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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스님_ 생각은 헛된 것 [큰 스님께 듣는 깨달음의 길]

Buddhastudy 2021. 7. 26. 19:17

 

 

 

금강경에 보면 즉비라는 말이 그렇게 많이 나와요.

곧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뜻이에요.

 

여기서처럼 허망하기 때문에 아니다, 이런 뜻이고

알수 없기 때문에 아니다 라는 거예요.

 

여기서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범부가 알 수 없기 때문에 곧 불법이 아니다. 이 뜻이고요.

물질만을 보시한 복덕은 윤회를 면할 수 없기 때문에 곧 복덕이 아니다. 이런 식인데

내용은 다 같습니다.

 

그러면 뭐가 같냐?

금강경에서는 실상반야하고 관조반야하고 문자반야, 그대로 나타나는데

실상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고요,

그걸 보라, 보게 하는 관조가 있단 말이죠.

그걸 설명하는 문자가 있어요.

 

그래서 실상반야의 세계를 이렇게 볼 때

그게 범부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즉비 거든요, 즉비. 곧 아니다.

그래서 범부가 반야라고 하는 것이 곧 반야가 아니다.

또 반야 아닌 것이라는 게 따로 있느냐?

아닌 것이라는 것이 아닌 것이 아니다.

이게 실상의 세계입니다.

 

실상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으로 접근을 못해요.

생각으로 접근을 했다라고 하면 그건 벌써 허상이 돼요. 허상.

생각은 헛된 거거든요.

이게 아주 문제예요.

 

그래서 생각은 다 모양 상, 상인데 제상인데요,

/제상은 비상이에요. 그게 실상입니다./

 

그런데 반야에서는요, 무슨 생각을 내도, 그거는 상이예요.

그건 상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뭘 알아도 그건 만견이에요. 허망된 견해다.

그래서 뭘 알아서 이걸 얻으려고 하면 억만년을 해도 못 얻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관조를 해야 돼요. 관죠.

~~~ 보고, 꿰뚫어 보는 그 노력으로 실상의 세계와 만나는 거지

이 생각을 일으키고, 저 생각을 일으키고, 그게 사랑분별인데

사량분별 가지고는 도저히 이 불생불멸 실상에 접근할 수가 없어요.

 

/조견오곤개공해야

오온이 다 공함을 조견을 해야 되는 거지

조견을 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문자라는 것은 실상의 세계를 관조로서 보게하도록 설명해 놓은 게 문자입니다.

/문자를 통해서 관조를 하고, 관조를 통해서 실상의 세계에 들어가면 그게 바라밀이에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일을 한 번도 경험을 해보지 못하고

온갖 생각하지 아니하면 자고, 자지 아니하면 생각하고

그것만 해온 거예요, 지금까지.

 

젊은 사람들 보면요 전철을 탄다든지,

휴대폰 가지고 영화도 보고, 경기도 보고, 게임도 하고 별의별 걸 다 해요.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차 탈 동안이라도 편안히 쉬면서 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것 안하는 사람은 그냥 곯아떨어져서 자요.

 

생각하지 않으면 자고, 자지 않으면 생각하고.

관조를 배워보지도 못하고 경험해보지도 못했거든요.

그런데 생각하고 잠자는 거 가지고는 절대 내가 나를 볼 수가 없어요.

관조가 안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럼 뭐냐?

생각에 매이지 말고, 잠자지 말고

~~~ 살펴보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나를 볼 수 있는 거거든요.

수행이니 뭐니 하는게 이게 다른 게 아니고

내 집에서 내 집에 가는 겁니다. 이게 수행입니다.

자기 집에서 자기 집에 가는 거예요.

 

자기 집에서 자기 집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뭐 어디로 내달리면 벌써 자기 집에 못 가는 거예요. 어디 가지 말아야 해요.

자기 집에서 자기 집에 가는 비밀은 안 가야 한다 이 말이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뭐냐?

이 생각 일으키고 저 생각 일으키고, 이 짓 안 해야 하고요

생각이 일어나도 그거 내버려 두고

딱 관조를 해나가는 거, 그게 조견입니다.

/응작여시관, 조견오온개공,

이것이 반야입니다. 이게 관조 반야에요./

 

이렇게 해서 사구게만 외워도 이걸 다 아는 거예요.

사구라는 게 뭐냐?

