고 부모를 돌보러 가려면
남편과 자식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남편과 자식들이 그러자고 하고, 본인도 그러고 싶다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현재 가족 구성원들의 동의 없이 결정한다면
그것은 독선적인 행동이 됩니다.
둘째, 내가 싫은데 가야 할 아무런 의무는 없습니다.
옛날 유교 사회에서는 그런 행동을 불효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지나친 인위적인 윤리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볼 때는 돌보지 않았다고 해서 불효라고 볼 수 없습니다.
스무 살이 넘어서
부모에게 계속 도움을 받으려고 행패를 부리는 것은
불효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어서
부모를 돌보지 않았다고 해서 불효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어서도 부모를 돌보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훌륭하지 않다고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자기가 자기 인생을 결정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에 참석한다든지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하면 한 번씩 방문을 한다든지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용돈을 일부 지원한다든지,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자신의 인생살이를 바꿔가면서까지
부모를 돌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때문에 한국에 왔다’ 이런 생각을 자꾸 하면
아버지를 원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 때문에 내가 내 인생을 원하는 대로 못 살았다고 생각하면
부모 자식 간에 원수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떨어져 있는 것보다 오히려 관계가 더 나빠집니다.
한국에 가서 아버지를 돌봐드리면
아버지의 유산을 내가 좀 더 많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에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남은 유산은
형제들이 각자 n분의 1로 나누어 갖도록 법에 이미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효도를 하느냐 안 하느냐와 관계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내가 돌봄으로 해서
아버지의 유산을 내가 더 갖는 것도 나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아버지를 3년 돌보고 유산을 몇 억 받는 것이
내가 해외에서 돈을 버는 것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면
남편과 의논해서 아버지를 돌보면 됩니다.
그럴 때는 ‘외로이 사는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서 한국에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외롭게 사는 아버지를 위해서
내 삶을 희생하러 한국에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아버지가 자기의 정성을 몰라주거나
유산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큼 안 돌아오면
아버지를 원망하게 돼요.
그런데 경제적인 이익을 목표로 한국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마치 주식을 투자하거나 사업을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경제적 이익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사업에 실패한 것이지,
아버지가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나의 투자 예측이 안 맞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 내가 투자를 잘못했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면
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게 됩니다.
무엇이 효도냐 아니냐, 부모가 돌아가시면 어떡하냐,
이런 것들은 모두 번뇌에 불과합니다.
어떤 결정을 해도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효도를 해야 한다, 아버지가 외롭다,
이렇게 남을 갖고 얘기하지 말고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나한테 후회 없는 삶이 되겠는가’
이런 관점을 갖고 내가 결정해야 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외로이 돌아가셨다고 후회하거나,
유산을 제대로 못 받았다고 후회할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한국에 가서 아버지를 돌보는 게 낫습니다.
또 한국에 들어와서 아버지를 돌볼 경우에도
생각보다 유산이 적어서 손해라고 생각하거나
아버지와 관계가 나빠져서 후회할 것 같으면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내가 한 행위와 선택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져야지 남 탓을 하면 안 돼요.
그것은 괴로움의 씨앗을 심는 겁니다.
아버지를 돌볼 의무가 있어서 한국에 들어온다는 생각을 하면
아버지를 원망하게 됩니다.
내가 내 이익을 얻을 게 있어서 한국에 들어온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래도 부모 자식 간에 어떻게 이익을 따지나 싶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 이익을 따질 때 오히려 부모를 원망하지 않게 되고,
부모 자식 간에 원수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선택해서 한국에 들어와야
내 예측하고 안 맞았다 하더라도 내가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그러나 질문한 것처럼 그런 관점으로 한국에 들어가는 선택을 하면
나중에 아버지를 미워하게 되고
멀리 떨어져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보다
훨씬 더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좋으니까 내가 책임을 져야 돼요.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내가 결정하는 겁니다.
이 관점을 분명히 하면 어떤 결정을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
딸이 여기에 살고 싶다면
여기에 놔두고 가면 되죠. 딸한테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엄마는 한국에 가야 되는데, 너는 여기에 있고 싶구나.
그럼, 방 하나 얻어줄 테니까 네가 밥해 먹고 학교도 다녀라.
그런데 네가 혼자서 그렇게 못 살겠으면
스스로 일어설 힘이 아직 없는 것이니까
엄마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단다.’
엄마가 결정했으니 너는 무조건 따르라고 하면
그건 명령이니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동의를 구했는데도 딸이 동의를 못 해줄 때는
딸의 의견을 존중해서 여기에 살도록 조치를 해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딸이 원한다고
엄마의 인생을 딸이 원하는 대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도 독선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도 안 되지만
아이도 부모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첫째, 딸과 같이 의논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둘째, 딸의 의견을 존중해서
‘네가 이렇게 할 수 있겠니? 할 수 있다면 엄마는 도와주겠다’
이렇게 제안을 해야 합니다.
딸이 제안대로 못 하겠다면
같이 한국으로 들어가야지 어떡하겠어요?
어떤 상황 속에서든
자신의 권리도 있고, 자신의 한계도 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자각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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