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저격수는 긴 총신을 들어서 상대편을 조준합니다.
반전의 의미를 담은 공익광고의 한 장면.
그의 총구는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향하고 있었는데
가만 보면 상황은 완전히 뒤바뀝니다.
사진을 원기둥에 불였을 때, 그의 총구는 상대방이 아닌 자신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죠.
광고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짐작하셨겠지요.
“가와사키 살상사건은 재일한국인의 소행일 것이다!”
“재일한국인은 일본에서 쫓아내야 한다”
일본 우익들 사이에선 지난주 도쿄 인근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이
차이니치, 즉 한국계 교포의 소행이라는 유언비어가 돌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어떠한 근거도 없는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조선인 일당 상수도에 독을 살포
죄수 삼백명 탈옥하고 조선인과 함께 큰 만행’
-가에쓰신보 1923년 9월 3일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고 날조했던 1923년의 관동 대지진을 시작으로
“구마모토의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지진은 재일한국인의 소행이다! 용서하지 말아라!”
동일본대지진과 구마모토 지진 등 세상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어김없이 등장한 악성 루머들.
내부를 결속시키는 동시에
책임을 외부로 떠넘기고자 했던 의도가 분명해 보이지만
상대방을 향한 근거 없는 그 날조는 멀리 갈 것도 없이 가까운 원을 그리며 돌고 돌아
결국 일본 우익 스스로의 품격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어떤 면에서는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보다 지도자로서 더 나은 면이...”-정용기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
제1 보수야당이 국회의원은 자국의 대통령을 비판하고자 꺼낸 얘기가
이른바 ‘적국’의 최고지도자를 한껏 높인 결과가 돼버렸습니다.
“골든타임은 기껏해야 3분”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
그런가 하면 정부 대응을 비판하고자 내놓았던 그 비아냥 역시 애가 단 사람들의 마음을 오히려 부대끼게 했지요.
긴 총신을 들이대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저격수
그러나 다르게 보면 총구는 결국 자신을 향하고 있는 아이러니
그 반전 광고의 제목은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 뿌린 대로 거두리라’ 였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 그리고 오늘은 사족을 하나 달아드립니다.
마침 오늘은 진보와 보수의 이른바 대표적 논객인 두 사람이 만나서 토론을 벌인 날이죠.
토론 진행을 업의 하나로 삼아온 입장에서는 한때는 그래도 토론의 낭만 시대가 있었고
이 두 사람이야말로 그런 시대의 주인공들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는 감상을 덧붙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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