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12년. 오리엔트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아시리아는
메디아 왕국과 칼데아 왕국 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을 맞이합니다.
아시리아 제국이 멸망한 뒤 오리엔트는
메디아와 칼데아인들이 일으킨 신바빌로니아,
그리고 리디아와 이집트의 4강국으로 분립된 시대가 되는데요.
신바빌로니아에서는 1대왕인 나보폴라사르 왕의 뒤를 이어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수도 바빌론을 발전시켜
오리엔트의 상업권을 독차지하여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죽자
바빌론의 영광도 시들어갔으며
돈에 밝은 상인들이나 은행가들이
신관보다 더욱 부자가 되며 영향력이 커지고 있었죠.
신바빌로니아에서는 신관 세력과 은행가 간의 세력 다툼이 시작되었고
이 혼란을 틈타 메디아 왕국의 아스티아게스 왕은 군대를 일으킵니다.
바로 신바빌로니아의 상업 중심지인 하란을 뺏기 위해서였죠.
이에 신바빌로니아의 나보니도스 왕은 하란을 뺏기지 않기 위해
메디아 동쪽에 있는 페르시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요.
신바빌로니아가 손을 내밀었던 페르시아는
훗날 거대한 대제국이 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메디아의 속국으로 영토가 작은 변방지역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지역을 이끌었던 자는 키루스 2세로
그는 메디아 아스티아게스 왕의 외손자였죠.
아스티아게스 왕 입장에서는 외손자가
신바빌로니아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에 격분하여
키루스 2세를 메디아 왕국의 수도 엑바타나로 불러들였습니다.
하지만, 키루스 2세는 외할아버지의 명을 거역하고
메디아 왕과 정면으로 부딪혔죠.
아스티아게스와 키루스 2세간에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핏줄끼리 손을 잡아도 모자를 판에 대척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시리아의 멸망 이후, 4대 강국 중 하나였던 메디아 왕국은
이란계 고대 민족들이 세운 국가로
현대 이란 역사의 기초를 다진 국가입니다.
메디아인들은 아시리아가 서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던 시절
아시리아의 속국으로
이란 고원에서 뛰어난 말을 사육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쳤는데요.
기원전 7세기 초. 메디아의 2대왕 프라오르테스가
아시리아 제국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왕위를 물려받은 아들 키악사레스는
기원전 625년부터 재위한 3대왕으로서
이때부터 메디아의 국력이 강해지는데요.
그는 군제개혁을 도입해 병종제도와 부대제도를 만들었으며
그 결과 아시리아와의 전투에서 승승장구하며
지금의 터키 지방인 아나톨리아의 동쪽 대부분을 점령하게 됩니다.
키악사레스는 약 40년간 재위를 이어갔는데
재위 말기에는 스키타이족 망명자로부터
아들의 목숨이 끊어지는 사건을 겪게 되죠.
메디아에 살고 있던 스키타이족 망명자는
왕족을 죽여버린 큰 사건으로
이번에는 서쪽에 있는 리디아로 망명하게 됩니다.
이때 키악사레스는 그 스키타이족을 넘기라고 했지만
리디아에서는 거절했고
이로 인해 두 나라는 5년 동안 전쟁을 벌이게 되죠.
그러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시리아 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오리엔트 전체가 오랜 전쟁으로 지쳐있었던 만큼
주변국들은 메디아와 리디아의 화해를 추진하였습니다.
결국 키악사레스는 자신의 아들인 ‘아스티아게스’와
리디아의 공주 ‘아리예니스’와 결혼을 시키죠.
중간 정리를 위해 다시 언급하자면,
이 아스티아게스가 영상 초반부에 말씀드린 키루스 2세의 외할아버지입니다.
메디아와 리디아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질 무렵
키악사레스는 사망하게 되고
아들 아스티아게스는 카파도키아에서 이란 동부까지 뻗은 넓은 제국을 물려받게 되죠.
아스티아게스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평화로 무난한 통치를 이어갔습니다.
아내의 고향인 리디아와는 우호 관계를 유지해갔고
또 다른 강대국인 신바빌로니아는
아시리아의 멸망 때부터 우방이었기 때문에
아스티아게스의 평화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죠.
지금까지는 메디아의 역사적 흐름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제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아스티아게스와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간에 있었던
전설이나 설화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재미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스티아게스는 자신의 핏줄에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꿈에서 딸 만다네가 나타났는데
꿈의 내용이 딸의 소변으로 세상이 잠기는 꿈이었죠.
