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회는 세 명의 스승을 모시고 있습니다.
첫째, 부처님의 정법을 지금까지 계승해 오신 저의 은사 스님이신 불심도문 큰스님입니다. 둘째, 여러분들이 봉암사에 가서 영정을 뵈었던 서암 큰스님입니다.
그분은 아주 소박하게 사셨고 심플하고 겸손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셋째, 재가 여성 수행자인 각해 보살님입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고통 하나하나를 상담해 주신 분이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즉문즉설은
담마적으로는 선불교의 문답을 계승한 것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을 헤아려서 그 아픔을 해결해주는 그 자세는
각해 보살님이 가졌던 마음을 계승했습니다.
이렇게 정토회는
누구나 본받을 사람이 있으면 스승으로 모십니다.
또 정토회가 하고 있는 사회실천 활동에는
개신교 목사님이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분은 크리스천 아카데미를 창립한 강원룡 목사님입니다.
종교 간의 대화를 실천하셨고,
노동 문제, 여성 문제 등
한국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문제들을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강원룡 목사님의 정신과 유업을 계승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앞으로 인류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우리 선조들을 비롯하여 그들이 누구든 관계없이
그 경험이 유익하다면 아무런 제한 없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 제가 4월과 5월 두 달 동안
아시아 지역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코로나 이후에 어떻게 생활하는지 둘러보고 왔습니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INEB 스터디 투어에 와서 제가 만났던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현장에 찾아가서 들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정토회가 지원을 할 때
여러분의 상황에 맞게끔 맞춤형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 정토회를 견학하고 간 스님들은
각 나라의 승단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INEB 스터디 투어를 준비하는 정토회 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분들은 앞으로 10년 후에
각 나라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조금 더 정성을 기울여서 견학을 도와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맞춤형으로 지원을 해야 합니다.’
--자원봉사 시스템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
마지막으로 세 가지를 여러분들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첫째, 자원봉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기술적인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돈을 받지 않고 일하겠습니까?
자원봉사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자원봉사 시스템은
지도자가 자원봉사자와 똑같은 마음으로 일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리고 수입으로 들어오는 재정에 대해서는 누구도 사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모두가 평등한 관계로 일해야 합니다.
높고 낮음이 있어서 직원을 다루듯이 해서는
자원봉사 시스템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돈을 받고 일해도 시키는 대로 잘 안 하는데
돈을 받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시키는 대로 일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평등한 관계가 되어서 일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대부분 자신의 나라에서 승려라고 하는 권위를 가진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 권위를 버리게 된다면 정말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할 것입니다.
승려라는 권위로 사람들을 관리하기보다는
청정한 계율을 지키고 모범이 되어 헌신할 때
자원봉사 운동이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절에서 직원을 고용해서 월급을 줍니다.
그래서 절을 운영하는 것이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스님들의 위치가 월급을 주는 사장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에 많은 시종을 거느린 왕자였습니다.
그러나 출가해서 부처가 된 이후에는 시종을 둔 적이 없습니다.
다만 나이가 드신 후에는 같은 수행자인 아난 존자가 보좌를 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붓다가 가신 길을 항상 염두에 두고 가능한 그 원칙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둘째, 계율은 구속이 아니라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계율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속박이 됩니다.
왜 우리가 이 길을 가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면
‘계율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구나’ 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율이 나를 속박하는 게 아닌 계율 안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우리 모두를 번뇌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가르침을 펴신 분입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를 속박하도록 가르치겠습니까?
그래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도
계율의 정신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계율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않고 오히려 속박한다면
그 계율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만약에 모두가 동의할 만큼 그 계율에 문제가 있다면
변경을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망을 따라가지도 않고 억제하지도 않으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율을 변경할 때는 항상 이 점을 충분히 검토해야 합니다.
셋째, 여러분들이 정토회의 운영 원칙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그 원칙이 지켜지는 범위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협력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그동안 INEB와 협력하는 일을 망설였습니다.
왜냐하면 원칙을 너무 따지게 되면
‘돈 좀 준다고 목에 힘주네?’ 이렇게 오해할 수가 있고,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NGO처럼 관계를 맺게 되면
정토회의 원칙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터키, 시리아, 파키스탄처럼 불교국가가 아닌 경우는
정토회의 원칙에 상대가 동의하면 지원을 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지원을 안 하면 되기 때문에 아주 간단해요.
정토회는 자원봉사자로만 운영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관계를 맺기가 매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돈을 지원하는 일은 유익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돈을 쓰되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점을 서로 이해한다면
INEB의 울타리 안에서 여러분과 무엇이든지 협력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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