/사구라고 하는 건요,

금강경에서 설명하는 의미가 잘 나타나면 그걸 사구라고 그럽니다./

의미사구이지 문구사구가 아닙니다, 금강경에서는.

 

금강경 사구는 문구가 5자면 5, 7자면 7자로 맞추는 게 아니고요

의미가 딱 드러나면 글자 수가 많고 적고 하더라도 그걸 사구라고 그래요.

그래서 금강경 사구 중에서 제일 훌륭한 사구를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이게 글자가 안 맞거든요.

약견제상비상은 6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사구를 최고의 사구라고 그래요.

그런데 이게 글자가 맞아서 사구라고 그러는 게 아니고

의미가 아주 원만하게 여기에 포함이 되어 있어요.

 

법화경에도 제1사구가 있고, 화엄경에도 제1사구가 있는데

금강경 제1사구는 바로 이거예요.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이게 의미사구인데요,

 

금강경은 특히 의미가 잘 포함된 내용을 사구라고 하지,

글자 형식을 갖춘 걸 사구라고 하지 않는다.

이게 금강경의 특징입니다.

 

왜그러냐하면 금강경에는 형식을 갖춘 게송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약이색견아하는 게송이 있고, 일체유위법 하는 게송이 있는데

범소유상 개시허망처럼 의미가 완전하지 않아요.

그래서 범소유상 개시허망을 제일가는 사구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이거 외에도 간단하게 짧은 부분이 있더라도 의미만 잘 포함 되었으면 그건 사구예요.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금강경을 독송하는데, 많이 이야기하는 부분이 바로 그겁니다.

일체제불급 제불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개종차경출이라.

_일체제불과 부처님들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다 이 경으로부터 나왔다.

이것이 금강경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말이에요.

 

그러면 종종 물어요.

여하시차경고? 차경은 어떤 경인가?

일체제불도 이 경으로부터 나왔고

일체제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도 이 경으로부터 나왔으니까

이 경이 뭔 경인가? 어떤 것이 이 경이냐?

이렇게 질문할 수 있잖아요.

 

선지식마다 답변이 다 다르죠.

조주 스님한테 누가 물었어요.

조주스님이 금강경을 보고 계시는데, 물었어요.

금강경에 제불과 제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이 경으로부터 나왔다고 하는데

여아시 차경입니까? 어떤 것이 이 경입니까?”

이렇게 조주 스님한테 물었거든요.

 

앞에서부터 금강반야바라밀경 여시.. 이렇게 쭉 읽으셔요.

그러니까 그 질문한 사람이 불시, 아니다.

조주스님 말씀이

나는 경을 따로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을 해요.

 

경이라는 게 여시아문서부터 쭉 나온 게 금강경이잖아요.

그러니까 이 경이 뭔 경이냐 그러니까

조주스님이 앞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ㅎㅎ

 

그러니까 아닙니다, 이러니까

나는 경을 따로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금강경이 여시아문서부터 시작해서 신수봉행까지 가는 거지

따로 금강경이 어디 있냐 이거죠.

 

이게 도예요.

이 문자 반야를 떠나서 따로 뭘 찾으면 그것도 만견이거든요.

또 문자 반야가 전부라고 하면 그것도 만견이고요.

 

누가 저한테 와서 이 금강경이 뭡니까? 라고 질문을 한다면

저 앞에 그 말이 있어요.

여법수지분에 그런 말이 있어요.

시경명위금강반야바라밀 이시명자 여당봉지 그 말이 있어요.

나도 그렇게 말하겠어요.

이 경이 뭡니까 그러면

/“이 경은 이름이 금강반야바라밀이다.

이 이름으로써 그대는 잘 받들어 가져라.”/

그렇게 대답을 하겠다고요.

 

조주스님은 앞에서부터 쭉 읽었어요 ㅎㅎ

나는 이 경은 이름이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그러니 이 명자로 잘 받들어서 간직하십시오.

이렇게 대답을 하겠습니다.

 

그전에 어떤 분을 만났는데 금강경에 보면,

이 경을 읽으면 어떤 복이 있고, 이 경을 읽으면 어떤 공덕이 있고, 이렇게 설명을 했으니

이 경을 읽으면 어떤 공덕이 있다라는 그 부분은 금강경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더라고요.

 

이 질문 내용이 뭔지 이해가 가십니까?