사제들을 모아 해몽을 시켜보니
‘만다네의 아이가 왕이 되어 온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아스티아게스는 ‘외손자의 포부가 대단하다.’라고 하지는 않았고
자신의 권력을 뺏길까봐 두려워했죠.
그래서, 만다네의 아이는
메디아 왕국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딸을 변방에 있는 세력이 약한 페르시아에 시집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만다네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아로 시집을 간 만다네는 태몽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만다네의 다리 사이에서 포도나무가 자라
온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꿈이었죠.
소식을 들은 아스티아게스는 또 다시 해몽을 시켰고
답변은 이전과 똑같이 만다네의 아이가 온 세상을 통치한다는 내용이었죠.
이에 아스티아게스는 신하 하르파고스에게 만다네의 자식을 죽이라고 명합니다.
하르파고스는 원래 메디아의 왕족이었는데요.
아스티아게스의 친척이었으며 충성도가 높은 신하로서
왕으로부터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에게 만다네의 아들을 죽이라는 어려운 명령을 받고서
하르파고스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리하진 못했죠.
그 이유는 인간적인 면도 있었지만
당시 아스티아게스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그렇다면 차기 왕은 만다네의 아들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이 생각할 때는 왕족을 없애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에 소치기를 불러 아이를 없애라고 시켰는데
소치기는 자신의 집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서는 차마 죽일 수 없었던 거죠.
그때 마침, 소치기 집안에서는
아기를 낳다가 사산한 아들이 있었고
이를 바꿔치기해서 하르파고스에게 시신을 보냅니다.
하르파고스는 자그마한 시신을 보고서는
만다네 아들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았는데요.
그리고는 시신을 아스티아게스에게 가져가 임무를 끝냈다고 보고 합니다.
살아남은 아이는 자라서 소년이 되었고
어느 날 소년은 동네 아이들과 왕 게임을 하고 놀았죠.
이 소년이 바로 키루스 2세였는데
소치기의 아들로 자라는 동안의 이름은 저도 모르겠네요.
설명의 편의를 위해 키루스 2세라고 부르겠습니다.
왜 이름이 키루스 2세인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키루스 2세의 친할아버지가 키루스 1세이며
아버지는 캄비세스 1세였던 거죠.
메디아의 왕 외할아버지 아스티아게스가
외손자 키루스 2세를 없애려 했던 것이고
키루스 2세의 이름은 아버지 쪽의 이름을 이어받았습니다.
어쨌든 키루스 2세는 동네에서 왕 게임을 하고 있었고
그 게임에서 왕으로 뽑히게 되었는데
다른 고위 관리의 아들이
‘내가 왜 소치기 아들의 말을 들어야 되냐’며
게임의 법칙을 훼방 놓았죠.
키루스 2세는 게임의 법칙을 훼방하는 고위 관리직의 아이를 보며
규칙을 지키지 않는 행위에 대해 화가 나서
고위 관리직의 아들에게 싸움을 걸어 두들겨 패버립니다.
고위직의 아들은 몸싸움에 밀려 자신의 아버지에게 일러바쳤고
귀족인 아버지는 키루스 2세를 법적으로 고발하게 되죠.
보잘 것 없는 소치기 집안의 아이가
귀족 가문의 자제을 흠씬 두들겨 팼다는 사건은
신분 사회를 흩트리는 중대한 사건으로 취급되었고
키루스 2세는 당시 페르시아를 속국으로 두고 있었던 메디아 왕의 앞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아스티아게스는 소치기의 자식이 어디 주제도 모른 채
귀족 가문의 자제를 폭행했다고 추궁하였고
키루스 2세는 아무리 게임이라 하더라도
내가 게임의 규칙에서 왕이었기 때문에
내 말을 어긴 것이 먼저 죄라고 변론했죠.
또박또박 대답하는 소년을 보며 아스티아게스는
소년이 자신의 외손자임을 알아채게 됩니다.
그리고, 지난 날 아이를 없애라고 시켰던 하르파고스와 소치기를 불러 심문해보니
외손자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마치, 백설공주와 왕비가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아스티아게스는 사제들을 모아서 어떻게 할까 논의를 하였고
사제들은 아이들의 놀이라 하더라도 왕이 되긴 했으니까
따님께서 꿈을 꾸었던 외손자의 야망은
여기서 끝이 난 것이라고 해석했죠.
