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현재 두 딸이 있습니다.
그런데 셋째 아이로 아들을 갖고 싶습니다.
저는 결혼할 때부터 부모님의 의견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여자친구를 두세 번 부모님께 소개했을 때,
부모님께서 마음에 든다고 하시면 저는 대부분 그 의견에 따랐습니다.
그렇게 부모님 의견을 따르는 삶을 살다 보니
혼자서 분노를 삭이거나 풀기도 하며 50년을 살아왔습니다.
저도 아들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아버님께서 특히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하셔서 아들을 낳기를 바라십니다.
아내는 반대하는 상황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셋째를 가져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아내도 배려하고, 아버님 말씀도 따르려다 보니 둘 사이에서 많이 힘들어요.
그런데 아내는 셋째를 가지려면 이혼하자고 합니다.
아버님은 와이프가 아들을 안 낳겠다고 하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남자를 낳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십니다.
이런 번뇌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너무 답답한 마음입니다//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산에 가서 혼자 사는 것을 보여주는
‘나는 자연인이다’ 하는 프로그램이 있죠.
그것처럼 둘 다 버리고 산에 가서 혼자 사세요.
...
“그러니까요.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산에 가서 한 3년만 자연인으로 살면 된다는 이야기를 드리는 겁니다.
3년만 지나면 저절로 해결이 된다고 하잖아요.
질문자가 산에 가서 3년을 살면, 아버지가
‘이러다가는 우리 아들을 잃어버리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양보할 수도 있습니다.
아내 역시 ‘남편을 잃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에
양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손자를 포기하겠다고 한다면,
질문자는 산에서 내려오면 됩니다.
아내가 셋째를 낳겠다고 해도 산에서 내려와 함께 살면 됩니다.
양쪽 모두 버티는 상황에서 3년이 지나
아내의 나이가 40세를 넘기게 되면
상황은 자연스럽게 해결이 됩니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낳기 어려워지니까요.
그렇게 되면 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만나서라도
아이를 낳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부모의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군대에서도 법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상사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까?
아니면 불법인 경우에도 명령이니까 따라야 합니까?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명령을 받고 따라야 합니다.
그런 것처럼 아무리 자식이라 하더라도
부모의 말을 무조건 듣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 요구가 법의 테두리 안에 있고,
상식적인 윤리와 도덕의 범주 안에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원한다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윤리적으로 비난을 받을 짓을 하는 것은
효(孝)가 아닙니다.
...
질문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질문자는 정신과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부모님에 대한 효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어머니가 치매가 있든 파킨슨병이 있든
지금 질문자의 고민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병이 있으면 치료를 받으면 되는 문제입니다.
아버지가 손주를 원한다면,
아버지의 마음을 위해
‘아버지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리면 됩니다.
굳이 아버지에게
‘아내가 안 낳겠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력은 하고 있는데 잘 안 되네요’ 이렇게 말하고
그냥 넘어가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 문제는
가장 먼저 아내와 의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를 낳는 것은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아내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아버지와 의논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이 문제의 당사자가 아닙니다.
질문자는 지금 이 문제에 대해
당사자와 당사자가 아닌 사람을 동등하게 두고
‘나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는
핵심 당사자와 제3자를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는 문제에서 핵심 당사자는 아내입니다.
아버지는 당사자가 아니라 단지 요구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질문자는 아내와 먼저 의논해서
‘이러이러한 제안들이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하고 물어봐야 합니다.
만약 아내가 못하겠다고 말하면
그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아버지에게는
‘아내와 이야기해 봤는데, 나이도 있고 직장도 다녀야 해서
더 이상은 어렵다고 합니다.
아버님의 마음은 이해되지만 이 문제는 내려놓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됩니다.
아니면 ‘알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제가 피곤해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애가 잘 안 생깁니다’ 하고 말하면서
은근슬쩍 넘어가도 되고요.
질문자가 어머니의 병환과 연결 지어서
아버지의 요구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효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혹시 질문자가 심신미약이 아닌가 하고 물어본 겁니다.
만약 질문자가 정신적으로 미약한 상태에 있는 것이라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든지
아니면 관점을 바꿔 정신을 차리든지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단순히
‘아버지의 요구와 아내의 반대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문제로 봐서는 안 됩니다.
질문자의 관점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질문자는 결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린 사람이고
특히 아이를 낳는 문제라면
핵심 당사자는 배우자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당사자인 아내와 제3자인 아버지를 동일한 비중으로 놓고
‘둘 중에 누구 말을 들어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겁니다.
이것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생각입니다.
...
일단 아내가 아이를 낳는 데 동의하고
아버지도 아들을 낳으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아들인지 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낳아보겠습니다’ 하고 동의한다면
그때는 ‘그러면 일단 낳아보자.
딸이든 아들이든 그건 미리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고 답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아내가
아들이냐 딸이냐를 고민하는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는 거잖아요?
아내가 아이를 안 낳겠다고 하는데도
‘일단 낳아보자’ 하는 소리는 말이 안 됩니다.
아내가 아이를 낳는 것에 동의했다면
나중에 아버지에게
‘낳아봤는데 또 딸이네요’ 하고 이야기하면 그만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일단 낳아봐라’ 하고 말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내가 낳지 않겠다고 분명히 이야기한 상황입니다.
스님이 이런 상황에서
‘일단 낳아보세요’ 하고 말할 리가 없잖아요?
질문자는 지금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아내의 의견과 아버지의 의견을
같은 비중으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를 낳아야 할 사람은 질문자가 아니라 아내입니다.
아이를 낳는 문제에 있어서는
질문자와 아내도 동등한 비중이 아닙니다.
아내의 의견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남편인 질문자의 의견도 아내에 비하면 미미한데,
하물며 아버지의 의견은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을 만큼 비중이 없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아버지와 아내를 동등한 위치에 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자에게
약간 모자라는 사람이 아니냐고 말하는 겁니다.
질문자는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있고
가능하면 남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맞추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했는데
이것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의 각 문제에는 그에 맞는 비중이 있습니다.
부부가 아이를 낳는 문제를 두고
아버지와 아내의 의견을 동등하게 여기면서
‘어느 쪽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고 고민하는 것은
모자란 사람이 할 법한 고민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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