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금강경 장엄정토분 제10_ 정토를 장엄하다.
거기를 볼 순서입니다.
...
불고수보리 하시되_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을 하시되
어의운하오_ 그대의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석재연등불소하야_ 여래가 옛적에 연등부처님 처소에 있으면서
어법 유소득부아?_ 어떤 법을 얻은 바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부야니다, 세존아_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재연등불소하야_ 여래가 연등부처님 처소에 있으면서
어법에_ 법에
실무소득이니다_ 진실로 얻은 바가 없습니다.
실무소득이라는 4글자가 이 항목에서 아주 중요한 글자입니다.
수보리 어의운하_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이 장엄불토부아?_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했다고 보느냐?
불야니다, 세존아_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하이고_ 왜냐하면
장엄불토자는_ 불토를 장엄한다고 하는 것은
즉비장엄이니_ 곧 장엄이 아니니
시명장엄이니다_ 이것의 이름이 장엄입니다.
시고로 수보리야 제보살마하살은_ 수보리야, 모든 보살 마하살은
응여시생청정심이니라_ 응당히 이와같이 청정심을 내어야 하느니라.
응당히 다음과 같이 청정심을 내야 하느니라.
청정심을 어떻게 내나?
불응주색생심하고_ 응당히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고
주색생심을 하지 말고,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고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_ 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지니
소리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고
향, 냄새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고
맛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고
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고
법에, 법이라는 것은 색·성·향·미·촉인데, 이 색성향미촉이 기억 속에 저장된 것을 법이라고 그래요.
그것을 내진이라고 그럽니다.
색성향미촉은 밖에 있는 티끌이라고 해서 외진이라고 그러고
그런데 현재는 색성향미촉법 밖에 없는데, 기억 속에는 과거 색성향미촉법이 가득히 들어있어요.
또 기억 속에는 미래의 색성향미촉법을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 색성향미촉, 미래 색성향미촉, 이런 거.
또 색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 보고, 몸으로 느끼는 게 있는데
생각이 좋다 나쁘다 전부 분별하죠. 이게 전부 법입니다.
우리 머릿속에 저장된 색성향미촉 그것도 법이고, 좋다 나쁘다도 법이고
미래의 색성향미촉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도 법이고
이걸 전부 합쳐서 육진(색, 성, 향, 미, 촉 법의 육경)이라고 말하거든요.
색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지니.
밑에 말은 응당히 머문 바 없이. 응당히 색성향미촉법에 머문 바 없이
이생기심이라_ 그 마음을 낼지니라.
머문바 없다라는 것은 색성향미촉법을 뜻합니다.
색성향미촉법에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그런 뜻입니다.
소문소설이라는 건요, 석가모니부처님이 듣고, 연등불이 말하고, 이게 소설소문인데
말한바 들은바.
말한 것은 소설이잖아요. 들은 건 소문이잖아요.
이건 전부 말일 뿐이에요. 유시어언이다_ 오직 말 뿐이다.
그러면 석가모니가 성불한 것은 인사자오에요. 스승으로 인해서 스스로 깨달은 거예요.
스승한테 뭘 받은 게 아니고 인사자오라. 스승의 말을 통해서 스스로 깨달은 거지 연등불로부터 뭘 받은게 아니다, 이게 핵심이에요.
법이라는 것은 말을 통해서 스스로 깨닫는 겁니다. 인사자오에요.
인경자오_ 경을 보면 그 경을 통해서 스스로 깨닫는 것에요. 경에 뭐가 있는 게 아니에요.
실무속득라는 거에요, 스스로 깨닫고 보니 반야바라밀이 청정하고, 반야바라밀이 원만하다.
이게 자성반야죠_ 반야바라말이 청정하고, 반야바라밀이 원만하다.
스승의 언어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반야 정진을 깨달았다, 이 말이에요. 찾았다, 이 말이에요.
연등불로부터 얻은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불가취불가설이라_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반야정진은 스스로 깨달아야지, 스승으로부터 취할 수도 없고, 또 뭐라고 설명을 못한다 이거에요.
상이 있어야 설명을 하는데, 말하다 보면 옳다든지, 그르다든지, 있다든지 없다든지
이건 상이거든요.
상 없는 것을 얻 을 수도 없고, 상 없는 것을 말할 수도 없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
자오, 스스로 자, 깨달을 오,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럼 스승이 왜 필요하냐?
스승으로 인해서 인사자오라, 이 말이죠.
예를 들면 이런 거와 같은 겁니다.
사람이 잠들어 있는데 누가 옆에서 일어나라고 소리질러 잠을 깨웠거든요.
그럼 일어나라는 소리 듣고 스스로 일어나는 거예요.
소리 지른 사람이 일어나는 게 아니거든요.
소리로 인해서 스스로 일어나는 거지,
인성기침이에요_ 소리로 인해서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스승이 뭘 줄 수가 없어요. 자오하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게 반야정기입니다. 그 뱐아정기는 그야말로 제상이비상이니까
무슨 생각을 해봐도 상밖에는 못 하고, 무슨 말을 해도 상밖에는 말을 못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어원을 통해서 말을 통해서 반야정기를 깨닫는게 중요하다, 이 말이죠.
실무소득이라_ 반야정지은 본래 청정하고,
이게 왜 청정하냐 그러면, 비상이기 때문에, 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뭐든지 상이 떡~ 있으면 이게 청정해질 수가 없어요.
다 먼지도 묻고, 뭐도 묻고, 상이 있는데 어떻게 청정합니까?
없는 상이 있다면 없는 상이지, 그게 청정이 아니잖아요.
청정이라는 것은 제상이 비상일 때 모든 상이 상이 아닐 때 청정하단 말이에요.
