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기 두 가지 생각이 있는데. 살려면 그렇지. 뭐 어떻게 해. 나도 살아야 되는데. 이런 항변이 하나 있고. 안 그러면 사는 거 자체가 생명을 파괴하고 지구환경을 오염을 시킨다. 이런 양극단이 있다 이런 얘기요. 그러면 예를 한 번 들어봅시다. 한 천 평 되는 풀 밭이 하나 있습니다. 그럼 가만히 놔 놓으면 풀이 자랐다가 가을되면 죽고. 또 풀이 자랐다가 죽고. 이러면서 그것이 거름이 돼서 갈수록 풀이 더 무성하겠죠. 그런데 거기 소를 한 마리 딱 넣어 놨어요. 그럼 소가 풀을 뜯어 먹습니다. 그러면 소가 그만큼 풀을 뜯어 먹어버리고 헤치니까 그 풀밭은 회손되야 되지 않습니까? 그죠? 한 마리쯤 집어 넣으면 그 풀밭이 회손이 됩니까 안됩니까? 안 되요. 왜냐하면 소가 그걸 뜯어 먹고 소똥을 거기 누기 때문에 그것이 거름이 돼서 또 풀이 자라요.
그러니까 소가 한 마리 사는 것이 풀을 헤치는 게 아니라는 얘기에요. 또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봐요. 생태연못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거기서 뱀이 살고 있는데 벰은 개구리를 잡아먹고 살고. 개구리는 물벌레를 먹고 살고. 물벌레는 플랭크톤을 먹고 살고 이렇게 살아요. 그런데 개구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연못에 물벌레는 무궁무진해요. 항상 가득해. 그런데 종이 더 이상 번식 안하는건 뭣 때문에 그렇다? 뱀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뱀은 원수요. 하느님한테 빌든, 자기가 힘을 모아서 죽이든, 뱀을 죽여버리면 천국이 됩니다. 그러면 개구리의 갯수가 점점 늘어나겠죠. 그러면 개구리의 갯수는 영원히 늘어날 수 있습니까?
일정하게 늘어나면 연못에 있는 물벌레가 멸종을 해 버리면, 개구리도 동시에 덩달아서 멸종을 해 버립니다. 그럼 개구리가 이렇게 멸종위기에 처해있을 때 개구리가 그때 자각하겠죠. 아~ 물벌레만 내가 살 수 있는 터전이 아니고, 뱀도 우리의 개구리종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삶의 터전이라는걸 자각하게 된다. 이것을 생태계라 이렇게 불러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그냥 생존을 위해서 이렇게 먹이사슬로 이루어지는 것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게 아닙니다. 여기에 생태계교란이는 것이 주로 사람이 많이 일으키죠. 그런데 사람은 먹기 위해서 바다에 가서 물고기를 잡는 수준을 지금 넘어 서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홍수가 나기 때문에 제방을 좀 막는다. 다니기 위해서 길을 좀 닦는다 하는 문제가 아니야 이번 4대강 문제는. 그런 문제보다 훨씬 더 한. 다시 말하면 자연에 대한 심각한 파괴 행위다. 이렇게 볼 수가 있다 이 말이오. 그런 데서 여러분들이 세수정도 하고, 그 다음에 이렇게 사는 것이 그렇게 자연을 파괴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여기 어떤 문제가 있느냐? 소가 그 풀밭에서 풀을 뜯어먹고. 똥은 그 풀밭 밖에 가서 자꾸 누고 들어와서. 또 풀 뜯어먹고 똥은 밖에 가서 누고 하면. 이 풀밭이 점점 황폐될까 안될까? 황폐해지겠죠. 반대로 소가 이 풀밭에 한 100마리쯤 들어와 살아버린다면 똥은 딱 그 자리에 누더라도 황폐화 됩니까 안됩니까? 황폐가 되요. 그러니까 여기는 순환의 고리 밖으로 이동할 때 문제가 있고. 두 번째 개체수가 지나칠 때 이 순환고리를 깨뜨리게 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생존하는 것 자체가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건 아니에요. 오늘 인간의 개체가 너무 많거나. 안 그러면 개체가 소비하는 양이 너무 많거나.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밥을 먹고 똥을 밭에 가서 누면 되는데. 밥을 먹고 똥을 모아서 물에다 버려버려요. 물은 과영양화가 돼서 썩고. 밭은 황폐화가 되고. 그래서 화학비료를 집어 넣으니까 다시 오염현상이 생겨난다. 그러면 현재 우리가 사는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에 환경의 파괴. 