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성공한 사람들 앞에 서면 주눅이 들어서 의사 표현이 어렵습니다. (2024.12.22.)

Buddhastudy 2024. 12. 26. 19:06

 

 

저는 자신감이 부족한 편인데

특히 뛰어난 사람들이나 선배들 앞에서 더욱 그런 모습을 보이게 돼요.

일례로, 테니스 모임에서 저보다 실력이 좋은 선수들 앞에선

제가 위축되는 모습이 느껴져요.

그래서인지 그들과 편하게 대화하거나 친분을 쌓는데 어려움을 겪어요.

직장에서는 더 심각한데요,

선임 엔지니어나 담당자에게 다가가 제 의견을 표현하는 게 어려워요.

이러한 제 모습이 심지어 제가 맡은 업무에도 영향을 주게 돼요//

 

 

자신감이라는 것은

어떤 능력에 대한 자기 확신인데요.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키가 180cm인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은 키가 큰 사람일까요, 작은 사람일까요?

이 사람을 키가 190cm인 사람과 비교하면

작은 사람이라고 우리는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을 170cm인 사람과 비교할 때는

키가 큰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키가 큰 사람일까요, 작은 사람일까요?

이 사람은 키가 큰 사람도 아니고 작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냥 그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를 누군가와 비교해서 인식하면

작다고 인식되거나 크다고 인식되어서

큰 사람’, ‘작은 사람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동일한 것을 계속해서 인식하면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키가 190cm인 사람과 몇 년을 같이 살게 되면

내 키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작은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뇌의 작용 때문에

열등의식이나 우월의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등의식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학생 때부터 어떤 사람과 비교할 때

키는 나보다 큰 사람과 비교해서 작다고 인식하고

공부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과 비교해서 못 한다고 인식하고

테니스는 나보다 잘 치는 사람과 비교해서 못 친다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나보다 잘하는 사람과 비교해서

자꾸 자기를 인식하게 됩니다.

 

한 사람하고만 비교하면

그 사람보다 못하는 것도 있고

그 사람보다 잘하는 것도 있을 텐데

이렇게 각 부분에서 잘하는 사람 여러 명을 두고 비교하기 때문에

나는 뭐든지 잘못한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첫째, 열등의식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착각을 하는 데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둘째, ‘내가 무엇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돈을 중요한 가치로 삼으면

돈을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 앞에 서면

내가 약간 기가 죽습니다.

그러나 나보다 돈이 적은 사람 앞에 서면

약간 우월감을 갖게 됩니다.

내가 지위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면

지위가 높은 사람한테는 심리가 위축되는 비굴함을 보이게 됩니다.

나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는

나도 모르게 우쭐하는 우월감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부분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면

비굴하거나 우쭐대거나 하지 않습니다.

 

즉 자전거를 타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거나

이런 데에 내가 별 관심이 없으면

상대가 그것을 잘한다거나 못한다고 해도

별로 그것에 대해 연연해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위축이 되거나 우쭐댈 때는

내가 그 부분에 집착하고 있다는 방증이에요.

돈이나 지위, 테니스, 어떤 기술에 집착하게 되면

상대가 그 분야에 대해서 나보다 잘하면 비굴해지고

상대가 나보다 못하면 우쭐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열등의식은 내가 무엇에 가치를 부여하고 집착하는가에 따라

일어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겹쳐서

우리는 때로는 교만하거나 때로는 비굴한 자세를 갖게 됩니다.

저는 테니스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 테니스를 잘 친다고 해도

별로 관심이 없고, 못 친다고 해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열등의식도 생겨나지 않고,

우월의식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본인이 위축되는 마음을 느낄 때는

자신이 그것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거기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 집착을 내려놓아 버리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또한 내가 위축감을 느끼는 이유는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존재는 우월한 것도 없고, 열등한 것도 없고,

다만 그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잘못된 인식을 통해서

위축된 심리나 우쭐대는 심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서 말하면,

밤에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데

어떤 강도에게 쫓기는 꿈을 꾼다고 합시다.