금강경에서는 무엇이다, 무엇이다 이렇게 쭉~ 설명한 것만 있는 게 아니고

이 경을 수지독송하면 공덕이 얼마나 되고, 이 경을 수지독송하면 공덕이 얼마나 되고

금강경을 소개하고 설명한 부분도 있으니

실지 금강경이라고 하는 것은 그 부분을 빼고 금강경이 있느냐?

그것까지 합쳐서 금강경이냐? 이렇게 질문하더라고요.

 

경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닙니다.

그 부처님이 깨달으신 반야바라밀 실상의 세계를 보게 하는 관조의 세계,

또 실상의 세계를 볼 수 있도록 관조를 설명한 그 문자의 세계가 그게 경이거든요.

 

그러니까 금강경 공덕을 설명했든 어떤 다른 내용을 설명했든,

금강경에 포함된 모든 글자는 다 금강경이에요.

그 분이 질문을 아주 잘한 것에요, 아주 영리한 분이에요.

이경을 읽으면 어떤 공덕이 있다라는 건 금강경은 아니다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그건 금강경을 소개한 말이기 때문에.

 

그런데 수보리가 질문하고, 수보리백불언. 또 불고수보리.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이야기하는 것만 금강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불고수보리만.

또 수보리백불언,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한 건 수보리 질문이니까 금강경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수보리 백불언이 있기 때문에 불고수보리가 나왔으니까

수보리 백불언도 금강경이고, 불고수보리도 금강경이고

또 금강경을 설명한 내용도 금강경이고, 전체가 다 금강경입니다.

 

/이 금강경은 다른 게 아니라

반야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지혜다./

 

동아시아불교는 반야불교입니다.

선정이라고 하더라도 동아시아에서는 반야선이에요, 반야선.

그러면 무상선, 무상선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는게 무상선이에요

없을 무, 생각 상.

 

동남아시아 이쪽에서는 무상선을 많이 얘기하고요

무상선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 멸진정이예요.

다 멸진한 선정에 드는 것이죠.

동북아 불교는 멸진정을 말하지 않습니다.

동아시아 불교는 망상을 끊는 불교가 아니에요.

지혜를 실천하는 불교에요.

이게 완전히 틀린 겁니다.

 

/망상을 끊는 불교하고 지혜를 실천하는 불교하고 완전히 틀려요.

이쪽에서는 지혜만 실천하면 그만이에요./

이게 관조입니다.

망상이 일어나든 말든 그건 아무 상관이 없어요.

관조, 오로지 관조만 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지혜를 딱 실천해가면 그게 바로 반야바라밀이거든요.

반야바라밀이 바로 보시바라밀이고, 그것이 지계바라밀이고

/전부 온갖 바라밀이 다 반야바라밀입니다.

그것이 이 대승불교에요/

 

이 대승불교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반야선정이지

멸진정선정이라든지, 무상선선정이 아니다.

무상에 들어가려면 망상을 끊어야 해요.

그런데 이쪽에선 망상 끊는 게 아닙니다.

망상은 체가 없다고 그래서

일어나도 거기에 딸려가지 않고 바로 본래자리로 돌아가면 돼요.

 

망상이 일어나도 바로 망상이 일어난 줄 알아서

바로 자기가 하는 일을 계속 해나가면

그걸 정진이라고 그럽니다.

 

이런 반야를 얻게 되면 그걸 도인이라고 그러는데

대승불교의 선은 전부 반야선이다.

그래서 계속 앉아서 좌선만 하는 것을 나무랐고

아무것도 살피지 못하고 무상선정, 멸진선정에 드는 걸 내쫓았다 이거예요.

그런 선풍이 조사선 선풍이 된 겁니다.

/반야선풍이 조사선 선풍이거든요./

선종에서 금강경을 중시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거예요.

반야선이기 때문에.

 

이제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요

두 번만 읽어보고 마치겠습니다.

 

금강경, 8장 의법출생분

_법에 의해 모든 가르침이 나온다.

 

수보리 어의운하 약인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시인 소득복덕 영위다 부

수보리언 심다 세존 하이고 시복덕

즉비복덕성 시고 여래설 복덕다

약부유인 어차경중 수지

내지 사구게등 위타인설 기복승피

하이고 수보리 일체제불

급 제불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 개종차경출

수보리 소위불법자 즉비불법

 

...

...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