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80] 믿음과 의식은 둘이 아니다 | 보고 듣고 느끼고 안다

Buddhastudy 2025. 2. 19. 19:51

 

 

깨달음이 무심을 깨닫는 건데

이 무심은 말하자면

±0 상태라고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네요.

 

우리 마음이 ±0인 상태

그러니까 그게 우리들의 본질이다, 이거예요.

무심이 본질, 성품.

 

그러니까 우리들의 가장 본래 상태

그것은 우리 마음이 일어나고 가라앉고 하는데

그게 좋다 나쁘다 하는

그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는

±0 상태.

 

공부를 하면 할수록

결국은 우리의 본래 상태

이게 무심이 본래 상태예요.

 

우리의 본래 상태에 대한 믿음

그리고 믿음의 반대말은 의심이잖아요.

그러니까 믿음과 불신, 의심

여기에 대한 선택이라고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마음공부는

믿느냐? 의심하느냐? 의 선택인 것 같아요.

 

근데 인간의 생리상 믿으려면

확인을 해야지 믿어져요.

그래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게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결국에는 믿느냐?

우리의 본래 상태가 본래 청정하다는 사실을

그것을 믿느냐? 의심하느냐?의 문제에서

많은 선각자들이 깨닫고

우리의 본성이 본래 청정하더라, 했으니까

그 사실을 믿는 게

우리한테는 공부의 가장 핵심 같아요.

 

먼저 분들이 먼저 깨닫고

지금 육조만 하더라도

15년 동안 숨어 지내다가 다시 나왔을 때

자기 신분을 드러내고 다시 나와서 법상에

그때까지는 더벅머리 총각이었는데

머리를 깎고 법상에 올라가서 처음 하신 말씀이

딱 계구일성 조계종지 조계대사

육조 혜능 조계대사의 조계종지는

보리자성이 본래 청정하다.

 

우리 첫 시간에 배웠잖아요.

보리_ 깨어 있는

자성_ 우리들의 본질이

본래 청정하다.

그러니까 이게 지금 그 조계종의 종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조 대사의 가르침의 핵심.

 

그러니까 우리들의 본성, 우리들의 성품

우리들의 본래 모습은

본래 모습이죠.

우리 마음의 본래 모습은 청정하다.

근데 거기에 대해서 믿느냐? 의심하느냐? 의 문제예요.

 

그래서 이거를 모르는 것을 무지, 무명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가 있고요.

그래서 지금 요점은

이런 말씀을 왜 드리느냐 하면

인생의 행복의 기술

우리 인간이 지금 뭐 80억 인구가 있다고 그러고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우리 선조들이 살다 가셨지만

모든 사람의 공통된 소망은

그냥 간단하게 말을 하면

행복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공부하는 것도 행복이잖아요.

그러면 행복의 기술

그거는 우리들의 본래 상태인 무심

±0의 우리 마음 상태

그 상태로 돌아가는 힘을 기르는 것

우리 마음이 ±0 상태로 돌아가는 힘을 기르는 게

행복의 기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친 +는 우리가 살아보면 알잖아요.

지금 이게 너무 좋은데하면

스물스물 그 뒤에, 자기도 모르는 뭔가 약간 불안해지는 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경험상

이게 너무 지나치게 좋은데할 때는

, 이 뒤에 뭔가가 또 그것을 잃어버리는 상실감이 따라오겠구나하는 게 느껴지고

또 좀 힘들 때는

힘들지만 이걸 잘 버티면 또 좋은 쪽으로 또 돌아설 거다하는

그런 믿음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파동인 거죠, 인생에.

그래서 항상 ±0에 대해서

내가 좀 좋다 하면

±0로 복귀하자

또 좀 나빠도

그 나쁜 걸 잘 견뎌서, 경험을 해내서 ±0 상태로 복귀하자

±0로 돌아가는 게 행복의 기술이고, 지혜라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돌아가는 데, 유용한 방법이

돌아가는 방법을 선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0로 돌아가는 방법을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하죠.

회광,

_ 의식이에요.