객관적으로는 편안한 잠자리에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지금 강도에게 쫓기고 불안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쫓기는 것이 꿈속에서는 현실이지만,

객관적으로는 현실이 아닙니다.

 

그럴 때 꿈속에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어디에 숨거나 도망가는 것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그냥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수행이란 도망가거나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는 것입니다.

돈을 더 많이 벌거나 지위가 높아지거나

테니스를 잘 쳐서 해결하는 것은

꿈속에서 도망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꿈속에서 해결하려 아무리 도망을 가도 뒤돌아보면

늘 강도가 뒤에서 쫓아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꿈속에서 해결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더 많이 번 사람을 보게 되고

지위가 높아졌다고 해도 더 높은 사람을 보게 되고

또 기술을 터득했다던가 테니스를 잘 치게 되었다고 해도

더 잘 치는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해결이 되었어도 다시 돌아보면

또 해결이 안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반복되는 거예요.

꿈속에서 도망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눈을 뜨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내가 주눅이 드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놓거나,

이것이 상대적 비교구나

내가 그런 것을 염원하고 있어서 발생하는 것이구나

이렇게 자각하게 되면 편안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제 얘기를 듣고

이런 마음 작용을 이해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본인이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사람 앞에 가면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될 겁니다.

그래서 계속 연습해야 합니다.

위축이 될 때마다

이것은 꿈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자각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점점 개선이 될 겁니다.

 

...

 

,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만약 어떤 지방에서 학생 30명의 성적을 그래프로 그려본다고 합시다.

평균 70점이 되는 학생을 가운데에 두면

거기에 많은 학생이 분포합니다.

그다음 오른쪽으로 가면서

더 잘하는 사람, 90점을 받는 학생까지 나타납니다.

또 왼쪽으로 가면서 50점을 받는 학생까지 나타납니다.

 

이때 이 반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는 특수하다고 할만 한 학생

30명을 전국적으로 뽑아서 다시 한 반을 편성합니다.

그렇게 한 반을 편성하면 똑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거기도 1등 하는 학생이 있고,

30등 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이럴 때 지방에서 1등 하던 아이가 전국적으로 모였을 때

그 반에서 30등을 하게 되면

이 아이는 심리적으로 굉장한 열등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기가 항상 1등이라는 기준으로

어린 시절을 살아왔기 때문에

반에서 30등이 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인 모임에서 30등을 하는 것이나

지역 모임에서 1등을 하는 것이나

그 사람이 갖는 객관적인 학업 능력은 동일합니다.

즉 열등감은 심리적인 것이라는 겁니다.

 

옛날에는 혈통사회였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차별했습니다.

이때는 신분에 의해서 심리가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차별이나 신분 차별은 없어진 대신에

어린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계속 성적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학업 성적이 떨어지면

마치 옛날에 신분적으로 열등의식을 갖듯이

어린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열등의식을 갖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분 차별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심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부터 성적으로 등수를 매기고

모든 곳에서 능력을 수치화시켜서

그것이 떨어지면

마치 본인이 능력이 없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심리적인 열등의식을 갖게 된다는 측면에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입니다.

, 학교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신분제도를 만든 것과 같습니다.

 

옛날에 왕자나 귀족으로 태어나면

많은 것을 향유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처럼

지금은 학교 성적이 높거나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그 사람이 많은 수입을 갖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세뇌가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킨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입니다.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면

많은 것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옛날에 그가 신분이 높으니

많은 것을 향유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과

심리적으로는 같습니다.

 

이런 이유로

빈부격차가 점점 심해지기 때문에

앞으로 새로운 민중적 저항도 점점 거세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옛날에는 신분에 의해서 차별받는 것이 당연시되었지만

점점 그것이 부당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는데

지금은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많은 것을 갖는 것이

부당하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세뇌가

신분제도보다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공부 못해서’,

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렇게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은

마치 노예가 나는 노예니까하고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강한 정신적인 세뇌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불평등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착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과거의 관념이 새로운 관념으로 바뀐 것일 뿐이지

차별을 합리화하는 관념으로부터 해방된 상태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