즉, 자체 정화 능력을 초월하거나, 이렇게 서로 순환 논리를 깨뜨려서 지금 환경의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게 됐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 이것은 시간이 경과되면 경과 될수록 더 심각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자연의 생태 순환 원리에 맞춰서 그 안에서 그 범위 안에서 우리들의 편리를 도모한다면 이것은 파괴가 안 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상류에 산다면 여러분들이 우선 샴푸 같은 거 안쓰는게 좋아요. 왜냐하면 위에서 버린 물이 밑에 가서 상수원이 되고. 그것이 버린 물이 또 밑에 가서 상수원이 되니까. 그런 데서 샴푸는 안 쓰면 좋죠. 거 머리카락 좀 흔들흔들하는 그 TV에 보고 이렇게 흔드는. 그것 때문에 자연을 심각하게 오염을 시킬 수 는 없잖아요? 그래서 부처님이 머리깍는 것을 참 잘 내놨다 이거요. 그럼 샴프 안써도 되잖아요. 그러니까 사는 게 그대로 이기적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요. 사는 건 그냥 자연스러운 거에요. 여러분들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일정한 도를 넘어서면 여러분들이 소비수준을 넘어서면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이 된다. 또 지금 대 도시처럼 지나치게 한쪽에 밀집돼 있으면 환경을 파괴하게 된다.
그래서 저희들 문경 수련장 같은 경우는 화장실을 재래식으로 쓴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여러분들 오면 굉장히 불편하죠. 그래서 항의도 많고, 그것 때문에 못 오겠다는 사람도 많지만은. 그러나 우리가 다는 못하지만은 몇 개의 수세식 변소 이 정도는 괜찮지만은. 대중이 많이 오는 공간에 수세식이라는 것은 첫째 물소비가 엄청나게 많고. 그 아래 상류에 있기 때문에 하천오염이 많아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류에 살면 조금 덜해요. 상류에 사는 대신에 우리가 맑은 공기 맑은 물을 먹는 대신에 다른 사람 것도 조금 고려를 하자. 이렇게 조금씩만 주의를 하면 그래도 좀 더 오래도록 우리후손들이 쓸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데 우리는 걱정만하고 반대만 하지. 자기부터 조금씩 조정하려고 안 그런다.
없어서, 쓰고 싶은데 없어서 못쓰면 이런 사람을 뭐라 그래요? 극빈자라 그래요. 아시겠어요? 있는데 자기가 안 쓰면 뭐라 그래요? 검소하다 청빈하다 그래요. 안쓰는게 가난인데 가난도 없어서 쓰고 싶은데 없어서 못쓰면 극빈자고. 있는데도 세상을 위해서 안 쓰면 청빈하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권력 있는데도 고개를 숙이고 살면 겸손하다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쳐들고 싶은데 힘이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살면 비굴하다 이렇게 말해요. 고개를 숙이는 건 똑 같은데 그것이 주체적이냐 종속적이냐가 다릅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사는 인생을 자발적으로 행하게 되면 그것은 다 좋은 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남자를 내가 자발적으로 좋아서 껴안으면 사랑이 되고. 싫은데 나를 껴안는 건 어쩔 수 없이 껴안기면 성추행이 된다. 이런 얘기에요. 내가 일을 했는데 돈 받고 싶은데 못 받으면 강제 노역이 되고. 내가 일을 하고 안 받으면 자발적으로 안 받으면 자원봉사가 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사랑과 성추행도 종이 한 장 차이에요. 자발적이냐 아니냐? 이런 문제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어쩔 수 없이 성추행을 당했다 할 때. 성추행을 당했다고 자꾸 생각을 해서 자기를 괴롭히지 말고. 그냥 자발적으로 마음을 바꿔버리면 그냥 사랑이 된다 이 얘기에요. 그러니까 누가 껴안으면 아무렇게나 하라 이런 얘기가 아니라. 또 말 잘못 듣고. 그런 뜻이 아니고. 자기 상처를 자기가 어떻게 치유할거냐? 내가 길을 가다가 어쩔 수 없이 당해버린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전화위복이 되기도 하고. 재앙이 되고도 한다 이런 얘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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