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저와 함께 지낸 세 명의 남자가 차례대로 죽었습니다. (2024.09.18.)

Buddhastudy 2024. 9. 24. 19:51

 

 

스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1985, 제 딸이 3살이었을 때 5년간 함께한 남편이 사망했습니다.

90년대 초에 전 약혼자가 사망했습니다.

6년 동안 사귀었던 남자 친구는 유기농 생활을 하며

유익한 비타민에 대한 연구 결과를 웹사이트 동료와 함께 공유했는데,

20221월에 병에 걸려 그해 4월에 사망했습니다.

셋 다 각자 다른 질환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제 성격에 이런 것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어떻게 이 패턴을 바꿀 수 있을까요?//

 

 

질문자가 직접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면

질문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명이 다해서 죽었기 때문에

질문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일이 똑같이 두 번 반복되면

약간 신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게 나의 운명인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연히 비슷한 일이 두 번 연달아 일어났을 뿐입니다.

그것이 비록 세 번 연달아 일어났다고 해도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주사위 던지기를 한번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주사위는 1부터 6까지의 숫자가 있습니다.

주사위를 던지면 그중 하나의 번호가 나오게 됩니다.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1이 나올 확률은 여섯 번 중에 한 번이 됩니다.

그러나 주사위를 여섯 번 던진다고

반드시 1이 한 번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안 나올 수도 있고, 한 번 나올 수도 있고,

두 번 나올 수도 있고, 여섯 번 다 나올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한 번 나올 확률이 가장 높죠.

 

그래서 여섯 번 던졌는데 모두 1이 나왔다고 해서

이것이 운명은 아니라는 거예요.

다만 그럴 확률이 낮은데도

현실적으로는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횟수가 점점 많아지면,

즉 천 번을 던지고 만 번을 던지면,

1이 나올 확률이 에 점점 가까워지게 됩니다.

실제로 실험해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특정 결과가 나타날 확률을

실험적 확률이라고 하는데요.

이 실험적 확률은 횟수가 많아질수록 수학적 확률에 근접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떤 일이 두 번, 세 번 되풀이되면

그것을 자꾸 논리화해서

어떤 결론을 내려고 합니다.

 

제가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을 위해

학교를 지어 운영한 지가 30년 정도 됩니다.

그 마을에서는 저를 좀 신비주의적인 인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어느 해 가뭄이 들어서 모내기를 못하고 있는데

제가 그곳을 방문하자마자 바로 비가 왔습니다.

처음엔 아무 일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다음 해에 갔는데 또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 스님이 비를 몰고 온다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또 방문했는데 또 똑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은 스님이 비를 몰고 온다고 완전히 믿어버렸어요.

그러니 그다음 해에는 가뭄이 심해지니까

스님이 오셔야 한다고 요청하는 일이 생겼어요.

 

이렇게 횟수가 거듭되면

! 이렇구나하고 어떤 결정을 내버리는 것이

뇌의 작용입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고민하는 문제도

두 번 아니라 세 번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당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또 다른 조언을 드린다면

어떤 성격적인 문제가 이런 일을 유발하는 그런 작용이 좀 있습니다.

동양의 음양오행으로 말한다면

예를 들면

남편의 성격이 목() 성이고 부인은 금() 성이라고 할 때,

서로 부딪히면 외부적으로 보면

남편이 아내를 때리고 구타하는 행위를 하더라도

죽기는 남편이 먼저 죽습니다.

왜냐하면 나무를 가지고 쇠붙이를 때리면

때리는 건 나무가 때리더라도

부러지는 건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이것은 쇠붙이의 책임이 아닙니다.

나무가 쇠붙이를 때렸기 때문에

그것은 나무의 책임이지

쇠붙이의 책임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나 이런 원리를 안다면

쇠붙이가 나무를 피해 줘야 합니다.

, 남편이 화낼 때

누가 옳으니 그르니 충돌하지 않고

당신이 맞습니다이렇게 말하면서 피해 줘야 합니다.

만약 이 문제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면

제가 조언을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당신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

 

, 그건 좋은 일이에요.

그가 죽었기 때문에 질문자는

결혼을 한 번 더 할 수도 있고, 혼자 살 수도 있고

기회가 많아졌잖아요.

옛날에는 한 사람하고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모두가 했기 때문에

여자가 남편 복이 없다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하고 살아야 한다는 이런 기준을 없애 버리면

오히려 질문자는 남자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한 사람하고만 끝까지 살다가 죽는 사람은

사실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복이 있다’,‘복이 없다하는 것은

모두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근본으로 돌아가면,

복이 있다고도 할 수 없고, 복이 없다고도 할 수 없고

다만 그런 일이 생겨났을 뿐입니다.

이것을 철학적으로는 ()’이라고 표현합니다.

()을 알게 되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