그리고 반야정지는 본무진로라_ 반야정지는 본래 번뇌가 없다.
뭔가 형상이 있어야 번뇌가 있는데, 제상비상이니 본래 청정하고 본무진로하고 본래 번뇌가 없는 거죠.
그런데 그건 누가 말해주느냐? 말 못 해줘요.
스스로 깨닫는 거예요.
그럼 그냥 깨닫나? 인사, 스승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스스로 깨닫는다.
그러니까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가르침을 들어도
그 바른 문에 들어가지 못하거든요. 그런 거예요.
그래서 스승은 보은의 대상이고, 존경의 대상이지, 의지의 대상은 아니오.
스승을 맨날 자랑하고, 스승을 아주 표준으로 삼고 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왜냐하면 일어나라 말하는 게 스승인데, 그 말듣고 탁 일어나야지
“조금만 더 잘게요, 조금만 더 잘게요” 이건 스승에 의지하는 거예요.
스승 자랑하고, 스승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 전부 옳지 않은 사람이오.
이해가 가십니까?
그러니까 스승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이루어야 되는 그게 깨달음입니다.
반야라는 게 그런 거예요.
그다음 6번째 의심인데요
엄토라는게 장엄정토거든요.
장엄정토가 뭐냐?
불보살이 정토를 장엄을 합니다.
장엄이라는 게 잘 꾸며서 만든다는 얘기에요.
장식이라고 안 하고 불교에서는 장엄이라고 그럽니다, 장엄. 꾸밀 장, 엄할 엄.
그게 극락세계가 법장비구, 법장비구가 극락세계를 만들었다고 그러거든요.
어떻게 만들었냐? 48원을 세워요. 그게 극락 장엄이에요.
이런 절도 마찬가지죠, 다 장엄을 한 거거든요.
그러면 이런 보살이 원을 세워서 장엄을 했는데, 원을 세워서 장엄을 어떻게 했느냐?
공덕을 지어서 장엄을 했거든요.
그게 원력장엄이고 공덕장엄입니다.
원을 안 세우면 공덕을 지을 수 없고, 공덕을 안 지으면 장엄이 안 됩니다.
그래서 모든 장엄은 공덕입니다.
또 공덕은 원력입니다.
원력없이 공덕 못 짓죠, 또 공덕 없이 장엄 못하죠.
이래서 온갖 장엄이 다 되고, 온갖 극락세계가 다 이루어지는데
그걸로 본다면, 반야바라밀에서 취할 수 없다라는 건 어긋난다, 이렇게 의심하는 거예요.
벌써 공덕을 지어서 불국토를 세웠다면, 이미 취한게 아니냐?
왜 취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의심하는 거예요.
이것이 6번째 의심입니다.
그러니까 그 의심을 끊어주는 법문이
수보리야, 어의운하도_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했다라고 생각하느냐?
그러니까 이게 장엄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부처님의 의중을 딱 아니까 말을 부처님의 의중대로 따라가는 겁니다.
아닙니다.
하이고요, 장엄불토자는_ 불토를 장엄했다고 하는 것은
즉비장엄입니다._ 곧 장엄이 아닙니다.
그럴 때 이것이 이름이 참으로 장엄입니다, 이 말인데
이 즉비장엄이라는 게 뭔 말이냐?
이 장엄은 반야정진을 깨닫는 게 최고의 장엄이에요.
그런데 그건 일반장엄이 아니다, 이 말이에요.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 최고의 장엄이다.
그런데 그건 세속적인 장엄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세속적인 장엄이 아닌, 반야정지를 깨달은 장엄이 참으로 이것이 장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시명장엄이라는 것은_ 정말로 장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국토건설한다 이러는데, 불국토건설한다는 참뜻이 뭐냐?
성불했을 때 그게 진짜 불국토 건설한 것이다, 이 소리예요. 그것이 시명장엄이라.
성불했을 때, 그게 정말로 불국토 건설한 거다, 이 소리예요. 성불했을 때.
그게 반야정지를 얻었을 때, 반야정지장엄이 최고의 장엄이다.
시명장엄이라는 것은 그것을 장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거거든요.
세속적인 장엄이 아니다, 이거예요.
그런데 이 부분을 육조구결에서 설명하시기를
‘장엄이 3가지가 있다’ 이렇게 말씀을 했어요.
불국토 건설이 쉽게 말하면 3가지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제1 장엄은 세간불국토장엄인데
세간불국토장엄은 조사_ 절 짓는 거죠. 조사장엄
사경_ 경 쓰는 거죠. 사경장엄
보시_ 보시장엄, 공양_ 공양장엄
이런 게 세간불국토 장엄이에요.
절 짓고, 사경하고, 보시하고, 공양하는 게 그게 세간정토입니다.
두 번째 장엄은 신불국토장엄인데 _ 몸이 불국토가 되도록 하는 것.
신불국토는 보행공경이시야라, 모든 사람에게 견일체인하고_ 일체의 사람을 보고
보행공경을 해요, 널리널리 다 공경행을 실행해요.
내가 이 공경행을 탁 실행하면 그게 자기 몸을 불국토로 만드는 겁니다.
이걸 신불국토장엄이라고 그래요.
절 짓고, 경 쓰고, 보시하고, 공양하고 그러면 세간불국토고요
내가 누구를 보든지, 견일체인하고,
아들을 보나, 딸을 보나, 친구를 보나, 누구를 보나 다 공경행을 실행하면
온몸이 불국토가 된다. 이거예요.
맞는 거거든요. 맞는 거예요.
내가 항상 공경행을 닦으면 내 몸 전체가 부처님 나라가 되는 거예요.
그게 신불국토장엄입니다. 그게 제2 장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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