그렇게 키루스 2세의 목숨은 살아났고
동시에 출생의 비밀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깔끔하게 해피엔딩이 되지는 않았는데요.
아스티아게스는 충신이었던 하르파고스가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서
그동안 자신을 속였다 생각하여
괘씸하다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어느 날, 아스티아게스는 하르파고스와 그의 13살 된 아들을 식사에 초대했는데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는
하르파고스의 아들을 다른 곳으로 물러나게 했는데요.
그리고 술과 고기와 함께 연회를 베풀며
하르파고스에게 맛좋은 고기를 선사합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친 하르파고스를 보며
아스티아게스는 남은 고기를 가져오라 했고
가져온 광주리 안에 고기는
다름 아닌 하르파고스 아들의 다른 부위들이었죠.
이에 하르파고스는 식사 자리에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왕이 시킨 임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사죄한 뒤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아스티아게스는 하르파고스의 태도에 만족했고
앞으로는 잘하라며 부하를 집으로 돌려보냈죠.
집으로 돌아간 하르파고스는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듯이 왕궁에 출근을 하며
자신이 맡은 임무를 착실히 하며 일상을 보냈는데요.
하지만, 당연히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복수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티아게스는
무슨 일이든 착착 해내는 하르파고스의 충성에 의심을 하지 않았죠.
세월은 흘러 페르시아에서는
성인이 된 키루스 2세가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으며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하르파고스는 때가 왔다고 판단하여
토끼의 뱃속에 밀서를 넣어 키루스 2세에게 보내
메디아에 대한 반란을 부추겼죠.
또한, 자신의 주변 인맥들과 중신들에게도
정치력을 행사하며, 포악한 아스티아게스를 몰아내고
새로운 왕을 옹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편, 하르파고스의 밀서를 받은 키루스 2세는
그동안 메디아의 지배에 불만을 품고 있던
페르시아인들을 통솔하여 반란을 일으키는데요.
신바빌로니아의 하란을 노리고 있던 아스티아게스는
외손자의 내부반란이 깜짝 놀라게 됩니다.
키루스 2세를 수도로 불러들여 다독여보려고 했으나
이미 키루스 2세는 페르시아인들의 상징이 되어 메디아를 공격하기 시작했죠.
이에 아스티아게스는 페르시아의 반란을 잠재우고자
평생 자신을 보필했던 하르파고스에게 군대사령관을 맡겼습니다.
하르파고스의 속내를 모르고 있었던 아스티아게스는
또 한 번의 당황함을 맞닥뜨리는데요.
당연하게도 하르파고스는 키루스 2세를 공격하기는커녕
되려 키루스 2세와 합류하여 메디아에 칼날을 겨누었습니다.
분노한 아스티아게스는 잔류 병력을 모아 직접 페르시아군과 맞붙었지만
결국 메디아군은 패배하였고
아스티아게스 본인도 포로로 잡히게 되죠.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에서는
이때, 아스티아게스는 키루스 2세에게 참수를 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페르시아 시조에 얽힌 설화일 가능성이 있으며
키루스 2세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아버지를
참수시키진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죠.
기원전 550년경. 키루스 2세는 페르시아의 독립을 이끌어 메디아 왕국을 점령하였고
이는 앞으로 페르시아가 대제국으로 향하는 서막이 되었습니다.
하르파고스는 메디아 시절 아스티아게스를 모신 충신이었으나
이를 계기로 페르시아의 개국 공신이 되었죠.
키루스 2세는 메디아를 손에 넣은 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를 건국합니다.
메디아는 통째로 페르시아에 흡수되었지만
메디아인과 페르시아인은 사이에서는 큰 차별은 없었다고 하는데요.
두 민족 모두 아리아 계로 훗날 이란으로 불려지며
현재 시대까지 민족이 이어지게 됩니다.
오늘은 아시리아 멸망 이후
4대 강국으로 존재했었던 메디아와 신바빌로니아 시절부터 이야기를 꺼냈는데요.
서아시아의 힘싸움은 4대 강국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형태였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메디아의 속국 페르시아가 힘을 키워나간 흐름이었죠.
지금까지 메디아의 마지막 왕 아스티아게스와
키루스 2세의 얽힌 사연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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