의식이 이렇게 나가는 것을

의식이 현상계에서 집착하는 것을 돌려서 거꾸로 비춘다.

그러니까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반조라는 말이 ±0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0가 우리 존재의 집이라고, 고향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우리는 지금 문제는

집을 떠나서 돌아가야 되는데

집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지 좀 오래됐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이게 지금 이 고통스러운 인생의 모습이에요.

 

하여튼 공부는

하루 빨리 ±0 상태를 자기가 이렇게 확인하고

그다음에 이걸 믿고 사는 거예요.

믿고 살면서

언제나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경계를 부닥칠 때마다, 경계를 만날 때마다

나의 ±0 상태로 이렇게 돌아가는데

그 돌아가는 것을, 회광반조를 다른 말로는

믿음이라고 할 수도 있다.

믿음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인간은 굉장히 의심이 많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 믿음이 이루어지려면

확인을 해야 되는 거죠.

정말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것을 강화해 가는 게 공부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불교에서는 이런 말씀을 길게 드리는 이유는

이 모든 방법이

본질로 돌아가는 방법을 쌍차라고 그렇게 부른다 이거예요.

이거는 이 말을 제일 처음 쓴 사람은 천태지자 선사예요.

천태지위 혹은 천태지자라고 하는 천태 대사가

이 초기 불교와 대승불교의 모든 수행법을 총정리해서

불교는 중도라고 딱 정의를 내리고

그리고 그 중도를 이루는 방법을 쌍차쌍조라고

쌍차는 항상 플러스, 쌍조가 따라옵니다.

 

그래서 항상 제가 이런 대목을 만날 때마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하고

혜능이 쫓아온 혜명한테 이야기하잖아요.

이거를 천대지자 대사 같으면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이게 쌍차라는 거예요. 쌍차, 쌍으로

_ 막을 ,

차양이라는 말 많이 쓰네요. 차양, 햇볕을 막는 텐트 같은 거 있잖아요.

가게에 그걸 차양이라고 하잖아요.

태양을 막는 것, 햇볕을 막는 것

그러니까 막을 차자.

 

쌍차 선도 막고 악도 막아라.

왜냐하면 선을 추구하다 보면

선은 선만으로 존재하지는 않아요.

항상 악이 같이 존재해요.

그러니까 이게 현상계의 법칙이에요.

 

현상계의 법칙은 상대성이라서

선과 악이 항상 같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가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은

선과 악을 같이 막아서

그 중립상태를 내가 확보하는 것

확보하고 나면 쌍조는 얼마든지

선을 해도 되고 얼마든지 악을 또 겪어도

견뎌낼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현상계에 사는 한은

선과 악이라고 하는 상대성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는데

근데 그 중도의 자리, 우리의 본성의 자리를 확보한 사람은

얼마든지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마음껏 선을 행하고

또 마음껏 악에 대해서도 대항할 수가 있다.

 

그러려면 이 중도의 자리를 확보하고 사는 게

인생의 가장 지혜다라고 할 수 있어요.

 

행복의 비결= 중도의 자리를 확보하는 것

 

그럼 중도의 자리는 무엇인가?

중도의 자리를 무심을

무심을 쌍차라고 한다면

쌍조를 평상심이라고도 해요.

 

항상 중도는 짝을 이룬다.

쌍차, 쌍조,

무심, 평상심

그래서 차조

차와 조 사이에 자유자재로 하기 때문에

차조 자유자재, 차조자재 이거를

항상 차조를 동시에 한다고 그렇게 표현을 해요.

 

그래서 이게 중도의 법칙이에요.

쌍차+ 쌍조, 무심+ 평상심= 중도

중도를 다른 말로 연기, 혹은 불이

이게 하나의 기준이라서

이런 말을 보면 똑같이

중도를 썼구나

 

그러니까 혜능이라고 하는 분이

깨닫고 난 뒤에

천태지자의 쌍차쌍조라는 말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지혜가 탁 나오는데

지혜의 모양이 쌍차쌍조하는 모양이다.

