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용금옥의 안주인은 안녕하신가?”
1953년 판문점 휴전회담이 한창이던 시기
북측 대표단의 한 사람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용금옥의 시작은 1932년.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중 하나였으니
전쟁 통에 북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그 맛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용금옥이 무교동 그 자리에 있습니까?”
지난 73년 북한 측 인사에게서 나온 질문이었다.
-동아일보 1995년 4월 18일
1990년 서울을 찾은 연형묵 북한 총리도 이틀 연속 이곳에 들러 추탕, 즉 추어탕을 먹었고 남한을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입이라도 모은 듯
“용금옥이 아직도 있습네까?” 이렇게 질문했다 하니...
오래된 음식에 대한 공통된 기억은 체제로 인해 갈라진 마음까지도 풀어내는 묘한 맛과 힘을 지닌 것 같습니다.
흔히들 오래된 식당을 일컬어 노포라 합니다.
‘고포’ 古鋪가 아니라. ‘노포’ 老鋪
마치 사람마냥 ‘옛 고’자 대신 ‘늙을 로’자를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 한 시대가 들어오는 듯한 식당들이 있다.”
-박일찬 <노포의 장사법>
박의찬 셰프의 정의에 따르면
노포란
세월과 함께 기록된 맛의 기억을 의미합니다.
“문화재란 꼭 금불이나 그림, 불상만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살아있는 우리 삶의 비늘들이 다 문화재다.”
-박찬일 <노포의 장사법>
그의 말처럼 우리에게 노포란
사람과 함께 나이 들고, 맛이 절로 깊어가는
개개인의 역사이자 추억이었던 것...
어제 서울시가 도심에 남아있는 오래된 가게들에 대한 보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도심을 깔끔하게 재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멈춰 세운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노포’였습니다.
시민이 원한 것은 허름함을 밀어낸 산뜻함이 아니라 오래된 냄새와 세월의 비늘이 생생한 기억의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용금옥의 안주인은 안녕하신가...
1930년대에 시작되어 현대사와 함께 나이 들어간 노포의 추억...
그리고 현대화된 도시...
깨끗한 풍경 뒤로 하나둘 자취를 감추게 될지도 모를 허름한 과거들을 향해 던지는 질문...
‘우리의 노포는 안녕하신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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