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이 세상은 그냥 허무해요.
나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는 말은
상징적인 의미에요.
무엇이냐 하면요
혹시 공자님 말 중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을 아시나요?
이 말이 일종의 공자의 자기 계발론이거든요.
뭐냐면
수신, 내 몸부터 닦고
그다음에 가정
그다음에 국가
그다음에 천하를 평화롭게 한다는 거예요.
천하를 논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 천하를 정말 평천하하려면, 평화롭게 만들려면
나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사소한 일부터 점검하고 변화를 하라는 겁니다.
조던 피터슨도 똑같이 얘기하는 게 뭐냐하면
이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는 거예요.
심지어, 톨스토이 아시죠?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라는 위대한 소설을 써서
러시아의 대문호, 세계적인 소설가라고 불리잖아요.
이 분도 사소한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그래요.
이 분이 작가로서 명성과 영향력이 정점에 올랐을 때
이때 이 분이 갑자기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해 의문이 들었대요.
세상에서 이것저것 다 얻고 나니까 갑자기 삶이 허무해진 거예요.
그리고 내가 도대체 삶을 왜 살아야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톨스토이가 너무 허무주의에 빠져서 이런 글을 일기장에 남겼다고 그래요.
“내 상황은 참담했다.
삶을 부인하는 것 외엔 다른 길이 없다는 걸 알았다.
신앙에서도 이성을 부인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었다.
나에게 이성을 부인하는 것은
삶을 부인하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합리적인 지식에 따르면
삶은 사악하고 사람들도 그렇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굳이 살 필요가 없음에도 사람들은 과거부터 줄 곳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나 자신도 삶이 무의미하고 사악하다는 걸
오래전에 알았음에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이 말이 좀 어려운데요
한마디로 얘기하면 그거에요.
삶은 허무하잖아요. 삶은 고통으로 쌓여있잖아요.
이게 합리적인 지식이잖아요.
이런 것에 따르면 이 삶을 살 필요가 없는 거예요.
어차피 고통인 삶을 왜 삽니까?
굳이 살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런데 왜 과거부터 줄 곳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고 있냐 이거예요.
이렇게 반문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의미하지만 그냥 산다는 거죠.
이게 인생이라는 거죠.
여러분, 정말 이런 생각에 동의할 수 있나요?
정말 이게 맞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나요? 삶이 진짜?
톨스토이처럼 심원한
되게 깊은 정신세계를 지닌 작가조차도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는 거예요.
삶의 진실, 고통이죠.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받아들이면서도
세상을 향해 분노하지 않는 길은 정말 없는 걸까?
조던 피터슨이 주목했던 건 뭐냐하면
삶에 밝은 점들을 발견한 사람들이에요.
끔찍한 과거를 겪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끔찍함을
타인에게, 이 세상에 다시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거죠.
정 반대의 존재가 돼 가지고요.
그러니까 세상에 고통을 넘어선 존재를 만나러 다닌 겁니다.
그랬더니 세상에 잘 알려진 사람도 있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학대를 당했으나 학대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선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죠.
대표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오프라 윈프리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의 폭력에 시달렸으나 오히려 부모의 존재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것을 전파한 사람들도 있죠.
이런 훌륭한 사람들의 밝은 점을 찾아나선 사람들을
니체는 한마디로 정리했습니다.
“모든 고통이 반드시 허무주의를 낳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고통이 든 실체적 공통이든 지적인 고통이든 무엇이든 마찬가지다.
그런 고통은 항상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세상의 고통은 있지만
그 고통을 해석하는 것은 다양하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처럼, 톨스토이처럼
그 악에서 허무주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허무주의에서 오히려 그 허무주의의 일원이 되어서 폭력과 범법을 저질렀다, 세상을 향해,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오히려 그 악을 더 철저하게 깨닫고
선으로써 승화시킨 사람이 있다는 거죠.
대표적인 사람, 선으로 승화시킨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누구냐하면
바로 솔제니친입니다.
이 사람도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예요.
톨스토이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다릅니다.
솔제니친은 20세기 중반에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이 되어서 약 10년을 복역을 해요.
왜 그랬냐면, 이 당시에 세계 2차대전 당시인데
이때 소련군 포병장교를 복역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때 그 러시아, 소련의 지도자가 스탈린이죠.
그 사탈린을 비판하는 내용의 편지를 친구에게 보냅니다.
그게 발각이 되어서 체포되어 죽도록 맞으며 수용생활을 시작 한 거예요.
심지어 이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암에 걸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솔제니친은 불우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삶의 방식을 바꾸고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같은 소설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타죠.
그리고 1973년에도 <수용소 군도>를 써서
인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는 거예요.
“위대한 정신은 현실을 탓하지 않는다.
삶을 혐오하지도 않고
하나님도 원망하지도 않는다.”
왜그러냐하면요
아무리 세상이 그렇고 환경이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살아가는 인생의 100%는 아니거든요.
무슨 말이냐?
세상은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나라는 존재의 공간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지금 이 순간 뭔가는 할 수 있다는 거죠.
기본적으로 인간은 견디기 힘든 현실 앞에서
남 탓, 불평불만을 하고 싶어 해요.
그런데 이런 행동 자체가 이미 뭐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이 세상은 그냥 허무해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이렇게 나의 주도권, 나의 통제범위를 스스로 부인하는 행동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러냐 이거죠.
당신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100% 정말 활용했느냐?
냉정하게 물어보라는 겁니다.
정말 내가 지금 이 환경에서, 억울한 환경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영역이 정말
단 1%도 0.01%도 없을까요?
아니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실천 방안으로서 어떻게 나오는 거냐 하면
“작은 것부터 살펴보자”
이런 지침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게
당신 삶을 깨끗이 정리하라.
방부터 정리하라, 이렇게 연결이 되는 거예요.
작은 질문부터 던지는 거.
그 세상의 악과 나와의 존재는 이퀄이 아니에요. 100%가 아니에요.
나라는 존재가 분명,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으면, 나쁜 것을 찾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으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찾으면
하라는 거죠. 오늘 당장.
그게 나쁜 습관이라면 당장 중단하라는 거죠.
남 탓, 불평불만 하지 말고
합리화하는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런 것들은 혼란을 키우고
오늘의 나의 실천을 방해할 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당장 중단하고
몇 개월, 혹은 몇 년 동안 꾸준하게 한다면
당신 삶은 점점 단순해 질 거라는 겁니다.
판단력이 향상될 거라는 겁니다.
꼬이고 뒤틀린 과거 문제들도 차차 정리가 될 것이라는 겁니다.
냉소주의에서 벗어나서 강인한 정신을 갖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당당한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는 겁니다.
인생의 비극은 피할 수 없어요.
분명히 순간순간 비극적인 일들이 발생할 거예요.
하지만 더 악화되는 건 최소한 막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사소한 것부터 내가 할 수 잇는 것부터
집중해서 달라지려고 계속 노력한다면
그리고 비극은 있지만 그 비극보다 더 큰 성공과 성취, 성장으로
이런 걸 커버할 수 있는 내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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