쌍차를 하면 쌍조가 된다고 봐요.

동시라고 봐요.

 

그래서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이거는 양쪽을 막았다.

그랬더니 뭐냐?

자기의 본래면목으로 돌아온다.

회광반조가 된다.

이게 하나의 원리예요.

 

원리라서 이런 걸 보면

우리가 이걸 통해서 불교, 어떤 대목을 봐도

쌍차쌍조해서 중도를 이루는 것이 불교의 기본 구조다.

그러니까 이걸 우리가 알 수가 있어서

이런 말씀을 지금 드리는 거예요.

 

평상심을 평정의 상태를

_ 늘 내가 유지하는 것,

다시 말하면

무슨 일이 있을 때는 평정에서 벗어나서

마음껏 그런 감정을 누리다가도

항상 끝나면

이 자리로 돌아오는 것

 

이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또

_ 살이라는 단어로도 쓰고

선에서는 좀 이렇게 무지막지한 말을...

죽인다

그러니까 현상에 집착하는 마음을 죽인다

그러면 평정상태로 돌아온다.

근데 평정상태로 머무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참여하는 것은 활

이 조()자는 활()

그래서 살활자제

쌍조동시

즉 무심, 평상심의 중도.

 

제가 여러분 틈이 날 때마다

제가 이런 말 반복해서 드리는 거

이제 귀 딱지가 앉으셨죠?

그러니까 이 하나의 기준이 있으면 참 좋아요.

 

그래서 결국 무엇을 믿는가?

중도를 믿는 거예요.

중도를 믿는다.

내 마음이 항상 본래 청정한데

그 청정함을 마음껏 쓰는 거

쓰고 돌아오고

이 청정한 마음을 쓰고 돌아오고

이게 중도다 이거예요.

 

쓰면 현상계이고, 돌아오면 본질이고

그러니까 본질과 현상의 중도

언제나 본질을 중심으로 놓되

현상에서 자유자재로 살아가기.

 

그러니까 꿈에서 깬 상태로 꿈속을 자유롭게 살아가기

표현은 제가 여러 가지로 쓰고 있는데

여러분도 따라오시죠?

 

, 그래서 중도를 아는 사람은

거부하지 않기 때문에 인생이 풍요로워요.

 

사람들은 풍요롭다

그러면 꼭 좋은 것만 풍요롭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풍요는

좋은 것과 또 부정적인 것도 같이 겪어내는 게

진정한 풍요예요.

 

여러분, 그래서 중도를 믿자는 거예요.

중도를 믿고

이 세상에서 풍요롭게 살자.

이때 풍요롭게 살자는 좋은 것만 받아들이자가 아니고

좋은 것의 풍요가 아니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의 풍요를 함께 우리가 경험하는 것

이게 진정한 인생의 풍요예요.

 

그러고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이 말이나 번뇌즉 보리이런 말이

우리가 성숙하자 이 말이에요.

지금 이 모든 이야기를 다른 말로 하면

[성숙한 인간이 되자]는 뜻이에요.

그리고 그 첫걸음은 ±0 상태를 확보하는 것.

 

덧붙여서 한 말씀만 더 드린다면 ±0 상태가

지금 우리의 보통 의식이에요.

±0 상태라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들의 보통 의식이에요.

 

그래서 의식을 깨닫는 데 있어서

여러분, 제가 정말 집중해서

어떻게 하면 저한테 이렇게 분명해진 이 의식을

도반들도 다 같이 이렇게 분명하게 이거를 자각할 수 있게끔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하고

계속 제가 연구하는 건, 아시죠?

그리고 제가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죠.

 

근데 생각해 보니까

최근에는 돌이킴이 있는데, 저한테 어떤 돌이킴이 있냐면

제가 지금 약간 목이 말라서 물을 마셨어요.

충족이 안 돼서 한 번 더 마셔요.

보이차 맛이네.

오늘은 보이차를 끓이셨네.

