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소리
이 시간에는 고요한 소리에서 펴는 법륜시리즈 13번째 책인
구나라뜨나 지음, 유창모 옮김,
<우리는 어떤 과정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글을 쓴 구나라뜨나 씨는 평소 이 주제를 즐겨 다루어 온 분으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불자인 저자는
재생이라는 이 중요한 주제에 관해 글을 쓰고 강연을 해왔다.
그는 이 짧은 글에서
재생에 관한 모든 복잡 미묘한 문제점들을 매우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떤 과정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과정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가>
<재생에 대한 아비담마적 해석>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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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변화의 법칙
이 책의 목적은 윤회를 증명하는 데 있지 않고
윤회론에 대한 불교의 관점을 이해하고 다시 태어나는 현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사실과
불교적 논리 체계를 소개하려는 데 있다.
라다크리슈난은
“생명과 움직임으로 가득 찬 이 거대한 세계는
항상 생성하고, 변화하지만
그 중심에는 한가지 법칙이 있다”고 말했다.
이 중심 법칙이 바로 법 담마이다.
불교도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법은 우주의 근본 법칙으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스스로 드러나는데
이 법의 작용으로 재생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이들 몇몇 법칙에 대한 검토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들을 법칙이라 부른다 해서 어떤 통치기구가 반포했거나
사람이 제정한 규칙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이들은 사람이나 물질의 경우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사물에도 똑같이 작용하는
일정한 작용방식을 가리킨다는 의미에서
자연법칙 혹은 원칙이다.
부처님은 이들 법칙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다만 찾아내어 세상에 선포하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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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법칙
윤회생사를 이해하기 위해 검토해야 할 첫 번째 근본 법칙 혹은
원칙은 변화의 법칙이다.
그것은 이 세상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고 정태적이 아니라고 가정한다.
달리 말하면 모든 것은 변화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무와 곤충, 꽃과 열매, 상품이나 기타 소유물, 건물과 땅, 사람과 동물
간단히 말해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예외 없이 이 보편적인 변화의 법칙에 지배받는다.
어떤 경우에는 이 변화가 눈에 보이게, 그리고 단기간 내에 일어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주 느리게 서서히 일어나 변화의 과정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후자의 경우에는 강과 산뿐만 아니라,
과학의 주장대로 그 변화 과정이 수백수천만 년도 걸린다는 해와 달 그리고 별까지 포함된다.
참으로 우주의 다양한 운행은 그 전체가 하나의 끊이지 않는 변화이다.
그러면 이 변화란 무엇인가?
변화의 모습은 실로 다양하고 드러나는 방식도 다양하기 그지없다.
성장과 쇠퇴, 상승과 몰락, 증가와 감소, 엉겨듦과 흩어짐, 확장과 수축, 단일화와 다양화, 제한과 확대, 진보와 퇴보 등은
변화의 일반적 양상들이다.
변화의 모습이 어떤 갈래로 오든 간에
하나의 조건이나 상태에서 다른 조건이나 상태로 바뀌는 것이
모든 변화의 본질이다.
이 변화는 모든 사물의 어김없는 특성이다.
변화는 세상을 지배한다.
그 어디에도 영속성과 영구불변은 없다.
시간이 모든 것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시간은 우리도 그대로 두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우리는 변화하는 세계 속에 살면서 그 변화의 와중에 우리 자신도 내내 변화한다.
이것이 바로 저 엄정한 법칙, 삽베 상카라 아닛짜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는 諸行無常제행무상의 법칙이다.
이 변화의 법칙의 중요한 특징은 모든 것이 변하게 마련이면서도, 그 무엇도 결코 없어지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직 그 형태만이 달라질 뿐이다.
그래서 고체는 액체가 될 수 있고 액체는 기체로 변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 어떤 것도 완전히 없어지는 법은 없다.
물질은 에너지의 한 표현이며
따라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는 과학 원리에 의하면
그것은 없어지거나 소멸될 수 없다.
생리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인간의 몸이 잠시도 쉴새 없이 변화를 겪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해서 인체의 모든 부분
피부, 뼈, 머리, 손톱은 7년마다 한 번씩 완전히 새로 바뀌게 된다.
심지어 죽음에 이르러서도 신체는 어느 한 군데도 소멸되지 않는다.
역시 그 모습만이 바뀔 뿐이다.
생명이 없어진 신체의 각 부분들은
해당 부위의 성질에 따라 액체나 기체, 광물이나 염분 등으로 변화된다.
생리학은 인간의 육체가 7년마다 한 번씩 바뀐다고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몸은 살아있는 동안 보이지 않는 변화를 끊임없이 겪는다고 가르치셨다.
이 같은 미묘한 변화과정을 불교심리학 아비담마에서는 찰나적인 죽음이라 부른다.
여기서 우리 한번 생각을 가다듬어보자.
어린애가 젊은이로 변하고, 또 젊은이가 노인으로 변한다는 것은
미상불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젊은이는 어릴 적 그와는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
그런데도 젊은이가 어린 시절을 기억해 낼 수 있다니.
마찬가지로 노인은 젊은 시절을 기억해 낸다.
따라서 우리가 한 개인의 동일성 운운하는 얘기는
결국 끊임없는 변화과정의 연속성을 두고 하는 말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어린이와 청년과 노인을 동일인으로 간주하게 되는데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한 생은 끊임없는 변화과정이면서도
그 가운데 어떤 지속적 연속성이 견지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변화의 법칙이 갖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성을 생각하게 된다.
즉 한 조건 혹은 상태와 그다음 나타난 조건·상태 사이를 가르는 분명한 경계선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 조건이나 상태는
각각 물샐틈없이 밀폐된 칸막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조건과 상태는 다음 조건과 상태로 융화(融化)되어 들어간다.
넘실대며 출렁이는 대양의 파도를 생각해보자.
솟아오른 파도는 저마다 다른 파도를 이루며 가라앉고
그 다른 파도는 또 다른 파도를 일으키며 솟구쳤다 가라앉곤 한다.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파도의 어느 한 점 어느 위치를 가리키며
그곳에서 하나의 파도가 끝나고 다른 파도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파도는 번번이 다음 파도 속으로 합쳐 들어간다.
하나의 파도와 다음 파도 사이에는 경계선이 없다.
이 세상에 변화하는 모든 조건들도 그와 같다.
영국의 리스 데이비스 교수가 미국의 어느 강연에서 말했듯이
“어떤 경우에나 시작이 있자마자 바로 그 순간 끝남도 시작된다.”
따라서 이 변화는 하나의 지속적인 과정이고, 하나의 변천이며 흐름이니
이는 현대의 과학적 사고와 완전히 일치하는 개념이다.
그와 같은 개념은 다시 다음 장에서 검토할 다른 두 가지 근본 법칙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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