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사법부(司法府)가 아니라 사법부(司法部)였다.”
-이영섭 전 대법원장 퇴임사 (1981년 4월 15일)
1981년 4월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중도 퇴임한 이영섭 대법원장은 퇴임사를 쓰면서
‘司法府’(입법·행정·사법 3부의 한 축)를 이렇게 ‘司法部’(행정부에 속한 부처)라고 썼습니다.
삼권 분립의 한 축이어야 할 사법부가 행정부의 일개 부처로 전락해버렸다는 신랄한 비판이자 자조의 의미였죠.
그는 “회한과 오욕만이 남았다”는 내용의 퇴임사를 남겼습니다.
법원을 기록한 여러 가지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전두환 신군부는 사법부를 정권의 수족과도 같이 길들이고자 했습니다.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사흘 동안 모진 고문…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커피잔을 들긴 했으나 제대로 입에 대지 못하고 옷에 줄줄 흘렸다.
- 동아일보 (2005년 8월 13일)
총이 곧 법이었던 세상.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의 대법원 상고심에서 ‘단순 살인’이라고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은 보안사로 끌려가서 심한 고문을 당했다 하고...
“전 대통령의 지시로 대법원장 후보 면접시험을 봤다”
- 박철언 <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
당시 신군부 핵심에 있었던 인물은 자신이 면접을 통해서 대법원장을 뽑았다고 회고했습니다.
“대임이 주어진다면…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정부에 협력하도록 하겠습니다.”
- 박철언 <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
이렇게 기록된 당시 대법원장 후보들의 충성서약은 이러했으니...
총칼에 무릎 꿇었던 사법부 굴종의 역사는 참담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의 퇴임사는 빛나는 자부심으로 가득했습니다.
“오랜 역사적 교훈을 통해 이룩한 사법체계에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퇴임사 2017년 9월 22일)
그러나 오늘 그가 해명해야 할 범죄사실은 40여 가지...
그의 퇴임사와는 정반대로 오늘 사법부는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와는 관계없이 또다시 ‘회한과 오욕’의 날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법관은 되지 않겠다.”
40년 전의 사법부 수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다시는 사법부 굴종의 역사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매우 간절한 소망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간절함과는 정반대로 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진 오늘.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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