 

여러분, 제가 지금 목마름을 느끼고, 물을 마시고

차 맛이 지금 보이차 맛이고

그리고 온도가 적당히 너무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고 지금 적당하고

이런 걸 제가 지금 느끼고

여러분하고 대화하고

지금 시작하고 한 30분 지나가고 있는데

 

30분 동안 매 순간순간

그냥 100% 제 의식이 말을 한 거예요.

제 의식이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의식을 깨닫는 데는

돌아보니까

, 이거는 간단하게, 간단 명료하게 말할수록 좋구나하는 걸

지금 제가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이 의식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우리가 지금 매 순간순간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은

그냥 멀쩡한 각자의 의식인데

이것이 보통 의식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주 이거를 어렵게 말할, 막 장황하게 말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구나.

사람들이 의식을 깨닫는데 더 어렵구나.

그래서 이 말은 간단명료할수록 좋구나 하고

저는 요즘 많이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께 이러쿵저러쿵 하기 전에

여러분 지금 살아 있어요?

그냥 그게 의식이에요.

언제나 있어요.

그리고 언제나 있어야 돼요.

언제나 있어야 되고

보세요, 언제나 할 때 나가 붙잖아요.

누구나

 

그러니까 언제나 어디서나 언제나 나예요.

그러니까 의식이 나예요.

 

여러분, 의식 입장에서는, 참 의식 입장에서는 보세요.

이게 좀 신비해요.

의식 입장에서는 인간으로 치면

80억 인구한테 자기가 다 스스로가 다 들어가 있어서

모든 사람이 나라고 하고 살게 만들었어.

근데 그 나는 의식이에요.

모든 사람이 나라고 하잖아요.

그 나가 의식이라고요.

 

그러니까 정말로 의식이 얼마나 신비한 물건이냐 하면

자기를 이렇게 많은 존재한테 나누어 들어가서

다 나라고 하게 만들어 놨으니까

나는 없어지지 않아.

이게 기가 막힌 이 생명의 일종의 전략, 생존전략

 

그러니까 우리가 나라고 하는 것이 그냥 의식이에요.

그냥 한마디로.

여기서 딱 오케이 하고 믿고 들어가는 게

가장 강력하고 빠른 길 같아요.

 

근데 이거를 인간들이 못 믿어.

못 믿으니까 확인하라는 거예요.

어떻게 확인하는가?

지금 저 보이십니까? 제 말 들립니까?

제가 지금 손 들라고 그러면 손 들겠죠?

웃으라고 그러면 웃고

눈 감아라 그러면 눈 감으시겠죠?

전부 다 뭐예요?

의식이에요.

그러니까 어려운 게 아니다 이거예요.

제가 요즘 들어서

이거를 어렵게 말하면 오히려 더 헷갈린다는 사람이...

이거 결코 어려운 게 아니고 간단 명료한 거다.”

 

여러분이 여기 오실 때까지

댁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었고

교통 차편을 탔고, 또 내려서 걸어 올라오셨고

한 걸음걸음 움직인 그것이 의식이죠.

그냥 그걸로 끝인 거예요.

그냥 끝인 거예요.

 

의식이 항상 있어서 의식이 의식을

우리가 그동안에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해요.

 

의식을 가린 것이 있어요.

의식은 이렇게 항상 있는데

의식을 가린 것은 생각이에요.

그래서 의식을 하늘이라고 비유하고

생각을 구름이라고 비유를 해서

어제 오늘처럼 구름이 많으면 하늘이 안 보이죠, 맞나요?

보통 사람들의 내면에는 이 생각의 구름이 많아서

이걸 한 번 확인 못한 거예요.

 

그래서 구름을 한 번 쫙 걷어내면

하늘이 확인되잖아요.

그 구름을 걷어내는 게 쌍차라는 거예요, 쌍차.

왜냐하면 생각은 항상 쌍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그래서 쌍으로 막는다이 말은

구름을 한 번 걷어낸다는 그런 말이에요.

 

그래서 생각하지 말라이 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그러면 생각의 구름이

생각 안 하면 생각의 구름이 싹 사라져요.

