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마음속으로는 이미 이혼했지만, 아이가 마음에 걸립니다. (2024.09.17.)

Buddhastudy 2024. 9. 24. 19:47

 

 

저는 10월 초 깨달음의 장 수련을 신청했습니다.

현재 남편과 소통 문제로 이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이혼했지만, 아이가 여섯 살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건 해보고 싶습니다.

이혼했다 생각하고 생활하고 있지만,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남편의 가부장적인 면을 고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남편의 말에 늘 상처받는 저를 봅니다.

깨달음의 장 수련에서 저의 어떤 면을 더 들여다보고 집중하면 좋을지

스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남편의 어떤 면이 가장 견디기 어려워요?

 

어떻게 말해요?

 

...

 

그러면 그냥 죄송합니다하면 되죠.

 

...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 사람의 처지에서 볼 때는 부족하다는 거잖아요.

그러니 그 사람에게는 죄송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내가 뭘 잘못했거나 부족해서 죄송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기준에 맞추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하면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서로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장은 종업원들이 적극적으로 일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종업원들은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하는 거예요.

자꾸 종업원들이 성심을 다해서 일해주기를 원하면

그렇게 안 될 때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것처럼 질문자도 정성을 다했지만

남편의 기준이 높다 보니

질문자가 그 기준에 못 미치는 겁니다.

남편으로서는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죄송합니다하고 말 한마디만 해주면 별일 아닙니다.

 

...

 

그게 안 되는 것은 본인의 문제인 거죠.

남편도 질문자와 이혼하고 싶어 하나요?

당신하고는 도저히 같이 못 살겠다는 입장인가요?

아니면 남편은 그렇지 않나요?

 

...

 

질문자가 이혼하자고 하니깐

남편도 기분이 나빠서 충동적으로 그런 것 같아요?

아니면 남편도 질문자처럼 평상시에 이 사람하고는 죽어도 못 살겠다는 입장인 건가요?

 

그렇다면 질문자가 좀 더 노력을 해보면 좋겠어요.

그런데 남편의 얘기를 들으니깐 저하고 비슷한 점이 많네요.

질문자는 지금 법륜스님하고도 못 살겠다.’ 이런 상태인 것 같아요.

 

...

 

깨달음의 장은 어떤 준비가 전혀 필요 없어요.

미리 알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그냥 가서 5일 동안 놀다 오면 돼요.

깨달음의 장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아무런 사전 지식도 필요 없고, 연습도 필요 없고

각오나 결심도 필요 없습니다.

중간에 안 하겠다고 그만두거나,

아니면 나는 듣기 싫다.’ 하고 수련에 참여하지 않거나,

그렇게만 하지 않으면 저절로 깨달을 수 있게 되어 있어서

깨달음의 장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깨닫는 것과 이혼 문제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깨달으면 이혼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고

이혼을 안 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어요.

 

이혼 문제는 놔두고 다른 걸 크게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장과 이혼 문제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요.

이혼할지 말지는 깨달음의 장의 과제가 아니에요.

깨달음에 비하면 이혼 문제는 소소한 문제입니다.

누구하고 같이 사느냐 안 사느냐 하는 것은

내 인생에서 하등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깨달음의 장에서는 더 근원적으로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를 주된 과제로 삼습니다.

 

그러니 이혼 문제에 대한 도움을 받으려고

깨달음의 장에 가면 안 돼요. 그것은

큰 것을 주는 곳에 가서 작은 것만 얻으려는 행위입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면 질문자는 조금밖에 못 얻습니다.

 

깨달음의 장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큰 주제를 다루는 곳입니다.

여러분들은 결혼해서 살고 있으니까

계속 같이 살 건지 이혼할 건지 하는 게 큰 문제 같지만

깨달음에 비하면 그 문제는 하등 큰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 이혼 문제는 놔두고 편안하게 안내하는 대로 수련에 임하시면 됩니다.

정답은 없어요.

정답이 있으면 깨달음의 장이 아니죠.

깨달음의 장은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수련입니다.

그래서 아무 준비도 필요 없고, 그냥 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혼하고 안 하고는 본인의 자유예요.

내가 밥상을 열심히 차렸는데

남편이 음식을 이렇게밖에 할 줄 모르냐?’ 하고 말하는 것이

가부장적인 것은 아닙니다.

권위주의도 아니고요.

남편은 그냥 자기 기준에서 얘기할 뿐인 겁니다.

 

만약 남편이 자기 기준을 내세우지 않고 음식 맛과 관계없이

여보, 음식 만든다고 고생했어요이렇게 말해줄 수 있으면,

그는 수행자의 경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수행자가 아닌 보통의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 관점에서 말합니다.

그러니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음식이 싱겁다.’, ‘음식의 양이 많다.’

이렇게 자기 기준에서 든 생각을 그냥 말하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시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 사람은 관점이 저렇구나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런 정도의 의견 차이는

같이 못 살 정도의 사안이 되지는 못합니다.

질문자가 그것에 꽉 사로잡혀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고 나서 얘기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