싹 사라질 때 제가 지금 여러분

깨어 계세요? 지금은 생각 안 하고 계시죠?

집 생각 안 하시죠?

제가 혹시 집 생각 안 하시죠?

여기서는 따로 뭐 생각할 거 없잖아요.

그냥 저를 보고 계시는 것이 깨어 계시는 거잖아요.

그러면 지금 그거다 이거예요.

 

생각 없는 마음 상태

보통 사람의 생각이 없는 마음 상태

그걸 보통 의식이라고 한다, 이거예요.

근데 그 의식이 공간처럼 있어요.

그 의식이 공간처럼 있어요.

 

의식을 확인할 때는 어떻게 확인되느냐 하면

이런 느낌으로 확인돼요, 느낌.

여러분 지금 살아 있습니까? 존재하고 있나요?

존재하는 느낌이 있죠?

존재하는 느낌.

 

인간의 의식 작용을 선사들은

요 경문각지라고 하는 네 가지로 딱 압축해서 항상 말을 해요.

의식 작용 인간 의식이 하는 작용

첫 번째 본다.

두 번째 듣는다.

세 번째 각은 느낀다에요.

이때 각을 깨달음이라고 하면 안 돼요.

 

모르는 사람은

보고, 듣고, 깨닫고, 안다 이렇게

아 그거는 한자를 모르는 소리예요.

이때 각이라고 하는 한자의 뜻은 느낀다는 뜻이에요.

지각한다,

지각한다는 말 쓰죠? 느낀다는 거예요.

보고, 듣고, 느끼고 안다.

이거 하나만 잡아도 깨달음이에요.

 

지금 뭐가 보냐?

의식이 봐요, 그냥.

근데 그중에서 의식이 본다할 때는 캐치하기가 어렵지만

내가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이 느낌

다시

지금 이 순간 여기에

내가 내 몸뚱이를 가지고

이렇게 지금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이 느낌

이거는 누구한테나 있다 이거예요.

 

간곡하게 여러분한테 전달하고 싶은 대목이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너무나 당연한, 그리고 정말로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도 흔한

왜냐하면 이거를 우리가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누구나 각자 자기의식 속에서 살아가고

이 세계는 자기의식 속에 펼쳐지는 하나의 꿈 같은 거예요.

이 세계는 자기의식 속에 그냥 펼쳐지는, 인연 따라 펼쳐지는 것들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뭘 하고 있는가?

의식이 이 다양한 현상계를 경험하고 있어요, 실상은.

그런데 거기에 한 생각이 끼어들어서 이거를 지금 뒤집어 놓았어.

이 실상을 전도몽상으로 뒤집어 놓았어.

그 한 생각이 뭐냐 하면 이 몸이 나라는 거예요.

그 한 생각의 시초가 몸이 나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이 오래 됐어.

 

그래서 의식을 깨닫고

다음에는 의식을 믿고 살기

의식을 깨닫고

내가 의식임을 믿고 사는 것.

그게 그다음 공부의 핵심이에요.

 

그래서 하여튼 제일 좋은 게,

여러분, 제일 좋은 게

의식을 확인하셔야 돼요.

 

그 확인한 다음에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정신만 차리면

이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

 

그리고 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다시 한 번 지금 쭉 연장해서 말을 하니까

제가 자초지종을 계속 반복해서 말씀드리고 있어요.

자초지종은 뭐냐 하면

_ 부터

_ 처음부터 지까지

_ 마지막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 반복해서 말씀드리고 있어요.

 

시작은 우리가 한 생각이 나라고 하는 생각이 생겨서

나와 남이 나누어지면서

이 세계가 분별세계라고 하는 파편화된 이 현상계로

지금 펼쳐져 있어서

고통의 세계다.

그래서 이 고통에서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은

내가 몸이 아니고 의식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고 그것을 믿고 산다.

여러분, 그 믿음이 주는 행복이 있어요.

믿음이 주는 행복이 있어요.

제가 참 좋아하는 말에 신심명이 있거든요.

이 마지막 구절이 신심불이라고 끝나거든요.

제일 마지막에 신심불이

신과 심은 둘이 아니다.’

이 말은 믿음과 의식은 둘이 아니다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말을 소화하기 위해서

이긴 시각, 펼쳐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공부에는 믿음이 의식이죠.

여러분 무엇이 믿어요?

의식이 의식을 믿는 거예요.

신심불이, 믿음과 의식은 둘이 아니다.

그래서 의식은 의식 자체가 믿음이고

믿음은 믿음 자체가 의식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믿는 순간

저한테는 이 뭐꼬?”

하는 순간

하는 이놈이 자각되잖아요.

 

내가 믿음이 마음 안에서 올라오는 순간

이것이 의식이라는 것이 자각돼요.

 

그리고 요 화두하고 믿음이 결합하니까

굉장히 강력해져요.

화두하고 믿음이 결합을 하니까

이것이 굉장히 강력해져요.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딱 돌아서면

모든 것이 지금 의식이 하고 있다는 이 사실

그래서 믿음은 의식을 분명하게 하고

의식이 분명하면 분명해질수록

또 의심을 믿게 되고

이때 믿음이라는 말은

 

여러분, 믿음이 왜 필요하냐 하면

우리가 중생이기 때문에 그래요.

중생의 특징은 의심이에요.

그래서 이 중생이라고 하는 이걸 극복하는 데는

믿음이 특효약이다.

 

그래서 화두가 그대로 믿음이라고 하는 사실.

정말 화두를 믿고

지금 이 순간 라고 돌이키는 것.

 

요게 모든 것의 총 결론이

코미디언 분이 그러대요.

코미디언들 보니까

한참 떠드는 걸 가만히 두고 있다가 끝에 가서

그래서 어쩌라고?”

여러분, 그래서 어쩌라고?

결론이 화두 들자고

 

그러니까 이 화두에 대한 믿음 하나가

결국에는 모든 것을 수렴하더라고요.

화두에 대한 믿음 하나가.

 

그래서 이 화두를 놓치지 않는 것

이거를 내가 생활에서 정말 실천하는 것

지금 의식인 이것

그러니까 이것을 계속 이것하면서

이거를 확인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이게 가장 실질적인 공부의 결론이에요.

 

그래서 이것이 왜 필요한가?

중생이라 해서

뭔가가 필요해요.

 

이렇게 우리가 혼자서는 공부하기가 어려우니까

같이 공부하는데

우리를 묶어주는 핵심은 화두라는 거예요.

 

 

화두는 다른 말로

화두 = 의식

그냥 딱 깨놓고 화두 = 의식

그러니까 의식을 놓지 말자,

저는 해요.

저의 화두는 예요.

이 뭐꼬?’ 였는데 뭐꼬까지 갈 필요가 없더라고요.

근데 이게 스위치야

저의 의식을 일깨워주,는 회광반조하는 하나의 스위치.

이게 우리가 중생이라서 필요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결론은 뭐냐?

화두를 놓치지 말고 삽시다.

이게 상근기라면 이런 말을 안 해도 되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쨌든 화두 중에 하나가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않을 때

너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

줄이면 뭐예요?

이 먹고?”예요

이거 줄이면 이 뭐꼬?”

 

우리들은 지금 자기가 하면

하는 이거거든 이해되세요?

 

제가 화두를 어떻게 하느냐 하면

하화면 하는 이것이 확인돼, 이해되세요?

그럼 이게 다야.

언제나 그래요.

 

그러니까 이거를 하면서

분명해지고 분명해져서

이런 것이 필요 없을 때까지는 꾸준하게 이걸 해준다.

그리고 화두를 들면 들수록 믿음이 강해진다.

화두를 들면 들수록 믿음이 강해져서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다 이 한 개의 나툼

이 세상에 이 한 개가 드러나고

이 세상을 이 한 개가 경험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가면 갈수록 분명해지는 것

 

그러니까 이거 나누는 것이

인생의 지혜 같아요.

행복의 비결은

화두 하나를 제대로 하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